33. Penny dreadful (5)2020.11.21.
천장이 높고 온통 빨간 융단이 깔린 극장의 로비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렸다. 이곳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대규모 무도회도 열린다고 한다. 소렐은 꼭 거대한 궁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라이킨의 본가가 더 큰가……?’
그래. 그곳이 훨씬 더 컸다. 온통 불이 밝혀진 걸 보지 못해서 그렇지, 글래스턴 극장은 글래스턴 공작의 저택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소렐은 라이킨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킨은 그녀가 예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라고 했지만, 소렐은 그게 아니란 걸 잘 알았다. 사람들은 전부 글래스턴 공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예요?”
라이킨은 너무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를 모르는 이들도 모여서 수군거릴 만큼 훤칠한 키와 두툼한 몸, 그리고 수려한 얼굴에 완벽한 태도까지, 모자라는 게 없었다. 그런 그는 지금 제 돈을 아낌없이 퍼부은 공주님만 보면서 안쪽으로 직접 안내하고 있었다.
“누구긴 누구예요, 뱀파이어에 저렇게 화려한 금발이면 ‘그’ 칼리에르 공이지.”
“그 사람 죽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1대. 저분은 2대예요.”
소렐은 라이킨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면 그는 또 웃어준다. 아니, 이미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라이킨은 극장에 자주 와요?”
보는 눈이 많으니 자연히 목소리가 소곤소곤, 작아졌다. 다행히 라이킨은 그녀가 아무리 작게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한동안 오지 않았습니다만, 이젠 자주 와야겠군요.”
소렐을 데리고 펜싱하우스도 가고, 승마도 하러 가야 하듯, 할 일이 좀 더 늘었다.
“라이킨을 아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아요.”
“내 생각엔 내가 아니라 공주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만.”
라이킨은 그 말에 조금 놀라서 그에게 좀 더 바짝 붙는 소렐 때문에 훨씬 즐거워졌다.
“저 이상해요?”
아닌데. 이거 최신 유행하는 드레스라고 그랬는데. 소렐은 괜히 치맛자락을 붙잡고 만지작거렸다.
“이상해서 쳐다보는 게 아니라 예뻐서 쳐다보는 겁니다.”
그리고 라이킨은 그녀에게로 향하는 신사들의 시선을 이미 불쾌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그다음에는 미모에 대한 감탄, 혹은 라이킨이 ‘직접’ 데리고 가는 여자의 값어치에 대한 견적과 환산이다. 전부 불쾌하고, 동시에 그가 불쾌해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라이킨 역시 소렐의 가치부터 따지고 글래스턴으로 데리고 온, 일종의 개자식이니까.
“공주님이 예뻐서요.”
그는 예쁘다는 말을 오늘 벌써 세 번째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그녀를 보는 저 눈들을 모조리 후벼 파서 뽑아버리고 싶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으나, 그를 올려다보는 소렐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안목이 있다는 거지.’
그래, 저놈들도 눈이란 게 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으면 저절로 보는 거야 당연하겠지. 당연한데 심사가 뒤틀린다. 최근 소렐 이드리스에 대한 라이킨의 태도는 몹시 이중적이고도 모순되었다. 소렐과의 결혼은 최대한 조용히, 숨길 것까지야 없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야 했다. 일종의 공주님 비위 맞추기다. 소렐은 평온한 대학 생활을 원하니까.
“그런데 같이 있는 저 아가씨는 누구죠?”
“쉬이, 최근에 칼리에르 공비전하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하지만 그는 오늘 소렐의 머리에 기어이 아주 작은 띠 같은 티아라를 얹어놓았다. 그녀의 동그란 두상을 타고 61개의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띠를 만들었다. 화려한 행사도 아니고, 그저 오페라를 관람하러 왔을 뿐이니 저 정도 티아라면 됐다. 칼리에르 공비전하 정도가 아니고서야 절대로 쓰지 못할 부와 권위, 그리고 전통의 상징이다. 이로써 칼리에르 공비가 가지고 있는 티아라가 하나 더 늘었다.
‘아이가 조금 어릴 때부터 물려줘서 쓰게 할 수 있겠군.’
티아라든, 보석이든 전부 대물림된다. 언젠간 칼리에르 공녀가 태어나서 저 티아라를 하고 다닐 수도 있겠다. 오래 사는 뱀파이어는 습관처럼 먼 미래를 예측하고도, 그 공녀가 당연히 까만 눈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걸 전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빨리 저 손가락도 채워줘야지.’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났지만, 소렐의 손가락에 걸릴 보석은 더 귀한 것이어야 했다. 그는 지금 어울리는 보석을 찾아 전 세계를 이 잡듯 뒤지는 중이었다.
“이상해요.”
“또 뭐가 말입니까?”
“사람들이 보는 게요.”
“학교에서도 비슷한 시선을 받지 않습니까?”
루벤 실베스터가 끼어 있던 남학생들과의 수업에서도 분명히 이런 시선을 받았을 텐데.
“이쪽입니다.”
라이킨은 조용히 그녀를 극장에 당연히 따로 있는 칼리에르 일가의 좌석으로 안내했다. 최근 몇 년 간, 그곳은 샤를렌 외에는 거의 찾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좀 달라요.”
“어떻게?”
“예쁘면 예쁘다고 해요. 너 진짜 예쁘다! 이렇게.”
“아, 그렇게 웃으면서 귀엽게 말합니까?”
“네. 그냥 솔직한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꼭 이상한 물건 보듯 바라보잖아요.”
“내가 보는 건요?”
“네?”
소렐은 고개를 들었다. 라이킨의 푸른 눈은 오직 그녀만을 향해 있었다.
“내가 공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불쾌합니까?”
대답은 곧바로 나오지 않았고, 그것이 라이킨을 조금 초조하게 만들었다.
“라이킨은…….”
자그마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맨날 웃잖아요.”
“내가요?”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많이 무서웠는데…….”
라이킨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아, 그래. 이건 여전히 무섭다. 그러나 결이 달랐다. 그녀를 습격했던 이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으나, 그녀가 라이킨에게 느끼는 어떤 두려운 감정은 달랐다.
“요즘에는 더 많이 웃어주잖아요. 한 번도 불쾌했던 적 없어요.”
불쾌하다니, 라이킨은 불쾌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여전히 알 수 없고, 또 다정한 만큼 싸늘하게 웃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내가 웃습니까?”
“네, 지금도.”
이렇게. 소렐이 주저하며 손으로 가리키자, 라이킨은 기꺼이 허리를 숙여주었다. 아니, 만지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놀란 소렐의 손이 뒤로 다시 물러났으나,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만져요. 허락이 아니라 어쩌면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소리 없는 말들이 시선에 담겨 오고 간 후에야, 따뜻하고 자그만 손이 주춤거리면서도 그의 깎아놓은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는 그제야 제 광대뼈가 제멋대로 솟아 올라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웃어서…….”
소렐은 그의 눈꼬리 쪽에 살며시 손을 대며 중얼거렸다. 라이킨은 소렐의 양손을 잡아다 제 뺨에 눌렀다. 토끼 공주님은 놀라서 숨을 조금 들이마셨다. 그러면서도 손은 떼지 않는다.
“웃어서?”
뱀파이어와 지나치게 가까웠다.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넘겨다 볼 수 있는 로열박스, 칼리에르 일가의 자리에서 소렐은 겁도 없이 뱀파이어의 뺨을 만졌다. 양손이 붙잡혔으니 이대로 잡아먹힐 수도 있지 않을까?
“웃어서 불쾌하지 않습니까?”
소렐은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라이킨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뺨에서 입술로 끌어다, 손바닥 안쪽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이 따뜻한 손바닥에 닿았다. 남자의 섬세한 속눈썹이 잠시 내려앉았다가 다시 새파란 빛을 열어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불쾌하기보단 무섭다. 소렐에게 있어 라이킨은 알 수 없어서 무서운, 지나치게 매력적인 존재였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하고.”
그는 소렐의 손바닥에 여전히 입술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그녀는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라이킨은 놔주지 않았다.
“공주님.”
소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겁이 났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두려워하는 새파란 눈을 빛내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항상 웃어주면 그 사람도 나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겁니까?”
라이킨은 반드시 남자라고 국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렐은 겁은 많지만 정직했다. 가만히 생각하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뱀파이어의 눈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냐?
“네, 샤를렌도 저한테 잘 웃어주고 라이킨만큼 가까운데…….”
그거야말로 심히 불쾌하다. 푸른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 소렐은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라이킨은 잡고 있던 손을 들어 가느다랗고 여린 손목에 입술을 댔다.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다.
“우리 공주님.”
그냥 공주님도 아니고 ‘우리’라는 친애하는 단어를 붙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안쪽 깊숙한 곳에 있던 뭔가가 바짝 죄어들었다. 사랑하는 여동생은 그와 지나치게 많이 닮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 건가. 같잖은 인내 따위는, 눈앞의 자그마한 공주님이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라이킨은 입을 열 때마다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 동생은 내 동생일 뿐이고.”
더 이상 남은 인내심이 없었다.
“나는 공주님의 남편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 이 어여쁜 토끼밖에 없었다.
“시누이보다는 남편이 더 가까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까맣게 맑은 눈에 신사를 가장한 포식자가 비쳤다. 결국은 이리 될 줄 알아야 했을까. 소렐 이드리스는 천 년을 고요히 살던 남자의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깟 별거 아닌 질문에 대한 대답만으로도 차가운 피를 가진 이는 제가 먼저 말한 불쾌하다는 단어가 뭔지 정확하게 알았다.
“앞으로는.”
기어이 여린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좀 더 차별해줬으면 합니다.”
착하게도 하지 말란 말이나, 손을 놓으라는 말도 안 한다. 혹은 그녀 역시 놓이고 싶지 않았거나.
“이 남편이 몹시 섭섭하군요.”
쥐고 있는 가느다란 손목에서 맥박이 빠르게 콩콩콩 뛴다. 그마저도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뱀파이어의 입귀가 느른하게 풀어졌다.
“아니면.”
소렐의 얼굴이 터질 듯 붉었다. 그 또한 어여쁘다. 극장의 로열박스에 앉혀놓는 것보다는 침대에 눕혀버리고 싶게 어여쁘다.
“성의와 표현이 모자랐습니까?”
이쯤이면 충분할 것이다. 소렐은 결국 그의 차갑게 불타오르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갑자기라니.”
뱀파이어는 순하게 붙잡혀 있는 공주님을 보며 웃었다. 그녀는 얼마든지 그를 밀어낼 수 있는 강대한 힘을 가졌다. 잘 알고 있기에 더 즐거웠다. 그는 밀려나지 않을 거다.
“내가 그리 무심한 남편이었습니까?”
소렐은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그가 좌석에 앉혀놓은 뒤 이 모든 짓을 시작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볼썽사납게 붉은 융단 위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니, 아니다. 그녀는 붉은 융단 위에 주저앉는 게 아니라 라이킨의 품 안으로 떨어질 거다. 그리고 그게 더 위험했다.
“그렇다면 무례를 용서해주시지요.”
드디어 두껍게 떨어진 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어두운 관객석에 비해 훨씬 밝게 빛나는 저 무대로 향했다.
“앞으로는 성심성의껏 더 최선을 다해 모실 테니.”
소렐은 어깨를 움츠렸다. 깨끗한 이마에 남편의 입술이 와 닿았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앞으로 공주님께서 남편이 무심하다고 생각할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말투가 훨씬 더 정중해졌는데, 고고한 칼리에르 공은 어쩐지 몹시 즐거워 보였다. 그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제 자그마한 공비에게 오롯이 쏟아졌고, 공비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꼼지락거렸다.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소렐은 간신히 대답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리도리 흔드는 그 모습이 제 남편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자극하는지도 모르고.
“무심한 적 없었잖아요.”
“글쎄요.”
라이킨은 다정하게 대답하며 소렐의 손가락을 펼쳐 두께를 가늠했다.
“내가 당연한 부부간의 일을 하는 것이 당혹스러우실 만큼 다정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반지까지 끼워서 대학에 가게 하면 울려나. 우는 것도 예쁘겠지만 속상해하는 건 짜증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대로 그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그 혼자서 만족스러운 관계에 속한 것을.
“저, 저 맛없어요.”
소렐은 저도 모르게 툭 뱉어놓고서도, 왜 라이킨이 그녀의 손에 얼굴을 대고 소리 없이 웃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의 넓은 어깨가 들썩일 지경이었다. 한참 웃던 그가 웃음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겨우 바라보았다.
“이리 단데요.”
“라이킨은 단 거 싫어하잖아요.”
“그런 줄 아시면서 일부러 초콜릿 같은 걸 제게 먹이셨단 말씀이군요.”
순식간에 눈빛이 휙 바뀌고, 긁듯이 말하는 낮은 목소리가 위험하게 들렸다. 소렐은 헙, 하고 손으로 제 입술을 가렸다.
“아, 안 싫어한다고 했으면서……!”
“공주님께서 주시는 건 싫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참아가며 조금씩 맛보지 않으면 천박하게 고개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삼켜대겠지. 라이킨은 지금이라도 당장 저 예쁜 입술을 가리고 있는 손을 치워내고, 종알대는 붉은 것을 당장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오페라를 기대하고 온 공주님이 완전한 토끼로 변해 울면서 달아날지도 모르니 또 참아야겠지. 그는 바싹 마른 인내심을 간신히 끌어 모았다.
“그러니 조금만 주시지요.”
어찌 들으면 구걸이었다.
“초, 초콜릿 안 가져왔는데요.”
순진한 목소리에 저 아래까지 묵직하게 뻐근해져왔다.
“그거 말고.”
라이킨은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또 다정하다. 소렐은 그가 기어코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다시 가져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웃는 뱀파이어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보는 사람의 혼을 빼간다. 그래서 제 살에 위험하게 입술을 대는 것조차 가만히 두게 된다. 소렐은 쿵, 쿵,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악단이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녀의 심장고동 소리가 푸르른 동맥을 타고 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당신 말입니다, 공비전하.”
아직까지도 여전히 당기고 싶어 하는 손등에 기어코 뱀파이어의 입술이 덮였다. 소렐은 어쩐지, 그에게 뭔가 더 주고 싶었다. 아득한 두려움을 넘어서라도. 입술을 여전히 붙인 라이킨의 푸른 눈이 들려서 그녀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그는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신의 체취를 그 작은 손 가득 묻혀놓았다. 내 것이라고, 맹렬하게 표시했다.
“아, 시작하는군요.”
음을 맞춘 악단이 지휘자를 바라보고, 지휘봉이 허공을 그었다. 소렐은 무대를 이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푸른 눈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온몸에 그가 선물한 보석을 두른 채, 이젠 뱀파이어의 공격적인 체취에 잔뜩 절여졌다. 라이킨은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긴 했지만, 적어도 소렐은 다른 곳에 결코 눈을 돌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토끼를 잡아채 온 뱀파이어는 입술을 핥았다. 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