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공주님의 남편 (8)2020.10.28.
무척 피곤하고, 긴장도 많이 한 날이었다. 그래, 그건 이해한다. 라이킨은 곤히 자는 아기 토끼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나서야 일단은 안심했다.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우유를 많이 먹은 토끼가 몹시 곤했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저 겁 많은 공주님이 그의 앞에서, 갑자기 픽 쓰러져 잘 줄은 몰랐다.
“놀랐잖아요, 공주님.”
조용히 중얼거려도, 소렐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녀의 잠옷에 파묻혀서 쌕쌕대는 숨소리만 낼 뿐이다. 라이킨은 그녀를 보다가 픽 웃으며 등받이에 기댔다. 그는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말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소렐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았다. 한마디로 토끼다. 새하얗고 작은 토끼. 소렐이 주저하면서 한 말대로 누군가는 저 토끼가 아내라는 게 무척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인간의 모습이 아니니까.
“으……, 맛없어…….”
이맛살을 찌푸린 소렐이 잠꼬대를 옹알거렸다. 그는 소리 내지 않고 서늘하게 웃었다. 소렐이 토끼 모습을 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무척 깜찍하고 귀여웠다. 하고 싶은 말은 용감하게 다 하고 잠꼬대까지 해가면서 자다니, 그녀보다 더 씩씩하고 배짱 좋은 토끼가 어디 있을까.
‘그래. 배짱도 좋지.’
소렐을 보면 그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온몸의 신경이 안 좋은 곳으로 쏠렸다. 빳빳하게 날이 서고, 맹수가 사냥을 하듯 낚아채버릴 기회만 엿보게 된다. 라이킨은 너무 피곤해서 완전히 뻗어버린 토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똑똑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모르겠다. 저렇게 귀여우면 손을 뻗고 싶다가도 참게 되지 않나.
“……공주님.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렇게 자면 안 됩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에 대답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곤히 잠든 소렐 이드리스의 삶은 여태까지는 아주 단조로웠다. 바꿔 말하자면 펠릭스 이드리스가 딸을 아주 꽁꽁 숨겨 키웠다는 뜻이기도 했다. 라이킨은 도대체 그가 어떻게 딸을 지킨 건지, 비법이 있다면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라도 알고 싶었다.
‘배후가 누구지? 카메론 셀레스트? 그놈이 그렇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놈은 아니었는데.’
라이킨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어디서 감히 교정에서 수업을 들어가는 여학생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나. 로체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그들의 딸을 칼리에르 공비의 절친한 친구로 심는데 동의한 게 맞는 결정이었나 고민하기 시작했을 거다. 라이킨은 매끈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가 로체 집안에게 주기로 한 이득이 얼마나 되는가. 어차피 소렐 이드리스를 노릴 놈들이 널리고 깔렸다는 사실은, 로체 집안도 알고 있었을 거다. 마땅히 알고 감수하면서 그가 주는 이권을 받기로 한 거래다. 라이킨은 소렐이 ‘안전’하고, ‘검증’된 친구를 하나쯤 곁에 두길 바랐다. 그래야 글래스턴에서 무사히 대학 졸업이라도 할 거 아닌가.
“우우웅…….”
소렐이 뜻 모를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라이킨은 긴 손을 뻗어 불편해하는 토끼의 머리를 살살 긁듯이 쓰다듬어주었다. 고개를 조금 들었던 그녀는 다시 천천히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라이킨은 손을 떼었다.
“으응……!”
손을 떼자마자 짜증이 묻은 소리와 함께 소렐이 또 고개를 조금 들었다. 작은 토끼의 머리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라이킨의 한쪽 눈썹이 슬쩍 들렸다. 다시 쓰다듬어주니 소렐은 도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계속 쓰다듬거라!’
암만 봐도 공주님께서 그렇게 분부하신 모양새라, 일개 공작 전하는 그저 분부하시는 대로 살살 쓰다듬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킨은 그러면서도 웃었다. 어쩌다 칼리에르 공작이 토끼의 밤 시중을 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밤 시중도 밤 시중 나름이라, 그는 다른 밤 시중을 들고 싶었지만 이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공주님, 뱀파이어와 함께 좋은 밤 되시길.
* 카메론 셀레스트 교수는 아침부터 냅다 추기경 관저로 쳐들어갔다. 글래스턴 추기경에게 감히 약속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건 아주 무례한 행위였지만, 그의 눈에 지금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정신이십니까?”
사실 추기경도 할 말은 없었다. 고대 마법, 성력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 힘을 빼내기 위해 보냈던 엘펜하임 소속 전문가들이 전부 다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제가 담당하는데, 왜 먼저 손을 쓰셨습니까?”
그것도 글래스턴 대학 내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카메론 셀레스트가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추기경 관저로 달려온 건, 그 일을 계획한 사람이 정황상 글래스턴 추기경 틸로네 리퀘도뿐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잃으셨습니까?”
추기경은 이미 지난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실책이 크니, 엘펜하임 기사단 소속 글래스턴 총괄 책임국장인 카메론 셀레스트에게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덟.”
“맙소사.”
카메론은 탄식을 하며 주저앉았다.
“여덟씩이나 대낮에, 그것도 학교에……. 여덟이면 뱀파이어들이 포식을 하고도 남았…….”
그는 그냥 말하는 걸 포기하고 얼굴을 싸쥐었다. 너무나 소중한 전력을 허망하게 잃고 말았다.
“추기경 전하. 전하께서 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에 고대 마법이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손을 안 쓰겠나. 내 경솔했네. 그래, 내가 경솔했어.”
추기경은 변명을 하면서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가 잘못을 보통 크게 저지른 게 아니었다.
“저는 지난 10여 년간 글래스턴 대학에 처박혀서 뱀파이어들과 조용한 대립 관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갈등은 최소한으로 하고, 인명피해는 더 없애려고 애썼지요.”
글래스턴은 보통 웃기는 동네가 아니었다. ‘전하’라는 경칭을 받는 이가 둘씩이나 있었다. 하나는 글래스턴 공작, 칼리에르 공이고, 또 하나는 글래스턴 추기경이다. 한마디로 엘펜하임과 뱀파이어의 제법 굵직한 세력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칼리에르 공은 여느 공작들보다 더 높고 강대한 세력으로 엘펜하임 기사들을 도륙했다. 그걸 막고자 엘펜하임에서 계속 글래스턴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애쓰다 보니, 자연히 글래스턴에 추기경을 어떻게든 꽂아 넣을 수밖에.
“아무리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가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지만, 침묵한다 해서 그놈의 본성까지 거세되는 건 아닙니다.”
추기경은 라이킨의 이름 전체가 나오자 당장 움찔거렸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엘펜하임의 가장 큰 적수 중 하나, 성기사들을 모두 피 한 방울 없는 창백한 시신으로 만든 증오스럽고 저주받은 존재.
“더구나 학교는 일종의 비무장지대고, 유일하게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거기에서 납치시도를 하시다니요.”
카메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자네가 움직이지 않았잖나. 보고 있던 내가 답답해서…….”
“다 때가 있는 겁니다. 아직 칼리에르와 소렐 이드리스 사이가 어떤지도 확실하지 않은 판에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덟을 잃으셨습니다. 제가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해서 곧장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말이 무척 빠르고 거세졌다. 권위를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는데 익숙한 엘펜하임 영사며 추기경을 데리고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가끔은 뭐가 우선인지 따져야 할 때가 많았다.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쩌면 지난 10여 년간, 조용히 이어지던 평화를 영영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계속 피해는 발생했어. 그게 평화였나?”
“그럼 다시 전쟁을 하실 겁니까? 본부에서 과연 그걸 바랄까요? 전쟁도 고대 마법을 되찾은 다음에나 하는 겁니다!”
카메론 셀레스트 교수는 결국 언성을 높였다.
“가만히 앉아서 고대 마법을 쥐고 있는 칼리에르에게 글래스턴을 통째로 빼앗기고 싶어서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추기경은 이마를 짚은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카메론의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벌이신 일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드리스의 딸은 칼리에르 공비입니다.”
“칼리에르가 그걸 과연 공표할까? 인정은 하겠어?”
“그건 모르지요. 그들의 일과 지위 따위, 우리가 알게 뭡니까. 상대는 제임스 칼리에르입니다. 부부 사이가 어떻든 간에 그놈은 뭐든 이용할 수 있고, 약간의 틈도 얼마든지 크게 키워낼 수 있는 교활한 놈이란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소렐 이드리스가 칼리에르 공비라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노리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가. 카메론 셀레스트는 뒤통수가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보복이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여덟이 아니라 예순네 명이 쓸려나갈 수도 있습니다. 칼리에르 공을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전하.”
“나는 그 교활한 뱀파이어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네!”
“아니요,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 뱀파이어를 우습게 보셨습니다. 글래스턴뿐만 아니라 이 나라, 심지어 엘펜하임 본부에서 소리도 없이 대낮에 사라진 성기사가 얼마나 많은지 전하는 모르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글래스턴은 정말 웃기는 동네다. 이 고즈넉한 도시에 ‘전하’라는 호칭을 둘씩이나, 아니, 이젠 칼리에르 공비까지 나타났으니 셋씩이나 듣고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겠나?”
표면상으로는 글래스턴 총책임자인 카메론보다 한참 위인 추기경이 다소 불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은 저질러놨지만 자신보다 아래인 새파란 녀석에게 깨지는 건 불쾌하다는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메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에 연연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저도 그걸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생각하신 게 있으십니까?”
추기경은 대답 대신 파이프를 꺼냈다. 그래서 카메론 역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 소렐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원래 피곤할 때 악몽을 자연히 꾸게 된다지만, 이번에 꾼 꿈은 이상하게도 악몽이라고 하기엔 조금 달랐다. 아주 차갑고 크고 무서운 맹수가 거대한 앞발을 들어 그녀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잡아먹으려고 잘해주는 건가?’
아니, 열심히 쓰다듬어주기만 한다. 쓰다듬어주는 손은 생각보다 차갑지는 않았다. 그저 적당히 서늘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좋은 맹수인지도 몰라!’
헤헤 웃었더니 맹수도 같이 웃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깨버렸다.
‘이상한 꿈이네.’
소렐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오전의 햇볕이 이미 창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눈을 뜰 때마다 보던 익숙한 창가가 아니었다.
“어?”
깜짝 놀란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다시 높아지고, 몸에서 담요가 흘러내렸다. 소렐은 잠옷을 제대로 입은 채로 널따란 응접실의 긴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잘 잤습니까?”
소렐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들었다. 라이킨은 그녀가 누운 소파 바로 옆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갑자기 쓰러져 잠들어서 나도 놀랐습니다.”
“아……, 제가 그랬어요?”
“예. 깨우려고 하면 짜증을 내서 그냥 두었습니다.”
짜증까지 냈다고! 세상에! 소렐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어, 죄송해요…….”
“천만에요.”
라이킨은 신문을 접었다.
“덕분에 밤이 모처럼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뱀파이어의 밤은 외롭고 무료하다고 했던가. 소렐은 괜히 머리카락을 만졌다. 어쩐지 긴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고 마치 빗어놓은 것처럼 쓱쓱 잘 내려갔다.
“저, 라이킨, 옷은…….”
“옷이요? 예쁘네요.”
“네. 저, 어떻게 입었는지…….”
“아, 에벌린이.”
“아, 에벌린이…….”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식사를 할까요.”
“네? 아니, 저는 학교 가야 하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큰일을 겪었으니 오늘은 쉬도록 해요.”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수업이 시작했을 시간이다.
“나도 마침 수업이 없는 날이니, 오늘은 우리끼리 공부할까요?”
그건 좋았다.
“뭘 가르쳐주실 거예요?”
소렐의 눈이 금세 커졌다.
“느긋하게, 책이나 좀 읽고 대화나 하는 거지요. 그리 거창한 건 아닙니다.”
라이킨은 허공에 붕 떠 있는 소렐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뒤로 넘겨주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학교에서 배우는 거예요?”
다 좋은 거겠지, 뭐. 소렐은 별생각이 없었다.
“예.”
라이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공주님에겐 반드시 필요합니다.”
소렐은 그 의미가 뭔지,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 변호사는 몹시 피곤하다. 늘 일의 연속이고, 사고를 치고 의뢰를 해오는 뱀파이어 놈들은 왜 이렇게 많나 모르겠다. 올케에게 일이 생겼다는 걸 핑계로 오늘 하루는 그냥 출근도 안 해버린 샤를렌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커피를 찾아 터덜터덜 내려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놀란 올케의 말에 샤를렌은 눈에 간신히 힘을 주었다. 뭐야, 싸움이 난 건가? 최초로 오빠가 부부싸움이란 걸 벌이는 걸 구경하는 건가?
“공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대답하는 오빠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말을 막 하면 진짜 큰일 나요!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어떻게 그런 독설을 해요? 이게, 이게 진짜 상류층의 예절이에요?”
오, 그 얄팍한 책자가 드디어 나오는 건가. 샤를렌은 재미라곤 전혀 없고, 쓸데없는 허례허식으로 가득 찬 <신사숙녀의 예절>이라는 작은 책자를 떠올렸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더 심한 말을 들을 겁니다. 공주님만 상처를 받게 되겠지요. 사람들은 착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을, 유감이지만 만만하고 우습게 봅니다.”
소렐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나는 만만하고 우스운 사람이 아니에요!”
“예, 아니지요.”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앞으로, 공주님이 잘하는 것을 못한다거나,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사람은 가만두지 말아요.”
아하. 샤를렌은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눈치챘다. 폴리아나 그린이 소렐이 의기소침해할 만한 말을 한 일 때문에 오빠가 저러는 거다.
‘옘병…….’
샤를렌은 대충 묶고 잔뜩 흐트러진 금발머리를 흔들며 커피를 잔에 가득 부었다.
“그리고 딱히 독설은 아닙니다.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지요.”
라이킨은 두 번 세 번 아니라고 강조했으나, 샤를렌이 듣기엔 영락없이 독설이었다.
“그러니까, 공주님.”
뱀파이어는 제 잘난 얼굴만큼 화사하게 웃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떠들면 네가 뭔데 감히 함부로 떠드냐고 분명히 말해요.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에게 말하고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공주님은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진짜요?”
소렐은 몹시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공주님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공주님이니까요.”
샤를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커피를 들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갔다. 어째 점점 이 집에 오면 못 볼 꼴만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