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공주님의 남편 (6)2020.10.21.
로렌스 오블리앙 공이 소위 ‘본가도 아닌 도시의 임시거처’에 들른 건 그날 오후였다. 발레시나스 공작은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했기에, 그가 갑자기 움직인 건 흔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어디 보자. 다친 곳은 없습니까?”
지팡이를 내려놓고 장갑을 벗은 로렌스는 서둘러 소렐에게로 긴 다리를 움직이며 걸어왔다.
“괜찮아요.”
숨을 쌕쌕 몰아쉬며 소렐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눈이다. 로렌스는 그러나 딱히 그 대답에 동의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소렐 앞에 의자를 직접 끌어다 놓고 우아하게 앉은 그는 눈이 커다란 며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넘어진 곳도 없고?”
“네.”
소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렌스를 뚫어져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참 착하게 잘했다.
“베이거나 스친 부분도 없고?”
“네.”
그러나 대답에는 조금 힘이 빠져 있었다.
“손바닥은 다친 모양입니다.”
점잖은 목소리가 지적하자 소렐은 사파이어를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아신 거지?
“피 냄새가 미약하게 나는군요.”
로렌스는 조용히 말했다.
“조금 까진 것뿐이에요.”
혹시 뱀파이어가 피를 쭉 빨아먹는 건 아닌가 싶어 소렐은 손을 뒤로 숨겼다.
“어쩌다가 이렇게 까졌습니까?”
그러나 로렌스 오블리앙, 발레시나스 공작은 그저 조용히 물어볼 뿐이었다. 뭘 어쩌다가 손바닥 안쪽만 저렇게 벌겋게 까진 거냐고. 그의 차분한 시선은 소렐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라이킨 같았다. 소렐은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스튜어트 부인?”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이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서 조용히 섰다.
“예, 합하.”
“공주님이 뭘 드시긴 했나?”
“따뜻한 꿀생강차를 조금 드시곤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어요. 와인은 싫다고 하셨고요.”
“지금 국물 요리를 만드는 중인 것 같은데?”
“네. 크림 수프를 만들고 있지요. 거의 다 됐답니다.”
“그럼 좀 내어오게. 예서 공주님과 한술 떠야겠군.”
로렌스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지금 이 타운하우스에서 로렌스 오블리앙 공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공주님, 먹기 싫어도 조금은 먹어야 힘이 나고 몸이 따뜻해집니다.”
일단은 먹여둔 다음에 손이 왜 그 모양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캐물을 심산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상처는 습격을 당했다고 해서 생길 상처가 아니었다. 로렌스 오블리앙 공은 차분하고 조용한 태도로 모든 것을 지휘하고 명령하는 데는 도가 텄다. 스튜어트 부인이 재빨리 주방으로 가고, 소렐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는 토끼 귀가 튀어나오는 자리를 괜히 문질렀다. 오늘 습격을 당했을 때, 토끼 귀가 튀어나오려다가 말았다. 폴리아나 그린이 오는 걸 봐서 바로 안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아나 입장에서는 귀찮고 한심했을 거다.
‘토끼 너, 아직도 마법 못 써?’
아빠가 사용하는 마법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성기사들이 다 땅에 엎드러지고, 그들이 밝히던 신성한 불은 불씨조차 남기지 못하고 재와 연기로 흩어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가끔 땅이 갈라지기도 했다. 아빠는 언제나 원하면 바로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녀는 검이 쇄도한 후에야 겨우 밀어내는 것밖에 못 한다.
“저기…….”
가만히 토끼가 말하는 걸 기다리던 로렌스 오블리앙 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합하께서는, 마법을 보셨지요?”
“예, 봤습니다, 공주님.”
소렐은 그렇구나, 하고 한참을 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갑자기 팍 쳐들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저는 원래 마법을 하나도 못 썼어요.”
“그랬군요.”
“어찌나 형편없던지, 엄마도 아빠도 저한테는 굳이 마법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시고선, 다시는 마법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전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왜 마법을 가르치려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소질이 없는데.”
“오늘 마법을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합하는 다 들으셨나 봐요.”
소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늙어갈수록 입은 다무는 대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그렇구나…….”
그녀는 하려던 말도 잊고 로렌스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래서, 마법을 하나도 못 썼는데?”
로렌스는 소렐이 원래 하려던 말을 계속해보라며 손짓했다.
“아, 그렇죠. 여태까지 한 번도 못 썼는데,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사용해서 안전해졌잖아요?”
아니라고 하면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늙은 신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지요. 참 잘했습니다.”
토끼는 그 말이 필요했나 보다.
“그렇지요?”
“예. 참 잘했습니다.”
동의하는 말은 로렌스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 있던 넓은 소파에서 뛰어내려와, 로렌스를 지나쳐 달려갔다. 외투를 팔에 걸치고 있던 라이킨은 얼른 팔을 벌렸지만, 토끼는 뱀파이어에게 그렇게 간단히 폭 안기진 않았다. 소렐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급히 멈춰 섰다.
“……와, 왔어요?”
가까이 다가가긴 무섭고, 그렇지만 반갑긴 하고. 그래서 겨우 찾아낸 인사말에 라이킨은 무릎을 접고 소렐을 올려다보았다.
“예,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도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해줬다.
“오늘 아주 잘했습니다. 공주님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어찌나 마법을 많이 사용했던지, 그들 사이를 잇는 황금실은 순식간에 스무 가닥이 넘어갔다. 소렐과 라이킨 사이는 점점 더 많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나도 실수한 거 없이, 잘했어요. 공주님 아버님도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펠릭스 이드리스야 당연히 그럴 거다. 소렐은 순식간에 언제 울먹였냐는 듯, 등을 쭉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늘 아주 잘했다. 아예 마법을 포기했을 때에 비하면 눈부신 성장 아닌가.
“점점 실력이 느네요.”
그래! 라이킨의 말이 맞았다! 오늘 못한 게 아니다! 아주 잘한 거다! 내일은 더 잘하겠지!
토끼는 다시 씩씩해졌다.
“그러게. 앞으로는 더 잘하실 텐데…….”
로렌스는 빙긋 웃었다.
“누가 잘하지 못한다고 뭐라 했습니까?”
방 안에 있는 뱀파이어들의 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 뱀파이어들은 눈치가 무척 빠르고, 조그마한 단서에서 여러 가지 사실을 추리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들이다. 아니면 소렐의 주변에 있는 뱀파이어들만 유난히 그러거나. 소렐은 잠깐 가졌던 자신감이 도로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이 가져다준 버섯 크림 수프를 숟가락으로 뒤적였다.
“말 안 할 거예요.”
내리꽂히는 네 개의 시선은 그녀가 고집스럽게 말하자 일단 제각기 후퇴했다. 소렐은 뱀파이어 셋과 호랑이 수인 하나의 시선이 충분히 멀어졌다 싶을 때 겨우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맛보았다. 걸쭉해질 정도로 끓인 수프는 허브와 마늘, 그리고 양송이의 풍미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맛있다. 소렐의 기분이 조금 더 나아졌다.
“절대 말 안 할 거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마음에 콱 꽂힌 말이 있었다고 날름 말하는 건 고자질이잖아. 소렐은 다시 슬그머니 모이는 시선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우기 시작했다.
“수프 맛있어요.”
고개를 든 소렐의 말에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던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이 활짝 웃었다.
“많이 먹어요. 빵도 가지고 올게요. 당근이랑 감자도 양고기와 함께 구워놨어요.”
부인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세 뱀파이어들은 가만히 앉아서 소렐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에 시선이 오고 갔다. 오빠는 여동생을 쳐다보았다.
‘너는 왜 왔어?’
‘올케가 큰일 났다는데 그럼, 오지 마? 아버지도 오셨잖아.’
“식사들 해라.”
로렌스의 한마디에 치열하게 눈으로 대화하던 남매는 얼른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어쨌든 오늘은 누구에게나 무척 긴 하루였다. 소렐은 겨우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오늘 잘했어요, 참 기특하고 대견해요, 받아 마땅한 칭찬을 잔뜩 해주니 소렐은 다시 기운을 냈다. 그녀는 겁은 많았지만 무척 사랑받고 자란 티가 줄줄 흘렀다.
“샤를렌.”
이름이 불린 뱀파이어는 시선을 돌렸다.
“바쁘지 않아요? 변호사는 무척 바쁘다고 들었어요.”
소렐이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종알거렸다.
“괜찮아요. 당연히 와야지요.”
샤를렌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던 일도 걷어치우고 달려올 일이었다. 지금 이 일 때문에 라이킨이 다시 한번 칼리에르 권속에 있는 모든 뱀파이어들을 뒤흔들어 엎었다는 건 까맣게 모르는 소렐은 그저 고맙다고 할 뿐이었다.
“저 때문에 다들 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그게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바쁘신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니지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소렐의 말에 뱀파이어들은 저마다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항상 빳빳한 정장 차림인 로렌스 오블리앙 공은 조금 풀어지고 느슨한 차림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니라니까요.”
바빠도 와야 했다. 오늘 비서가 비명을 지르는데도 엘펜하임이 습격했다는 말에 달려온 샤를렌은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킨이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소렐은 숟가락을 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가 아닌, 서로의 표정을 찬찬히 살필 수 있으면서도 여유로운 식당에 뱀파이어들과 둘러앉아 있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가족인 거네.’
비록 소렐은 이들 가족에게 갑자기 끼어들게 된 거지만, 그래도 좋았다. 소렐은 좋아서 다리를 동당거리며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이 다 모이는 건, 아빠를 잃은 후로는 없었던 일이다. 다 같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는 건 더더욱 오래된 일이었다.
“공주님.”
라이킨이 소렐의 입에 물린 숟가락을 잡아서 살며시 빼주었다. 토끼는 뭐가 좋은지 또 웃었다. 그래. 웃는다면 됐다. 그녀가 저번에 습격당해 다쳤을 때처럼,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그는 그러면 됐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주 용감했습니다. 기절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기절할 뻔했는데 그린 교수님이 와주셔서 마음이 놓였어요. 그래서 귀도 튀어나오려다가…….”
소렐은 저도 모르게 토끼 귀 이야기를 하다가, 뒤늦게 말을 흐렸다. 그녀는 그녀가 겁을 먹고 토끼 귀를 꺼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군요.”
라이킨은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렐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마법이 제대로 적절한 때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충분히 적절한 때에 사용한 겁니다.”
“그래도…….”
토끼는 그의 말에 완전히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비나가 기절했잖아요. ……좀 더 제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어요.”
“로체 양은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군요.”
냅킨으로 손가락을 문질러 닦으며 로렌스가 말했다.
“그 정도 되는 습격에서 친구까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지켜낸 건 대단한 겁니다, 공주님.”
말투가 다정하고 따뜻한 건 부자가 똑같았다.
“보통은 일격에 죽습니다. 아무리 폴리아나 그린의 검이 매섭다 해도, 작정하고 달려드는 노련한 전문가들 여럿을 다 막아내기는 힘들지요.”
외투를 벗고 조끼와 넥타이 차림으로 대충 소매를 둘둘 걷어 올린 로렌스는 빵을 쪼갰다. 마침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이 커다란 쟁반 가득 양고기와 야채를 올려 들고 들어왔다. 웬만한 부인이라면 절대로 들지 못할 어마어마한 쟁반이었지만, 스튜어트 부인은 그 쟁반을 한 손으로 다뤘다.
“잘해봤자 로체 양은 죽고, 공주님은 중상을 입는 정도였을 겁니다. ‘잘해봤자’. 혹은 ‘운이 좋으면’.”
샤를렌은 여기에서 소렐 빼고 다 아는 평범한 암살자에 대한 이야기를 입을 세모로 벌리며 듣는 소렐이 꽤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저러니 예쁨받지. 어쨌든 뱀파이어들도 소렐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이상, 소렐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그나마 그녀에게 다행이었다.
“진짜요?”
“그럼요.”
로렌스는 주름진 얼굴에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킨은 식탁 위에 양팔을 세워 한쪽 주먹을 다른 손으로 감싸며 소렐에게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소렐은 라이킨과 오블리앙 공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무서운 사람들이란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일 줄이야!
“더구나 공주님은 전문가도 아닌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립니까?”
기절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니 오늘 공주님이 대단한 활약을 한 겁니다.”
대단한 활약! 순식간에 토끼의 표정이 너무나 환해졌다.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봐요.”
소렐은 수줍게 중얼거리며, 라이킨이 가득 채워준 양고기 접시를 받아들었다.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구운 당근과 감자도 가득했다. 식탁 위에는 핏빛 와인도 함께 놓였다.
“마땅히 칭찬받아야지요. 공주님이 생명을 살린 건데.”
로렌스는 잔에 와인을 따르며 중얼거렸다.
“폴리아나 그린도 공주님이 아니었다면 중상을 입었을 겁니다. 라이킨이 뒷수습을 했겠지요.”
그러고 보니 로렌스 오블리앙 공도 라이킨을 제임스라고 부르지 않고, 라이킨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사이인 거구나. 소렐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잘 기억해뒀다.
“공주님 덕분에 오늘 조용히 끝날 수 있었습니다.”
라이킨은 그녀의 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부 다 사실이고, 딱히 지나치지도 않은 칭찬이었다. 모처럼 신이 난 토끼는 와인은 입에 대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뺨이 발그레해졌다. 조금 더 자신감이 붙었다.
“하긴 다음이란 건 없어야겠네요.”
소렐은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없을 겁니다.”
라이킨은 분명하게 말했다. 적어도 학교에서 습격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 * 몇 시간 후, 뱀파이어들만이 작은 응접실에 모였다. 라이킨은 이미 와인을 새로 따고 있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향해 걸어왔다.
“공주님은?”
샤를렌이 오빠에게 잔을 내밀며 물었다.
“잠들었어.”
“다행이네.”
“자다가 앓을 수도 있으니 이따가 에블린에게 한 번 들러달라고 했어.”
라이킨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잔에 핏빛 와인이 가득 채워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로렌스가 물었다.
“폴리아나는 이미 한마디 해뒀습니다. 그래놓고 다시 불러서 또 질책을 하기는 좀 그렇고요.”
라이킨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누가 소렐 이드리스에게 마법을 가지고 한마디를 했을지는 뻔했다. 모르면 바보다. 그 자리에서 뭐라 할 사람이 폴리아나 그린 말고 누가 있었겠는가.
“……그래라.”
어차피 이 모든 일을 지시하는 건 칼리에르 공, 라이킨이었다.
“어쨌든 고대 마법을 빼앗기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결합점이 많아져서 소렐 이드리스가 그에게 묶인다는 게 만족스럽기도 하고. 라이킨은 웃으면서 피가 섞인 와인을 마셨다. 뱀파이어들은 그가 도시락을 하나 집에 키우고 있다고 평했지만, 도시락이라고 하기엔 소렐 이드리스가 지나치게 큰 대어다. 그러니까 두고두고 잘 발라먹을 정찬 정도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