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Call my name (10)2020.09.19.
소렐은 토끼였다. 메리 헬레인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은 그녀는 후각과 청각이 아주 예민했고, 냄새는 당연히 기가 막히게 맡았다. 소렐은 심각하게 제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 무슨 냄새가 나?’
뱀파이어 냄새가 난다고? 하나도 안 나는데? 소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옆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여자애가 한 말은, 초면에 던지기엔 아주 무례한 말이다. 이제 시작인데, 만만하게 보이는 건 싫었다.
“너도 뱀파이어 냄새나.”
그러나 토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게 다였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무례하고 앙칼진 얼굴로 팩 쏘아붙인 소렐은 고개를 휙 돌렸다.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당연하지, 우리 엄마가 뱀파이어니까.”
그 여자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또 웃었다.
‘얘 뭐야?’
소렐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 라이킨은 창밖을 보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곧 마칠 시간이 될 테니, 데리러 가야 했다.
‘토끼라고 기죽어 지내면 안 되는데.’
소렐은 겁이 너무 많았다. 헬레인 공주였지만, 안 좋은 일을 겪어서 그럴 것이다. 글래스턴에 오자마자 또 당했으니. 라이킨은 이마를 찌푸렸다.
“카메론 셀레스트가 알아차렸습니다. 등기소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나왔다고 하더군요.”
조슈아가 와서 조용히 말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잖나.”
라이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예비과정 추가등록자는 싹 잘라야지.”
“……예?”
“그놈이 대학 예비과정에도 손을 쓰려고 할 거 아냐. 분명히 추가등록자다 뭐다 해서 엘펜하임 첩자를 학생인 양 들여보내든가, 아니면 교수진을 교체하기라도 하려고 용쓸 게 뻔해.”
그래서 소렐에게 접근을 해보려고 할 것이다.
“다 차단해.”
“예.”
“접근도 못 하게 해.”
“예.”
소렐 이드리스는 라이킨이 마련해둔 안락한 둥지 안에서 대학생활을 편안하게 즐길 것이다. 그의 표정이 워낙 사나워서, 조슈아는 더 물어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라이킨은 결국 담배를 물었다.
‘잘못했어요, 마법사 아니에요……. 죄송해요.’
희게 질려서 뻣뻣하게 굳은 채 연신 빌기만 하던 소렐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고대 마법의 계승자라 해도, 그 역시 어찌 보면 엘펜하임과 다를 바가 없다 해도, 소렐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작은 토끼가 아닌가. 그저 공부하는 게 좋을 뿐인 어린 토끼.
‘죄송해요.’
아마 그 뒤에 붙을 말은, ‘그러니까 해치지 마세요’일 거다. 라이킨은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그의 옷깃에 오늘 아침에 스쳐 지나간 소렐의 체취가 묻어 있었다. 너무나 미약해서 아쉬울 지경이다. 토끼의 체취는 향긋했다. 향긋하고 또 아련했다. 세련되거나 화려한 맛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식욕이 아닌, 더 깊은 곳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욕구를 자극했다.
‘……좀 더 둬도 괜찮겠지.’
그래서 라이킨은 소렐을 당분간 그냥 두기로 했다. 작은 토끼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데 그까짓 공부를 못 시켜줄 것도 없지 않나. 공주님이 하시고 싶다면야 해야지. 라이킨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소렐에게 선물해준 것보다 좀 더 가죽이 두껍고 좀 더 클 뿐, 똑같은 모양인 시계였다.
‘……학교가 재미있어야 할 텐데.’
일단 재미있는 대학 생활을 위해 소렐이 필요한 건 다 준비해뒀다. 그러니 소렐의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니, 1년을 미뤄서 다음 해에 입학시켰어야 했나? 납치미수를 겪은 직후인데. 라이킨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린 비서가 들어왔다.
“칼리에르 교수님, 도서관에서 요청하신 자료 열람 가능하시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다음 예약자에게 넘기라고 해요.”
라이킨은 대충 손짓을 해서 비서를 보냈다.
‘1년 후에 입학한다고 하면 속상해서 더 울지 않을까…….’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미 일단 보냈으니, 오늘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 너무 무섭다고 싫다고 한다면 1년쯤이야 가볍게 요양도 하고, 집에서 공부를 시키면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 그만이었다. 라이킨은 시계를 보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벌써 가세요?”
“벌써는 무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라이킨은 흘리듯이 말하며 걸어 나갔다. 헬레인 왕가의 마지막 공주님께서 누군가를 기다리면 결코 안 될 일이다. * 글래스턴은 진짜 이상한 애들만 있는 곳이다! 소렐은 종이 책자를 보며 관심이 가는 과목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과목의 강의계획서를 읽어보도록 해요…….”
교수님의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소렐은 열심히 펜으로 책자에 기억해둬야 할 것을 적긴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애가 너무 신경 쓰여서 지금도 신경이 그쪽으로 자꾸만 당기는 느낌이다.
“넌 뭐 들을 거야?”
그 여자애는 소곤거리면서 소렐에게 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건데, 이 뱀파이어야!’
소렐은 최대한 뱀파이어와 멀리하고 싶었다. 아, 라이킨을 제외하고. 그는 아빠가 괜찮다고 직접 정해준 뱀파이어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뱀파이어들은 토끼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그거 재미없대. 케드윅 교수님 목소리가 너무 졸려서 무슨 소리하는지도 못 알아듣는대.”
소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서 속삭이는 갈색머리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정말?”
“응. 그리고 <기하의 기본>은 기본이라 해도 절대 신청하지 말랬어. 우리는 무조건 ‘기초’라고 적힌 것만 신청해야 겨우 알아듣는대.”
이런 건 처음 듣는 정보다! 소렐은 간략한 설명만 보고 혹해서 신청해볼까, 하고 고민했던 수학 관련 과목들을 전부 지웠다. 하긴 그녀는 이제 겨우 책이나 좀 읽은 새내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저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소렐은 뒤늦은 의심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걸 왜 들어, <기초교양>이라고 과목들이 있잖아, 그걸 들어야지.”
다른 누군가가 뒤에서 친구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닌가?’
소렐은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오른쪽에 앉은 뱀파이어 여자애가 몰래 빨간 크랜베리 사탕을 꺼내다, 소렐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렐에게도 사탕상자를 내밀었다.
“먹을래?”
아니, 딱히 뱀파이어가 주는 걸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새빨간 색이라면 더더욱. 소렐은 예의바르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맛있는데…….”
여자아이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며 혼자 사탕을 먹었다. 소렐은 그 이후로 절대로 오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은 첫날이라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이 근처를 잠깐 돌아보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소렐은 교수가 강의실을 견학시켜주는 동안,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걸었다. 글래스턴에서는 아무 데서나 뱀파이어며 엘펜하임 기사단원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봅시다.”
하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뱀파이어와 호랑이가 있다. 그 넓고 훌륭하게 장식된 타운하우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소렐 이드리스의 집이 아니었다. 결국 강의안내서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소렐은 한숨을 푹 쉬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
‘기대했던 날인데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어.’
그리고 애들은 어느새 삼삼오오 다 친구가 된 모양이다. 또래 친구를 사귀고, 대학생활도 즐겁게 하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소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앞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모든 게 자신 없어졌다. 공부를 하러 왔는데 갑자기 마주친 뱀파이어만 피해 다니고 있지 않은가.
“잘 가!”
“내일 봐!”
또다시 마차들이 쭉 늘어섰고, 여학생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마차에 올라탔다. 아까 봤던 뱀파이어 여자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 소렐은 얼른 그늘 속으로 숨었다. 어디에도 라이킨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자신의 옷깃에 코를 파묻어보았다. 정말 뱀파이어 냄새가 난단 말이야?
“잘 가!”
“안녕!”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들이 점점 사라졌다. 소렐은 뱀파이어 여자애마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목을 쭉 길게 늘여 멀리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어!”
오래 기다렸다며 투정을 부리던 마지막 여학생까지 마차를 타고 떠났다. 소렐은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이킨이 없었다.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으면서.
“어…….”
어떡하지? 소렐은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학교 앞에 혼자 덩그러니 섰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갑자기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실로 오랜만에 소렐은 혼자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진 않을까 무섭고, 돌아가야 할 곳도 없었다. 라이킨이 왜 오지 않았을까? 소렐은 괜히 제 옷깃에 다시 한 번 코를 묻어보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에게서 나는 싸늘하고 묵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집에 가야 하는…….”
집에 어떻게 가야 하지? 소렐은 고개를 툭 떨어트린 뒤 잠시 고민하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걸음을 옮겼다. 일단 삯마차라도 찾아봐야겠다. 그녀는 입술을 꼭 물고 낯설고 두려운 바깥으로 향했다.
“공주님.”
흐트러진 목소리였다. 늘 적당히 단정하고 깔끔하던 라이킨이 잔뜩 흐트러진 채 그녀를 잡아채듯 불렀다. 앞을 열심히 보고 있던 토끼의 고개가 깜짝 놀라 뒤로 돌아갔다.
“왜……, 왜 여기까지 나와 있습니까? 어디 가려고 했어요?”
뱀파이어가 접근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소렐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토끼의 본능이었다. 동그래진 눈망울에 다급히 캐묻던 라이킨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야 토끼가 겁을 먹지 않는다. 그의 푸른 눈이 채 가라앉지 못한 채 격렬하게 일렁였다. 소렐은 그 눈에서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겠지만, 뱀파이어는 전부 다 들었다. 라이킨의 넓은 어깨가 호흡과 함께 내려앉았다.
“기다렸는데 안 와서…….”
안 와서 직접 가려고 했는데, 그가 왔다.
“……그랬습니까.”
라이킨은 일부러라도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들의 간격은 세 발자국 쯤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 간격을 바라보았다. 마뜩잖다. 그러나 소렐의 얼굴로 시선을 올리는 순간 푸른 눈은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오다 엇갈렸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참 찾았습니다.”
토끼는 무서운 뱀파이어를 바라보다, 그가 내민 커다란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돌아갈까요?”
소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분명한 건, 약간 차가운 뱀파이어의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는 거다. 돌아갈 곳이 있었다. 데리러 온 사람이 있었다.
“오늘 어땠습니까, 무슨 일 있었어요?”
“……나한테 뱀파이어 냄새가 난대요.”
우물우물하는 토끼의 말에 라이킨은 픽 웃었다. 보이지 않는 흰 귀가 축 처진 게 훤히 보였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오늘 만난 애가요.”
소렐은 볼멘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기만 했다.
“지도 뱀파이어면서…….”
“그러게요. 공주님은 뱀파이어가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정말 나한테서 냄새 나요?”
그녀는 가장 부적절한 이에게 질문했다. 냄새라. 라이킨은 코를 가득 채우는 토끼의 연한 체취를 들이마셨다.
“글쎄요. 공주님에게서 뱀파이어 냄새가 난다면 그건 내 냄새일 텐데요.”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즐거운 티가 났으나 소렐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주님이 이곳에서 산 지도 꽤 되었으니 모르는 사이 내 체취가 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소렐은 괜히 그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다시 냄새를 맡아보았다.
“진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신경 쓰지 말아요. 그리고 내 체취가 난다면 나쁠 건 없습니다.”
“왜요?”
무심코 물어보던 소렐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 하고 깨달았다. 초식동물들이 육식동물의 냄새에 기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데 아까 걔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던데요.”
생각보다 라이킨이 그리 영향력이 있는 뱀파이어는 아닌 건가?
“아는 냄새라 그랬을 수도 있지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갈색 머리……, 이렇게 포니테일을 하고, 눈은 녹색이었어요. 나보다 키가 이만큼 더 크고, 날씬했어요. 엄마가 뱀파이어래요. 이름 안 물어봤어요.”
그런 뱀파이어는 궁금하지 않아! 소렐은 고개를 팩팩 흔들어댔다.
“누군지 대충 알겠습니다. 뱀파이어들끼리 익숙하게 자란 집안 아이라서 그런 겁니다. 공주님은 뱀파이어나 수인, 마법사나 마녀들과는 만나본 적이 거의 없지요?”
그건 그랬다. 펠릭스 이드리스가 한적한 시골에서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 숨겨 기른 토끼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자기 딴에는 친근감을 표시한 거였을 겁니다.”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소렐은 뾰로통하게 말했다. 아니, 그건 라이킨이 좀 곤란했다. 일부러 소렐의 곁에 둔 또래 뱀파이어였다. 수많은 안전장치 중 하나이기도 한데 친해지기 싫다니.
“학교는 어땠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소렐은 고개를 숙였다. 시골뜨기라 세련된 도시 애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토끼인 거 들킬까 봐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집중하지도 못했어요. 애들은 어떤 수업이 좋은지 벌써 다 알고 자기들끼리 친한 것 같아요. 나는 하나도 모르는데.”
라이킨은 조용히 들어주면서 그녀를 마차에 태웠다.
“첫날에 전부 다 적응하기는 힘들지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컸다면 공주님 역시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다 나보다 훨씬 똑똑해 보였어요. 내가 쫓아가지 못하면 대학을 갈 이유가 없잖아요.”
이런. 대학에 간 것도 아니고 예비과정을 갔을 뿐인데 공주님이 잔뜩 기가 죽어서 왔다. 라이킨은 그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자 일단 표정관리부터 했다. 역시 슬쩍 끼워 넣은 또래 여자애만으로는 안 되겠다. 그가 직접 들어가야지.
“아직 해보지 않은 걸 가지고 미리 겁먹지는 맙시다. 글래스턴 대학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정보가 많은 학생들만 입학하는 게 아니니까요. 공주님처럼 혼자 온 학생들도 많은데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뿐입니다. 일단 무슨 강의를 들을 지부터 나와 상의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소렐은 가방 안에 넣어뒀던 강의안내서를 힘없이 꺼냈다. 어린 토끼가 풀이 죽은 것만큼 안쓰러운 것도 없었다.
“신입생이 들으면 큰일 난다는 강의도 있대요. 근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강의가 있답니까?”
라이킨은 픽 웃었다.
“일단 내 강의는 아닐 겁니다.”
응? 소렐은 아까부터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라이킨이 그녀의 손에서 안내서를 슬쩍 가지고 가며 말했다.
“나는 신입생을 상대로 아주 쉽게 강의할 예정이니, 내 걸 듣는 건 어떻습니까?”
순진한 토끼의 눈에 반짝 빛이 들어온 걸 보고, 교활한 뱀파이어는 일단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