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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all my name (4) (9/181)

9. Call my name (4)2020.08.29.

폴리아나 그린은 자로 잰 듯 완벽한 사람이었다. 미모면 미모, 교양이면 교양, 화술이면 화술, 어디든 빠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단히 박식했다. 그러니 ‘그’ 벨파이어 칼리지에 당당히 입성하여 연구를 하고 있는 거다.

16606114150512.jpg“내 친애하는 숙적께서 뭘 하고 계시나, 잠깐 염탐하러 왔지.”

케르고 칼리지 소속 카메론 셀레스트 교수는 딱히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상대에게는 차라리 솔직한 것이 나았다.

16606114150519.jpg“너랑 놀 시간 없어.”

폴리아나는 싸늘하게 대꾸한 뒤 다시 고개를 책상 쪽으로 숙였다. 그래도 카메론은 굴하지 않았다.

16606114150512.jpg“요즘 딱히 바쁜 것도 아니잖아.”

16606114150519.jpg“꺼져.”

카메론은 깔끔한 백색 천장을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폴리아나 그린의 신경이 아주 날카로웠다.

16606114150512.jpg“……소문 들었어.”

폴리아나는 책들을 들춰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16606114150512.jpg“칼리에르의 집에 여자가 들어왔다며.”

꿈쩍도 않는다. 그녀는 아주 절제를 잘했다. 하지만 카메론 셀레스트도 만만치 않았다.

16606114150512.jpg“얼굴은 봤어?”

폴리아나는 고개를 들어 카메론이 웃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단정하고 냉정한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일부러 긁는 것도 아니다. 오래도록 적으로 지낸 상대와 서로 지나치게 잘 안다는 건, 묘한 동질감으로 이어진다. 폴리아나는 담배 상자를 열었다.

16606114150519.jpg“아니.”

그녀의 짤막한 대답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카메론은 성큼성큼 걸어서 붉은 입술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16606114150519.jpg“얼굴은 못 봤어.”

그녀는 픽 웃었다.

16606114150519.jpg“너도 보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

16606114150512.jpg“칼리에르의 신변에 대해 나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뭐. 그렇지.”

카메론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16606114150519.jpg“하지만 내 입에서 들을 생각은 하지 마.”

폴리아나는 딱 잘랐다.

16606114150512.jpg“내가 그런 걸 기대하고 온 줄 알아? 네가 말해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아.”

카메론도 마찬가지로 잘라 말했다.

16606114150519.jpg“그럼 왜 왔어?”

아름다운 뱀파이어가 픽 웃으면서 물었다.

16606114150512.jpg“술은 같이 마셔줄 수도 있고.”

카메론은 열린 담배 상자에서 담배를 하나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16606114150512.jpg“담배도 같이 피울 수는 있지. 너희 뱀파이어들은 지나치게 고독한 존재야.”

폴리아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와중에도 꼿꼿했고,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16606114150512.jpg‘자존심만 강하지.’

카메론은 속으로 생각했고, 결코 바깥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폴리아나 그린은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오만한 뱀파이어였다. 하긴 저리 잘났으니 어찌 자만하지 않을 수 있겠냐만, 자만하면 자만할수록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상처도 크게 받는 법이다.

16606114150519.jpg“너는 성기사라면서 그렇게 술이랑 담배를 잘해?”

폴리아나는 카메론을 돌아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16606114150512.jpg“성기사라니.”

카메론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16606114150512.jpg“그런 게 이젠 어디에 남아 있다고.”

16606114150519.jpg“엘펜하임에서 널 이단자로 처형할 거다.”

16606114150512.jpg“다 알고 있어. 요즘 세상에 무슨 성기사야. 전혀 신성하지도 않은 신성기사단인 거지.”

덩치가 좋기로 유명한 뱀파이어와 견주어서도 밀리지 않는 키와 체격을 가진 카메론은 담배 연기를 씁쓸하게 흘렸다.

16606114150519.jpg“그럼 왜 계속 엘펜하임에 몸을 담고 있는 건데?”

16606114150512.jpg“배운 게 이것뿐이라.”

16606114150519.jpg“웃기시네.”

폴리아나는 처음으로 픽 웃었다.

16606114150519.jpg“배운 게 이것뿐이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경건하려고 애쓰는 멍청이야.”

16606114150512.jpg“멍청이라니.”

16606114150519.jpg“기분 나빠 하지 마. 어차피 나도 멍청하니까.”

16606114150512.jpg“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

카메론은 순수하게 놀라워했다. 항상 똑똑하고, 가장 뛰어나려고 애쓰고, 멍청한 건 혐오하던 폴리아나가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인정하다니.

16606114150519.jpg“놔야 하는 걸 붙잡고 있는 건 다 멍청한 거야.”

아무리 소중한 자존심이 상하고, 박대까지 받아도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를 놓지 못하겠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못하겠다. 폴리아나 그린의 고요한 눈동자에 특유의 의지와 고집이 가득했다. 그녀는 지면 질수록 더 싸우려고 드는 사람이었다. 그냥 넘어갈 줄 알고? 여태까지 받은 박대까지 전부 다 몰아서 보상받을 거고, 끝내 쟁취하고 말 것이다.

16606114150512.jpg‘아, 이거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데…….’

카메론은 용케 폴리아나의 타오르는 눈을 알아차렸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든 말든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뱀파이어들에게 안 좋은 일이라면 그에게는 호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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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606114159222.jpg“에벌린.”

16606114159226.jpg“왜요, 제임스?”

오늘도 타운하우스의 전반을 다 감독하고 관리하는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은 호랑이답게 넘쳐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커튼을 다 뜯어서 세탁소에 보내고서는 할 일이 너무 없다며 소렐에게 먹일 음식을 찾아 요리책을 뒤지던 그녀는 다가온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16606114159222.jpg“물어볼 게 있는데.”

에벌린은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커다란 냄비를 하나 꺼냈다. 주방 한구석에는 오늘도 배달부가 잔뜩 이고 온 채소가 가득했다. 저걸 다 쓴단 말이야? 라이킨은 특별히 많아 보이는 당근을 집어 들었다.

16606114159222.jpg“내가 아내 말고 다른 여자가 있는 것처럼 생겼어요?”

16606114159226.jpg“……맙소사.”

에벌린은 고개를 흔들며 라이킨의 손에서 당근을 빼앗은 뒤 몸을 돌렸다.

16606114159226.jpg“오늘은 철저히 공주님을 위한 요리를 할 테니 한입도 먹을 생각하지 말아요.”

16606114159222.jpg“나는 정말 진지한데요.”

16606114159226.jpg“그런 말을 진지하게 한다는 것에서부터 제정신이 아니란 게 확실하네요.”

16606114159222.jpg“폴리아나가 왔을 때 공주님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같이 구경한 게 어디 사는 누구지요?”

그래놓고 라이킨이 뭐라 할까 봐 슬쩍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으면서. 비난하는 말에 에벌린은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16606114159226.jpg“신성한 주방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교수님.”

에벌린은 질색했다.

16606114159222.jpg“공주님이 날 그렇게 보던데요.”

16606114159226.jpg“오.”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흥미롭다는 듯 바뀌었고, 라이킨은 배신감을 느꼈다.

16606114159226.jpg“그거라면 진지하게 말할 만하지요.”

16606114159222.jpg“너무하네요, 에벌린. 우리의 우정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거였습니까?”

16606114159226.jpg“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덥석 시집온 헬레인 공주님의 고민이야 아주 진지하고, 있을 법한 거지만 충분히 큰 뱀파이어가 ‘다른 여자가 있는 것처럼 생겼냐’는 멍청한 질문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오늘은 특별히 빵을 좀 더 굽고, 닭고기를 잘 먹는 소렐이 소고기는 어떨지 한 번 더 시도를 해봐야겠다. 손을 깨끗하게 씻은 에벌린의 머리에서는 오늘 식사메뉴가 척척 만들어지고 있었다.

16606114159226.jpg“뭐, 우리 우정을 생각하여 굳이 대답을 해주자면 네. 공주님 눈에는 그렇게 보이고도 남겠지요. 아침부터 찾아온 여자가 있는데 새 신부 입장에서야 당연해요.”

라이킨은 난감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고, 에벌린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오븐에 한참 구울 닭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16606114159222.jpg“그렇긴 하지요……? 나는 내 나름대로 잘 잘라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공주님 입장에선 아니겠지요?”

16606114159226.jpg“제임스답지 않게 왜 풀이 죽어요?”

16606114159222.jpg“풀이 죽은 게 아니라 공주님이 아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셔서 그럽니다.”

라이킨은 식탁 가장자리에 놓인 등받이 없는 스툴을 끌어다 앉았다. 에벌린은 야채 손질이나 하라며 바구니를 밀어놓았다.

16606114159222.jpg“결혼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일이고, 나는 내 인생이 있으니 다른 여자가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달랍니다.”

에벌린은 귀를 의심했다.

16606114159222.jpg“내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한다면 공주님께서도 그러시겠다는군요. ……재미있습니까?”

요즘 십대들이 얼마나 되바라진 건지, 그 간격을 따라잡지 못하는 라이킨은 황당할 따름인데, 에벌린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16606114159226.jpg“아주 제대로 걸렸네요, 제임스 교수님. 축하해요, 축하해.”

하하하하, 호탕한 호랑이의 웃음소리가 희고 푸른 타일이 깔린 주방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16606114159222.jpg“보통은 결혼생활에 꿈을 가지고 환상을 가지는 게 정상 아닙니까?”

16606114159226.jpg“헬레인 공주님이 ‘보통’ 젊은이들과 똑같을 거 같아요? 그거야말로 왕가를 모욕하는 셈이군요.”

16606114159222.jpg“아, 그렇군.”

라이킨은 순순히 동의했다. 헬레인이자 이드리스인 소렐이 그렇게 순진할 리는 없었다.

16606114159222.jpg“하얗고 아주 작은 토끼라서…….”

16606114159226.jpg“그건 이해해요. 마냥 모르는 것 같아서 지켜주고 싶은 공주님이죠.”

에벌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14159226.jpg“나름대로 겁을 많이 먹었을 거예요. 남편은 지나치게 잘생겼고, 심지어 뱀파이어지, 처음 보는 사람이지, 고작 스물에 부모님을 다 잃은 아가씨가 얼마나 무서울까.”

소렐은 호랑이인 에벌린도 경계했다. 에벌린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경계하지 않고 마냥 순진했다면 더 걱정했을 것이다.

16606114159222.jpg“차라리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6606114159226.jpg“생각보다 신경을 아주 많이 쓰네요, 제임스.”

라이킨은 고개를 들어서 형형한 호랑이의 눈과 마주했다.

16606114159222.jpg“내가 설마 신경을 안 쓰겠습니까.”

16606114159226.jpg“아니, 그런 뜻이 아니지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에벌린은 고개를 단호하게 흔들었다.

16606114159226.jpg“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요, 제임스.”

고대마법의 계승자로 대하는 건가, 아니면 순수하게 아내로 대하는 건가.

16606114159226.jpg“필요해서 데리고 온 것치곤 꽤 예뻐하고 있어요. 누가 보면 정략결혼이 아닌 줄 알겠네.”

아직 어려서 어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소렐 빼고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렐 이드리스와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정략결혼을 한 셈이었다.

16606114159222.jpg“나만 이 결혼으로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나쁜 놈으로 취급하는 것 같지요, 에벌린?”

16606114159226.jpg“그거야 제임스 교수님이 더 나이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요.”

에벌린은 노래하듯 말하며 그녀의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자 특기인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6606114159226.jpg“그리고 그 자그마한 공주님을 기꺼이 이용할 거잖아요. 안 그래요?”

라이킨은 뱀파이어다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소렐은 조금씩 이 거대한 타운하우스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저택이라고 할 만큼 광활하고 넓지는 않지만, 계단이 여러 개고, 여러 층으로 나뉜 타운하우스는 그녀가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커다란 집이었다.

16606114159222.jpg“어디 볼까요.”

라이킨은 며칠째 대학 근처에도 가지 않고 집에만 붙어 있는 중이었다.

16606114159222.jpg“멍이 많이 빠졌군요. 다행입니다.”

거의 다 나은 멍을 관찰하며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꾸준히 발라줬던 약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났다.

16606114159222.jpg“뼈가 부러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정도라면 이번 주 안으로 외출도 할 수 있겠어요.”

16606114168685.jpg“……나가도 괜찮을까요?”

뱀파이어 남편에게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져도 괜찮다, 나도 따로 관계를 가질 테니까!’라고 대범하게 말했던 소렐은 이 부분에서는 겁을 많이 냈다. 과거에 납치를 똑같이 겪었기 때문일 거다. 갑자기 생긴 남편은 그저 처음 보는 아저씨일 뿐인 거고.

16606114159222.jpg“다시는 그날과 같은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16606114168685.jpg“펜싱을 빨리 배워야겠어요.”

소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딴소리를 했다. 그가 하는 약속은 전혀 필요도 없고,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16606114159222.jpg“답답하진 않습니까?”

16606114168685.jpg“답답하죠!”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 소렐은 뱀파이어의 차가운 손에서 얼른 얼굴을 떼며 대답했다. 라이킨은 슬쩍 웃었다. 벨파이어 칼리지에서 연구를 하고, 때때로 필요한 살인을 하기만 했을 그가 졸지에 어린 아가씨의 교육과정을 신경 쓰게 되었으니 이거 참 재미있어졌다.

16606114159222.jpg“이제 슬슬 공부를 시작합시다.”

16606114168685.jpg“라이킨이 가르쳐주는 건가요?”

16606114159222.jpg“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아니요.”

그는 대신 가지고 왔던 서류와 펜을 내려놓았다.

16606114159222.jpg“대학을 가기 전에 예비과정이 있습니다. 글래스턴 대학에서는 여학생들을 위한 기초과정이 시작되고, 고학년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칼리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지요.”

16606114168685.jpg“처음부터 공학으로 다닐 수도 있잖아요!”

뱀파이어의 눈이 시리게 웃었다.

16606114159222.jpg“그걸 어떻게 선택할지, 이 예비과정을 미리 다녀보는 겁니다. 집에서 통학하면서 5주 정도 되는 과정에 등록하는 거지요. 글래스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여러 학생들이 등록하는 정규과정입니다.”

그에게서 예비과정 지원 서류를 받은 소렐의 눈이 커졌다. 라이킨은 토끼의 눈이 한참 커지면서 표정이 아주 밝아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소렐이 환하게 웃었다.

16606114168685.jpg“그럼 이제 진짜 시작인 거네요.”

16606114159222.jpg“예. 시작인 겁니다.”

16606114168685.jpg“제가 등록할 수 있나요?”

그럴 자격이 될까? 너무 좋아서 서류를 품에 꼭 안은 소렐이 자꾸만 물었다.

16606114159222.jpg“괜찮은 추천서만 있으면 됩니다. 입학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16606114168685.jpg“라이킨이 추천서 써줄 거예요?”

16606114159222.jpg“남편이 아내 추천서를 써주는 건 좀 노골적이잖습니까. 얼마든지 좋은 추천서를 구해올 테니, 공주님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이 서류의 빈칸만 채우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슈아는 곧 라이킨에게 붙들려서 꼼짝없이 훌륭한 추천서를 써서 바쳐야 할 예정이었다. 소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책상으로 달려가서 서류를 채우기 시작했다. 라이킨은 곁에 앉아서 그녀가 열심히 이름과 나이 등을 쓰는 것을 도와주었다.

16606114168685.jpg“가면 많은 학생들이 있나요? 저와 같은 나이인가요?”

16606114159222.jpg“아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공주님과 동갑입니다.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16606114168685.jpg“너무 기뻐요.”

관심이 있는 과목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소렐이 보스스 웃었다. 그제야 웃는다. 정말로 학교를 몹시 가고 싶었던 거다. 갑자기 생긴 남편에게 애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녀는 학교만 가면 그만이었다.

16606114159222.jpg“……그렇군요.”

라이킨은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소렐이 바쁘게 펜을 움직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약간 낯설었다. 도망가기 급급하고, 아프기만 했던 작은 토끼가 이리도 활발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예뻤다. 무척 예뻤다.

16606114159222.jpg“기쁘다니 나도 기쁩니다.”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의외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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