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ello, Stranger (2)2020.08.05.
‘맙소사, 펠릭스. 자네는 도대체 나한테 뭘 맡긴 건가!’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벽에 걸린 친구의 초상화를 보며 속으로 신음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소렐 이드리스는 그를 경계하면서도 겨우 집으로 들인 후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챙겨놨던 옷을 방으로 가져가서 얼른 입고 나온 그녀는 민망한 기색을 감추며 아빠가 남긴 유언장을 찾아왔다.
“일치하지요.”
그는 간단하게 그가 가지고 있던 것과 유언장의 찢긴 모양이 딱 맞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둘은 원래 한 몸이었던 것이다. 소렐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하긴 스무 살밖에 안 되었으니 당연히 수호자가 필요하긴 했다. 스무 살인데 고대 마법의 계승자라니. 라이킨은 고개를 흔들었다. 온갖 것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다.
“정말 맞구나…….”
오랜만에 찢겨져 나갔던 반쪽을 만난 유언장은 주문을 붉게 빛내며 불꽃을 튀겼다. 다시 합쳐지면서, 선명하게 타오르듯 빛나는 엄마와 아빠의 서명에 소렐은 할 말이 없었다. 이 뱀파이어는 아빠가 보낸 ‘그 사람’이 맞았다. 그녀는 조금 우울하게 유언장이 합쳐지면서, 그녀와 뱀파이어가 서명할 공란을 만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게 바로 복잡한 주문의 끝이다. 혼인서약.
“안 오실 줄 알았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안 오셔서요.”
난 널 모르는데욧! 뼈가 있는 소렐의 말에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교수는 좀 난감하다는 듯이 눈썹을 문질렀다.
“나는……, 펠릭스가 죽은지 몰랐습니다.”
마법사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뱀파이어도 그렇고, 토끼 종족도 그랬다. 인간들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오래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맹세를 한 것도 이백 년은 된 일이고.”
그렇게나 오래되었단 말야? 소렐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땐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태어날 걸 알고 있었지요.”
그는 본래의 모습은 엄마를 닮아 훨씬 더 앳되고 사랑스러운 소렐 이드리스를 보며 대답했다.
“토끼들은 뛰어난 예언가니까. 날 선택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펠릭스가 아닌 메리 공주입니다. 당신의 어머니.”
“……저는 예언도 할 줄 모르고 마법도 부릴 줄 몰라요.”
토끼로만 변신할 줄 알아요. 소렐은 기가 죽었다. 대단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것치곤 그녀가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왕립학회 회원씩이나 되는 뱀파이어가 나서서 챙기기엔 지나치게 평범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드리스 양. 마법사이건, 하나 남은 헬레인 일족의 딸이건, 뱀파이어건 간에 우리는 어쨌든 먹고살아야 하지요. 스무 살이라면 아직 한창이군요.”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그가 돌보아야 할 아가씨에게 가장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주 상냥하게 겁 많은 아기 토끼를 달랬다.
“글래스턴에서 학교를 다니는 건 어떨까요?”
일부러 결혼 이야기는 뒤로 미룬 뱀파이어는 학교라는 단어가 이 작은 소녀에게 불꽃을 지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소렐은 또렷하게 말했다. 그건 그녀의 꿈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그녀는 그러다가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라이킨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 토끼 귀를 함께 늘어뜨리는 걸 상상했다. 무척 귀여웠다.
“그렇지만 글래스턴 대학 학비를 감당할 수는 없어요. 돈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돈 얘기는 할 거 없습니다, 이드리스 양.”
별 이야기를 다 하네. 그는 손짓을 하며 유언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젠 피하기만 했던 이야기가 나올 시간이었다.
“다행히 내가 돈이 제법 있거든.”
“그렇지만……!”
라이킨은 다시 고개를 들어 소렐을 쳐다보았다. 그 움직임이 워낙 매끄러우면서도 민첩한 게, 꼭 뱀 같아서 소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지만?”
“……정말 저랑 그거 하셔도 괜찮아요?”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소렐은 조심조심 물었다.
“‘그거’라니, 그게 뭘까요?”
그녀는 전혀 도와주지 않는 라이킨 때문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이거요, 이거!”
그녀는 유언장을 딱 들어서 정확하게 혼인서약서가 있는 부분을 들이밀었다. 뱀파이어에게 겁을 집어먹었으면서도 할 건 다 하네, 이 아가씨.
“아저씨는 괜찮아요, 정말?”
“뭐, 별로 바라는 건 없는데 약속은 한 터라. 상관없습니다.”
미쳤나 봐, 진짜……! 라이킨은 생각하는 게 훤히 다 보이는 소렐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저랑 결혼하셔서 뭐하실 건데요?”
“대학 가고 싶다면서요. 대학부터 보내주도록 하지요.”
“그리고요?”
“그리고 그 밖의 것은 일단 성인이나 된 다음에 의논합시다.”
그 말에 소렐 이드리스는 발끈했다.
“이미 성인이에요!”
“그건 인간의 기준이고, 내 기준으로는 최소한 백 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나는 공주님 부모님과……, 그리고 이드리스와 헬레인, 두 가문에 대고 맹세한 것이 있으니 공주님에게 그리 바라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난 못 믿을 사람이니, 날 믿지 말고 날 선택한 부모님을 믿어요.”
그러고선 그는 시원스럽게 혼인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붉은 주문이 빛이 나면서 그의 서명을 마치 덩굴식물처럼 꽉 얽매었다. 소렐은 그가 건네주는 만년필을 조금 망설이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법사의 딸이었고, 저 혼인서약서에 서명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뱀파이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를 믿을 게 아니라, 이런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아빠를 믿어야 했다.
“좋아요.”
소렐은 그의 값비싼 만년필을 받아다 서명했다. 붉은 덩굴은 마치 그녀가 서명한 것을 기뻐하는 듯, 라이킨의 서명을 묶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서명을 살며시 감쌌다. 소렐은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약간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인간적이긴 했으나, 그리 동정심이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소렐 이드리스에게서 오랜만에 동정심을 느꼈다. 이렇게 어린 딸을 두고, 펠릭스 이드리스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글래스턴 대학에 다니고 싶다면서요. 대학에 가려면 이곳은 떠나야지요. 정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그런 뒤 소렐의 시골 소녀다운 차림새를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주님이 필요한 것도 사도록 하고요.”
“공주 아니라니까요.”
“메리 헬레인 공주의 딸은 공주가 맞습니다.”
간단하게 말한 그는 유언장을 다시 접은 뒤,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렐은 그가 정중하게 존대를 하고 있지만, 어쩐지 반말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주변에 명령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글래스턴 은행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은행이요? 은행은 왜요?”
“공주……, 아니, 아가씨 유산이 얼마인지 확인은 할 수 있는 나이 아닙니까. 스물이면 충분하지요.”
유산이라니? 소렐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모르는 겁니까? 헬레인 왕가와 이드리스 일가의 유산 말입니다.”
“왕가는 150년도 더 전에…….”
“메리 공주를 빼고 사라졌지요. 그런데 왕실 자산도 같이 없어졌을까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인 소렐을 보자 라이킨은 그만 기가 막히고 말았다.
“아버지가 말 안 해줬습니까?”
“일단은 이거 가지고 있으라고……, 한 5년 치 생활비를 마을 은행에…….”
“여태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아이스크림은 먹어봤어요?”
소렐은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볼 수가 있냐는 표정으로 부루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골 소녀라도 아이스크림은 먹어봤다!
“그럼 옷이나 구두는 어떻게 샀습니까?”
“마을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지었어요.”
“아이스크림은 먹어봤으면서 외출복은 안 맞춰봤다고? 헬레인 왕가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면 기가 막혀서 뒤로 넘어갈 이야기군. 이드리스 양. 아가씨가 물려받을 유산은 글래스턴 은행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요.”
“네?”
“얼른 짐 싸요.”
그녀는 날카롭고 고풍스러운 어투에 저도 모르게 약초바구니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펠릭스가 왜 5년 치 생활비만 남겼겠습니까? 그건 내가 올 때까지 쓸 돈이지. 가방 가지고 와요. 클 필요도 없어요, 가서 다 사면 되니까. 세상에, 메리가 알았다면 펠릭스를 죽였을지도 모르겠군. 메리가 살아 있었다면 최소한 딸이 약초나 가지고 놀면서 날 기다리게 하진 않았을 테니.”
소렐은 엉겁결에 여행 가방을 가지고 왔다. 키가 아주 커다란 라이킨은 가방 안에 가장 먼저 유언장부터 던져 넣었다. 그가 키만큼 커다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목에 찬 손목시계가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가지고 논 거 아닌데.”
“물론 그렇겠지요. 갑시다, 글래스턴으로. 당장 입을 옷가지만 몇 개 챙겨서 나가요.”
“그렇지만, 집은……!”
“관리할 사람을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세상에, 펠릭스, 아무리 그래도 헬레인의 공주님에게……!”
마치 친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화를 내려던 라이킨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우뚝 섰다. 소렐은 깜짝 놀라서 같이 멈춰 섰다.
“……아, 그래서 날 지목했나.”
이렇게 난리를 치며 소렐을 데리고 나갈 걸 알았기에 펠릭스는 딸의 수호자로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경을 지목한 모양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드리스 양의 유산은 어마어마한 규모고, 여태까지 잘 관리되다 못해 엄청나게 불어났으니 앞으로 사는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는 아주 우아한 억양을 사용했다. 여유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 라이킨은 소렐이 가지고 온 잿빛 외투를 직접 집어 들고 그녀가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행히 나도 아내 하나 부양할 정도의 능력은 되거든.”
아니, 사실은 이드리스와 헬레인의 유산만큼이나 돈이 많았지만, 라이킨은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장, 하루라도 젊을 때 빨리 이곳에서 나가서 공부를 하러 갑시다. 이젠 안전하니까.”
“안전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여태까지도 충분히 안전했는데요.”
“헬레인 왕가의 유산과 이드리스 일가의 유산을 전부 다 물려받은 스무 살 토끼가 안전할까요?”
“토끼 아닌데!”
눈이 동그랗고 입은 세모고, 하는 짓이 귀여운 걸 보니 딱 토끼가 맞는데. 그는 소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가 집어든 집 열쇠를 받아들었다.
“그럼 공주님.”
“공주도 아니라니까요, 우리 엄마는 그냥 혈통만 물려받은 거라고 그랬어요.”
“그거 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적당히 한 겁니다. 갑시다. 이젠 두 대단한 집안의 결합인 아가씨를 노리는 사람들이 튀어나올 때가 되었으니까.”
“정말 전 별것도 아닌 사람인데요.”
“별거인 사람 맞습니다.”
라이킨은 벽난로를 끄고, 창문을 덧문까지 모조리 걸어 잠그고, 뒷마당에 널어놨던 약초를 전부 거둬들였다. 식료품 보관함을 비워내고, 완전히 집 단속을 한 그는 불안해서 눈이 커다래진 소렐을 돌아보았다.
“너무 겁먹지는 말아요. 나는 봤겠지만, 맹세 때문에 공주님…….”
“공주 아니에요!”
“아가씨에게 뭘 함부로 하지도 못하니까.”
이거 헬레인 왕가의 유일한 적통에게 공주라고 하지 않는 것도 영 불경한 것 같아, 라이킨은 간신히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옛날 사람이었고, 정확한 호칭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펠릭스와 메리는 아가씨를 무척 사랑했어요, 이드리스 양.”
“그건 저도 알아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소렐은 당당하게 말했다.
“예, 그러니 안전장치를 얼마나 많이 해놨겠습니까.”
심지어 그녀의 수호자인 그조차도 안전장치에 불과했다. 펠릭스 이드리스 이 미친놈, 메리 헬레인에게만 미친 줄 알았더니 그럼 그렇지, 딸을 지키는 것에도 목숨을 건 미친놈. 그럴 거면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말이라도 해주든가. 올해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연구만 할 계획이던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경은 이를 박박 갈며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갑시다. 아가씨는 곧 글래스턴 대학에 입학하는 겁니다.”
그녀는 헬레인 공주답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이드리스 일가의 후계자다운 일상을 보내야 했다. 이젠 그럴 때가 되었다. 소렐 이드리스는 그녀가 뭘 하든 아낌없이 지지해줄 보호자를 얻었다. * 글래스턴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도시까지는 아니었으나, 무척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추기경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기도 했고, 도시의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사람들이 많은지라 활기찬 분위기였다. 소렐은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내내 과연 그녀가 잘한 건지, 진짜로 뱀파이어를 따라가는 게 맞는 건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유언장 때문이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에겐 유언장 반쪽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분리되었다가 천연덕스럽게 다시 합쳐진 엄마와 아빠의 유언장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가 바로 아빠가 보낸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녀는 공주님이란 그 낯설고 먼데다 어색하고 부끄럽기까지 한 단어를 여러 번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이 가난하고 가진 게 얼마 없는 사람인 기분이었다.
“잠깐 여기에서 내릴까요.”
게다가 저 뱀파이어는 그녀를 무척 귀여워하듯 말하고 있었다. 하긴 아빠를 오래 알았다고 하는데, 갓 태어난 토끼 새끼나 다름없는 소렐은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교수에게 있어서 핏덩어리일 거다.
“피곤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합시다.”
그건 일련의 행정업무 처리였다. 소렐의 출생증명서와 신분증을 가지고 온 그는 단호하게 그녀를 데리고 혼인신고부터 하러 갔다.
“혼인신고를 하자고요?”
이 도시에는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구만 하는 칼리지에 소속되어 조용히 다니는 뱀파이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가 결혼했다고 해도 소문이 날 일도 없었으나,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그런 질문을 하는 토끼 공주님을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공주……, 아니, 아가씨, 이드리스 양. 사실혼 관계가 좋습니까?”
스무 살에겐 다소 어려운 단어였나? 말해놓고서도 아차 싶었던 뱀파이어는 그걸 좀 더 풀어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렐 이드리스도 ‘사실혼’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그냥……, 마법으로 서약한 거면 되었다고 생각하실 줄 알았어요.”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래서 좀 재미가 없긴 할 겁니다. 계산도 내가 무조건 해야 하고, 에스코트도 당연히 해야 하는지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렐에게 팔을 내밀었다. 계단이 그들의 앞에 있었다. 그녀는 일단 팔을 잡지는 않았다.
“제가 돈을 흥청망청 쓸지도 몰라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당신이 날 파산시키려면 적어도 천 년은 있어야 하니까.”
“천 년 후에 돈이 생기나요?”
“천 년은 있어야 제대로 흥청망청하는 법을 알지 않을까요?”
뱀파이어는 빙긋 웃으면서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다. 관공서에서 나왔을 때, 두 사람은 법적으로 틀림없는 부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