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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정함은 거짓이다 (96)화 (96/180)

96화

고요한 지하 안에 밭은 숨소리와 더불어 살결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그는 벨라를 벽으로 몰아 앉힌 채 성급히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점점 짙어지는 욕망을 따라 입술을 삼키고, 혀를 얽는 움직임이 가팔라졌다. 그가 선사하는 감각들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어째서 그가 감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던 건지,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갖가지 의문들이 희미하게 떠오르다가도 거세게 입안을 휘젓는 움직임에 맥없이 바스러지고 말았다. 어느새 벨라의 머릿속은 온통 그로 채워졌다. 그가, 마치 자신 이외의 것을 생각하는 것 따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몰아붙였기에.

얼얼할 정도로 입술을 마음껏 탐한 후에야 겨우 그가 멀어졌다. 밭은 숨을 몰아쉬는 사이, 그는 다시금 그녀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새하얀 목에 입술을 묻었다.

“벨라.”

그가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자 따듯한 숨결이 흩어졌다. 간지러운 감각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려 발끝까지 퍼졌다. 언뜻 추위가 느껴지며 살갗의 돌기가 바짝 솟아올랐다. 어깨를 움츠리자 그는 목을 베어 물며 이를 세웠다.

“대답해야지.”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선득한 감각이 등줄기를 적셨다. 질끈 눈을 감고 말하자, 사뭇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네, 공작님.”

대답하기 무섭게 그는 곧장 그녀의 연한 살을 빨며 이따금 이로 살살 물기도 했다.

“읏…….”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를 밀쳐 낼 정도의 아픔은 아니었기에 벨라는 손끝만 움찔거릴 뿐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 애썼다.

그는 벨라의 목에 남긴 붉은 흔적을 손끝으로 쓸어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나른한 눈빛으로 그녀를 옭아매곤 지시했다.

“끌어안아.”

벨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살며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엔 모두 아릿한 통증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풀지 말고, 꽉 끌어안고 있어.”

벨라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 바짝 힘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단단한 어깨에 코끝을 파묻자 묵직한 체향이 숨을 적셨다. 흐릿하게 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옅은 포도주 향 같기도 했다.

이상하게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을수록 빠듯한 안도가 온몸을 내리눌렀다. 그 느낌이 좋아, 벨라는 더욱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의 손이 주저 없이 드레스를 걷어 올리고 안쪽으로 침입했다. 차가운 손이 옅게 달아오른 허벅지를 뭉근히 쓰다듬자 그녀는 몸을 잘게 떨었다.

벨리아르는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곳을 쓸며 천천히 그녀의 온기를 빼앗아 갔다. 손이 점점 위로 향할수록 그녀가 자신을 꽉 붙드는 게 느껴져 조용히 미소를 삼켰다.

속옷을 끌어 내리자 벨라가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며 살짝 버둥거렸다.

“공작님…….”

그녀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부르며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입가에 스미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많은 일을 처리하며 쌓였던 불쾌한 감정들이 한 번에 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낮고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가만있어야지.”

그 말에 다시 착하게 제 어깨로 고개를 묻는 모습에 그는 칭찬하듯 그녀의 엉덩이를 다독였다. 이어 어느 정도 열기를 품은 손이 그녀의 민감한 곳에 닿았다.

“──아!”

벨라가 화들짝 놀라며 팔에 힘을 풀었다. 그녀는 살짝 가빠진 숨을 내쉬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마주한 채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뭉근히 전해지는 자극에 벨라는 헛숨을 들이켰다.

“흐, 공작님……. 그, 거긴…….”

“벨라, 팔 풀어졌잖아. 네가 힘을 빼야 할 곳은 팔이 아니라 여기야.”

주위를 천천히 맴돌던 손가락 하나가 서서히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의 손마디가 꽤 굵은 탓인지 고작 손가락 하나인데도 제법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

왠지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벨라는 아랫입술을 물며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자, 그가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등을 쓸어 주었다.

다독여 주는 손길은 다정했으나, 아래를 파고드는 손길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본성은 아래에 있는 오른손으로 나타나는 듯싶었다.

전에 한 번 그를 받아들인 적이 있으니 무리는 아니겠지만,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조금만 적응할 시간을 주면 좋으련만, 그는 단호히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점점 아랫배로 몽글한 감각이 모여들자 입으로 내뱉는 숨 역시 덩달아 가빠졌다. 벨라는 결국 그의 어깨를 꽉 쥐며 다급히 입을 움직였다.

“……공작님, 조금만 천천히……. 아프, 아픈 것 같아요…….”

“엄살 부리지 마. 안 아프잖아.”

그로서는 없는 인내심을 최대한 끌어모아 아주 천천히 그녀를 풀어 주고 있는 거였다. 평소였다면, 그녀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면 이런 귀찮은 짓 따위는 진작에 내다 버렸을 것이다.

하여, 벨리아르는 아주 조금은 인정하기로 했다. 쓰다가 망가졌을 경우 버리면 그만이라고 누누이 말했었지만, 벨라는 달랐다. 막상 다치고 망가진 모습을 보니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벨라만큼은 최대한 아껴서 오래오래 곁에 두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싫어?”

벨라는 입을 꾹 다문 채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등을 받치고 있던 그의 손이 올라와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뭉근히 지분거렸다. 은근히 압박감이 더해진다 싶더니, 기어코 입술 새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는 안으로 숨으려는 혀를 꾹 잡아 눌렀다.

“말로 해야지. 혀도 굳었어? 여기도 풀어 줘야 할까?”

“……아니요, 흣……. 좋아요. 좋아서…….”

입안으로 들어온 손가락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다. 다물 수 없이 벌어진 탓에 타액이 조금 흐르기도 했다. 그는 촉촉이 젖은 그녀의 입술을 쓸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눈물만 많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봐. 이렇게 어디든 잘 젖는 걸 보니.”

그의 말에 뺨이 붉게 익었다. 너무 열이 오른 나머지 열병을 앓았을 때처럼 눈두덩이가 뜨끈해졌다. 이 와중에도 쉬지 않고 끈질기게 움직이는 그의 오른손이 원망스러웠다.

“아니에요……. 그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소리도 들리는데.”

그가 보란 듯이 손을 움직이자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두운 곳임에도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빨갛게 익었는지 확연히 드러났다.

“그만, 그만해 주세요…….”

제 손가락을 물고서 애원하듯 말하는 모습에 아래로 바짝 피가 몰려 뻐근할 정도였다. 저 혼자만 보기 아까우니, 다음엔 커다란 거울을 앞에 두고 벨라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머릿속과 달리, 벨리아르는 그녀의 말에 단호히 손을 거뒀다. 한순간에 자극이 사라지자 그녀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그가 아무런 반응 없이 저를 지켜보기만 하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살짝 움찔거렸다. 그만해 달라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거세게 밀려드는 쾌감과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입이 절로 움직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에게 더욱 몸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자 표정을 굳힌 그가 짐짓 단호한 음성으로 다그치듯 말했다.

“벨라, 거짓말하면 돼?”

“하지만……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덥진 않고?”

덥지 않을 리가. 내뱉는 숨결에도 열기가 서려 있는 데다 몸에선 살짝 땀까지 배어 나오는 상태였다.

“……조금 더워요.”

대답하기 무섭게 그는 벨라의 드레스를 찢어 냈다. 마치 처음부터 거슬렸다는 듯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말릴 새도 없이, 그는 작은 천 쪼가리 하나 남기지 않고 싹 없애 버렸다.

그나마 옷이 부끄러움을 가려 주었는데, 그마저 없어지니 벨라는 더욱 그의 목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앞이라도 그의 몸에 바짝 붙여 가리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벨라는 그것이 그를 더욱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 안 덥겠지?”

“……네.”

그는 벨라를 모포 위로 눕힌 채 제 목에 감긴 팔을 풀어냈다. 그러고는 양 손목을 한 손으로 그러쥐어 머리 위쪽으로 고정했다.

평소보다 짙게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그녀의 나신을 훑어내렸다. 정확히는 몸 곳곳에 든 멍 자국을 담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멍든 자리 위로 입술을 내렸다. 팔목부터 어깨, 배, 허벅지까지. 입술이 닿는 자리마다 멍 위로 그의 흔적이 덧새겨졌다.

가뜩이나 멍이 들었던 자리라 그가 흔적을 남기는 게 조금 아프긴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더 큰 탓도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지하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가 벨라의 뺨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많이 울었어?”

“……아니요, 안 울었어요.”

“왜?”

“저도 나름 자존심이 있어요. 황태자 전하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꾹 참았어요.”

“잘했어. 착하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기특하니 최대한 천천히 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이성을 붙잡은 끈은 상당히 가늘어서 그 다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벨라, 내 앞에서도 눈물을 참아야 할까?”

벨라는 살며시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 물음이 어쩐지, ‘이제부터 너를 많이 울릴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들린 탓이다.

“……아니요.”

“그래.”

그는 짧게 답한 후, 제 옷도 벗고서 그녀의 위로 몸을 겹쳤다. 앞서 충분히 풀어 놓았기에 예전처럼 힘겹진 않았다. 그러나 원체 그녀의 작은 몸으론 쉽게 받아들이긴 힘든 크기라 조금 빠듯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벨라의 입에서 깊은숨과 함께 신음이 샜다. 이건 분명한 그녀의 잘못이었다. 아주 기특하게도 울음을 참지 않고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착실히 흐느끼는 탓에, 결국 가느다란 이성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건 벨라의 잘못이 맞았다. 벨리아르는 그렇게 결론을 내며 ‘천천히’는 내던지고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버겁게 밀려드는 쾌감에 벨라는 손마디에 핏기가 사라질 만큼 모포를 꽈악 그러쥐었다. 이미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하며 정신이 날아간 탓에 입으론 애꿎은 ‘공작님’만 불러 댔다. 젖은 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득히 귓가를 울렸다.

그의 말속에 숨은 뜻을 잘못 해석한 게 아니었다. 그는 끝내 지하가 그녀의 울음으로 가득 채워질 정도로 쉼 없이 몰아붙였고, 벨라는 속절없이 그에게 흔들려야 했다.

가만히 두어도 몇 번이나 채워 넣은 그의 흔적이 주르륵 밀려 나와 여린 허벅지살을 타고 흘렀다. 기어코 그 모습까지 보고서야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깃들었다.

“벨라, 이제 집에 가야지.”

속삭이듯 전하는 그의 말을 끝으로, 벨라는 결국 정신을 놓고 말았다. 벨리아르는 옷을 대충 챙겨 입은 후, 커다란 망토로 그녀를 잘 감싼 채 안아 들었다.

제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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