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4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
광활한 평야 옆에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선 명소가 있었다.
칼 피안노는 농사를 잘 짓지 못해 수익이 영 좋지 않은 농부였지만 그 멋진 길 하나만큼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실은 그것만이 제 남루한 인생에서의 유일한 자긍심이었다.
간혹 근처에 사는 부르주아 놈들이 돈을 싸 들고 찾아와 가로수 길을 팔라고 했지만, 고작 돈 몇 푼에 긍지를 팔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와도 다름없는,
“음?”
길 한가운데 서 있던 칼 피안노의 시야에 시커먼 점이 보였다.
점은 점점 더 커지다가 순식간에 제 머리 위를 지나갔다.
“으악!”
점이 아니라 용이었다.
집채만 한, 아니, 웬만한 성채만큼 큰 용이 길 끝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악! 으아악! 악! 사람 살려!”
칼 피안노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외진 곳이라 이웃들도 마차를 타고 30분 이상을 달려야 만날 수 있었다.
‘가끔은 고독을 즐기는…… 내가 좋다…….’고 써 놓은 일기장의 문장들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인간. 서라.”
“흐으어어억!”
커다란 발톱이 갑자기 제 앞을 막아섰다. 돌기둥 같은 다리에 온 몸을 부딪친 칼은 그대로 코를 감싸 쥐며 뒤로 넘어졌다.
코뼈가 부러졌는지 피가 쏟아졌다.
“살, 살려주십시오. 살려 주십쇼!”
칼은 오른손으로 코를 붙잡고 웅크린 채 덜덜 떨었다.
“나는 디에르고 폰 베르고 공작이다. 자네가 칼 피안노가 맞는가?”
“흐어으어읍. 네, 맞습니다!”
베르고라는 공작가에 용이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검은 용이 공녀님의 짝이라는 내용의 소설이 몇 년 전에 유행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근데 용의 이름이 디에르고 폰 베르고라니? ……설마 용이 남의 이름을 훔쳤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타닥, 하는 발소리가 들려 칼은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 올렸다.
땅으로 내려선 사람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칼 피안노는 필사적으로 무릎으로 기어가 낯선 이의 두 다리를 끌어안았다.
뭔지는 몰라도 용 앞에 나타난 사람이니 저를 구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아이고야, 살려 주십시오. 제발. 용이 사람 죽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이보게. 우리 아무스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네.”
친절한 음성에 칼이 희망찬 얼굴로 고개를 들려고 했다.
“죽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더 높은 곳에서 들리는 동굴 같은 목소리는 용의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 죽인 적이 없는 건 아니라니. 그럼 사람을 죽여 봤다는 거잖아.
칼은 눈물을 쏟으며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때 등으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길의 주인이 자네라고 들어서 찾아왔네. 칼 피안노. 내게 이 길과 농지, 저 작은 저택까지 팔지 않겠나?”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저택을 작은 저택이라고 부르다니.
어마어마한 부자임에 틀림없, ……베르고 공작가?
“공작님?”
“나를 아는가. 그럼 대화가 빠르겠군. 나는 디에르고 폰 베르고. 그대의 땅을 사고 싶소.”
“하, 하지만…… 여기는 우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고…….”
디에르고는 품 안에서 막대한 양의 돈다발을 꺼냈다.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팔겠습니다.”
긍지는 다른 곳에서 더 큰 저택과 더 큰 땅으로 다시 만들면 될 일이었다.
저 정도의 금액이라면 조상님들도 납득할 것이다.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친 후 칼 피안노는 환한 얼굴로 용과 공작님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결혼을 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 공녀님께서도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간혹 거센 바람 때문에 야외 결혼식을 꺼리는 신부도 있는데 공녀님은 찬성하셨나 봅니다!”
갑자기 공작님과 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두 사람은 칼 피안노에게 땅문서를 받자마자 다시 허겁지겁 날아갔다.
일단 칼 피안노는 오늘부로 갑부였고, 나중에 신문을 통해 결혼 소식을 보게 되면 박수갈채나 보낼 예정이었다.
공녀님과 검은 용이 언제 결혼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 * *
“땅을 사아아아? 그것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땅을? 농사도 제대로 안 지어 본 땅을? 길이 예뻐서 사아아?”
어쩐지 디에르고는 솔레아의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그냥, 별장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아무스 너도 우리 아빠 뒤에 숨지 말고 나와!”
디에르고 뒤에 숨겨지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몸을 가리고 있던 아무스가 어색하게 옆으로 비켜 나왔다.
“장이익!”
장인, 이라고 부르려다가 디에르고에게 발을 밟힌 아무스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그, 그러니까 내 짱친이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별장으로 삼아서 다 같이 놀러 가면 되고…… 거대한 화원으로 만들어서 계절마다 피는 꽃을 심고…….”
가뜩이나 집도 많고 별장도 많고 땅도 많은데 거길 산 이유가 무엇이냐, 관리인들 뽑고, 화원에 들일 꽃 고르는 것도 내 일이 될 텐데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면서 왜 그런 일을 벌인 거냐, 두 사람 다 충동적인 부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이렇게 대책이 없냐, 아무스가 설레발을 쳤어도 아버지가 막으셨어야죠, 등등.
솔레아의 잔소리가 길어질수록 디에르고와 아무스의 입술도 점점 더 삐죽 튀어나왔다.
“……난 그냥 너 행복하게 해 주려고 그랬지.”
“뭐라고?”
디에르고가 또 아무스의 발을 밟으며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프러포즈를 이런 삭막한 집무실 안에서 해선 안 된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예식장도 구한 마당에 프러포즈를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아무스는 성큼성큼 솔레아 앞으로 걸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솔레아.”
“갑자기 왜 그래?”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널 만나기 위해 수백 년을 기다리고, 네가 우리의 결말을 바꾸기 위해 혼자 수백 년을 또 살아 낸 것처럼.”
“……아빠도 계신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지금.”
“나도, 너의 가족들도, 모두 함께일 거야. 언제나 늘 완벽하게 행복하진 않겠지만 우린 늘 적당히 행복할 거고, 가끔 힘들어도 서로에게서 희망을 찾을 거야.”
디에르고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저 망할 예비 사위 놈이 기어코 집무실에서 청혼을 할 모양이었다.
디에르고는 이마를 짚으며 사위 복이 왜 이리 없나, 한탄했지만 조금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말고는 사실 완벽한 사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딸을 사랑하니까. 그걸로도 족했다.
……아니, 그래도 이왕이면 청혼은 더 멋진 곳에서 하지.
디에르고는 아무스를 만류하기 위해 집무실의 문을 살짜쿵 열어 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 이제 시작인 거로군.”
대충 눈치챈 디에르고는 빠르게 계획을 이행했다. 시간이 없었다.
아무스와 솔레아는 익숙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여긴…….”
“응. 내가 살던 동굴이야.”
“여, 여기 없어졌다며.”
“백 년쯤 전에 산사태가 나서 무너져 있었는데 다시 세웠어.”
“……동굴을 다시 세웠다고?”
“내가 밤마다 와서 무너진 바위를 다시 올리고, 단장했어.”
그의 말대로 동굴 안은 그때 그들이 살던 모양 그대로였다.
다만 동굴 입구를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탁 터 놓은 덕인지 입구 쪽에 온갖 들꽃이 가득했다.
“남의 사유지를…… 이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괜찮아? 다른 사람 땅이라고 했잖아.”
“아. 그 귀족은 자식을 못 남기고 죽었어. 그래서 내가 이 땅을 샀어.”
“땅을 샀다고? 우리 집 돈으로?”
“아니. 내 돈으로.”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비, 비늘 몇 개를 뽑았어.”
“야!”
“괜찮아! 비늘은 다시 나잖아. 하지만 여긴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공간이고. 봐 봐, 그때 네가 내 몸에서 떨어진 비늘을 긁어 바위 벽에 그린 그림도 남아 있어. 내가 찾아서 주워 왔어.”
아무스가 마법으로 동굴 안을 환하게 밝혔다.
산의 조잡한 그림 실력으로 채워진 동굴 벽화가 드러났다.
솔레아의 허리 높이에 도마뱀인지 뭔지 알아볼 수 없는 생물체와 사람……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겨우 솔레아의 명치 언저리에 오는 높이였다.
“내가 이렇게 작았구나.”
“그땐 너도 나도 어렸으니까.”
어렸던 산과 아무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무스는 솔레아의 손을 잡고 동굴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기억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빽빽한 숲속을 나란히 걸으며 둘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서로의 이야기와 말하지 않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
자주 웃었고, 가끔 서로의 위안이 필요해 따듯하게 안아 주기도 했다.
시간이 어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 너무 많이 걸은 거 아니야?”
솔레아가 뒤돌아본 그곳은 숲이 아니었다.
늘 혼자 걸었던, 공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스산한 차도였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어 어둑어둑한 그곳에선 아무스의 밝은 두 눈이 등불이 되어 주었다.
아무스가 만들어 낸 환상인지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가공된 고요 속에서 솔레아는 오히려 안정을 느꼈다.
어깨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기억이 덧씌워졌다.
“여긴 환상으로 만들어 낸 거지?”
“아니, 지나가는 차만 안 보이게 했을 뿐, 거기 맞아. 네 기억 속 이 거리를 꼭 같이 걸어 보고 싶었어. 이렇게 네 손도 잡고 말이야. 나도 가끔은 분위기를 잡아야지.”
“하하.”
항상 혼자 걷던 길을 둘이서 걸었다. 코끝을 빨갛게 만들었던 겨울의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봄이 오려나 보다.
이리 늦게, 봄이 올 모양이었다.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샛노란 민들레가 꽃봉오리를 피워 냈다.
느긋하게 걷던 솔레아는 익숙한 지하철역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저거! 나 출근해야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있어? 아니야!”
솔레아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다녔던, 얼렁뚱땅으로 굴러가는 도산 직전의 회사가 위치한 지하철역이었다.
“저기 가 보자.”
“아, 싫어!”
“한 번만. 산, 레아, 응? 지윤아.”
“……진짜 싫은데.”
입술을 삐죽 내민 솔레아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던 아무스는 튀어나온 그녀의 입술에 쪽 하고 입 맞췄다.
“나랑 같이 걸어가자.”
솔레아는 결국 아무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하……. 너 이거 장난이면 진짜 크게 화낼 거야. 결혼이고 뭐고 없는 거야.”
“글쎄. 손님들 초대해 놓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응?”
계단을 내려가자 동그란 공터가 나타났다.
아무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솔레아에게 작은 보석함을 내밀었다.
“나랑 가족이 되어 줘, 산. 나의 작은 산. 나의 지윤이, 솔레아. 내가 너의 것이 될게.”
보석함 안에는 반지가 아니라 팔찌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팔찌의 모양이 꼭 풀 잎사귀 같았다.
“어, 이거 우리 그 약초…….”
“그래, 내가 첫 번째 성장통을 겪을 때 네가 먹였던 그 약초야. 모양 살려서 팔찌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어찌나 투덜거리던지. 그래도 알아보겠지?”
“……당연하지.”
잎사귀 모양으로 엮여 있는 팔찌 가운데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처형들이 다이아몬드도 없이 너를 데려갈 거냐고 해서.”
“하하하! 내가 가긴 어딜 가. 같이 살 텐데.”
“응, 나도 너랑 같이 살 거야. ……내 청혼, 받아 주는 거지?”
“그럼.”
솔레아는 아무스를 일으키고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 순간 폭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시야가 확 밝아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솔레아는 이곳이 아버지와 아무스가 샀다는 그 플라타너스 길이라는 걸 알아챘다.
마법을 걸었는지 나무마다 환한 조명들이 색색깔로 빛나고 있었고, 넓은 평야에도 온갖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가로수 사이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박수를 쳐 댔다.
“우리 아흐아아갓씨. 사랑해요으어어.”
“아이고오! 우리 아가씨. 흐어엉. 어쩜 저리 고우실까. 흐업!”
“아무스 님! 이제, 흑! 꽃밭에 발 도장 그만 찍으시고요! 흐윽!”
앤을 비롯한 사용인들부터,
“고흐어어엉녀님. 앞으로도오오, 킁! 진짜! 킁! 자주 놀러 갈게요. 파티도 자주, 흑! 열어 주세요!”
“사라. 울, 큽! 울지 마라. 공녀님이 결혼하시는 건. 흑! 좋은 일이잖아!”
사라와 빌도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술을 오크 통째로 가져다 놓고 마시는 랏샤와 엘도 함께였다.
“레아, 축하한다. 검토할 서류가 몇 개 있는데 신혼여행지에서 불 수 있도록 이따가 챙겨 주지.”
“폐하, 술을 그만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너나 술잔에서 손 떼. 늙은 간 주제에.”
도무지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다.
솔레아가 앞으로 발을 떼는 순간, 새하얀 빛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을 휘감았다.
진한 녹색이었던 옷이 아름다운 레이스 자수가 박힌 웨딩드레스로 변했다.
“사장님! 그 옷! 저희가 만들었어요! 너무 예쁘죠! 네! 저희가 보기에도 그래요! 누가 만들었는지, 나 원, 참! 하하하!”
유쾌한 솔리안 공장의 직원들이 다 함께 손을 흔들어 댔다.
함께 왔는지 이안과 해리 골드먼트 남작도 보였다.
솔레아는 그제야 옆을 돌아봤다.
턱시도를 입은 아무스가 솔레아의 손을 잡아 제 팔에 팔짱을 끼웠다.
“결혼한다며, 나랑.”
“……그게 지금 당장이었어?”
“빨리빨리. 네가 한국에서 자주 하던 말이던데.”
“아니, 그래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흙길이었던 가로수 길은 하얀 비단이 깔린 웨딩 로드로 변했다.
“아가씨가 출근 안 하셨던 2주 동안 업무는 저와 공작님이 대신 했습니다. 마법사 협회 일은 신혼여행 가셔서 하시면 됩니다. 그와 관련된 자료는 저쪽 짐마차에 실어 뒀고요.”
“라트엘, 이게 지금 무슨 일이에요?”
“아무스 님이 아가씨를 휙 데리고 가서 멋진 환상을 2주나 보여 주는 동안 저희는 결혼식을 준비했죠. 이 땅을 사자마자 화원으로 바꾸느라 고생했지만 제가 누굽니까. 바로 베르고의 명석한 인재, 라트.”
“막내야.”
“오빠.”
라트엘의 말을 끊은 티온이 천천히 걸어와 솔레아의 손에 부케를 쥐여 주고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평소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헤이먼은 아무스의 턱시도에 코르사주를 끼워 주고, 그와 똑같은 꽃 코르사주 팔찌를 솔레아의 손목에 채워 줬다.
헤이먼이 왼쪽 볼에 입을 맞춘 후 물러나자 이번엔 그레이가 다가왔다.
새하얀 구두를 들고 온 그레이는 잔뜩 뿔이 난 표정이었지만 솔레아는 알고 있었다.
저건 눈물을 참는 얼굴이었다.
그레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직접 솔레아의 구두를 갈아 신겨 주었다.
“우리 동생 산윤솔, 이렇게 꾸며도 세상에서 제일 못났네.”
“웃기지 마.”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둘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그레이가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고 뒤로 물러났다.
길의 끝에는 디에르고 공작이 서 있었다.
결혼 서약서와 작은 반지를 든 채로.
예상외로 디에르고는 울지 않았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둘을 맞았다.
긴 축사가 이어진 후, 디에르고는 아무스와 솔레아를 한 번씩 번갈아 본 뒤 물었다.
“두 사람은 삶의 끝까지 오직 서로만을 사랑하겠습니까?”
이 어이없는 휘뚜루마뚜루 초스피드 결혼에 솔레아는 기가 막혔지만, 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었다.
제일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그녀와 아무스가 동시에 답했다.
“네.”
“네.”
부부가 된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자 정령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활짝 웃는 솔레아와 아무스의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 베르고 대저택에 걸렸다.
마법의 힘이 쇠하고, 정령들의 노래가 멈추고, 작은 씨앗이 거목이 되는 날까지 둘은 서로의 완벽을 위한 한 조각으로 살았다.
“이럴 거면 이혼해!”
“이혼 소리가 그렇게 쉽게 나와? 너 비늘 17억 원어치 뜯고 나가!”
가끔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아주 오래도록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