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작은 마을은 금세 용이 뿜어낸 불꽃으로 뒤덮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불을 뿜어낸 것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타오르다 못해 그대로 녹아내릴 것처럼 울렁거렸다.
분노가 장기를 태워 버릴 것 같아 입을 벌리고 밖으로 쏟아 냈다. 평소처럼 붉은색이 아닌 새파란 불꽃이 터져 나왔다.
우매한 인간들은 그 자리에서 뼛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용은 구역이 치밀 때마다 불꽃을 뿜어내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랑 섞여 살아 보려고 그런다.’
‘더 큰 산을 넘어서 또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안녕.’
본래 작은 마을이 있던 자리가 폐허로 변한 뒤에야 용은 큰 날개를 움직여 산으로 돌아갔다.
아까 인간들이 모여 있던 아름드리나무 아래로 가니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듯했지만 덩어리 주변엔 수많은 발자국만 즐비할 뿐, 꽃 한 송이조차 놓여 있지 않아 누가 봐도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용은 땅으로 내려가 인간으로 변했다. 저 물체가 정말로 산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은 확신을 가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용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시커멓게 타 버린 덩어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커다란 멍석을 말아 놓은 건지 덩어리 중간중간 묶여 있는 밧줄이 느껴졌다.
다 타 버려 손만 대도 툭 바스러지는 밧줄들을 모두 툭툭 끊어 낸 후 멍석을 펼쳤다.
고온에 불타며 녹아내린 탓에 멍석을 펼친다기보다는, 껍데기를 벗겨 내는 것에 더 가까웠다.
겨우 드러난 얼굴은 전혀 산 같지 않았다. 온통 시커메서 도통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렇지.
산이 죽었을 리 없고, 내가 산을 못 알아볼 리는 더더욱 없다.
매일 낮 얼굴을 보고, 매일 밤 꿈에서 그렸는데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산이 아니야.
용은 힘없이 웃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산, 깜짝 놀랐어. 너인 줄 알았단 말이야. 너는 간다며. 더 큰 산을 넘어서 갈 거라며.”
하지만 말과는 달리 용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멍석을 조금씩 쥐고 천천히 떼어 내는 동안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턱 밑에 혹처럼 달려 있는 저것은 매듭을 두 번 묶은 천이 녹으며 달라붙어 생긴 흔적이었다.
덜렁거리는 신발 밑창, 깡마른 몸, 미처 벗지 못했는지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의 모양도 모두 익숙했다.
“천의 매듭을 두 번씩 매면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이 마을에 또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내가 ……내가 지금 착각하는 걸 수도 있잖아.”
용은 희고 고운 손으로 불에 탄 시체를 들어 올리곤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너 아니면 어떡하지. 너 아니면 내가 지금…… 모르는 사람을 처음으로 안는 거잖아. 그러면 어떡하지.”
고통에 젖어 비명을 질렀는지 벌어진 입은 아무리 쓰다듬어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용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시커먼 시체의 볼 위로 용의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있잖아, 산……. 네가 맞으면 어떡해?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을 질끈 감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시체를 축축하게 적셨다.
불탄 시체를 끌어안은 채 용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방울만 아래로 떨어뜨리며 울었다.
“산. 산……. 나 아직 못 한 말이 많은데, 그리고 너…… 너도 나 책임져야지. 네가 내 성장통을 망쳤잖아.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럼 책임져야지. 산. 적어도 인간들이 누리는 인생의 끝까지는 살았어야지.”
가슴이 시큰거리고, 커다란 돌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몸속의 모든 장기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그 어떤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용은 시체가 부스러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더 깊숙이 당겨 안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작고 말랐구나.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자란 줄 알았어. 그런데 여전히 이렇게 작았구나.”
말을 하면서도 심장이 쓰라리고 눈에 멀건 물방울이 고여 눈앞이 흐려졌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10년이라니, 말도 안 돼. 네가 날짜를 잘못 센 거 아니야? 네가 나한테 넣은 독이 아직도 이렇게 가슴 안을 돌아다니는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니.”
여태 하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나 쌓여 있는 줄 몰랐는데 그녀를 안으니 고백들이 범람하듯 넘쳐흘렀다.
“동굴에 안 온 지 꽤 됐지? 아마 들어왔으면 진작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을걸. 내가 온갖 약초들을 심어 놨거든. 네가 진정한 약초꾼이면 냄새를 맡고 들어왔어야지.”
“전에 만났을 때 화내서 미안해. 내가 아무리 붙잡아도 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 버렸어. 네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잘할 것 같았거든. 넌 강한 사람이니까.”
“한때 너랑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수에 비친 내 인간 모습을 좋아했었어.”
말을 하면서도 목구멍이 시큰거리며 아파 왔다.
“아직 안 늦었어. 얼른 가방 메고 올라와. 콧노래 흥얼거리면서, 휘파람 불면서. 이 나무 아래에서 얼굴을 가렸던 천을 벗어 던지고 웃어야지, 산.”
아무리 안고 있어도 믿을 수 없었다.
산의 손끝에선 흙냄새가 났고, 걸을 때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선 풀 향기가 났는데.
커다란 이 산 곳곳의 향기를 작은 몸 여기저기에 숨겨 둔 듯한 진짜 산의 주인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런데 이 사람의 몸에선 불타 버린 숯 냄새밖에 나질 않았다.
용은 산을 안고 날아올랐다.
인간들의 냄새가 섞인 곳에서 산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동굴로는 가지 않았다.
너는 습한 걸 싫어했으니까.
태양 빛이 가득히 내리쬐는 산 정상으로 향했다.
구름보다 더 위로 올라가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 몸을 누였다.
산을 품에 안고 웅크린 채 시간을 보내는데도 이상하게 혼자인 것처럼 외로웠다.
분했다가, 억울했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펐다가,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다가, 다 쓸모없는 짓처럼 느껴졌다.
산이 미웠고 인간이 미웠고 막지 못한 자기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폭풍 같은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몰아쳤다.
뭔가를 먹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문득 눈을 떠 보니 검은 숯 같던 시체는 이미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간 이후였다.
시커먼 자리를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용은 아직도 제게 죽음이 오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
죽고 싶었다.
실은 살리고 싶었다.
산을 마지막으로 본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산을 붙잡아서 마을로 가지 못하게 할 텐데.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흐릿해져도 햇빛을 맞으며 환하게 웃던 산의 얼굴은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짝이 될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가르쳐 주지 말라고 했던 제 이름을 몰래 가르쳐 주었던 그날의 기억도.
‘산. 내 이름은 안 궁금해?’
‘말을 안 하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지. 너 이름 있어?’
‘……있는데 절대 남한테 말하면 안 돼. 너도 부르면 안 돼.’
‘뭐야. 그딴 이름이 어디 있어.’
‘있어. 나는 그래.’
‘그럼 나한텐 왜 가르쳐 주는데.’
하여간 성질 더럽고 사회화도 덜 된 인간.
용은 과거를 회상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내 짝이 되어 줬으면 해서 말하는 거라고.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내가 너의 용이 되고 네가 나의 산이 된다고 말할 걸 그랬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용은 죽지 못했다. 몸 안에 생명력이 차고 넘치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을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용은 제 생명을 깎아 내다 버렸다.
그러자 갓 자라난 새싹에서, 파란 바다에서, 깊은 호수에서, 흔들리는 잔디에서 온갖 정령들이 태어났다.
그들은 제각기 떠들며 용의 곁을 맴돌았지만 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죽지 못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태어난 정령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며 생명을 찬양했지만 용은 죽음을 꿈꿨다.
‘너무 늦었나요.’
‘혹시 많이 기다렸나요.’
‘빰빰빰빠밤빰!’
‘때론 내가 없는 밤이 깊고 길고 어두웠나요.’
‘그럼 늦은 저녁을 멈춰 천천히.’
‘내가 처음부터 없던 날로 떠나 볼까요!’
‘나 걱정 안 할 수 있게∼’*)
정령들이 부르는 알 수 없는 노래가 꼭 산이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용은 제 수명 100년을 깎아 소원을 빌었다.
“……산이 보고 싶어.”
그날 밤엔 오랜만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의 산을 바라봤다.
산은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도 꿋꿋이 홀로 살아 냈지만 밤이 되면 외로워했다.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산은 얇은 담요로 온몸을 칭칭 둘러 감싼 채 잠들었다.
산의 꿈을 볼 수 있었다.
얼굴과 몸에 흉터가 없고,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삶이었다.
제대로 된 이름이 있었고, 친구들과 산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소풍을 가는 길에 좋은 옷을 입은 제가 나타나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그녀와 포옹을 나누고, 부드러운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기도 했다.
모두 가짜였다.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는 꿈.
잠에서 깨어난 용은 200년을 쏟아부어 다시 소원을 빌었다.
“산을 다시 만나고 싶어.”
더 많은 정령들이 태어났다.
용은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마을에서 흉측한 흉터를 지닌 아이가 버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용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장난을 쳤고, 친구처럼 다가갔다.
‘그럼 말을 곱게 해. 좀 사근사근하게. 경계심 안 가지도록.’
산이 조언했던 대로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도 곱게 말을 던지니 친해지기 쉬웠다.
산이 용과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녀는 매일 용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잖아.”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꿈속의 산은 더 이상 내리쬐는 햇빛을 보며 웃지 않았고, 호수에서 헤엄을 치다가 물에 빠진 척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그저 용을 볼 때마다 힘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난 이제 너밖에 없어.”
잠에서 깨어난 용은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누워 있던 자리를 살펴봤다.
산의 불탄 시체가 녹아든 시커먼 흙바닥은 그대로였다.
300년의 수명을 썼다.
산에게 친구를 만들어 줬다.
친구는 산을 대신해 누명을 쓰고 인간들에 의해 죽었다. 산은 살았다.
용은 다행이라 여겼지만 산은 아닌 듯했다.
산은 친구를 잃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난 너만 살면 돼! 난 그거면 된단 말이야! 이제 그냥 좀 살아! 나랑 살면 되잖아! 내가 네 삶이 되겠다고 했잖아!”
이젠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구별할 수가 없어 용은 산에게 소리를 질렀다.
꿈속의 산은 빛을 잃은 눈동자로 용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날 놔줘. 여기엔 내 삶이 없어.”
꿈에서 깨어난 용은 주변을 둘러봤다.
산은 죽었고, 사라졌고, 없다.
그제야 용은 알 수 있었다.
산의 영혼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만약의’ 상황으로 산을 다시 살려 낸다고 해도 산은 제 삶을 갖기 전에는 결코 용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을 터였다.
어느 날, 산의 귓가에 제 이름을 속삭여 줬던 때였다.
‘부르지도 못할 이름을 왜 가르쳐 줘? 그럼 네 이름을 언제 불러야 되는데?’
‘……내가 네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불러 줘. 바로 네 옆으로 갈게.’
‘뭐야. 그게 다야?’
‘……응.’
산은 결국 끝까지 단 한 번도 용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용의 이름을 불렀다가 그까지 비루한 나락으로 끌어내려질까 두려워했다.
불길 속에서 타오르면서도, 온몸이 바스러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용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그가 제 옆으로 왔다가 함께 불탈까 겁을 냈던 걸까.
아무스는 이를 악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바보야……. 불길 속에 있어도 나를 불렀어야지. 네가 바닥에 있어도, 내가 날개가 있는 놈인 걸 까먹지 말았어야지.”
매일 기다려도 죽음은 오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은 지쳤다.
아무스는 제 발톱을 뽑았다. 그러곤 왼쪽 날개뼈 아래 역린을 직접 찌르려고 할 때였다.
붉은 머리 여자가 허공에서 나타나 그를 가로막고 외쳤다.
“아무스!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