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6/156)

* * *

겨울의 첫날은 해리의 생일이기도 했다. 결혼식과 대관식이 같은 날에 열리는 건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결과였다.

‘해리한테 뭘 줘야 할까?’

오래전 해리에게 생일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시간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반지였다. 결혼식에는 당연히 반지가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난 결혼식과는 상관없이 해리의 생일 선물을 주고 싶은 거라고.’

내가 무엇을 주든 해리는 기쁘게 받을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선물을 고르기 힘들었다.

“무슨 생각해?”

그때 고민에 빠진 내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등 뒤에서 기척도 없이 나를 끌어안은 해리가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어요.”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놀라는데?”

은근히 묻는 해리의 목소리에 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어 해리를 슬쩍 바라보니 그가 기다렸다는 듯 씩 웃었다.

“혹시 겨울의 첫날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

나는 단번에 해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내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 해리의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날이 무슨 날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물은 서프라이즈여야 제맛이란 말이야.’

나는 일부러 해리의 의도를 모르는 척 다른 대답을 입에 올렸다.

“당연히 알죠. 대관식이랑 결혼식이 열리잖아요.”

내 말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해리의 눈에서 힘이 쭉 빠졌다.

“어……. 그거 말고…….”

“왜요? 그거 말고 또 다른 게 있어요?”

“어, 아니, 그게…….”

해리가 눈을 굴리며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대로 말하고 선물을 달라고 할 것인가, 내가 기억해내기를 기다려 볼 것인가. 해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니…… 잘 생각해봐. 그날 뭐가 있을 텐데. 아주 중요하고 멋진 날인데…….”

“그래요? 뭐지?”

내가 모르쇠를 잡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해리의 얼굴이 점점 시무룩해졌다. 나는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속으로 눌러 삼켜 무표정을 유지하며 해리를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으니 유독 허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목이었다.

‘여기에 예쁜 목걸이 하나 걸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거 거추장스럽다고 싫어하려나?’

내가 빤히 쳐다보자 해리가 내 시선이 닿은 제 목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목이 뭔가 이상해?”

“아뇨. 그냥 한 번 쳐다봤어요. 이제 안 볼게요.”

나는 해리가 나의 의도를 알아채기 전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해리가 손을 뻗어 내 볼을 감싸고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왜? 계속 봐도 돼.”

해리가 씩 웃으며 내게 물었다.

“또 어디가 보고 싶어? 말만 해, 내 주인님.”

“왜요?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어디든 다 보여줄 수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해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민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하지. 너한테 못 보여줄 게 어딨어.”

나는 당당하게 자신하는 해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바지 벗어봐요.”

“……어?”

“왜 놀라요? 나한테는 전부 다 보여준다면서요.”

“아니, 나는 네가 내 얼굴이나 볼 줄 알았지. 내 얼굴이 제일 재밌다며.”

“응. 그렇긴 한데, 다른 것도 재밌어요.”

그렇게 말하며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자 해리가 당황하며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어, 어, 어, 어딜 보는 거야!”

“어딜 보긴요. 해리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거기……”

“너, 너, 너, 너는 무슨!”

해리가 재빨리 내 말을 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 인간이 왜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어?”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만 들어도 해리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씩씩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해리는 왜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요? 나이도 많은 악마면서.”

해리를 볼 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악마에 대한 이미지들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악마와 인간 여자라면, 농락하는 쪽이 악마가 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하지만 해리는 언제나 내게 농락당하는 쪽이었다. 그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는지 해리가 억울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난 평범한 수준이거든? 네가 너무 부끄러움이 없는 거라고.”

해리가 투덜거리며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예상대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해리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아무리 부끄러울 거 없는 너라도 옷을 벗으라고 하면 부끄러울걸?”

“아닌데. 난 정말로 해리한테 전부 다 보여줄 수 있어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해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흥. 내가 어딜 보여달라고 할 줄 알고?”

“상관없어요. 정말로 다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지금 벗어봐. 네 옷.”

해리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훑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졌던 시선이 다시 내 얼굴로 돌아오더니, 이내 해리가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왜? 다 보여줄 수 있다며. 벗어, 이브리아.”

말로는 이렇게 나를 재촉하고 있지만, 내가 정말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눈이 아니었다. 나는 얄팍한 해리의 도발에 픽 웃음을 흘리며 드레스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외부 일정을 모두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던 탓에, 지금 내가 걸친 드레스는 그리 복잡한 구성이 아니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등 뒤의 리본을 풀어냈다.

단단하게 잡혀있던 끈이 풀어지자 드레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얇은 슬립 차림으로 변한 나를 보며 해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자, 실컷 봐요.”

로이가 제 옷을 자랑했을 때처럼 친절하게 빙글 돌아주기까지 했지만, 해리는 입을 떡 벌린 채 굳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래요? 벗으라고 해서 벗었더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립의 어깨끈을 매만졌다.

“아. 혹시 이걸 안 벗어서 그래요? 이것도 벗을까요?”

당장이라도 끌어내릴 듯 어깨끈을 손에 쥐자 굳어 있던 해리에게서 드디어 반응이 나왔다.

“안 돼!”

해리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벗지 마! 절대 벗으면 안 돼!”

“왜요? 벗으라면서요. 다 보고 싶다면서.”

“아니…… 나는 네가 진짜 벗을 줄 모르고…….”

해리가 여전히 자신의 두 눈을 가린 채 우물거리다 금세 소리를 높였다.

“아무튼, 빨리 옷 입어!”

언제는 벗으라더니 이제는 옷을 입으라고 난리인 해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유쾌한 웃음소리에 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해리가 부루퉁한 얼굴로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이브리아. 너 나빠.”

“그러게 왜 주인님을 이겨 먹으려고 해요?”

“매일 나만 네 말에 어쩔 줄 모르는 게 억울하니까 그렇지. 한 번 정도는 그냥 나한테 당해주면 안 돼?”

“음. 나도 그러고 싶은데요. 해리가 너무 어설퍼서 당해줄 수가 없어요.”

일부러 당해주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그럴만해야 할 것 아닌가. 어깨를 으쓱하는 나를 보며 해리의 입이 불만스럽게 튀어나왔다.

“넌 정말 나쁜 주인님이야.”

“그 나쁜 주인님이랑 연애하고 결혼하는 게 누구더라?”

“……나.”

“그러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많이 예뻐해 줄 건데.”

나는 그대로 해리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속으로 들어가 해리를 자극하자, 그의 단단한 손이 내 허리를 잡아당겼다.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입맞춤이 깊어졌다. 나는 더욱 예민한 곳을 찾아 해리의 안을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해리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렸다.

길어지는 입맞춤에 숨이 차올랐다. 가빠오는 숨을 고르기 위해 해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그가 다급하게 나를 다시 붙잡았다.

“어디가, 이브리아.”

“안 가요. 잠시 숨만…….”

“가지 마. 가면 안 돼. 아무 데도 못 가.”

‘아니, 그러니까 아무 데도 안 간다잖아.’

해리가 내 말과 함께 나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의 다급한 움직임에 어쩐지 나까지 조급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리는 한참이나 나를 붙잡고 입술을 괴롭혀대다가, 숨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쯤 나를 놓아주었다.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내 입술에 마지막으로 가볍게 입을 맞춘 해리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나도 많이 예뻐해 줄게, 이브리아. 평생 너만 예뻐할 거야.”

해리가 그렇게 말하며 외투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인간들은 평생을 함께할 상대에게 이런 걸 준다며?”

내용물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너한테 주려고. 이 반지.”

“해리가 준비한 거예요?”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을 보며 해리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응. 이런 건 남자가 준비하는 거랬는데. 내가 뭔가 잘못 알았어?”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할 말을 잃고 해리를 바라보았다. 워낙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고 얼렁뚱땅 결혼까지 하게 된 터라 해리에게 반지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악마라 이런 인간들의 관습을 잘 모를 테니 결혼식 날에는 내가 반지를 준비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 내가 이상한 반지를 골라왔을까 봐 그래? 열심히 고르기는 했는데…….”

해리가 걱정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그의 우려와 달리 상자 속에 든 반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정교하게 세공된 반지의 가운데 해리의 눈동자를 닮은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레드 다이아몬드야. 내가 가지고 있는 색을 네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해리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더욱 자신감을 잃었다.

“마음에 안 들어?”

“해리. 바보예요?”

멍청한 질문에 어이가 없어졌다.

“해리가 날 생각하면서 준비한 거잖아요. 이게 어떻게 마음에 안 들 수가 있어요.”

서서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그 미소에 저항하지 않고 씩 웃으며 해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직접 끼워줘요!”

내 말에 해리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불안이 사라졌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는 예쁜 미소가 걸렸다.

“응. 내가 끼워줄게!”

해리가 조심스럽게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운 뒤, 내 손등에 입술을 맞췄다.

“평생 날 이기면서 살아. 너한테라면 져도 좋아.”

“나 이제 엄청 오래 사는데. 후회 안 하겠어요?”

평범한 인간이라면 길어봐야 100년이다. 하지만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아 그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아가게 됐다. 그러니 내게 평생이라는 말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브리아. 바보야?”

이번에는 해리가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아. 후회하지 않을지는 네가 걱정해야지.”

“해리라면 걱정 없어요. 날 후회하게 하지 않을 거니까.”

“맞아. 절대 안 그럴 거야!”

해리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잊고 있던 사실이 머릿속에 번뜩했다.

“그러고 보니 악마들은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뭘 주고받아요?”

해리는 악마지만, 인간인 나를 배려해서 내 세계의 방식대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해주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해리 세계의 방식대로 맹세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들?”

하지만 내 질문을 받은 해리는 민망한 듯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악마들은 딱히 그런 걸 주고받지 않는데…….”

“그럼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어떡하는데요?”

“어떡하긴. 내킬 때마다 어디서든 뒹굴면서 사랑을 표현하지. 사실 파트너가 고정된 경우도 많지 않아서…….”

해리가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난 그런 적 없어! 그럴 마음이 든 상대가 없었거든.”

내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묘한 표정을 짓자 해리가 더욱 다급해져 변명을 쏟아냈다.

“나는 문란한 그 녀석들하고는 달라! 다들 내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할 정도로 욕구가 없었거든. 나한테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건 너 하나뿐이었어, 이브리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런 건 변명 안 해도 알아요.”

나는 픽 웃으며 해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이것 봐. 이러는데 어떻게 내가 그런 오해를 하겠어요.”

게다가 해리는 딴마음을 먹으면 그게 얼굴로 다 드러나는 편이라 날 속이는 대담한 짓도 못 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그럼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어?”

“그냥 내가 해리한테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요. 반지에 대한 보답은 뭘로 해야 하죠?”

“반지에 대한 보답?”

해리가 잠시 생각하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게 마음에 걸리면 악마 식으로 날 예뻐해 줘. 그거면 돼.”

“하지만 악마들은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다면서요.”

“응. 대신 내킬 때마다 어디서든 뒹굴며 사랑을 표현한다니까?”

“아.”

나는 해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

“응. 안 돼?”

“안 될 건 없죠. 대신 질문이 하나 있어요.”

“어…… 그 대답에 따라서 네 생각이 달라져?”

“네.”

“그럼 중요한 질문이네.”

긴장한 얼굴로 잠시 숨을 고르던 해리가 곧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준비됐어. 질문이 뭔데?”

“내 질문은 이거예요. 지금은 내킬 때인가요, 아닌가요?”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해리가 멍청하게 입을 떡 벌렸다. 나는 그런 해리를 위해 친절하게 다시 한번 질문을 반복해주었다.

“해리. 지금 내켜요, 안 내켜요?”

“어…… 그러니까……”

눈을 굴리며 내 눈치를 살피던 해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켜.”

확신 없이 흘러나온 말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난 뒤 더욱 명확해졌다.

“난 늘 내켜, 이브리아. 네가 이렇게 앞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기분이 들지 않겠어.”

거기까지 말한 해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네가 바라던 답이 아니었으면 미안해. 날 안 예뻐해 줘도 이해할 수 있어.”

“해리. 바보죠?”

익숙한 소리에 해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웃으며 해리의 손을 붙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어떻게 그게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나는 얼떨떨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해리를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래요.”

“……어?”

“나도 그렇다고요. 해리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안 내켜. 그러니까 지금도 그래요. 이 반지에 대한 보답, 제대로 할게요. 지금 당장.”

마침 드레스까지 벗어 던진 참이었다. 어려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씩 웃으며 해리를 붙잡고 그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리고 해리가 지금 안 내킨다고 해도 하자고 했을 거예요. 내가 그러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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