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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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는 것과 동시에 대마법사의 후손과 결혼할 거라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소문의 출처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는 신이 난 해리가 왕성 사람들에게 우리의 결혼 계획을 떠들고 다닌 것이 원인이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덕분에 쓸데없이 내 남편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귀족들의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베론 공작은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빠르게 나를 황제로 추대할 귀족들을 모았다. 왕세자와 1왕자, 양쪽 모두를 지지하지 않고 균형을 지키던 중립파를 중심으로 해서 옛 왕세자파와 옛 1왕자파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귀족들의 회합에서 새롭게 탄생할 나라가 왕국이 아닌 제국이어야 하며, 내가 왕이 아닌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고 긴 회합에서 의견을 모은 귀족들은 내게 그들의 주장이 담긴 청원을 올렸고, 나는 겸허하게 그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답변했다. 나는 대관식에서 정식으로 제국의 탄생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예정이었다.

수도 이전에 대한 논의 역시 순조로웠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귀족들의 반발이 컸지만, 리던과 카시안이 나서서 그들의 불만을 잠재워주었다. 자신들이 지지했던 왕자들이 내 편을 들고 나서자 귀족들은 금세 힘을 잃었다.

그렇게 수도를 에렐로 이전하는 것이 결정되자 북쪽에서 반가운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나의 드워프 친구, 라파쉬였다.

“이브! 내 친구! 정말 오랜만이네요! 남작은 이브리아가 아주 바쁘니 에렐에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만, 도저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요.”

라파쉬가 그녀답게 너스레를 떨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함께 술 창고를 털었던 내 친구가 황제가 된다니! 아마 내가 황제 친구를 가진 첫 드워프일 거예요. 이건 그걸 기념한 선물이죠.”

그녀는 잔뜩 들뜬 얼굴로 돌돌 말린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탁자 위에 말린 종이를 펼쳐보니 그 안에 섬세한 설계도가 담겨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싶어 라파쉬를 보니 그녀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답을 주었다.

“흠흠. 보다시피 설계도예요. 에렐이 수도가 되면, 거기에도 그럴듯한 성이 필요하잖아요. 높으신 분들은 다들 성에서 사니까요.”

한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니 에렐에도 그럴듯한 성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라파쉬가 나서서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라파쉬….”

감동해서 라파쉬를 바라보자 그녀가 과장스럽게 턱을 치켜들며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브리아의 성을 만들겠어요? 다른 드워프들도 건설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영지에 있는 마법사들도요. 임금을 줄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이건 선물이니까요!”

내가 임금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라파쉬가 선수를 쳤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라파쉬를 보며 결국 내가 두 손을 들었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에렐로 갈 수 있겠는데요?”

나는 에렐의 저택에서 지내며 에렐의 새 성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행정관들은 황제가 그런 저택에서 머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새 성이 지어진 뒤 에렐로 가시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이유도 확실했다. 에렐의 저택은 협소해 성의 인력이 모두 이주할 수 없는 데다 보안과 외부 침입에도 취약해 황제의 거처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관식 후에도 꼼짝없이 새 성이 지어질 때까지 지금의 수도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행정관들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건설이 1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드워프와 마법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건설 기간은 아주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마 한 달이면 뚝딱 성을 만들어낼걸요.”

“한 달이요?”

말도 안 되는 공사 기간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라파쉬가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그보다 더 빨리 만들어져야 할까요? 조금 서두른다면 더 당길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한 달도 충분해요. 다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리라뇨. 다들 이브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그래요. 이브 없는 에렐은 너무 허전하다고요! 또 나랑 같이 남작의 술 창고를 털어야 할 거 아니에요?”

라파쉬가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씩 웃었다.

“황제가 되면 그냥 남작에게 술 창고를 열라고 명령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마 남작은 소중한 빈티지를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겠지만, 성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함께 나눌 거라고 한다면 기꺼이 창고를 개방할 것이다.

“이브리아. 아직 뭘 모르네요.”

하지만 라파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내게 속삭였다.

“술 창고는 터는 게 핵심이에요. 몰래 먹는 술이 몇 배는 더 맛있는 법이거든요.”

“이런. 내가 그걸 몰랐네요.”

“괜찮아요. 이브는 아직 초심자여서 그런 거니까요. 에렐에서 함께 배워가면 돼요.”

“좋아요. 열심히 배울게요. 에렐에서.”

에렐에서라는 말을 강조하자 라파쉬의 얼굴에 미소가 깊이 패였다.

“그래요. 에렐에서. 멋진 성과 함께 이브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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