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3/156)

* * *

나는 열심히 공작을 말렸다. 하지만 쉽게 설득이 되지 않아 결국 내가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고 말았다.

‘그래. 왕이나 황제나. 어차피 다 똑같아.’

나는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왕이나 황제, 모두 한 나라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아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공작은 그렇게 하시라는 나의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해서 왕성을 나섰다. 그런 공작을 보며 남작도 질린 얼굴로 에렐을 향해 떠났다.

그렇게 한바탕 손님을 치러낸 뒤, 나는 사건 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두 왕자를 찾았다. 딱히 예고하지 않은 방문에 두 왕자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요즘 바쁜 거 아니었나?”

“바쁘죠. 왜 저한테 왕이 되려면 이런 귀찮은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으셨어요?”

“나도 몰랐으니까.”

내 원망에 리던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왕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과정이 있는 줄 알았겠어?”

“앞으로는 타인에게 왕위를 권할 때 이 부분에 대해 꼭 알려주시길 바랄게요.”

“아니,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권할 일이 없지. 그럼 반역이잖아.”

리던이 헛웃음을 흘리며 내게 자리를 권했다. 카시안의 맞은편 자리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카시안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자 리던이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었다.

“난 잠시 자료를 좀 찾아보고 올게. 30분 정도 걸릴 거야.”

카시안과 대화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던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평소의 나처럼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할 뿐이었다.

“원래는 당신을 왕으로 선택하려고 했어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카시안은 의외로 담백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서 왕위를 거부하셨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이라면 억지로 형님에게 왕을 맡기진 않으리라 생각했죠.”

“억울하지는 않아요? 갑자기 내가 자리를 뺏은 격이 됐는데.”

“글쎄요. 선택은 당신이 하는 거였는데, 그 선택이 달라졌다고 억울해하는 건 조금 우습죠.”

카시안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모든 것이 당연히 내 것이 되리라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빼앗긴 걸 되찾으려고 했지요. 애초에 그게 당연한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안 됐습니다. 오랫동안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여전히 당신 거였겠죠. 억울한 마음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다면 억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니까 그런 생각도 할 수 없는 거죠. 에렐에서 지내는 동안 당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당신이 어떤 일을 해냈는지 지켜봤으니까요.”

나는 리던에게만이 아니라, 카시안에게도 에렐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그냥 왕자들을 노예로 부릴 생각뿐이었는데.’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었다. 민망함에 괜히 헛기침을 하는 나를 보며 카시안이 물었다.

“왕이 되고 싶지 않다던 당신이 갑자기 왕이 되기로 결심한 건 그 남자 때문이죠? 대마법사의 후손으로 불리는 그 악마 말입니다.”

“아.”

카시안은 국왕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해리가 악마라는 사실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을 말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물론 내게는 카시안이 해리의 정체를 폭로했더라도 그것을 우스운 오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왕에게 그 정도 일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습하는 과정이 귀찮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카시안이 입을 다물어 줌으로써 그 귀찮은 과정을 피하게 해주었으니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신족이고, 나는 부정을 저지른 왕의 아들이니까요.”

카시안 역시 그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제레인트의 핏줄이 왕위를 잇는다면 건국왕의 유지를 받들어 그 악마를 해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이 왕위에 올라 새로운 왕조를 열 테니 악마는 안전하겠죠. 그 유지를 따를 자가 없으니까요. 당신은 이런 식으로 그 남자를 지키려고 한 겁니까?”

“뭐, 그런 생각도 조금 있었지만…….”

가장 큰 목적은 감히 내 사람을 건드린 국왕을 향한 복수였다.

“해리는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안전해요. 악마의 힘을 누가 이겨 내겠어요? 오히려 내 옆에 있어서 억누르고 있는 것들이 많죠.”

나와 계약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세상에서 마음껏 본능을 발휘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해리의 관계에서 참고 손해 보는 건 언제나 해리였다.

“억누르고 있는 게 확실합니까?”

카시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살폈다.

“당신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 건 에렐로 떠난 이후였죠. 그곳에서 그 악마를 만났다고 했고요. 그 악마가 힘을 써서 당신을 홀린 건 아닌가요?”

“진심이에요? 내가 악마에게 홀려서 과거의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고, 신의 축복까지 받는 신족이 되었다고요?”

“그건…….”

카시안이 민망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악마에게 홀렸다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세간의 상식인데, 해리와 만난 후 나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람이 되었다.

“악마는 걱정할 거 없어요. 엄밀히 말하면 악마가 날 홀린 게 아니라, 내가 악마를 홀려버린 것 같거든요.”

“당신이요?”

카시안이 의아한 듯 그렇게 묻는 것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리던이 돌아왔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잔뜩 뿔이 나 씩씩대는 해리가 서 있었다.

“이브리아.”

나는 무섭게 내 이름을 부르는 해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대관식 준비로 바빠져 해리와 자주 놀아주지 못하긴 했지만, 오늘은 밤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며 약속해 그를 달래놓은 상태였다. 갑자기 이렇게 씩씩대며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내가 어리둥절하게 해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가 쿵쿵거리며 요란하게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브리아. 너 결혼해?”

“아. 어떻게 알았어요?”

“시녀, 시종들이 다 그 소리만 떠들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몰라?”

나는 그제야 해리가 이토록 흥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도 아닌데, 벌써 내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네. 결혼해야죠. 행정관들이 대관식과 결혼식을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게 예산 절약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덕분에 준비할 거리가 두 배로 많아졌다. 결혼식 자체도 문제지만, 여왕의 남편이 되는 사람의 지위와 대우를 결정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다행히 여왕이 즉위한 적이 있어서 참고할 선례가 많아.’

그것마저 선례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돌아다닐 시간도 없이 행정관들에게 붙잡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결혼…….”

내 확답에 해리가 흔들리는 눈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거 안 하면 안 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결혼이 싫어요?”

“당연하지!”

해리의 대답에 카시안이 미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악마를 홀리셨다면서요? 그렇게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카시안의 눈을 피하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단호한 눈빛.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야 할 수 있었다.

‘어디서 또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왔거나, 혼자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해리가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왜요? 결혼이 왜 싫은데요?”

“어, 음, 결혼은 나쁜 거니까!”

“왜 나빠요?”

“그건…….”

내 질문에 해리가 눈을 굴리며 결혼이 나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너 말이야, 결혼하면 응? 자유는 끝이야! 결혼은 구속이고 감옥이라고!”

“그렇구나. 결혼은 구속이고 감옥이군요.”

내가 슬쩍 동조해주자 해리가 더욱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니까! 결혼하면 그때부터 피곤한 일만 많아져. 남편이란 놈들은 원래 손이 많이 가거든!”

“그래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결혼은 하지 말자. 응? 결혼 안 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얼마나 좋아? 자유! 자유롭게 사는 거야, 이브리아!”

해리가 내 팔을 잡아끌며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이 언제 끝나냐고, 빨리 나랑 놀아달라고 칭얼거릴 때의 그 눈빛이었다.

“저기, 해리.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해리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걸 꼭 확인해야만 하는 것인가 싶은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지금 했던 말들, 전부 내 결혼 상대가 해리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인 거예요?”

“뭐? 해리? 당연히 알지!”

해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눈빛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 해리라는 놈, 내가 소문을 들었는데 아주 쓰레기라고 들었…….”

신이 나서 ‘해리’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던 해리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해리라고?”

해리가 찜찜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네 남편 될 사람이 해리야? 나랑 이름이 똑같네?”

“왜요? 그 사람을 잘 안다면서요? 아주 쓰레기라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어, 음, 그게…….”

난처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던 해리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진실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잘 몰라…… 그냥 사람들이 네가 젊은 귀족들 중 하나랑 결혼할 거라고 그래서…… 매일 청혼서가 날아든다고…….”

매일 청혼서가 날아드는 건 사실이었다. 미혼의 여성이 왕위에 오르게 됐으니, 그 여자의 남편이 되면 자연스레 권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못해도 대공이요, 잘만 하면 여자를 대신해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왕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붓감이 되었다. 그리하여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귀족 남성들에게 부디 저와 결혼해주십사하는 청혼서를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 청혼이 어찌나 절절한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들과 연애라도 했던가 싶을 정도였다. 누가 내게 청혼서를 보냈다더라 하는 소문과 함께 몇몇의 이름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청혼서는 내 손을 거쳐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약삭빠르게 기회를 보고 청혼서를 던진 남자들과 결혼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쪽이 나았다.

“도대체 네 남편이 될 해리라는 놈은 어떤 놈이야? 내가 지금부터 알아볼게. 분명 하자가 있는 놈일 거야!”

하자라. 지나치게 눈치가 없는 점이 제 남편 될 사람의 가장 큰 하자가 아닐까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 남편이 될 해리라면 지금 여기에 있잖아요.”

내 시선을 똑바로 받은 해리가 서둘러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나와 카시안, 그리고 해리까지. 딱 세 사람뿐이었다. 잠시 침묵한 채 나와 카시안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해리의 시선이 결국 카시안 앞에서 멈췄다.

“혹시, 저 녀석 진짜 이름이 해리였어? 카시안은 가명이야?”

아니. 왜 생각이 또 그쪽으로 흐르지.

“……그럴 리가 있나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말도 안 되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왜 자기가 내 남편이 될 그 ‘해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 상대는 당연히 해리죠. 지금 내 눈앞에서 엉뚱한 사람이나 노려보고 있는 눈치 없는 악마요.”

“……어?”

내 말에 카시안을 노려보고 있던 해리의 고개가 뻣뻣하게 돌아왔다.

“……나? 나 너랑 결혼해? 정말로?”

해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되물었다. 얼떨떨한 얼굴을 보니 내 결혼 상대가 자신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듯했다.

“왜 내가 내 결혼식을 몰랐지?”

“그거야 내가 아직 말 안 했으니까요.”

군주의 옆이 비어있으면 좋지 않으니 대관식과 함께 결혼식도 치르자는 이야기만 나왔을 뿐,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확실하게 정해지면 말하려고 했는데, 해리가 벌써 소문을 들었을 줄은 몰랐다.

“……정말 내가 너랑 결혼을 한다고?”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 해리가 결혼을 그렇게 싫어하는 줄은 몰랐네요.”

내 말에 결혼의 나쁜 점을 줄줄이 쏟아냈던 조금 전의 자신을 떠올렸는지 해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 그건…….”

“뭐, 당사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카시안을 바라보았다.

“왕자님. 약혼녀 버리고 저랑 결혼하실래요? 제가 잘해드릴게요.”

대답은 카시안이 아닌 해리에게서 나왔다.

“안 돼! 나랑 해!”

해리가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가려 카시안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차단했다.

“왜요? 싫다면서요? 결혼은 구속이라며?”

“난 벌써 너한테 구속당한 상태니까 상관없어!”

“남편이란 놈들은 손이 많이 간다고도 했는데…….”

“난 혼자서도 잘해! 너 귀찮게 안 할 거야!”

자신이 했던 말이 금세 공격으로 돌아오자 해리가 안절부절못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눈이 가려져 있어 해리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당황해서 쩔쩔매고 있을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가리고 있는 해리의 손을 붙잡아 내리며 픽 웃음을 흘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 해리는 당황한 얼굴로 허둥대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도대체 날 어떤 사람으로 본 거예요? 내가 해리를 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남편이랑 애인이랑은 다른 거랬어.”

“누가요?”

“마담 루이제가.”

‘또 그 사람인가.’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하필 결혼을 앞둔 시점에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은 모양이었다.

“다들 남편이 있는데 애인을 만들더라고. 남편과는 의무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진짜 사랑하는 애인과는 정열적인…….”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해리의 입을 틀어막아 그의 입에서 쏟아지려는 민망한 말들을 차단했다.

“거기까지만 하죠.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알 것 같으니까.”

나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입을 틀어막은 손을 떼어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해리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브리아. 정말 나랑 결혼해줄 거야? 내가 네 남편이 되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난 그런 거 못 하는 줄 알았어. 내가 이브리아의 남편이 될 수도 있었구나.”

해리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손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럼 이브리아의 옆에는 나만 있는 거지? 내가 남편이 되고 나면 다른 애인 만드는 거 아니지?”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해리의 질문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난 해리 하나만으로도 벅차요. 남편도 애인도, 전부 해리가 해요.”

“그럼 내가 두 명분만큼 열심히 할게. 최선을 다할게!”

“음. 해리는 뭔가를 잘하려고 열심히 하면 꼭 사고를 치니까, 너무 최선을 다하지는 말아요.”

“응. 그럼 적당히 잘할게!”

나는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에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다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나만 쳐다보며 생글거리는 해리의 모습에 카시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당신이 악마를 홀렸다는 건 정말인 것 같네요.”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때마침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자료를 가져오겠다며 방을 나섰던 리던이 돌아온 것이다.

“어…….”

리던은 공간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를 읽고 난처하게 눈을 굴렸다.

“나 다시 나갈까?”

리던의 질문에 카시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도 같이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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