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리 유쾌하지 않은 국왕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오베론 저택으로 향했다. 떠나려는 우리를 발견한 왕실의 시종이 허겁지겁 달려와 왕성 내에 숙소를 마련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으나 생각해볼 것도 없이 거절했다.
‘수가 너무 빤히 보이잖아.’
국왕은 혹여 내가 건국제의 첫 번째 연설 전까지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길들이려고 한 것도 그런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해리가 날뛰어준 덕분에 일이 국왕의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말이야.’
상황은 명백했다. 국왕은 나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감시하며 통제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왕의 뜻에 따라 돌아가는 왕성은 그런 감시와 통제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알면서 얌전히 왕성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달리 머무를 곳이 없는 곳도 아니었다. 내게는 오베론 저택이라는 남 부럽지 않은 집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따져봐도 국왕의 호의를 가장한 감시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일행을 이끌고 오베론 저택에 도착하니 지난 성인식을 위해 집을 찾았던 때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왔구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가장 먼저 환영 인사를 건넨 사람 역시 아치볼드였다. 그의 뒤로 일행을 안내하고 시중을 들어줄 사용인들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성인식을 위해 수도를 찾았을 때보다 일행이 늘어난 만큼 늘어서 있는 사용인들의 수도 많아졌다.
“우와.”
이런 풍경을 처음 보는 서리기사단원들이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뭐 이런 거에 놀라고 그러냐? 촌스러운 시골 기사 티 좀 내지 마라.”
라이오넬은 지난 방문 때 한 번 이런 대접을 받아봤다며 다른 기사들에게 온갖 젠체를 해댔다. 기사들은 그런 라이오넬의 잘난 척이 얄미운지 눈을 흘기면서도 오베론 저택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긴장하는 기사들이 귀여워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아치볼드에게 다가섰다.
“피곤함을 느낄 만큼 그리 긴 여정은 아니었어요.”
피곤함은 오히려 왕성에 도착한 후 국왕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얻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마중 나오셨어요?”
지난번 방문 때는 대략적인 도착 시각을 미리 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왕성에서 국왕을 알현해야 하는 일정이 먼저였기 때문에, 도착 시각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베론 저택에는 따로 기별을 넣지 않았는데.’
아치볼드를 비롯한 사용인들은 마치 우리가 언제 도착할 줄 알고 있었다는 양 준비된 자세로 일행을 맞이했다.
“수도 안에서 오베론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아치볼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폐하와 요란한 만남을 마치고 왕성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왕성에도 사람을 심어 뒀어요?”
“뭐…… 그렇지 않은 집안이 드물걸?”
유력한 귀족 가문이라면 왕성 내에 눈과 귀를 심어두는 게 당연했다. 대개 집안의 추천을 받아 왕족을 모시는 시종이나 시녀가 된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고작 여동생이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내 말에 아치볼드가 심드렁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의 눈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말에 틀린 구석이 있구나. 정확히는 ‘여동생이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가 아니라 ‘딸이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를 물어본 거거든.”
“네?”
“내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사람을 움직이신 거라고. 고작 네 귀가 시간을 알기 위해서 말이야.”
아치볼드가 한숨을 내쉬며 제 뒤쪽을 힐끗거렸다.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멀리서 오베론 공작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부터 도착시간을 제대로 알아야 마중 나갈 게 아니냐며 닦달을 하셨다. 그러셨으면서 아닌 척 저렇게 여유롭게 걸어오시는 걸 봐라.”
아치볼드가 쯧-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서는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싶으실 거다.”
“아버지께서요? 설마요.”
“그래. 네가 이러고, 아버지께서 저러시니 내 속이 터지지.”
아치볼드가 나와 공작을 번갈아 보며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치볼드의 한숨이 허공에 완전히 흩어졌을 무렵,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공작의 발이 드디어 내 앞에 당도했다.
“왔구나.”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닦달을 해댔다는 사람답지 않게 간결한 인사였다. 얼굴에도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것이 그가 누군가를 환영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일행이 전보다 늘었구나.”
“네. 인세티아 남작이 호위를 줄일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리되었어요.”
“그의 판단은 믿는 게 좋다. 통찰력이 좋은 사람이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내 대답에 공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의 면면을 살폈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얼굴로 천천히 일행을 살피던 공작의 시선이 해리에게서 멈춰 섰다. 지난번 성인식 때는 서리기사단의 일원으로 저택을 찾았던 해리가 이제는 대마법사의 후손이 되어 찾아왔다. 오베론 공작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그대가…”
하지만 뒤이어 공작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이브리아의 연인이라고?”
그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건 해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 그, 네?”
당황한 해리가 버벅거리자 오베론 공작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대마법사의 후손이라더니 대답도 제대로 못 하는 반편이었나.”
공작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나를 돌아보았다.
“상대를 제대로 고르거라, 이브리아. 어디 이런 반편이를…… 멀쩡한 건 겉가죽뿐인 것 같구나.”
공작의 눈이 다시 해리를 훑었다. 한심함과 못마땅함이 가득 담긴 눈빛에 해리가 움찔했다. 인간에게 절대 기세로 밀리지 않는 해리였다. 국왕 앞에서도 잘도 제 할 말을 하더니, 오베론 공작에게는 왜 이렇게 허둥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공작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고, 대마법사의 후손은 쩔쩔맸다. 이 불편한 공기 속에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로이가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브.”
조용히 나를 부른 로이가 그리 작지 않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사람, 이브하고 똑같이 생겼어. 그래서 아빠도 맥을 못 추나 봐.”
그리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으니 로이의 말은 그대로 공작과 아치볼드의 귀까지 전달되었다.
“아빠?”
“아빠?”
아치볼드와 공작이 어울리지 않는 놀란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대마법사의 후손에게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어? 도대체 나이가 몇이길래?”
“이브리아. 너, 반편이인 것도 모자라서 애까지 딸린 놈과 교제하고 있는 거냐?”
해명을 바라는 두 사람의 눈이 내게 꽂혔다.
“아뇨. 그게 아니라, 상황이 조금 복잡한데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로이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얘 이름은 로이예요. 보는 눈이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하는 게 좋겠어요.”
로이는 흑룡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곧 성체가 되어 동부에서 만난 흑룡처럼 대단해질 것이다. 그런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내 소문이 더 요란해진다. 아치볼드와 공작, 두 사람에게만 조용히 로이의 정체를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치볼드와 공작 모두 내 제안에 동의했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이든 사용인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왜 아빠가 아니야?”
하지만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로이가 다시 한번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브는 내 엄마고, 해리는 엄마랑 아이를 만들 거잖아. 그럼 걔는 내 동생이고, 해리는 내 동생 아빠니까 내 아빠도 되는 거 아냐?”
로이의 폭탄 발언에 아치볼드가 눈을 크게 뜨며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와. 놀랍네. 사고를 친 쪽이 내 동생이었다니.”
흥미롭게 나와 로이를 바라보는 아치볼드와 달리 공작은 사색이 되어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누가…… 언제…….”
충격을 받았는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공작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오베론 공작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기세였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죠. 당장 오해를 풀어야겠으니까.”
* * *
나는 두 사람에게 동부의 흑룡을 처리하며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로이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내가 흑룡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어 사정을 설명하기 어렵지 않았다.
“네가 동부의 흑룡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오베론 공작이 평소처럼 근엄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이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았던 조금 전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태도였다.
“외숙께서 이야기해주셨나요?”
공작부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샤 후작과는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뒤에서 정보 교환 정도는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
하지만 공작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뭔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치볼드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외숙께서도 이야기해주셨지만, 우린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는데요?”
“어떻게 알았겠니.”
아치볼드가 어깨를 으쓱하고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볍게 두드렸다.
“때로는 음유시인들의 입을 타고 퍼지는 노래가 군대의 전령새보다 빠르단다, 내 동생아.”
“……음유시인이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두 분께서도 들으신 건가요?”
“뭘? 네 영웅담을 노래하는 그 대서사시를?”
아치볼드가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웃었다.
“어디 우리 둘뿐이냐. 수도의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모두 네 영웅담을 듣고 있는데. 요즘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전부 네 이야기를 할 정도다.”
“……그 정도인가요.”
“그렇다니까. 게다가 우리 저택에는 그 영웅담을 너어어어무 좋아하는 분이 계셔서 말이다.”
아치볼드의 시선이 슬쩍 오베론 공작을 향했다.
“음유시인을 고용해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들으시니. 아주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덕분에 내가 가사까지 다 외웠다는 거 아니냐. 한 번 들어보겠어?”
아치볼드가 당장이라도 노래를 부를 기세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사양할게요. 음유시인도 제발 해고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침저녁으로 그 노래를 듣고 싶진 않으니까요.”
내 말에 아치볼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베론 공작을 바라보았다.
“들으셨죠, 아버지?”
“흠.”
공작이 헛기침을 하며 아치볼드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아치볼드의 표정은 밝았다.
“고맙구나, 동생아. 네 덕분에 내가 이제 그 노래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제게 빚을 지신 거네요, 오라버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아치볼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좋지 않은 기시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설마 이번에도 그 빚을 갚기 위해 네게 내 하루를 줘야 하는 거냐?”
“오라버니의 하루로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간단한가요.”
“또 뭔가를 팔 생각이구나.”
“네. 새로운 발명품이 있거든요.”
내 말에 아치볼드가 조금 흥미가 생긴 듯 눈을 반짝였다.
“그래? 이번엔 뭘 가지고 파티를 순회해줄까?”
“이번에 가야 할 곳은 파티장이 아니에요.”
“그럼?”
“저와 함께 서리기사단들이 훈련하는 연무장을 방문해주세요.”
수도에는 에렐에 배치된 제5기사단을 제외한 1, 2, 3, 4기사단이 각각 오베론 저택의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었다. 각각의 기사단은 단장을 중심으로 독립된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서리기사단의 연무장이라면 너 혼자 가도 되잖아?”
“서리기사단은 절 싫어하잖아요. 제가 혼자 가면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 같아요.”
수도의 서리기사단은 어중이떠중이만 모인 제5기사단과는 달랐다. 모두 출신이며 실력이 출중한 덕에 왕립기사단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자부심이 강했다. 오베론을 수호하는 검으로서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난 수도에 지낼 때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오베론의 이름에 먹칠을 했지.’
당연히 기사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집안에 소속된 기사들은 으레 그 집안의 아가씨를 제 레이디로 모시는 법인데, 서리기사단의 누구도 나를 자신의 레이디로 삼게 해달라 청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치볼드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네가 성검을 뽑기 전 이야기지. 지금은 다들 널 보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걸.”
“설마요.”
“정말이라니까.”
아치볼드가 혀를 차며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네가 걱정이라면 기꺼이 내 하루를 내어 주지. 물론 연무장에 도착하면 그게 전부 쓸모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말이야.”
“네 기사단을 모두 방문하려면 오후 일정을 전부 비워두셔야 할 거예요.”
“성검의 주인께서 하시는 명인데 제가 어찌 거절을.”
아치볼드가 과장스럽게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터트리니 옆에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베론 공작의 눈빛이었다.
‘아차.’
연무장을 방문하려는 데 정작 공작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의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께 미리 허락을 구했어야 했는데.”
“……아니다. 오베론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 기사들을 만날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공작의 차가운 눈빛은 풀릴 줄 몰랐다.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앞에 두고 아치볼드는 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 같이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죠.”
“……아니다.”
“아니긴요. 나중에 저만 이브리아와 시간을 보냈다며 절 괴롭히실 거잖아요.”
“……아니라니까.”
“그렇게 점잔 떨다간 이브리아와 산책 한 번 못 하실 겁니다, 아버지.”
아치볼드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무슨 생각이냐. 기사단을 찾아가겠다니.”
“음. 그게, 제가 이번에 포션을 개발했거든요.”
“포션?”
아치볼드는 물론이고 공작까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에렐에서 가져온 포션 시제품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웨어울프의 피로 만들었어요.”
“그래. 네가 웨어울프를 제압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
내 말에 아치볼드는 돌아가는 사정을 알 만하다는 듯 포션을 바라보면서도 미심쩍은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웨어울프의 피? 그걸로 포션을 만들어도 되는 건가?”
“피를 정화한 뒤에 각종 원료를 배합했어요. 신전에서 파는 것보다 효과는 약하지만 웬만한 외상은 다 치료할 수 있죠.”
“신전에서 파는 포션과 비교할 정도란 말이야?”
아치볼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포션을 바라보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시장에서 신전의 포션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들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
웨어울프의 피를 얻지 못했더라면, 아스페리츠 덕분에 성분 분석을 간단하게 끝낼 수 없었더라면. 나 역시도 이렇게 빨리 비슷한 포션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포션의 효과는 내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아치볼드가 이제야 내 의도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기사단원들에게 포션을 소개할 생각이구나.”
“네. 매일 훈련하고, 때로는 전투에 나서는 기사들만큼 이 포션이 필요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기사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산다. 그것이 검을 든 자들의 숙명이었다.
‘포션을 구입해 줄 가장 큰 고객이라 이거지.’
부상을 당하면 당연히 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신전의 포션은 너무 비싸고 효능이 넘쳐 죽음을 넘나드는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다.
대개는 약초로 만든 연고나 시중에 돌아다니는 저렴한 포션을 쓴다. 모두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지만 그만큼 효과가 떨어져서 얕게 베인 상처에도 최소 일주일은 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에렐의 포션을 쓴다면 그런 상처쯤은 5분 안에 나을 수 있었다.
‘한번 체험해보면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을걸?’
내일은 기사들에게 포션을 무료로 나눠줄 생각이었다. 실제 판매될 포션보다 작은 병에 딱 한 번 쓸 수 있는 양을 소분했으니 체험용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이걸 쓴 기사들이 다른 기사들에게 소문을 내주면 엄청난 홍보가 될 거야.’
판매하는 쪽에서 열심히 포션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 이용자들의 후기가 더 와닿는 법이었다.
‘나도 쇼핑할 때는 다른 사람의 후기를 열심히 찾아봤었다고.’
유력한 가문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기사단을 가지고 있었다. 왕실에 몸담고 있는 기사들도 그 수가 엄청나다.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결국 검을 든 자로서 유대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한 집단만 제대로 잡으면 나머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거야.’
돈을 벌 생각에 신이 나 미소를 짓자 아치볼드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어디 가서 그런 얼굴 하지 마라, 동생아. 꼭 작당을 모의하는 악당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