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10/156)

* * *

나는 엠마를 재촉해 재빨리 준비를 마쳤다. 덕분에 평소보다 어설픈 구석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대단한 파티를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샤 후작님.”

나는 응접실에 들어서 이샤 후작에게 인사했다. 이샤 후작은 초상화로만 봤던 이브리아의 어머니와 상당히 인상이 비슷한 남자였다.

‘돌아가신 공작부인과는 나이 차가 꽤 있다고 하더니.’

외삼촌보다는 사촌오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후작과 나의 실제 나이 차이를 계산하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닐 터였다.

“오랜만이구나, 이브리아.”

화사한 금발 머리에 살짝 처진 갈색 눈을 한 이샤 후작은 인상만큼이나 서글서글한 태도로 내게 미소지었다.

“아주 어릴 적에 본 뒤로 처음이지.”

벨모른 백작을 만났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인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샤 후작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고, 벨모른 백작은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이샤 후작가는 몇 대 전 정치 노선에 대한 견해 차이로 왕과 크게 싸운 이후 중앙 정치를 등졌다. 이후 지방 영지 운영에 몰두해 사교 시즌에도 왕도를 찾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 이샤 후작가와 중앙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오베론 공작가가 사돈의 인연을 맺은 건 지방 영지의 위치 덕분이었다. 이샤는 동부에서도 북쪽에, 오베론은 북부에서도 동쪽에 치우친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오래전부터 집안끼리의 교류가 있었다.

“네가 벌써 이렇게 많이 자랐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예전에 봤을 땐 키가 이만했던가…….”

이샤 후작이 손으로 제 허리 아래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지? 너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예전 소문과 요즘 소문 중 어떤 걸 들으셨나요?”

예전 소문이라면 카시안을 쫓아다니느라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닌다는 소문일 것이오, 요즘 소문이라면 음유시인들이 부르고 다닌다는 영웅 서사시에 대한 소문일 것이다.

‘차라리 옛날 소문이어라.’

하지만 이샤 후작은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둘 다 들었지. 둘 모두 모르기 힘든 소문 아니냐.”

“……모두 잊어주세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혹시 동부의 농민들 문제로 찾아오신 건가요?”

“……그래. 결국은 그 문제 때문이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낼 줄은 몰랐던지 귀족적인 이샤 후작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귀족식의 장황한 서론은 못 견디겠는걸.’

나는 이샤 후작의 놀란 눈을 애써 모른 척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에렐에 온 농민들 중에 이샤 후작령에서 온 자들은 없던 데요.”

“그래. 하지만 이샤는 동부의 맹주니까 말이다. 마침 그 후작은 에렐 영주의 외숙이기도 하고.”

결국, 다른 영주들에게 등을 떠밀려 왔다는 소리였다.

“제가 농민들을 돌려보내길 바라세요?”

“어려운 질문이구나.”

이샤 후작이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네가 농민들을 돌려보낸다면 동부의 귀족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너를 향한 민심은 나빠지겠지.”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그 반대가 되겠고요.”

“그렇겠지.”

“음. 귀족들과 꼭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나는 처음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다른 사람 앞이라면 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샤 후작은 외숙인 데다 내게 호의가 있는 듯하니 진솔한 상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어차피 각 영지는 독립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귀족들과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서 당장 내게 돌아올 손해는 없었다.

‘이제 에렐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부유한 영지인걸.’

청요석을 팔아 이미 부를 쌓았고, 엘프들이 농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식량도 걱정할 게 없다. 와이번이 지키고 있으니 영지의 안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온천 리조트가 운영되고, 회복 포션을 개발해 팔고, 수제 맥주까지 만들게 되면…….’

에렐은 충분히 왕국 속의 작은 왕국처럼 독립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돌려보내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거냐?”

“아직 결정을 내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쪽에 더 마음이 기운 것은 사실입니다.”

귀족들의 입장보다는 평민의 사정에 더 공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부의 세금이 너무 높잖아요. 듣자 하니 반 이상을 세금으로 떼어 간다면서요.”

노동자로 일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세금 이야기를 하니 속에서부터 울컥했다. 나라가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은 세금을 가져가냐!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세금에 이를 갈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세금을 거둬들이는 처지가 되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반 넘게 떼어 가는 건 같은 징수자의 입장에서 봐도 문제가 있었다.

“다른 영지에서는 이주를 희망하는 농민들이 없는데, 동부에서만 이렇게 많은 농민들이 뛰쳐 나왔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 세금이 높은 건 사실이지. 이샤에서 이주 희망자가 없는 것도 우리가 유일하게 동부에서 2할의 세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샤 후작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부의 세금이 높은 이유는 따로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으면 세금이 5할을 훌쩍 넘을 수 있죠?”

나는 다소 삐딱한 심정으로 이샤 후작의 말을 기다렸다.

“이브리아. 동부의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니?”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거, 판타지 소설에서 엄청나게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잖아.’

단단한 비늘에 거대한 날개. 외형은 와이번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 단순히 힘뿐만 아니라 마법에도 능하므로 인간계에서는 적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런 일반론이 전부였다. 왕국의 동부에 어떤 드래곤이 살고 있는지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동부의 드래곤이라면…….”

내가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자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유피테르가 설명을 시작했다.

[동부에는 흑룡의 둥지가 있습니다.]

[흑룡이요?]

[예. 검은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드래곤들의 성격은 아십니까?]

[어…… 포악한가요?]

[포악하죠. 욕심도 많고요. 특히 반짝이는 금은보화를 좋아합니다.]

설명이 딱 악덕 영주 같았다.

[그래서 흑룡의 둥지에도 금은보화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보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매년 공물을 요구하고 있죠.]

나는 유피테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이샤 후작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설명이 쉽겠구나. 동부의 세금이 높은 건 흑룡에게 바칠 공물을 준비하기 위해서란다.”

“그럼 이샤 후작령만 세금이 낮은 이유는요?”

내 질문에 이샤 후작이 씩 웃었다. 그 미소에 자부심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

“우리 영지는 축복을 받았지.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샤가 왕실에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가진 부유한 자원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그 자원이 다이아몬드일 줄은 몰랐네.’

다이아몬드는 누가 뭐래도 가장 값비싼 보석이었다. 아름답고 생산량도 적다. 아마 이샤 후작가가 밥벌이를 걱정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이샤가 가진 보물을 알게 되니 여유로운 후작의 얼굴도 다르게 보였다.

‘허허실실 웃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게 진짜 여유에서 나오는 태평함이었구나.’

역시 사람은 뭐든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요.”

이샤 후작은 농민들을 돌려보내라고 주장하는 일에 미적지근했다. 그렇다면 다른 귀족들에게 등 떠밀려서 에렐까지 오게 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혹시 외숙께서 직접 여기까지, 급하게 달려오신 이유가 설마…….”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릿속에서 검은 비늘을 하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드래곤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내 말에 이샤 후작이 더욱 민망한 표정이 되어 볼을 긁적였다.

“그래. 농민들이 견디다 못해 이탈까지 하게 됐으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게 동부 귀족들의 생각이다.”

역시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샤 후작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서글서글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동부 귀족 연합은 성검의 주인에게 드래곤 퇴치를 의뢰하고자 한다.”

멍하니 그걸 듣고 있는 내 심정은, 뭐, 그냥 이랬다.

‘또냐.’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또 이런 흐름이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 * *

이샤 후작과의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니 인세티아 남작이 내 방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이샤 후작이 나눈 대화의 내용이 궁금해 아직까지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역시 농민들의 귀환 문제를 항의하기 위해 오셨답니까?”

남작이 힘없이 걸어오는 내게 의자를 빼주며 물었다. 원래는 시종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지만, 나도 남작도 이런 일에 익숙해서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남작.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요?”

나는 남작이 빼준 의자에 앉아 기운 없이 늘어졌다. 내가 들어도 애늙은이 같은 소리에 남작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들으면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인 줄 알겠습니다.”

“그래요, 남작. 난 이제 겨우 열여덟이죠. 갓 성인이 된 핏덩이니까 그런 소리를 할 나이가 아니에요. 하지만 생각해봐요.”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항의했다.

“삶의 밀도로 따지면, 내 삶이 여든 먹은 노인보다 더 촘촘한 것 같지 않아요?”

누군가는 평생 성검 하나만 뽑아도 삶의 여한이 없다고 할 텐데. 누군가는 살면서 정령 한 번 만나보면 소원이 없다고 할 텐데.

‘난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드래곤을 때려잡으라니…….”

“드래곤이요?”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에 남작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후작께서 그 흑룡을 없애달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 설마예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남작에게 물었다.

“동부에 흑룡의 둥지가 있다면서요? 걔가 매년 공물을 요구해서 동부의 사정이 좋지 않고요. 동부의 세금이 높은 이유도 그 흑룡 때문이라던데.”

“맞습니다. 왕국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켰다고 전해지는 영물이지요. 누군가는 대륙의 시작부터 흑룡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륙의 시작부터요?”

누구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이가 지긋하다는 소리였다.

‘아니. 살만큼 사신 분이 아직도 보석 욕심을 못 버려서 한참 어리고 약한 인간에게 공갈을 놔?’

죽고 나면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전부 여기에 놓고 돌아가야 할 텐데.

‘주책이네. 주책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동부의 요청을 들어주실 겁니까?”

드래곤의 욕심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내게 인세티아 남작이 물었다.

“그거야, 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만약 이샤 후작이 도와주지 않으면 에렐을 위협하겠다고 협박을 했다면 시원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에렐은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는 영지였다.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군사력도 강하며, 착실하게 부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에 호소하며 부탁을 하셨지.’

그렇지 않아도 서글서글한 얼굴을 한 사람이 울상이 되어서 부탁하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샤 후작 개인의 영달을 위한 부탁도 아니었다. 그는 동부 전체가 흑룡 하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성검의 주인이자 대마법사의 주군인 나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악역 얼굴만 위력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착한 얼굴에도 상당한 위력이 있었다.

‘물고기들이 캐서린의 착한 얼굴에 왜 넘어갔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나서는 걸로 그 많은 사람이 편해진다고 설득하잖아요. 그걸 거절하는 건 좀…….”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라.’

인세티아 남작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흑룡입니다. 인간계 최강의 존재지요. 아무리 성검과 대마법사님이 있다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아직 확답은 안 줬어요.”

먼저 해리, 유피테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아스페리츠도 도와주려나?’

만약 그렇다면 흑룡을 상대하는 게 좀 더 쉬워질 것이다.

“우선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이샤 후작께서 에렐에 머무르실 거예요.”

“……매일같이 손님이 늘어나기만 하는군요.”

내가 하는 일은 영지 운영의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를 실행하는 세부 계획이나 저택의 살림 같은 건 전부 인세티아 남작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조용하던 저택이 어쩌다 이렇게 북적이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작의 말에 나는 처음 에렐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에렐의 저택은 조용했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겨울에 찾아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에렐은…….’

훨씬 활기가 넘쳤다. 그게 단순히 계절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참. 포션 제조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에렐에서 오래 전부터 포션을 제조하고 판매하던 장인이 하나 있어 고용했습니다. 성분과 비율을 모두 알려줬으니 조만간 시제품이 나올 겁니다.”

외부로 눈을 돌리면 더 유명한 장인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령왕이 분석해 준 신전의 포션 배합 비율은 아주 소중한 재산이거든.’

“아무래도 포션 개발보다는 온천 개발 사업 쪽이 먼저 완성될 것 같습니다.”

“설마 케이블카가 벌써 완성됐어요?”

내가 그리고, 메이슨이 다듬은 케이블카의 설계도를 건넨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건설에 대한 나의 상식으로는 그 거대한 케이블카가 완성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인세티아 남작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쉬가 잔뜩 신이 나서 힘을 냈거든요. 사람을 태우는 원통의 제작 속도가 아주 빨랐습니다.”

“라파쉬는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걸 아주 좋아하니까요.”

“예. 그리고 케이블카를 지지할 기둥과 철끈 시공에는 마법의 힘을 빌렸습니다. 마법을 쓰는 순간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죠.”

“마법이요?”

‘그렇구나. 여기는 마법이 있지.’

현대적인 방식의 공사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뭐, 이런 공사에 마법사들을 동원하는 건 드문 일이지요. 비용 문제가 크니까요.”

남작은 나의 놀라움이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죠. 마법은 비싼 힘이니까요.”

“다행히 에렐에는 협회에서 파견 나오신 마법사님이 셋이나 계셔서요.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럴드는 나처럼 마력이 적은 편이라 마법 세공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주로 그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고마운 일이네요. 사실 파견 업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마법사들이 에렐에 온 이유는 마도구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그 외의 업무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 우리 쪽에서도 강요할 명분은 없었다.

“모르셨습니까? 그분들도 영주님과 에렐을 좋아합니다.”

“나를요? 왜요?”

마법사의 입장에서 나는 그들을 협회에서 데려와 에렐에 묶어 두고 있는 악덕 영주 아닌가.

“글쎄요.”

내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이고 있으니 인세티아 남작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음유시인을 통해서 영주님의 영웅 대서사시라도 들은 게 아닐까요?”

‘또냐. 또 그 노래냐.’

썩어 들어가는 내 얼굴을 보며 인세티아 남작이 드물게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내일 쯤 케이블카 시험 운행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빨리 준비가 되겠어요? 안전 점검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냥 케이블카만 돌려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 사람이 타야 하니 안전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라파쉬와 함께 시험 가동을 해봤습니다. 문제는 없었고요.”

인세티아 남작은 그 부분 역시 생각하고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동부의 맹주이신 이샤 후작도 계시니, 그분과 함께 케이블카에 타면 좋은 홍보가 되지 않겠습니까.”

“두 왕자님에다 재상님까지 함께 탄다면 더 좋겠죠.”

“그렇습니다.”

남작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역시 우리는 이런 쪽에서 죽이 잘 맞는다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