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와 인세티아 남작은 그의 집무실에서 간단한 논의를 시작했다.
“일단 보는 벨모른의 자금으로 건설하기로 했어요.”
“예? 벨모른의 자금으로요?”
인세티아 남작이 거기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서 되물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마침 그쪽에서 사고를 친 게 조금 있어서, 그걸 넘어가 주는 대신 보 건설 비용을 대라고 했죠.”
나는 뒤이어 벨모른 백작이 저지른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양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부터 시작해 벨모른 백작이 정령들로부터 신비의 돌을 훔친 것, 웨어울프들이 분노한 정령을 피해 벨모른으로 이동한 것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남작이 이해가 된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딱 벨모른 백작이 벌일 만한 일이로군요.”
“그러니까요. 남작이 그 자를 박하게 평가한 이유를 알겠더라니까요.”
그가 되먹지 못한 인사라는 건 시작부터 반말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사적 친분을 내세울 때 알아봤다.
‘여러모로 믿을만한 자가 아냐.’
“그래서 온전히 그쪽에 공사를 맡겨둘 수는 없을 것 같고, 우리 쪽에서 감독관 역할을 할 사람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감독관은 남작이 선발하는 게 어때요? 나보다 에렐 사람들을 더 잘 아니까요.”
“그것 역시 훌륭한 생각이시군요.”
남작이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베넘 쪽에도 사람을 보내야 해요. 아주 뛰어난 상인으로.”
“베넘이라면 웨어울프들의 유배지 아닙니까? 그곳에는 왜…….”
“그들과 거래를 하기로 했거든요. 웨어울프들의 피와 에렐의 상품을 교환하는 거죠.”
“……웨어울프의 피요?”
남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듣기론 신전에서 판매하는 포션이 그렇게 비싸고 희귀하다면서요? 그 원료에 트롤의 피가 들어가고요.”
트롤의 피는 왕실의 것. 왕실은 트롤의 피를 신전에 무상 공급하는 대신 그들로부터 일정량의 포션을 받고 있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서만 포션을 구할 수 있었다.
‘엄청 비싸다니까 평민들은 꿈도 못 꾸겠네.’
내가 생각하던 신전과는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보통 신전이라고 하면 평범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곳 아냐?’
하지만 유피테르에게 전해 들은 신전은 권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포션이 그렇게 비싸고 희귀해진 건 트롤의 피를 함부로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걸 빼돌려서 제조하는 자들도 있지만, 신전에서 만든 것만큼의 효과는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트롤의 피가 아니라 웨어울프의 피로 신전과 같은 효과의 포션을 만들어내겠다는 겁니까?”
남작이 입을 떡 벌렸다.
“네. 트롤이나 웨어울프나 재생력이 뛰어나긴 마찬가지잖아요.”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그렇겠지만…….”
남작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포션이 곧 신전의 권력이라는 건 아시죠? 우리가 비슷한 걸 만들어낸다면, 그건 신전과 척을 진다는 소리입니다.”
리던도 신전과 척을 지는 건 좋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렇겠죠. 하지만 거기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라면서요?”
“그렇지요.”
“그럼 문제없어요.”
‘내가 걔들 주인이랑 더 친하거든.’
내게 꽃길을 깔아주겠다고 장담했던 태양신이니, 만약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가요.”
인세티아 남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을 모시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제 모든 신뢰는 드렸습니다. 뜻에 따르지요.”
“그렇게 거창한 다짐은 필요 없어요.”
나는 질색해서 손을 내저었다. 이렇게 무거운 신뢰는 원하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이상하다 싶으면 뒤통수 때리고 기절시킨 뒤에 도망쳐도 돼요. 진심이에요.”
나도 나를 못 믿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신뢰를 요구할 수 있겠나.
“예?”
진지한 나의 조언에 인세티아 남작이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늘 뒤통수를 조심하셔야겠군요, 영주님.”
“그럼요. 늘 뒤를 신경 쓰고 있죠.”
내 말에 남작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상인도 보내겠습니다. 물론 유능한 자로요.”
한참 만에 겨우 웃음을 수습한 남작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신전의 포션을 구하고 싶어요.”
내 말에 남작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신전의 포션, 말입니까?”
“왜요? 어려운가요?”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지요.”
“어떤 의미에서요?”
“금전적인 의미에서요.”
포션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하지만 남작의 반응을 보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값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그게 얼마인데요?”
내 질문에 남작이 제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렇게 작은 병에 청요석 1000개를 줘야 합니다.”
“……천 개요?!”
나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청요석 한 개가…… 어…….”
열심히 셈을 해보려고 했지만 엄청난 액수에 머릿속이 마비되었다.
“죽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포션이니까요. 그렇게 비싼 게 당연하지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게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거였어요?”
유피테르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과장된 수사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제한은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고 30초 안에 써야만 효과가 있죠.”
“30초라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는 소리였다.
포션이 여러 개 있다면, 심장을 여러 개 달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쌀 만하네요, 그 포션.”
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청요석 1000개의 값을 들여서라도 포션을 구하려고 할 것이다.
‘아무리 막대한 부를 가졌더라도 죽으면 끝이니까.’
“아무도 포션을 만드는 원리를 모릅니다. 트롤의 피가 들어간다는 건 알려졌지만, 그 외에는 모두 미지수지요.”
“역시 연구가 필요하겠네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 3개를 폈다.
“포션을 3개 구해줘요.”
포션을 분석하고 연구하려면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청요석 3천 개의 비용이 들겠지만, 포션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그 정도의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의 자금은 충분하죠?”
“예. 저희도 이제 예전처럼 가난한 영지가 아니니까요.”
인세티아 남작이 뿌듯한 얼굴로 가슴을 폈다.
‘겨울에 불도 못 피워서 덜덜 떨던 영지였는데.’
이제는 포션 3개를 시원하게 살 수 있을 만큼 영지가 부유해졌다.
‘격세지감이라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포션을 구하면 곧장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어떨까요? 많은 일들을 겪으셨으니.”
“그러게요. 한바탕 몰아쳤더니 쓰러질 것 같아요.”
나는 의자에 늘어지며 길게 하품했다.
“누가 날 안고 방까지 옮겨줬으면 좋겠네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군요.”
인세티아 남작이 픽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해리가 지루한 얼굴로 창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해리는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죠?”
“처음부터인데…… 전혀 모르셨습니까?”
“네.”
‘이 저질 몸은 체력이 없는 걸로도 모자라서 둔하기까지 하네.’
나는 이 몸의 쓸모없음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해리에게 손을 뻗었다.
“해리.”
이름을 부르자 해리가 기다렸다는 듯 창틀에서 내려와 나를 안아 올렸다.
“그럼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인세티아 남작 역시 놀라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 우리를 배웅했다. 해리는 남작에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고는 그대로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다들 왜 이렇게 익숙한 거지.’
나는 해리에게 응석을 부리고, 해리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주고, 인세티아 남작은 그걸 자연스럽게 지켜본다.
‘원래 응석을 부리는 건 해리 쪽 아니었나?’
언제부턴가 묘하게 역할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누구한테 응석을 부릴 날이 올 줄 몰랐는데.’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돌봐주고 수습하는 쪽이었다. 무역 회사에 다닐 때도 사고 수습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런 일에 익숙했다.
‘하지만 해리가 너무 다 받아주니까…….’
자연스럽게 경계가 풀리고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나는 민망해져 입술을 비죽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방으로 향하는 회랑은 고요했다. 보름이 지나 밝기가 조금 줄어든 달만이 해리의 얼굴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존재가 생긴 건 처음이야.’
나는 따뜻한 해리의 품으로 파고들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편안한 상대의 품에 안기자, 해리의 침대에 누웠을 때처럼 금세 잠이 쏟아졌다.
“해리. 나 피곤해요.”
마음먹고 응석을 부리자 해리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주었다.
“내가 재워줄까?”
“거짓말. 재워준다고 해놓고 저번처럼 나쁜 짓 하려고 그러죠?”
“아냐! 나는 너한테 나쁜 짓 안 해!”
내 말에 해리가 펄쩍 뛰었다.
“아니, 사심은 조금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난 너한테 나쁜 짓 절대 안 해.”
“그래요? 난 해리면 뭘 해도 괜찮은데. 안 한다니까 됐어요.”
내 말에 해리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어?”
“왜 갑자기 멈춰요? 빨리 방으로 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거야?”
해리가 좌우로 눈을 굴렸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늘 말했잖아요. 난 해리가 뭘 해도 괜찮다고.”
“……그랬지.”
“사실 그게 그렇게 나쁜 짓도 아닐걸요?”
“그, 그런가?”
“네. 그런데 뭐, 해리가 안 한다니 어쩔 수 없죠.”
기대감에 차오르던 해리의 얼굴이 금세 실망으로 물들었다.
“……난 바보야.”
해리가 작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개 모습이었다면 귀랑 꼬리가 축 늘어졌을 거야.’
나는 낭패감에 젖어있는 해리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래서야 10년이 지나도 날 잡아먹는 건 힘들겠어요, 악마님.’
* * *
다음 날 나는 인세티아 남작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리던이 벨모른으로 파견될 공사 감독관으로 자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황당한 소식에 나는 당장 리던을 찾았다.
“어서 와.”
리던은 나의 방문을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를 맞이했다.
“차라도 대접할까?”
“지금 차가 넘어가게 생겼어요?”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
리던이 씩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앉았다.
“왕자님. 이렇게 태연하신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태연하지 않을 이유는 뭐지?”
황당해하는 나를 앞에 두고 리던은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왕자님 아니세요? 루크가 또 변장한 건가?”
나는 몸을 앞으로 빼 리던의 전신을 꼼꼼하게 훑었다. 루크가 리던으로 변신해 그를 곤란하게 하려고 했다면 이건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꽤 괜찮은 추리라고 생각했지만, 내 말을 들은 리던은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루크가 나로 변장했을 때 황당한 짓을 많이 벌였나 봐?”
이런 생생한 반응을 보면 루크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추리가 빗나간 아쉬움과 함께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왕자님께서도 본인이 황당한 일을 벌이셨다는 자각은 있다는 거네요.”
“딱히 황당한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하는데.”
“그러셨다면 지금부터 좀 하세요. 얼마 후면 왕도로 돌아가실 분이 왜 공사 감독관으로 자원하셨어요?”
보 건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것이다. 그런데 리던은 다음 달이면 왕도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왕자님께서 추진하신 일이니 직접 참관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중간에 감독관이 바뀌면 인수인계도 복잡해지고, 쭉 그곳에 있을 사람이 맡았으면 좋겠어요.”
왕자가 직접 나섰으니, 인세티아 남작이 거절의 말을 전하기 어려웠다. 남작이 내게 리던의 자원 소식을 알린 것도 대신 거절의 말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말하면 납득하겠지.’
하지만 리던은 내 생각과 다른 반응이었다.
“내가 쭉 그곳에 있으면 문제 없는 거 아닌가?”
“……다음 달이면 왕도로 돌아가셔야 하는 걸 잊은 건 아니시죠?”
“흠. 그거, 꼭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네?”
“정해진 건 다음 달이면 그대가 왕위를 물려받은 자를 선택한다. 그것뿐이잖아? 거기에 꼭 내가 귀환해야 한다는 말은 없는데.”
“아니…….”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리던을 바라보았다.
“왕도로 돌아가기 싫으세요?”
내 질문에 리던이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에렐은 재밌는 곳이야. 그대도 마찬가지고. 왕도보다는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아.”
“제가 왕자님을 다음 왕으로 정하면요? 그럼 돌아가서 후계자 교육을 받으셔야 하잖아요.”
내 말에 리던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날 선택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죠.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러지 말고 그냥 카시안을 선택해.”
“……네?”
“왕에는 걔가 더 잘 어울려. 무엇보다 걘 왕이 되고 싶어 하잖아.”
나는 리던이 벨모른으로 갈 감독관으로 자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황당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왕자님도 왕이 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단서를 붙였잖아. 사실은 왕이 되기 싫지만, 살고 싶어서 왕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요?”
“만약 내가 성검의 주인 옆에 딱 붙어 있으면, 그분께서 내 목숨 정도는 지켜주시지 않으려나? 대신 난 몸 바쳐 열심히 에렐을 위해 일하는 거지.”
“저…… 지금 말씀하시는 그분이…….”
“당연히 내 앞에 있는 이브리아 오베론 님이시지.”
“…역시 그랬군요. 엄청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말씀하셔서 혹시나 했어요.”
나는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최대한 수습하려고 애쓰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계속 에렐에서 살고 싶으시다는 거죠?”
“그래.”
“왕위는 이제 관심 없으시고?”
“맞아.”
“열심히 일할 테니 대신 목숨은 지켜달라?”
“정확해.”
“요구 사항이 참…….”
“뻔뻔하지?”
“심지어 본인이 그걸 잘 알고 계시고요.”
헛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며 리던이 조금 전의 장난스러운 기색을 완전히 지운 채 입을 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할까?”
“그러세요.”
“만약 내가 누군가를 왕으로 모셔야 한다면, 그게 카시안이 아니라 그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전제가 잘못됐어요. 카시안은 왕이 될 수 있지만, 전 왕이 안 될 거거든요.”
“영지에서는 영주가 곧 왕이지.”
“한 나라의 왕과 한 영지의 영주를 비교하시다뇨.”
“주군을 선택하는 데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곳을 다스리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리던의 눈은 진지했다. 나 역시 진지하게 그의 말을 생각해주는 것이 예의였다.
“저도 좀 더 솔직하게 말할까요?”
“그렇게 해.”
“왕자님을 제 사람으로 두는 건 역시 부담스러워요. 전 조용하게 살고 싶거든요.”
하지만 무려 왕자를 자기 사람으로 둔 영주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용하게?”
리던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이미 틀린 거 아냐?”
사실 그 점에는 나도 동의하고 있었다.
“물론 의도와는 다르게 주변이 떠들썩해져 버렸지만요. 전 여기에서 더 시끄럽지 않기를 바라요.”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봐. 내가 놓치기 싫은 인재이긴 하잖아?”
대놓고 거절을 했는데도 리던은 기죽지 않고 제안했다.
리던이 좋은 인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서류를 처리하는 속도나 방식이 뛰어나서, 그가 온 뒤로 나와 남작의 업무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젠 리피와 레피도 있고…….’
서류를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 급한 건 아니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필요한 인재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지, 영주님.”
리던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감독관은 내게 맡겨줘. 만약 내가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왕도로 돌려보내더라도 불편하지 않게 인수인계는 완벽하게 할 테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내가 더 이상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알겠어요. 벨모른에는 왕자님께서 가시는 것으로 하죠. 왕자님께서 감독관으로 가면 벨모른 백작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고, 좋은 점도 꽤 있겠네요.”
“그래. 내 지위를 잘 이용해보지.”
리던은 밝게 웃었지만 나는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해.’
생각지 못한 과제를 얻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