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2/156)

* * *

우리 일행은 에단의 안내에 따라 베넘으로 향했다. 와이번을 타고 순식간에 베넘 근처에 다다르자 강한 돌풍이 몰아쳤다.

‘잘못하면 그대로 날아가겠어.’

나는 흩날리는 머리를 그러쥐며 혀를 찼다. 해리가 뒤에서 단단히 허리를 붙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벌써 저 돌풍에 휘말려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베넘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돌풍의 중심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땅이 뒤집히며, 물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온갖 재해의 집결지 같았다고나 할까.

‘확실히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네.’

베넘은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카난. 정령과 이야기해볼 수 있겠어요?”

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이카난에게 외쳤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목소리가 금방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다행히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시도는 해보겠다. 하지만 폭주하고 있는 중이라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군.”

이카난도 목소리를 높이며 내게 대답했다.

“대화를 하려면 베넘으로 조금 더 접근해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하겠나?”

이카난이 와이번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와이번이 짧은 울음소리를 내고는 베넘을 향해 날갯짓했다.

베넘에 가까워질수록 흔들림이 더 심해졌다. 비행기 사고 직전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나쁜 흔들림이었다.

‘토할 것 같아.’

어지럽고 기분이 나빠 속이 울렁거렸다.

“괜찮아.”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본 해리가 더 강한 힘으로 내 허리를 붙잡으며 속삭였다.

“내가 잘 붙잡고 있어.”

해리의 흔들림 없는 가슴에 몸을 기대자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시작해보지.”

어느 정도 지면 가까이 다가서자 이카난이 입을 열었다. 리안트로 숲에서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고운 울림이 그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노한 정령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정령들이 이카난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돌풍이 조금 잦아들었다.

“어?”

그때 땅에서 솟아오르던 물기둥이 형태를 바꾸었다.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곧 인어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상체는 인간의 몸이지만, 하체는 물고기였다.

반투명한 형태의 인어는 잠시 지면을 맴돌다가 이카난이 아닌 내 앞으로 날아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인어가 입을 열어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귀머거리가 된 기분으로 눈만 껌뻑이고 있으니 이카난이 재빨리 그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길잡이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익숙한 냄새요?”

나는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하지만 딱히 냄새라고 할 만한 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행동에 인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나 내 주위를 맴돌았다.

“길잡이에게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돌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군.”

“……잃어버린 돌이요?”

“원래 베넘 남쪽 정령의 샘에 그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의 돌이 하나 있었는데, 인간들이 몰려와 그걸 훔쳐 갔다고 한다.”

이카난이 정령의 말을 전하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도둑으로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그런 적 없어요!”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게 생긴 나는 펄쩍 뛰며 부정했다.

“난 베넘에 정령의 샘이 있다는 것도, 정령의 샘에 신비의 돌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걸요.”

이카난이 내 말을 전하자 인어가 포악한 얼굴로 내 앞에서 입을 쩌억 벌렸다.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듯한 위협적인 몸짓이었다.

“그렇다면 왜 길잡이에게서 돌의 향기가 나는지 증명하라는군.”

“그걸 증명하라고 해도…….”

나 역시 영문을 모르겠으니 할 말이 없었다. 난처하게 입을 꾹 다물자 인어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잦아들었던 돌풍이 다시 몰아치기 시작했다.

“에단! 혹시 정령의 샘에서 돌을 훔쳐 갔어요?”

나는 에단을 향해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베넘 남쪽에 있는 샘이라고 했으니, 인간들이 그곳에서 돌을 훔쳐 갔다면 베넘에 사는 웨어울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정령의 샘은 오래전부터 신성시된 공간입니다. 베넘은 척박하지만, 정령의 샘은 언제나 풍요롭지요. 식량이 떨어지면 과일을 따러 갈 뿐입니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항변이 거짓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카난. 돌을 훔쳐간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물어봐요. 우리가 신비의 돌을 다시 찾아줄 테니까, 그만 화내고 진정하라고요.”

“알겠다.”

이카난이 재빨리 나의 말을 전하자, 인어가 눈을 크게 뜨며 온순한 얼굴로 돌아왔다. 사납게 날뛰던 바람도 다시 잦아들어 겨우 토악질을 면할 수 있었다.

“정령이 정말 신비의 돌을 찾아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노력할 거라고 전해줘요. 대신 돌을 찾아주면 다시 샘으로 돌아가야 해요. 엉망이 된 베넘도 원래대로 돌려놓고요.”

“신비의 돌만 찾아주면 그 이상의 것도 하겠다고 한다.”

“아뇨.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반투명한 인어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죠. 그 돌이 언제, 누구에 의해 사라졌는지.”

* * *

우리는 지상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정령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비의 돌이 사라진 건 웨어울프들이 메마른 강을 건너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깊은 밤을 틈타 갑옷을 입은 한 무리의 인간들이 샘에 독을 풀고, 정령들이 다급하게 중독된 샘을 정화하는 사이 돌을 훔쳐 사라졌다는 것이다.

“갑옷을 입었다면…….”

그렇다면 범인들이 시정잡배들은 아니었다. 갑옷은 상당히 비싼 물품이라 영지에 소속된 기사들이나 입을 수 있었다. 영지에 소속된 기사라면 갑옷에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기 마련이었다.

“갑옷에 새겨진 문양을 기억해요?”

“방패와 장미, 가시덩굴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가문의 문양으로는 아주 흔한 상징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최근 그 상징들이 들어간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벨모른.”

벨모른은 정령의 샘과 가까운 영지이기도 했다. 정령들이 본 문양과 벨모른의 상징이 겹치는 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이지.’

하지만 벨모른에서 신비의 돌을 가져갈 이유가 없었다.

“신비의 돌에 인간들이 탐을 낼 만한 힘이라도 있나요?”

인어를 향해 물었지만, 이카난이 내 말을 그에게 전하기도 전에 에단이 대신 답을 내놓았다.

“풍요의 힘이죠.”

“풍요?”

“예. 척박한 땅임에도 정령의 샘 주변에는 언제나 나무가 자라고 과일이 열립니다. 그것이 돌이 지닌 생명력의 힘 덕분이라고, 이 부근에는 그런 소문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벨모른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돌의 힘이 없어도 충분히 자립이 가능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에단이 설마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막 벨모른으로 넘어 갔을 때, 목장 인근에 양의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아 폐사했다고 하더군요.”

“폐사요?”

“예. 몇 달째 원인을 찾지 못해 손도 쓰지 못하고 양들이 죽어나가는 걸 지켜봤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는 양들이 멀쩡해졌지요. 저희는 그저 치료약을 발견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니 벨모른에서 돌의 힘을 쓴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는 거군요?”

내 말에 에단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에단의 말을 곱씹고 있으니 유피테르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보탰다.

[제가 전투하는 웨어울프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본능이 극대화되었다면 도망치는 것이 옳은데, 더욱 전투적으로 변해 날뛴다고 했었죠.]

[예. 그때는 이유를 몰랐습니다만,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신비의 돌이 웨어울프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유피테르의 의견도…]

[벨모른에 신비의 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둘이나 같은 의견을 제시하니 합리적 의심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단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심증은 굳어졌다.

“벨모른으로 가죠.”

“백작을 만나 추궁하실 겁니까?”

에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추궁해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벨모른 어딘가에 정말 돌이 있다면 주인이 알아보지 않겠어요?”

나는 인어를 바라보며 웃었다.

“같이 벨모른으로 가서 찾아보죠, 정령님.”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인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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