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100/156)

15장. 양을 삼키는 달

최대한 비밀스럽게 방문해달라는 백작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모두가 잠든 새벽 와이번을 타고 벨모른으로 이동했다. 일행은 총 넷이었다. 나와 해리는 당연히 포함되었고, 스승을 따라 나선 이카난과 지금까지 벨모른과의 소통을 이끌어온 리던이 추가되었다.

벨모른 백작과 미리 협의한 장소에 도착하자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자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가슴팍에 붉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에렐의 영주님이십니까?”

초조하게 제자리를 맴돌고 있던 노인이 우리를 보며 반색했다.

“그래. 안내를 부탁하지.”

“예.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노인이 깊게 고개를 숙인 뒤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새벽은 고요했다. 좁은 숲길을 비집고 걸어가는 동안 간간이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얼마나 걸어야 할까?’

오래 걸으면 체력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해리에게 업어 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벨모른 백작의 수하가 보는 앞에서 너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벨모른 백작과의 거래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상대에게 얕잡아 보일 수 없었다.

‘슬슬 다리가 아픈 것 같은데.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거리를 가늠하는 사이, 새벽의 고요함을 비집고 이질적인 소리가 숲을 울렸다.

“아우우우우-!”

제법 가까운 소리에 일행의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추었다.

“……늑대?”

소리에 예민한 엘프 이카난이 귀를 쫑긋거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어두운 숲 사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름에 늑대라. 별로 기분 좋은 조합은 아니군.”

찜찜한 얼굴을 한 리던이 하늘을 힐끗거리며 표정만큼이나 찜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던의 말대로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깊은 새벽,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밝은 달빛 덕분이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노인이 파리한 얼굴로 우리를 재촉하더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두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 안으로 향하는 것이 분명한 쪽문이 나타났다. 노인은 품에서 열쇠를 꺼내 굳게 닫힌 자물쇠를 풀고,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문 안쪽의 통로는 무척이나 좁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 힘들 정도의 너비였다. 해리는 무엇인가 갑자기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내 뒤에 바짝 붙어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무사히 통로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백작님.”

노인이 벽 너머를 향해 작게 속삭이며 규칙적으로 벽을 두드렸다.

쿵, 쿵쿵, 쿵쿵쿵쿵.

아마 약속된 신호인 것 같았다. 노인이 벽을 두드린 후 잠시의 간격을 두고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비스듬히 돌아간 벽 사이로 빠져나가자, 어슴푸레 불을 밝힌 서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런 쪽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였구나.’

어느 성이나 위급한 상황을 대비한 비밀통로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나타 백작령의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도 이런 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빠져나왔었다. 서재 안에는 노인만큼이나 파리한 얼굴을 한 벨모른 백작이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는 리던의 얼굴을 알아보고 먼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가, 뒤에서 빠져나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브리아?”

“……예?”

생각보다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대답이 흘러나왔다. 벨모른 백작은 제 콧수염을 매만지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내 앞에 다가섰다.

“그래, 네가 이브리아로구나! 그 꼬마가 이렇게 컸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

‘원래 이브리아와 친분이 있었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벨모른 백작이 두 팔을 벌리며 허리를 굽혔다. 나를 껴안으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벨모른 백작의 행동은 해리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그만. 거기까지.”

해리가 팔을 뻗어 내게 다가오려는 벨모른 백작의 몸을 차단했다. 싸늘한 붉은 빛 눈동자를 정면으로 받은 백작이 급하게 숨을 들이키며 활짝 벌렸던 팔을 내려놓았다.

“호위에게 제대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 좋겠구나, 이브리아.”

“그는 내 호위가 아니라 건국왕의 가장 큰 공신인 대마법사의 후손입니다, 백작.”

푸른 불꽃의 마법사는 개국공신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건국왕의 사망 이후 홀연히 사라졌기에 가문은 남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왕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면 그 어떤 귀족들보다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실제로 해리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국왕은 그에게 가문의 이름과 작위를 하사하겠으니 왕도로 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해리가 전부 귀찮다면서 거절했지만 말이야.’

그건 인세티아 남작의 조언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국왕에게 가문의 이름과 작위를 하사받으면 해리는 그의 신하로서 종속된다. 자유를 원한다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받지 않는 쪽이 나았다. 어차피 해리는 대마법사의 후손이라는 이름과 스스로의 강한 힘으로 왕국 어디에서나 귀족 이상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대마법사의 후손을 미처 몰라뵈어 실수를 했군요.”

벨모른 백작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은근슬쩍 사과를 했음에도 해리의 싸늘한 시선이 떨어지지 않자, 백작이 재빨리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크흠,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이브리아.”

“언젠가 저와 만난 적이 있으셨나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내 질문에 벨모른 백작이 펄 쩍 뛰었다.

‘예전 이브리아와 친분이 있던 사람인가? 그렇다면 인세티아 남작이 언급했을 텐데.’

하지만 인세티아 남작은 따로 벨모른 백작과 나의 친분에 대해 언질을 주지 않았다.

“네가 어릴 적 집안 모임에서 만나지 않았니. 그때, 너희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 말이다.”

‘……벨모른이 외가와 연이 있는 집안이었나?’

이브리아의 외가는 이샤 후작가로,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다지 많은 교류는 없었다. 오베론이 북부의 패자라면, 이샤는 동부의 맹주. 그러나 원작에서는, 아니, 태양신이 내게 준 책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내가 아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혹시 몰라 리던을 슬쩍 바라보니 그 역시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벨모른 백작께서 저희 어머니의 친척이셨던가요?”

“그래. 내가 네 어머니의 사돈의 팔촌에 작은 아버지란다.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다, 이브리아.”

“……사돈의 팔촌에 작은 아버지라고요.”

그냥 남이라는 소리였다. 꼬박꼬박 내 이름을 부르며 친분을 과시할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관계의 앞을 뚝 잘라 작은 아버지만 남기는 뻔뻔함이라니.’

나는 오베론 공작의 딸이자, 성검의 주인이며, 대마법사의 주군이었다. 공적인 명성으로는 내게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사적인 관계로 나의 우위에 서려는 속셈이었다.

‘이래서 인세티아 남작이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한 거구나.’

공적인 일에 사적인 관계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

‘심지어 그 사적인 관계가 어설픈 거라면 더 그렇고.’

“이 자리에서 논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친분인 것 같습니다, 백작님.”

돌려 말하지도 않고 딱 자르는 거절에 파리하던 백작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벌게졌다.

‘내가 혈액순환을 도와줬네.’

뚱한 얼굴로 백작을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 서 있던 리던이 애써 웃음을 삼키며 상황 정리에 나섰다.

“그래. 사적인 친분은 추후에 도모하기로 하고, 지금은 영지의 문제를 논의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크흠. 옳으신 말씀입니다.”

민망함에 할 말을 잃었던 백작이 겨우 정신을 차리며 헛기침했다.

“우선 이쪽으로.”

백작이 노인에게 눈짓하자 그가 서재의 한쪽의 작은 문을 열었다. 백작을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가자 기묘한 향이 가득했다.

“저건……”

코를 틀어막고 주변을 살피자마자 공간 중앙의 단에 올려진 양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죽었군.”

리던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정말 죽은 것인지 단 위에 누운 양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예. 죽은 양을 방부처리 해둔 것입니다.”

공간에 퍼진 기묘한 냄새 역시 방부 처리 과정에서 나온 것 같았다.

“특별한 양인가? 왜 방부처리를 해서 이 안에 두었지?”

“먼저 이 상처를 봐주십시오.”

벨모른 백작이 양의 목덜미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의 목덜미에는 커다란 이빨에 물린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상처가 조금 이상하네요.”

나는 상처 가까이로 고개를 가져갔다. 이빨 자국 주변으로 그을린 듯 까맣게 물든 흔적이 보였다.

“까맣게 물든 이빨 자국이라면……”

내 말에 지금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카난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양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던 이카난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웨어울프에게 물렸군.”

“웨어울프라면, 늑대인간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하지만 웨어울프가 이렇게 폭주해 동물을 공격할 일이 없을 텐데. 오래 전 신전에서 그들을 몰아내 베넘에 가둬두었잖나.”

“그 베넘이 벨모른 북쪽에 있는 강 너머에 있지. 원래대로라면 강폭이 넓어 절대 넘어올 수 없는데……”

리던이 말끝을 흐리며 나와 해리를 바라보았다.

‘지난번 폭우가 내릴 때 해리가 그 강물을 모두 증발시켜버렸어.’

아마 그때 웨어울프들이 베넘을 빠져나와 벨모른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런 나비효과가 있을 줄이야.’

내가 속으로 숨을 삼키는 사이 이카난이 심각한 얼굴로 벨모른 백작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나? 이게 웨어울프의 짓이라는 걸?”

백작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장에서 양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게 시작이었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져 벨모른 백작에게 물었다.

“왜 신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죠? 신전의 손을 빌려 웨어울프들을 다시 베넘으로 몰아내면 되잖아요.”

“하. 우스운 소리.”

벨모른 백작이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짚었다.

“영지에 그딴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어떻게 하겠어? 소문이 퍼지면 누구도 벨모른의 모직물을 사려고 하지 않을 텐데.”

벨모른 백작이 죽은 양을 힐끗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웨어울프가 물어뜯은 양이 자라는 목장, 그곳에서 나온 모직물이라니! 그걸 입으면 자기도 웨어울프가 된다고 생각할 게 분명해.”

백작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카난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웨어울프는 전염병이 아니다. 이빨에 물리지만 않으면 안전하니, 감염된 양만 처리하면 문제없다.”

“모두가 그걸 알지. 하지만 소문과 괴담에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아.”

벨모른 백작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시작은 양이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 양 몇 마리 정도야 웨어울프의 먹이로 내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이 평화를 지킬 수만 있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벨모른 백작의 얼굴이 어느새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파리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거군요.”

벨모른 백작이 창백한 얼굴로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사람을 물기 시작했어. 그러자 감염된 사람들이 웨어울프가 되어 개체수가 급속하게 늘어서……”

“아우우우우-!”

백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 곳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누가 웨어울프고 누가 인간인지도 모르겠어.”

“웨어울프는 보름이 아닐 때에는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말이지.”

이카난이 웨어울프에 대한 정보를 덧붙였다. 나는 늑대 울음소리가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지금이 그 보름이고요.”

웨어울프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 난동을 부릴 시기였다.

* * *

우리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다가 쓰러진 벨모른 백작을 보내고, 노인이 마련해 준 방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웨어울프는 쉽게 죽지 않는다.”

웨어울프에 대한 지식이 가장 풍부한 이카난이 대책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늑대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에는 트롤처럼 재생력이 강해지거든. 기회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때뿐이지.”

“하지만 신전에서 인간을 모습을 한 웨어울프를 죽이는 걸 반대했다. 인도적인 차원의 이유였지. 그래서 그들을 베넘에 가둬두고 서식지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정리됐는데…….”

웨어울프들이 그곳에서 빠져 나와 벨모른 사람들을 물기 시작한 것이다. 리던이 한숨을 내쉬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리던 역시 해리가 힘을 쓰는 현장에 있었으니 이 사단이 난 원흉이 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그 원흉은 해리가 아니라 그에게 힘을 쓰라고 명령한 나였다.

“내 잘못이에요.”

셋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강의 범람을 막으려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어떻게든 내가 수습하고 싶어요.”

이제 벨모른과의 거래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결자해지. 내가 저지른 사고는 내가 수습하는 게 맞다. 무역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내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그게 왜 네 잘못이야?”

해리가 침울한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는 내게 다가왔다.

“넌 범람만 막아달라고 했어. 힘 조절을 잘못해서 물을 모두 날려버린 건 나야.”

“해리가 힘 조절을 못 하게 된 이유도 나죠.”

영혼의 조각을 내게 주지 않았더라면, 해리는 손쉽게 제 힘을 조절했을 것이다.

‘따지고 들면 들수록 이건 내 잘못이잖아.’

내 침울한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는지 해리와 리던 역시 가라앉은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카난은.

“강물을 메마르게 한 게 길잡이였나? 아주 큰 실수를 했군. 사실 나는 길잡이가 조심성이 없다는 걸 첫 만남부터 눈치챘다.”

평소와 똑같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카난의 모습에 오히려 웃음이 흘러나왔다. 헛웃음에 가까운 내 미소를 본 이카난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길잡이. 실수는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실수다. 바로 잡을 수 없다면 그건 사고가 되지. 아직까지 이건 실수야. 그렇지?”

나를 바라보는 이카난의 눈에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 눈빛에 마음이 편해졌다.

“맞아요.”

이래 봬도 태양신이 꽃길을 깔아준 몸이었다.

‘비록 내가 바라던 꽃길은 아니지만.’

나는 무엇이든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일단 웨어울프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웨어울프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없어요?”

아무래도 주먹을 쓰는 것보다 대화를 먼저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질문에 이카난이 고개를 저었다.

“늑대화가 된 후에는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무력으로 기절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면 인간의 모습일 때 해야 한다는 거네요.”

보름이라 웨어울프들이 늑대화 되는 오늘은 불가능했다.

“다 죽일 생각은 아니로군. 마침 보름이니, 뛰쳐나온 웨어울프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카난이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리안트로 숲에서 트롤을 한 번에 몰살시킨 것을 본 뒤라,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쓸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겠지만…….”

웨어울프는 늑대인간이었다. 보름달이 떠서 늑대로 변하는 하루를 빼면, 나머지 시간 동안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인간에 가까운걸.’

내가 인간을 마구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해리의 본능을 억누르라고 할 일도 없었다.

“늑대인간은 트롤 같은 마수가 아니잖아요.”

왕국의 법도 그랬다. 와이번이나 트롤은 마수였지만, 웨어울프는 마수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래 전 신전에서도 웨어울프들을 죽이는 대신 격리를 선택한 거고요.”

이 자리에서 나와 함께 유일한 인간인 리던도 내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웨어울프를 무작정 죽이는 건 힘들어. 신전도 반발할 거고.”

“신전의 의사도 중요할까요?”

“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입김이 강한 곳이니까. 굳이 일을 벌여 척을 질 필요는 없지.”

리던의 말을 유피테르가 보충해주었다.

[왕국이 세워지고 백여 년 후 신탁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성자도, 성녀도 등장하지 않았고요. 그때부터 신전의 위세가 크게 떨어졌지요.]

[신전이라면, 역시 태양신의 신전을 말하는 거죠?]

[예. 이 땅의 유일한 신이니까요.]

‘나한테는 멋대로 꽃길을 깔아준 저주쟁이일 뿐인데.’

그 신과의 소통이 끊어졌다고 신전의 위상이 뚝 떨어지다니, 생각보다 위상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자기를 모시는 신전에는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왜 내게 나타나 원하지도 않은 꽃길을 깔아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역시 신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그렇게 위상이 떨어졌다니 신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신과의 소통은 끊어졌지만, 신성력은 여전히 소중한 힘입니다. 정화와 치유에 탁월하죠.]

[신의 대리자로서의 명성은 잃었지만, 실질적인 힘은 여전하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신전에서 만들어 내는 포션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정도로 강력하니까요. 제가 가진 치유 능력처럼 외상에만 효과가 있는 데다, 가격도 엄청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입김이 대단하긴 하겠네요. 죽은 사람도 살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유피테르의 치유 능력은 강력했지만, 주인에게만 한정된 능력이었다. 그에 비해 신관의 신성력이나 신전의 포션은 누구에게나 쓸 수 있었다. 그 힘이 지금 신전의 권력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신전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있으니 이카난이 의견을 꺼냈다.

“그런데 인간의 모습일 때는 평범한 사람과 웨어울프를 구분하기 힘들 텐데.”

이카난의 지적에 리던도 곤란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그다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음.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요.”

고민에 빠져있던 이카난과 리던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침 보름이라 다들 늑대의 모습으로 날뛰고 있을 테니까, 지금 기절시켜서 한 곳에 가둬두죠.”

“……뭐?”

“그들이 보름이 지나고 인간의 모습으로 깨어나면 그때 대화를 할 수 있겠죠. 간단하네요. 그렇죠?”

“그런…….”

단순무식한 방법에 리던과 이카난이 입을 떡 벌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보름달의 기운을 받아 늑대화 된 웨어울프는 제압하기 힘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대마법사님이 계시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대화에서 물러나 있던 해리를 가리켰다. 길어지는 공방 속 지루한 얼굴로 늘어져 있던 해리가 갑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에 자세를 바로 했다.

“……나 말하는 거야?”

“여기 달리 마법사님이 어디 있어요. 당연히 해리죠.”

나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해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라면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요. 늑대인간을 기절시켜서 한 곳에 이동시켜두는 것 정도는.”

해리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늘 본능을 억누르고 살았던 그가 신나게 날뛸 기회 아닌가.

“응. 나 할 수 있어!”

역시나 해리가 신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활짝 웃는 걸 보니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웨어울프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면 이카난과 왕자님도 해리를 도울 수 있을 테니까…….”

이카난은 아직 어설픈 마법사였지만, 엘프는 기본적으로 모두 뛰어난 활잡이였다. 리던 역시 검을 다루는 재능이 뛰어난 데다, 각종 마수 토벌단의 우두머리로 일행을 이끈 경험이 있었다. 그들이 해리를 보조해 웨어울프를 상대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의외로 웨어울프를 제압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태평한 내 말에 입을 떡 벌리고 있던 리던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는 모든 일을 쉽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군.”

“제 특기죠.”

“모든 말을 칭찬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그것 역시 제 특기고요.”

내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자 리던이 다시 한번 헛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그리 기분 나쁜 기색의 웃음은 아니었다.

“그럼 서둘러야겠군. 날이 밝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리던이 창밖의 보름달을 힐끗거리며 제 검을 점검했다. 그의 옆에 있던 이카난도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길잡이는?”

“저요?”

“그래. 길잡이는 무엇을 하지?”

웨어울프를 때려서 기절시키자는 이 단순무식한 작전에서 내 역할을 묻는 것 같았다.

“전 여러분이 웨어울프를 때려잡는 동안 그들을 가둘 공간을 확보할게요. 그리고…”

“그리고?”

“뒤에서 열심히 세 분을 응원하겠죠.”

“……응원이라고?”

이카난이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응원이요.”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들 힘내세요! 파이팅! 힘내라, 힘!”

열심히 응원의 말을 반복하는 나를 보며 해리는 활짝 웃었고.

“응! 나 힘낼게! 열심히 할게!”

리던은 질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응원은 이제 질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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