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게 신간이라고?”
“예, 아가씨.”
나는 심드렁한 기분으로 엠마에게 건네받은 책을 뒤적였다.
엠마와 해리를 모두 홀려버린, 그 유명하다는 마담 루이제의 책이었다. 내가 마담 루이제의 소설을 찾은 것이 무척이나 기뻤는지 엠마는 신이 나서 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으로 말하자면, 거칠고도 아름다운 성애묘사가 일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담 루이제의 작품은 모두 훌륭하지만, 이 신간은 예전 작품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거칠고 아름다운 게 공존할 수가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만…”
엠마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접하고 마침내 알게 되었지요. 그게 가능하다는 걸요.”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조금 흥미가 생겼다.
‘뭐, 아무리 그래도 현대의 각종 자료들에 비하면 약하지 않을까?’
아무리 관능 소설이라지만 각종 시청각 자료와 실전까지 섭렵한 내게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다.
“……어?”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책을 덮어버렸다.
‘이 미친 수위는 뭐야?’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빨개졌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뜨거웠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뿌듯함이 담긴 엠마의 질문에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이, 이, 이, 이게 뭐야?”
나는 굳어 있던 입을 겨우 움직여 엠마에게 물었다. 하지만 놀란 나에 비해 엠마는 무척이나 태연했다.
“말씀드렸던 거칠고도 아름다운 성애지요.”
“엠마. 너 이런 걸 보고 있었던 거야? 해리도 같이?”
“그 신간은 아직 개 요정님께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입수한 따끈따끈한 책이라, 아가씨께 가장 먼저 보여드린 거예요! 아가씨께서 다 읽으시면 개 요정님께도 보여드려야겠네요.”
“뭐?”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절대 안 돼. 해리한테는 이거 금지야.”
“어째서요?”
“그거야…….”
‘해리가 이걸 보고 그놈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성애를 배우면 곤란하니까 그렇지.’
-아주 맛있게 잡아먹을 거야, 이브리아.
나는 어젯밤 해리가 내게 남겼던 경고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잡아먹히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꼭 이런 방법으로 잡아먹힐 필요는 없지 않나.
“아무튼 이건 절대 안 돼. 이 책도 압수야, 엠마.”
“네에?”
엠마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는 듯 펄쩍 뛰었다.
“하지만 아가씨…… 그건 정말 구하기도 힘든 책이고…….”
나는 엠마의 항변을 한 귀로 흘리며 다시 책을 펼쳤다. 다시 봐도 정말 충격적인 묘사들이 가득했다.
‘으으. 역시 이건 절대 해리 손에 들어가면 안 돼.’
두 번 보니 더 확실했다. 내가 굳게 다짐하며 다시 책을 덮으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들은 이렇게 책을 보면서 종족 번식을 연구하는 건가?”
“악!”
나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이카난이 허리를 굽힌 채 진지한 얼굴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들의 번식은 다소 격렬한 면이 있군. 정말 이렇게 번식 행위를 하나?”
“번식 행위라니…….”
다소 원초적인 이카난의 말을 되새기고 있으니, 책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게다가 넌 아직 번식 행위를 하기에는 어려 보이는데.”
“이제 성인이니까 충분히 할 수 있죠.”
“이런 번식 행위를?”
이카난이 놀랍다는 듯 책을 가리켰다. 나는 화들짝 놀라 책을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런 번식 행위가 아니라, 남녀 간의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나는 당황해서 변명을 쏟아내다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카난.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아니,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요?”
“바람을 타고 왔다. 마침 문이 열려 있더군.”
이카난이 열려 있는 창문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 태도가 어찌나 당당한지, 하마터면 그곳이 제대로 된 문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왜 다들 저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냐고.’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저 창문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제대로 된 문으로, 제대로 허락을 받고 들어와야죠, 이카난.”
내 말에 이카난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마음대로 들어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그런가?”
내 말에 이카난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엘프는 열린 문으로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게 아닌가 보군. 무례했다면 사과한다.”
이카난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게 될 테니 인간들의 관습을 기억해두는 게 좋겠지.”
“오늘부터? 이곳에서?”
“그래. 타라문이 그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숲을 떠나 이곳에서 지내라고.”
“어…….”
나는 당황해서 입을 벌렸다.
‘아직 해리에게 제자에 대해선 말하지 못했는데.’
사실 어젯밤에 마무리했어야 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는 바람에 도망치듯 해리의 방을 빠져 나오느라 정작 이카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내가 또 실수를 했나?”
당황한 나를 보며 이카난이 물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해리에게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못 했어요. 타라문이 이카난 이야기를 꺼낸 게 겨우 어제였거든요.”
내 말에 이카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만하다. 타라문이 앞서갔군. 그는 대체로 그런 성향이다. 좋은 말로는 추진력이 좋은 거지만, 나는 성급하다고 평하는 쪽이지.”
“네. 그러니까…….”
이야기가 끝난 뒤에 다시 오는 게 어때요-라고 말하려는데, 이카난의 입이 나보다 먼저 열렸다.
“지금 가서 마법사의 허락을 받으면 되겠군.”
“지금요?”
“그래. 지금.”
이번에도 당당한 태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타라문만 추진력이 좋은 게 아니네요. 엘프들은 전부 다 이래요?”
“인간들에 비해 결단이 빠르긴 하다. 나는 그나마 느긋한 편이지.”
“……아마 이카난은 느긋하다는 말의 정의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럴 리가. 나는 언어 사전을 모두 외우고 있다. 느긋하다는 건 마음에 흡족하여 여유가 있고 넉넉하다는 뜻이지. 내가 딱 그렇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반박해도 인정할 기세가 아니었다. 엘프들은 고집이 세다. 나는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를 새겨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요.”
거절이든 승낙이든, 빨리 해결을 보고 이카난을 떼어 내는 게 덜 피곤할 것 같았다.
“지금 마법사를 만나러 가죠.”
* * *
“나한테 잡아먹히러 왔어, 주인님?”
웃으며 나를 맞이한 해리의 얼굴이 내 뒤에 선 이카난을 발견하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뭐야. 왜 저 녀석이랑 같이 와?”
“어제도 사실 이카난 때문에 왔었던 거예요. 타라문이 부탁한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정작 할 말을 못 하고…….”
“어제도 저 녀석 때문에 왔던 거라고?”
그렇지 않아도 굳어 있던 해리의 얼굴이 이제는 아예 일그러졌다.
“싫어. 안 해.”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잖아요?”
“저 녀석이랑 관련된 거면 무조건 싫어.”
“내가 부탁하는 데도요?”
“그…….”
입을 비죽 내밀고 있던 해리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카난과 나, 나와 이카난. 둘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해리의 시선이 결국 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거절하라고.”
“거절해도 돼요.”
“하지만 넌 날 강제할 수도 있는데, 그 방법을 안 쓰잖아.”
“그거야…….”
소원을 써서 해리가 강제로 내 말을 듣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키지 않았다. 해리가 종이 악마라고 생각했을 때도 그랬는데, 이제는 그가 진짜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조심할 생각이었다. 멋쩍게 웃는 나를 보며 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부탁인데?”
“아. 여기 있는 이카난이 마법사래요.”
“엘프? 마법사가?”
해리가 다소 놀란 얼굴로 이카난을 살피더니, 의외라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그렇군. 엘프와 마법이라니. 신기하네. 흔한 일이 아닌데.”
“네. 그래서 힘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 필요하대요. 타라문은 그게 해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리안트로 숲에서 해리가 힘을 쓰는 걸 봤으니까요.”
“뭐, 그 힘을 봤다면 내가 좋은 스승이 되리라고 생각했겠지.”
해리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카난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처음처럼 경계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얘를 제자로 받아 줘야 네가 곤란하지 않은 거지?”
“거절해도 곤란하지 않아요.”
엘프들에게 빚을 지울 건수가 하나 사라지는 거지만, 해리가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내가 받아주면 네가 더 좋은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받을래. 부려 먹을 제자 하나 생기면 나도 좋지 뭐.”
‘음. 이카난이 쉽게 부려질 제자가 되진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엘프가 마법사라니 좀 신기하기도 하고.”
해리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어서 칭찬을 해 달라는 얼굴이었다. 빤히 보이는 요구에 픽 웃으며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의 얼굴이 만족스럽게 풀어졌다.
“아.”
그런 나와 해리의 모습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던 이카난이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이 마법사가 길잡이, 그대의 번식 상대로군?”
‘여기서 번식이라는 말을 꺼낼 줄이야.’
이카난의 말에 나는 경악했고, 해리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색한 침묵에 나는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머리에서 내 손이 떨어진 뒤에야 해리가 겨우 입을 뗐다.
“……번식?”
“그렇다.”
이카난은 누군가 대꾸해주기를 기다렸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번식 상대를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길잡이, 그대의 상대는 썩 괜찮아 보이는군. 속은 모르겠지만 겉모습만은 아주 훌륭하다.”
그의 입에서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해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뭐, 속도 아주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
해리가 이카난의 말에 재빨리 동의하며 씩 웃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엘프 너 아주 마음에 든다. 내 제자가 되는 걸 허락하겠어.”
턱을 치켜들고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해리의 시선에 이카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도대체 내가 어떤 부분에서 스승의 인정을 받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
“제자는 스승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인간들에게 스승과 제자는 이처럼 불합리한 관계였나. 미처 몰랐다.”
이카난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인간들의 법칙이 그렇다면 따르는 게 좋겠지.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지내야 하니까.”
제자가 스승의 말을 존중해야 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게 꼭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카난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엘프를 해리의 말로 통제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
해리는 나의 말로 통제할 수 있으니, 결국 이 엘프 역시 내 말로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놓고 그들의 만담을 지켜보는 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폭탄이나 다름없는 이카난의 발언 때문이었다.
“역시 인간들의 삶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길잡이가 그 책을 보며 번식을 연구했던 것도 이해하기 힘든…….”
“으악!”
‘번식’과 ‘그 책’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오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이카난의 입을 틀어막았다.
‘해리가 그 책에 대해서 알면 안 돼!’
나는 필사적으로 이카난에게 눈짓했다. 그 책에 대해서 말하지 마라. 그건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내 눈짓을 알아챌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면 그건 이카난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이카난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 책을…….”
“악!”
“아니, 그 책이…….”
“아악!”
이카난이 내 손을 피해 입을 열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몇 번이나 그 과정이 반복되자 결국 이카난이 내게 백기를 들었다.
“……정말이지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다.”
“이해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그 입을 다물어요.”
“그게 길잡이의 뜻이라면 따르겠지만…….”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던 길잡이라는 감투가 이렇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오다니. 나는 이카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말했다.
“네. 따르세요. 그게 당신들 길잡이의 뜻이에요.”
단호한 선언에 이카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가 입을 다물었다는 게 중요했다.
‘어떻게든 입막음은 했잖아.’
과정이 어찌 됐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해리는 이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둘이 왜 이렇게 친해?”
“……이게 친해 보였어요?”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황당해하는 나와 달리 해리는 확신에 찬 얼굴로 나와 이카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비밀 이야기를 하잖아. 그런 건 친한 사이에서나 하는 거야.”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그럼 나한테도 말해 주면 되겠네.”
“싫어요.”
고민도 없이 흘러나온 거절에 해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 봐. 나한테는 말 못 하면서. 저 엘프랑 친한 거 맞잖아.”
해리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코웃음을 치고는 이카난에게 명령했다.
“제자. 스승의 말이다. 당장 이브리아의 책 이야기를 해 봐.”
나로서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는 명령이었다.
“이카난. 말하면 안 돼요.”
“아니. 어서 말해라, 제자!”
말해라. 아니다, 그러지 말아라. 해리와 내가 그렇게 투닥거리는 동안 이카난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안 된다니까요! 스승보다는 길잡이의 말이 더 우선이겠죠?”
“아니지. 길잡이보다는 스승의 말이 더 우선일 거야! 그렇지?”
한참이나 투닥거리던 나와 해리의 시선이 동시에 이카난을 향했다. 하지만 치열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 둘과 달리, 이카난은 뚱한 얼굴로 두 손을 들 뿐이었다.
“부부 싸움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낀 아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이군. 오래 전 내 부모님도 이러셨지.”
이카난이 피곤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런 곤란한 싸움의 중재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 나중에 다시 오겠다.”
그렇게 말한 이카난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바람처럼 자리를 떠났다. 순식간에 둘만 남아버린 나와 해리는 고요해진 공간에 서서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엄마와…….”
“아빠……?”
얼빠진 해리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