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90/156)

* * *

“루셀 탑에 다녀오신 건 잘 해결됐습니까?”

인세티아 남작이 내가 꼭 검토해야 할 서류를 건네며 슬쩍 물었다.

“아. 그 일이요. 설명하자면 아주 길죠. 전부 이야기할까요?”

발단부터 시작해 결말로 가려면 몇 시간을 떠들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만 말씀해주십시오.”

인세티아 남작은 나처럼 ‘본론만 간단히’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런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고민하지 않고 결론만 간단히 입에 올렸다.

“엘프들에게 검은 숲을 내어주려고요. 대신 엘프들이 에렐에 밀과 보리를 자라게 해줄 거예요.”

“……네?”

“아. 마법사협회에서도 받을 게 있는데. 나 혼자 결정하긴 좀 그렇고, 뭘 받으면 좋을지 남작과 논의하고 싶어요.”

“……네에?”

쉴 틈 없이 이어진 말에 남작이 얼빠진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이야기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엘프에다 마법사협회라니…….”

“결론만 말하라면서요? 이게 결론이에요.”

“이렇게 엄청난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럼 지금이라도 전부 이야기해줘요?”

친절을 베풀어 발단부터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인세티아 남작이 거절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들어도 다 황당한 이야기뿐이겠지요.”

남작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영주님 옆에 있으면서 하도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더니.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 정도인가요?”

“그럼요. 와이번에, 드워프에, 엘프까지. 다음엔 또 영주님께서 어떤 종족을 영지에 데려올까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는 상당히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검은 숲을 엘프들의 터전으로 내어 줄 생각이십니까?”

“청요석을 만들어야 하니까 숲 전부를 내어줄 순 없겠죠. 일부를 엘프들의 거주 구역으로 지정하는 게 어때요?”

“이곳으로 오는 엘프의 수가 어느 정도입니까?”

“내가 직접 본 엘프들은 50명 정도였는데…….”

내가 직접 본 엘프들은 일족의 청년들뿐이었다. 어린이나 노인을 포함하면 아마 그보다는 더 많을 것이다.

“많아도 백 명은 안 넘을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 정도라면 수용할 공간이 충분할 겁니다.”

인세티아 남작이 책상 위에 지로를 펼치며 검은 숲의 상황을 설명했다.

“동쪽 구역에서는 청요석 제작을 위해 수액을 채집하고 있습니다. 북쪽 깊은 곳은 와이번들이 서식하고, 남쪽은 영지민들에게 벌목을 허용하고 있죠.”

“그럼 서쪽이 남네요.”

“예. 그쪽은 산이 맞닿아 지형이 험하기도 해서 보존 구역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숲의 수호자인 엘프들에게 딱이네요. 그곳을 내어주면 되겠어요.”

어차피 사람의 힘으로는 활용하기 힘든 곳이었다. 숲에 익숙한 엘프들에게 내어준다면, 우리보다 훨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빈 땅이 필요해요. 밀과 보리를 심을 수 있는 곳이요. 최대한 넓은 평야면 좋겠죠.”

“에렐에 빈 땅이야 많습니다만…….”

내 말에 남작이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대와 의심이 공존하는 얼굴이었다.

“정말 에렐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나도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타라문은 엘프가 싹을 틔우지 못하는 땅은 없다고 확답했었다.

‘지금은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없지.’

“보리가 제대로 자라면 맥주를 만드는 건 남작에게 맡길까 봐요. 우리 영지 제일의 주류 전문가잖아요.”

내 말에 남작이 드물게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날이 오면 좋겠군요.”

“온천욕을 한 뒤에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만 해도 좋네요.”

아직은 온천도 개발 중이고, 맥주 제조 역시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이보다 좋은 조합은 없었다.

“아. 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는 내게 남작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마법사협회에서 뭔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온천 개발을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온천 개발을요?”

“네. 정확히는 개발 중인 온천으로 들어갈 이동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걸 마법사협회에 부탁해 개발하면 어떨까요?”

개발 중인 온천은 검은 숲 서쪽 끝자락의 깊은 산 속에 있었다. 덕분에 경치는 훌륭하지만, 그곳까지 접근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온천 주변을 따라 지은 별장도 최대한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벌목하고 가공해서 만들었다.

“원래 그쪽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거길 오갔대요?”

“그들은 산을 지키는 걸 업으로 삼는 산지기의 후손들입니다. 산을 타는 일에는 따를 자가 없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힘에 부칩니다.”

“게다가 온천의 고객이 될 귀족들은 그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체력이 안 좋고요.”

산증인이 바로 나였다.

‘케이블카 같은 게 있으면 높은 산도 쉽게 오갈 수 있을 텐데.’

평범하게 생각하면 이 세계의 기술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드워프들은 케이블카를 만들고, 마법사들이 동력을 제공하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었다.

‘거기다 케이블카 건설비용까지 마법사협회에 떠넘기면 금상첨화겠어.’

나는 웃으며 펜을 집어 들었다.

“당장 마법사협회에 편지를 써야겠어요. 대가로 받고 싶은 게 뭔지 결정했다고.”

* * *

나는 마법사협회에 각종 요구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고 라파쉬를 찾았다. 케이블카를 건설하려면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드워프들의 힘도 필수적이었다. 내 계획을 들은 라파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그 케이블카라는 건 어떻게 생겼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건가요? 여기에 그려주세요!”

“저도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나는 케이블카를 탔던 기억을 떠올리며 라파쉬가 건네는 종이와 펜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생긴 통 안에 사람이 들어가고, 그걸 긴 케이블이 끌고 가는 거예요. 이런 통이 여러 개 있어서 계속 돌아가죠.”

나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내가 아는 정보를 모두 쏟아냈다. 정확한 작동 원리를 모르다 보니 설명은 상당히 빈약했다. 하지만 라파쉬는 내 말을 모두 이해했다는 듯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제작하려면 손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안개산의 동료들을 많이 불러와야겠어요.”

“음. 드워프들이 산을 떠나려고 할까요?”

라파쉬만 하더라도 마을을 떠나기 싫다며 고집을 부리지 않았던가. 내 생일 파티 때는 다들 큰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와주었지만, 이번 일을 맡게 되면 상당히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야 한다. 마을을 사랑하는 드워프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쉽게 수락하기 힘든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라파쉬는 별 이상한 걱정을 다 한다는 양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죠. 이런 색다른 물건을 만들 수 있는데요. 다들 흥분해서는 서로 가겠다고 싸울걸요?”

“그럴까요?”

“그럼요. 게다가 이브리아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다들 발 벗고 나설 거예요.”

“리쉬!”

나는 감동해서 라파쉬를 와락 끌어안았다. 덕분에 손에 들고 있던 종이와 펜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게 무엇이 대수인가 싶었다.

‘역시 드워프들은 천사야!’

어쩌다 유피테르를 얻어 피곤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성검의 주인이 된 덕분에 드워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건 뭡니까?”

내가 라파쉬를 얼싸안고 감동에 젖어 있는 사이 뒤에서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윽. 이 목소리는.’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녀석은 왜 매번 뒤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거야.’

나는 라파쉬를 놓아준 뒤, 떨떠름한 얼굴을 최대한 감추며 돌아섰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각하.”

내 말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종이를 주워 유심히 살피고 있던 메이슨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걸어서 왔습니다.”

“……지금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요.”

“방금 내게 어떻게 왔냐고 물었잖습니까?”

메이슨이 ‘넌 방금 한 말도 기억 못 하냐. 역시 멍청하구나?’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가 멍청하다는 거야.’

나는 불만을 속으로 꾹꾹 누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말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냐는 거였어요. 여긴 강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니까요.”

메이슨의 목적은 제방 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의 동선은 저택과 강. 그 두 개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게 맞다. 라파쉬의 작업장은 그 동선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이쪽에는 볼일이 없으시잖아요?”

“나는 강에서 저택 쪽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택이 나오질 않더군요.”

“……강에서 저택 쪽으로 걸었다면 이쪽으로 오셨을 리가 없는데요.”

완전히 반대 방향이니까.

“하지만 전 여기 있는데요.”

메이슨이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이 틀렸을 리가 없다는 저 자신감.’

나는 그제야 잠시 잊고 있었던, 모든 것이 완벽한 재상 메이슨의 유일한 약점을 떠올렸다.

‘이 남자. 엄청난 길치였지.’

메이슨과 캐서린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그의 길치 본능 때문이었다. 메이슨은 매번 똑같은 길을 헤매다 캐서린과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캐서린은 귀찮은 기색도 없이 메이슨을 제대로 안내해주었다.

‘그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깊어졌지.’

하지만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주는 캐서린이 아니었다.

“길을 안내하는 하인은요?”

인세티아 남작이 분명 메이슨에게 하인을 하나 붙여주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길 안내를 맡긴 거지만, 사실은 재상이 미심쩍은 행동을 하면 보고하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메이슨은 혼자였다.

“감시받는 건 질색입니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혼자 다니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감시가 아니라 안내를 위한 하인이었어요.”

“에렐의 영주.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내가 시찰을 한두 번 다녀본 것도 아닌데.”

메이슨이 보랏빛 눈을 빛내며 안경을 고쳐 썼다. 마치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모조리 읽어내릴 것만 같은 눈이었다.

‘길은 제대로 못 찾으면서 이런 일에만 눈치가 빠르지.’

안내를 위해서 하인을 붙여줬다는 말이 뻔한 거짓말이었던 건 사실인지라, 나는 딱히 반박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혼자 다니시니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잖아요.”

“난 길을 잃은 게 아닙니다.”

메이슨이 당당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길을 잃은 게 분명한데 이게 무슨 말이람.’

옆에 있던 라파쉬도 이 인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저택으로 돌아가시던 길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여긴 저택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각하께선 여기 계시고요. 그런 걸 보통 길을 잃었다고 표현하지 않나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라파쉬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메이슨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걷다 보면 결국 저택이 나옵니다.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니까요. 끝내 목적지를 찾으면 그건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죠.”

“계속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끝내 목적지를 찾을 수 없을 텐데요.”

대륙을 한 바퀴 돌아 목적지에 가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보통은 중간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제대로 된 길로 안내해주더군요. 그래서 전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똑똑한 놈이 이상한 믿음을 가지면 그게 제일 무섭다더니.’

도무지 설득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요.”

나는 이 문제로 메이슨과 논쟁하기를 포기하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절대 길을 잃은 게 아닌 재상님. 그거 저한테 돌려주시고, 계속 가시던 길 가세요. 저택이 나올 때까지 쭉.”

그러나 메이슨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거, 당신이 그린 겁니까?”

외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더욱 자세히 살피며 눈을 반짝였다.

“네. 그러니까 돌려주세요.”

“형태와 구조가 상당히 특이하군요. 이 마차 같은 구조물을 끈에 달아 옮기는 겁니까?”

학자답게 처음 보는 구조물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았다.

“이런 구조라면 관건은 이 마차 같은 구조물을 지지하는 끈이겠군요. 평범한 밧줄로는 어림도 없을 테고, 뭔가 강력한 끈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메이슨이 제자리에 선 채 무엇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나와 라파쉬는 보이지도 않는지, 집중력이 아주 대단했다.

“변수는 거리와 높이, 구조물의 무게와 탑승 인원. 이 모두를 견디려면 적어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의 손끝에서 알아볼 수 없는 수식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겠군요.”

한참이나 손을 놀리던 메이슨이 도출된 결론을 내 앞에 내밀었다. 숫자와 기호가 뒤섞인 결론. 당연하게도 나는 그 결론을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란 말이야.’

하지만 모른다고 말했다가는 또 메이슨에게 ‘넌 이 정도도 모르냐’는 시선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귀찮으니까 대충 알아들은 척 넘기자.’

“뭐, 네, 그렇죠. 그 정도로는 튼튼해야죠.”

그런 생각으로 대충 맞장구를 치자 메이슨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역시 그렇죠? 이 정도의 무게를 견디려면 철, 아니, 철도 부족하겠고…… 역시 미스릴 같은 금속을 사용할 예정입니까?”

그런 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 음, 아마도요?”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런 끈의 형태로 미스릴을 가공하는 게 문제 아닙니까?”

“어, 그건 여기 있는 리쉬가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드워프들은 뛰어난 장인이니, 이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역시나 내 시선을 받은 라파쉬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력은 어디서 구하죠?”

“어어…… 그건…….”

“아마 마법이겠죠. 마법이라면 이런 것도 가능할 겁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혼자 결론을 내린 메이슨이 다시 내게 물었다.

“아, 그리고 여기, 끈과 구조물 사이의 이동은 도르래를 활용합니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넋이 나가 입을 떡 벌렸다. 물음표 살인마다. 물음표 살인마가 나타났다!

다행인 점이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서 답을 찾아내 수긍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뭐, 당연히 도르래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메이슨이 자문자답을 하는 동안 어설프게 그려져 있던 나의 스케치가 어느새 정교한 설계도로 변해 있었다.

“당신이 생각해낸 것치고는, 뭐, 나쁘지 않은 구조물이로군요.”

메이슨이 다양한 정보로 빼곡하게 채워진 종이를 내게 돌려주며 안경을 고쳐 썼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가 건네는 종이, 아니, 완벽한 설계도를 받아 들었다.

‘이걸 가지고 당장 제작에 들어가도 되겠는데.’

처음 보는 구조물의 설계도를 한 자리에 선 채 만들어버리다니. 심지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넉넉하게 계산한다고 해도 30분을 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와. 이게 천재구나.’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메이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귀찮게 하는 물고기로만 보이던 메이슨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캐서린의 물고기들 중에서 메이슨을 제일 좋아했던 이유가 있다니까!’

“……갑자기 왜 그렇게 봅니까?”

호의적으로 변한 내 시선에 메이슨이 미심쩍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케이블카의 설계도를 얻은 내 눈에는 그 얼굴마저 훌륭한 천재의 초상처럼 보였다.

“재상님.”

“……예.”

메이슨이 경계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그 시선에 굴하지 않고 그에게 제안했다.

“저랑 산책하실래요?”

“산책……? 나랑 당신이?”

메이슨의 얼굴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양 일그러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얼굴을 보지 못한 척 메이슨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네. 어차피 저택으로 돌아가셔야 하잖아요. 저도 마침 그럴 생각이라서요. 목적지가 같으니 함께 돌아가시죠.”

“그렇군요.”

내 말에 경계심으로 가득하던 메이슨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오늘은 당신이 내게 길을 알려줄 안내자입니까.”

메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 옷깃을 붙잡은 내 손을 떼어냈다.

“갑시다, 저택으로. 내 옷은 잡지 마시고. 당신이 앞장서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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