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4/156)

* * *

제럴드를 치료하기 위해 불려온 의사는 그를 진찰하고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 이렇게 다친 겁니까? 집채만 한 산짐승이라도 만난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는데…….”

의사의 중얼거림에 집채만 한 산짐승처럼 무식하게 사람을 때려버린 해리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한 달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합니다.”

“한 달이나?”

“한 달도 최대한 적게 잡은 겁니다, 영주님.”

“그래도 더 빨리 나아야 해.”

자기 식구로부터 한 달이나 연락이 없으면 마법사협회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당장 일어나서 뛰어다닐 정도로 회복되는 걸 바라진 않아. 눈을 떠서 의사소통하게 되려면 얼마면 될까?”

내 말에 잠시 시간을 가늠해보던 의사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일주일 안에 가능합니다.”

“다행이네. 그렇게 부탁할게. 그리고 마법사가 이렇게 다쳤다는 사실은…….”

“당연히 함구하겠습니다, 영주님.”

의사가 눈치 빠르게 내가 할 말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 녀석 손도 좀 봐줄래?”

나는 해리의 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얼마나 마구잡이로 상대를 때렸는지, 해리의 손에도 여기저기 쓸린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악마라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좋다지만, 다친 걸 치료도 안 하고 넘어가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난 됐어.”

해리가 민망한지 손을 슬그머니 뒤로 뺐다.

“되긴 뭐가 돼요? 어서 치료받아요!”

나는 해리의 손목을 잡아끌어 의사의 앞에 들이밀었다. 의사가 내 손길에 반항도 하지 않고 질질 끌려오는 해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청난 대마법사님이라더니 왜-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 내가 해리를 너무 애 취급했나.’

나는 슬그머니 해리의 손목을 놓으며 헛기침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해리의 체면도 조금 지켜줘야겠다.’

* * *

해리는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목욕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볼일을 보러 갈 때까지 따라오려는 걸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미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 같군.’

나타 백작의 납치 사건 이후 해리가 보였던 반응과 아주 비슷했다. 그때의 해리도 과보호 모드로 변해 한동안 나를 귀찮게 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해리에게 명령했다.

“해리. 잠깐 나가 있어요.”

“싫어. 저 자식이 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해리는 침대에 누운 채 잠들어 있는 제럴드를 노려보며 내 명령을 거부했다.

“저 모습을 봐요. 저게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치료를 시작하기 전 제럴드가 반송장 같았다면, 지금은 중환자 정도로 모습이 나아져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저런 중환자한테는 안 당해요.”

“그래도…….”

“해리.”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해리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무슨 일 생기면 곧장 나 불러! 알았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빨리 나가요.”

더 지체했다가는 필사적으로 잠든 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제럴드가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았다.

“됐어. 해리는 내보냈으니까, 이제 일어나도 돼.”

나는 해리가 완전히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뒤 제럴드를 깨웠다. 역시나 잠든 척을 하고 있었던지, 제럴드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떴다.

“무, 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럴드가 덜덜 떨며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사정없이 흔들려 천이 펄럭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해리가 누구한테 세뇌당할 위인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지?”

내 질문에 제럴드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세뇌하면 세뇌했지, 절대 세뇌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외친 제럴드가 해리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맞았던 기억을 떠올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해리가 어떻게 했길래.’

과정이 아닌 결과만 본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가 결과이니만큼 엄청나게 때렸다는 건 알겠는데….’

무섭게 사람을 때리는 해리라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앞에서 워낙 순하게 구니까 말이지.’

“꼬마 마법사님은 이제 얌전히 협회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해리에게 계속 매달렸다가는 또…….”

나는 일부러 음산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문밖을 가리켰다.

“히익!”

제럴드의 얼굴이 단번에 하얗게 질렸다.

“그렇습니다. 협회에 연락해서 저분은 포기하시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생각했어. 목숨은 소중한 거잖아.”

“예에…….”

“꼬마 마법사님은 몸이 회복될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돌아가도 좋아.”

“예에?!”

내 말에 제럴드가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협회로 돌아가겠습니다! 치료도 거기에서 하면…… 어라?”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 계획을 풀어놓던 제럴드가 무엇을 떠올린 것인지 말을 멈추고 눈을 껌뻑였다. 마치 고장 난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제럴드는 눈동자만 좌우로 굴려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금 전보다 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어, 어, 어쩌지요?”

“뭘?”

“저, 저는 못 갑니다! 저분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니면, 협회로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뭐야. 아직도 그 소리야? 그건 포기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저는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제럴드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 저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 * *

나는 팔짱을 낀 채 길고 긴 제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금제를 걸었다고?”

“예.”

“금제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데?”

“마법사의 가장 무거운 다짐입니다. 말에 마력을 실어 금제를 걸었을 경우, 그걸 못 지키면…….”

“못 지키면?”

“마력을 모두 잃습니다.”

“뭐?”

‘대가가 별거 아니면 그냥 금제를 어기고 돌아가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마력은 마법사의 모든 것이었다. 그걸 잃는 건 인생을 전부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대가가 더 크잖아.’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제럴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하지만 내가 타박할 것도 없이, 그도 이미 자신의 지난날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었다.

“불쌍한 우리의 동지를 꼭 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따져보면 시작은 참 선량한 이유였다. 제럴드는 해리가 세뇌당한 불쌍한 마법사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미래를 걸어서라도 그를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가 생각하는 가련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 실책이 뼈아팠다.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이 가련한 꼬마 마법사를 위해 함께 방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정확히 뭐라고 다짐했는데? 어떻게 이리저리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세뇌당한 불쌍한 마법사를 구하기 전까지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제럴드가 시무룩한 얼굴로 해리가 있는 문밖을 힐끗거렸다.

“그런데 여긴 세뇌당한 불쌍한 마법사가 없잖습니까.”

“그렇지.”

“만약 그분을 세뇌당한 불쌍한 마법사라고 우겨본다고 하더라도, 제가 절대 구해서 데려갈 수 없고요.”

“그럼 결국…….”

내가 결론을 묻자 제럴드가 코를 훌쩍였다.

“예! 전 무슨 일이 있어도 협회로 못 돌아갑니다! 어엉!”

제럴드가 엉엉 소리를 내며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는 이제 어쩌나! 엉엉!”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때아닌 곡소리에 문밖에 있던 해리가 놀라서 안으로 들이닥쳤다. 땅을 치며 통곡하는 제럴드를 발견한 해리가 황당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데?”

“음. 이 꼬마 마법사가 망한 상황?”

“아이고오! 엉엉엉!”

내 깔끔한 정리에 제럴드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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