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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은 적중했다.
아치볼드가 5개의 파티장을 배회하고 온 뒤, 일주일 만에 에렐로 엄청난 수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모두 브로치 제작을 의뢰하는 편지였다.
‘청요석을 가문의 문장 형태로 만들어 장착하는 게 생각보다 잘 먹혔어.’
향기가 나는 기능도 물론 훌륭했지만, 드워프의 손으로 만들어 낸 가문의 문장은 그 형태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제작 과정의 특성상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도 귀족들의 구매욕을 불러일으켰다. 저 특별한 물건을 남들보다 더 빨리 갖고 싶다는 사람들이 넘쳐 났다.
그때 나는 슬그머니 추가 비용 카드를 내밀었다. 빠른 작업을 위한 추가 비용을 내면, 제작 순서를 앞당겨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빠른 순서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했다. 1골드를 낸 사람보다 앞에 가기 위해 10골드를, 10골드를 낸 사람보다 앞에 가기 위해 100골드를 냈다.
그러다 보니 브로치 가격은 당초 책정한 것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팔리게 됐다. 그런데도 귀족들은 브로치를 사겠다고 돈뭉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세티아 남작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고, 잔뜩 흥분해서 편지를 보냈다.
‘브로치가 많이 팔려서 인기가 시들해지면, 그다음 타자를 내보내면 되겠지.’
아직 반지와 팔찌, 커프스단추가 남아 있었다.
‘이건 영향력 있는 귀족들에게 선물로 보내서 그들이 착용하게 하면 광고가 될 거야.’
연예인에게 협찬을 해 주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액세서리 판매가 늘어나면 라파쉬 혼자 감당이 안 되겠는걸…….’
아무래도 드워프를 추가로 고용해야 할 것 같았다.
‘드워프 마을에서 나오는 게 부담스럽다면 외주 형태로 주문을 넣는 것도 가능해.’
에렐로 돌아가면 라파쉬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오라버니의 하루를 산 비용을 지불하러 왔어요.”
나는 아치볼드를 찾아 그에게 생일 선물 목록을 내밀었다.
“늦었다. 일주일이나 걸리다니.”
“전 다음 날 바로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분명히 약속을 지켰다. 아치볼드가 파티장에 다녀온 다음 날, 그가 말했던 것처럼 원하는 선물 30개를 적은 목록을 들고 찾아갔다. 하지만 내가 쓴 목록을 본 아치볼드는 종이를 구겨 곧장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반지, 목걸이, 팔찌…… 그런 식으로 대충 쓰면 목록을 작성하는 의미가 없잖아.”
그는 품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내 목록을 반려하고, 다시 목록을 작성해 오라고 말했다.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더 목록을 거절당하고, 오늘이 네 번째 방문이었다.
‘정말 상사한테 품의서 결재받는 기분이야.’
아치볼드는 꼼꼼하게 내가 건넨 목록을 살펴보았다. 나는 이번에도 반려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내가 작성한 목록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명했다.
“제품 이름, 판매하는 곳, 가격까지 다 썼어요. 이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오라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래. 이번엔 훌륭하군.”
드디어 통과였다.
“정말이죠? 다시 작성해 오라고 안 하는 거죠?”
불안한 마음에 재차 확인하자 아치볼드가 특유의 나른한 얼굴로 내가 제출한 목록을 흔들었다.
“다시 작성하고 싶은가 봐? 그렇게 계속 물어보는 걸 보면. 다시 쓸래?”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나는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아치볼드의 입을 막기 위해 재빨리 준비해 온 선물을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뭔데?”
“선물이에요.”
“선물 목록을 써 오랬더니, 왜 나한테 선물을 주는 거지?”
아치볼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면서도 내가 내민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청요석 커프스단추가 들어 있었다.
“이것도 마도구?”
아치볼드는 커프스단추에 장착된 청요석을 보고 단번에 정체를 알아맞혔다.
“네. 클린 마법이 각인돼 있어요.”
나는 상자에서 커프스단추를 꺼내 그의 셔츠에 직접 달아 주며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청요석에 3초간 손을 대고 있으면 활성화돼요. 그러면 클린 마법이 활성화돼서 셔츠가 깨끗해지죠.”
나는 시범 삼아 아치볼드의 셔츠에 달린 커프스단추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서류를 살피느라 검은 얼룩이 묻어 있던 그의 셔츠 소매가 새하얗게 돌아왔다. 마치 새 셔츠를 보는 것 같은 깔끔함이었다.
“이건 꽤 편리하겠네.”
향기로운 브로치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던 아치볼드가 만족스러운 눈으로 커프스단추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에렐에서 개발한 건가?”
“네. 시제품으로 몇 개 가져왔는데, 오라버니께 유용할 것 같아서요.”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치볼드가 내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것도 브로치처럼 파티장에서 열심히 보여 주고 다니라는 뜻 아닌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 그런 의도도 있죠.”
“난 부탁을 할 때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들었는데.”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내가 생일 선물 목록 작성을 대가로 아치볼드의 하루를 요구하며 한 말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그대로 말하다니.
‘발뺌도 못 하겠네.’
아치볼드는 아주 훌륭한 모델이었다. 그가 브로치처럼 커프스단추도 홍보해 준다면, 어느 정도의 대가는 충분히 치를 만했다.
“무슨 대가를 원하시는데요?”
“이거.”
아치볼드가 팔을 들어 커프스단추를 가리켰다.
“시제품으로 가져온 게 더 있다고 했지?”
“네. 5개 가져왔고, 오라버니께 하나 드렸으니, 이제 4개가 남아 있어요.”
“그럼 아버지께도 하나 선물하지 그래?”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오베론 공작도 왕도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커프스단추를 써 준다면 엄청난 홍보가 될 테니 내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냥 선물만 주고 오지 말고, 나한테 했던 것처럼 직접 달아 드려. 그게 내가 원하는 대가야.”
“그거면 돼요?”
내 질문에 아치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지금 당장 가야 돼. 왕궁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안 좋으시거든.”
“……이게 무슨 벌칙 게임 같은 거예요? 기분이 안 좋으시면 그걸 피해서 가야죠.”
나는 합리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치볼드는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채 손가락으로 커프스단추를 톡톡 두드렸다.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