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피테르가 가진 능력은 총 1047가지였다.
대부분이 잡다하고 어이없는 것이라, 쓸 만한 것은 외상을 치료하는 능력이나 몸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능력 정도였다.
“도대체 이 많은 능력을 어떻게 외우는 거예요?”
[천 년 넘게 그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저절로 외워집니다.]
유피테르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성검에 1047가지 능력을 부여할 능력은 있으면서, 화려한 빛이나 내뿜는 어이없는 속성만 잔뜩 집어넣은 작자의 얼굴이 너무 궁금했다.
‘보통 괴짜는 아니었을 거야.’
나는 유피테르를 다리에 장착하고 치마를 정돈했다. 평소에는 해리에게 넘겨 두지만, 오늘은 외부에서 손님이 많이 오는 날이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내가 가지고 있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용기사를 선보이는 날이거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엠마가 분주했지.’
엠마는 귀족들에게 우리 영주님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며 이른 아침부터 나를 닦달해 거울 앞으로 이끌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꼭 이렇게까지-라니요. 겨우 이것밖에 못 하는 겁니다, 아가씨!”
엠마가 처음 나를 만났을 때처럼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최근 에렐이 커지고 교역량도 많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시골은 시골입니다. 왕도에서 쓰는 화장품의 반도 못 구했어요.”
“꼭 왕도에서 쓰는 화장품을 구할 필요는 없잖아.”
“그럼요. 어떤 화장품을 쓰든 우리 아가씨는 아름다우시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빛나게 하려는 제 욕심이랄까요.”
엠마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나라를 구할 대단한 임무라도 맡은 사람 같았다.
엠마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나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엠마는 치장을 더 해야 한다며 아쉬워했지만, 3시의 티타임에 맞춰 손님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12시에는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만찬이 아니라 티타임을 열었으니 망정이니.’
그게 아니었다면 해가 질 때까지 엠마에게 붙잡혀 있을 뻔했다. 시원하게 문을 열고 나온 나를 보며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래요?”
“그냥.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아서.”
해리가 낯선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해리를 불러낸 뒤로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꾸민 건 처음이었다. 드레스에, 머리에, 화장에. 왕도에서 사교 파티에 참여했을 때는 이보다 더 본격적이었지만, 에렐에서는 이 정도도 충분히 화려했다.
“엠마가 엄청나게 힘을 줬거든요. 화장을 진하게 해서 얼핏 보면 다른 사람 같아요.”
엠마는 신의 손으로 내 인상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었다. 매섭게 올라간 눈꼬리를 최대한 내려 사나운 느낌을 줄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별로 다른 사람 같지는 않은데. 어차피 그냥 너잖아.”
“그런가요?”
“응. 역겨운 냄새도 안 나고.”
“……그 말은 딱히 칭찬처럼 안 들리거든요.”
‘칭찬에 서툰 악마 같으니.’
이럴 때는 그냥 예쁘다고 해 주면 끝인데. 저렇게 멀쩡한 얼굴을 가지고도 2천 살 먹도록 키스 한 번 못 해 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해리, 그러다가 평생 연애도 못 해 보고 죽을걸요.”
“그건 무슨 신선한 저주야?”
“날 칭찬 안 해 주니까 그렇죠. 지금이라도 기회 줄 테니까, 빨리 나 예쁘다고 해요.”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게 옆구리 찔러서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아?”
“당연하죠. 세상에 기분 나쁜 칭찬은 없어요. 어서요.”
내가 재촉하자 나를 빤히 쳐다보던 해리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예뻐.”
“작아서 안 들려요.”
“예쁘다고. 네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
“……뒤의 그 말은 응용이에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인데.”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내가 버벅거리자, 해리가 씨익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래도 내가 평생 연애도 못 하고 죽을 것 같아?”
“얼굴 그렇게 쓰지 말랬죠.”
나는 해리의 얼굴을 밀어내고 재빨리 앞으로 걸었다. 그 뒤를 해리가 따라붙었다.
“이브리아.”
“밖에서는 말하지 말라니까요.”
“응, 알아. 밖에서는 과묵할 것. 그게 규칙이지.”
“그런데 왜 계속 말해요?”
“너 지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거든. 그건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걸음이 우뚝 멈췄다.
“티타임 장소는 저쪽이거든. 기사들하고 같이 예행연습 해서 알고 있어.”
“……나도 저쪽인 거 알았어요. 잠시 헷갈린 것뿐이지.”
서둘러 방향을 트는 나를 보며 해리가 작게 웃었다.
“영주님.”
해리와 투닥거리며 모퉁이를 돌자마자 인세티아 남작과 마주쳤다.
“남작.”
다행히 그는 해리와 내가 투닥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내게 오늘의 일정을 되새겨 주었다.
“이제 곧 손님들이 하나둘씩 도착할 겁니다. 파티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신 뒤에 3시가 되기 전까지 다양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3시가 되면 모두의 앞에서 환영사를 하시면 됩니다.”
“참석 인원은 총 몇 명이죠?”
“초대장은 엄선한 30명의 귀족에게 보냈습니다. 지방 귀족 중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로요.”
인세티아 남작이 중간에 명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는 봐도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왕도 귀족들이야 소설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 눈에 익은 이름이 있다지만, 지방 귀족들은 전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남작이 알아서 잘해 줬겠죠. 모두 참석한다고 하던가요?”
“당연합니다. 용기사를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인데, 참석하지 않을 리 없지요. 초대장을 받지 못하신 분들께서 따로 연락까지 하셨습니다.”
“그중에 왕도 귀족도 있었겠군요?”
“예.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훌륭하네요. 나타 백작도 참석하겠다고 하던가요?”
“예.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회신을…….”
남작이 말끝을 흐리며 복도 끝을 응시했다.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왼쪽 뺨에 긴 상처가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사나운 기세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남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저 사람이 나타 백작이겠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인세티아 남작이 작게 속삭였다.
“나타 백작입니다.”
“변경백답게 건장하고 거칠게 보이는군요.”
“나타 백작이 개중에서도 유독 그렇지요.”
인세티아 남작이 빠르게 나타 백작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는 동안, 그가 우리에게 가까워졌다.
“초대해 줘서 고맙소, 영주. 내가 ‘그’ 나타 백작이오.”
묘하게 뼈가 있는 인사였다. 나는 모르는 척 그의 인사를 받아넘겼다.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이지요? 백작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오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용기사를 처음 공개한다지 않소. 당연히 와서 지켜봐야지.”
“먼 길 오신 만큼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래야 할 거요. 다들 기대를 많이 하고 있거든.”
나타 백작이 비죽 웃으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용기사를 본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인세티아 남작의 도움을 받아 초대에 응해 준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무리의 젊은 여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에게 다가서기 전 인세티아 남작이 여인들의 이름을 모두 알려 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루센 자작 부인, 헤세드 백작의 딸 레이디 실라, 일세 백작의 딸 레이디 리엔.’
나는 다시 한번 그들의 이름을 되새기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아무래도 나이 지긋한 남성들을 상대할 때보다, 이렇게 또래의 여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즐겁고 편했다.
하지만 대화를 하는 내내 여인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내 뒤를 지키고 선 해리였다.
“영주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해리가 정중하게 나를 불렀다. 그러자 앞에 선 세 여인이 황홀한 얼굴로 탄성을 터트렸다.
“해리 경, 무슨 일인가요?”
어색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곧 용기사들의 시범 대련이 시작됩니다. 저 역시 기사단에 합류하겠습니다.”
“그래요. 저택 내부는 안전하니, 경이 굳이 날 호위할 필요는 없죠. 기사단에 합류하도록 하세요.”
해리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겨우 달래며 고개를 숙인 뒤 기사단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악마답게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해리는 용기사들의 시범 대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어머, 세상에. 영주님의 호위 기사인가요?”
해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실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리엔도 목소리를 높였다.
“저리 훌륭하게 생긴 기사는 처음 봤습니다. 왕도의 사교 파티에도 몇 번 참석했습니다만, 거기에서도 저런 훌륭한 호위는…….”
리엔이 이미 사라진 해리의 뒷모습을 좇으며 빠르게 부채질을 했다. 다른 뜻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함인 듯했다.
“혹 저 기사분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해리 경입니다. 저희 오베론가의 용기사단인 제5 서리 기사단 소속이죠.”
“해리 경이라면, 평민인가요?”
리엔이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에렐같이 와이번이 출몰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직까지도 평민 출신 기사는 많지 않았다.
“예. 에렐은 출신에서 자유로우니까요.”
“하긴. 저런 분이라면 출신을 막론하고 곁에 두셔야지요.”
리엔이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떠보았다.
왕도에서는 번듯한 호위 기사를 가까운 친구에게 빌려주는 일도 왕왕 있었다. 내 뛰어난 기사를 너도 한번 즐겨 보라는 의미였다.
‘해리를 빌려 달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러겠다고 해도, 해리가 펄쩍 뛰며 내 명을 듣지 않을 터였다.
‘키스도 얼마 전에 처음 했는데, 이 아가씨가 바라는 만큼의 일을 할 수도 없을 테고.’
나는 생긴 것과 달리 너무 숙맥인 해리를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왕도에서는 번듯한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지요?”
유일한 기혼자답게 루센 자작 부인이 들뜬 분위기를 살짝 눌렀다.
“확실히 왕도에 그런 유행이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 경은 그럴 목적으로 둔 호위가 아니랍니다.”
“그러고 보니 용기사라고 하셨지요. 이번 시범 대련에도 모습을 보인다고요.”
“예. 곧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늘에서요.”
내가 하늘을 가리키자 여인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사라니. 그런 건 동화책 속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죠. 어릴 적 동화책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죠. 그걸 진짜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루센 자작 부인과 실라가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두 손을 그러쥐었다.
그 순간 한쪽에서 길고 웅장한 나팔 소리가 울렸다. 곧 시범 대련이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이제 곧 시작할 모양입니다. 편하게 앉아서 즐기시죠.”
나는 엠마의 화장 덕에 한결 부드러워진 인상으로 미소를 지으며 여인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 * *
하늘 위로 용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밝은 햇살에 반짝이는 와이번의 갑옷과 그 위에 올라탄 새하얀 제복의 기사들. 바람의 결에 따라 흔들리는 기사들의 망토가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시범 대련은 두 조로 나눠 가상의 전투를 치르는 것으로 짜여 있었다. 해리가 이끄는 붉은 망토의 홍군과 라이오넬이 이끄는 푸른 망토의 청군이었다.
큰 시나리오는 이랬다. 처음에는 라이오넬의 청군이 홍군을 밀어붙인다. 그러다 홍군이 궤멸 직전에 다다르면, 원군을 끌고 나타난 해리가 엄청난 무용을 선보이며 역전을 이뤄 낸다. 단순하지만 기승전결과 적당한 영웅 서사까지 담은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이 무대의 주인공은 해리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빛이 나는 해리였다. 그런 잘생긴 청년이 와이번 위에서 창을 휘두르며 곡예를 선보이자 여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공중을 수놓은 화려한 대련에 잔뼈가 굵은 변경백들도 감탄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춰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리가 청군의 마지막 적을 베어 떨어뜨리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다. 주방장이 신경 써서 내어놓은 차와 다과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다들 하늘을 바라보느라 음식에 손을 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고생한 주방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성공적인 용기사 데뷔야.’
뿌듯하게 기뻐하는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입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막 시범 대련을 마친 용기사들이 파티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응?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용기사들의 역할은 시범 대련으로 끝이었다. 그들이 파티장에 나와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일은 미리 협의하지 않았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나?’
엄청난 환호를 받았으니 들떠서 인사를 하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다들 멋지게 제복을 차려입었으니까, 그 상태로 인사하는 것도 기억에 남겠지.’
하지만 용기사들은 파티장 안의 귀족들, 그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귀족들을 지나쳐 내 앞에 멈춰 섰다.
“영주님.”
제일 앞에 선 라이오넬이 나를 부름과 동시에 기사들이 제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라이오넬 경?”
이게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라이오넬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허리에 찬 검을 뽑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도열한 다른 기사들도 모두 검을 뽑았다. 스르릉 소리를 내며 뽑히는 검에 귀족들이 숨을 삼켰다.
“말해 보세요. 무슨 일인가요?”
“오늘, 이 자리에서, 저희 모두 영주님께 기사로서의 충성을 맹세하고자 합니다.”
라이오넬이 뽑아 들었던 검을 두 손으로 받들어 내게 내밀었다. 뒤쪽에 도열한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기사 구실을 못 하던 저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직접 이끌고 가르쳐 저희를 구제해 주셨으니, 영주님 이외의 어떤 분에게 이 충정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세상에…….”
뒤에서 지켜보던 실라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사들의 맹세. 주군과 레이디를 향한 오로지 단 한 번의 기회. 여기 모인 기사들 모두 그 한 번의 기회를 내게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충성을 바친대?’
충성 서약으로 맺어진 주군과 기사는 평생을 함께한다.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쉬이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 부담스러워. 거절하고 싶어.’
하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공공장소에서 공개 고백을 당한 여자의 심정이 이런 걸까.’
어쩌면 친구들을 모아 둔 자리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의 심정이 이럴지도 모른다.
“나는……”
내 입이 열리자 라이오넬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입술을 주목했다. 무릎 꿇고 앉은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초대된 귀족들 모두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들의……”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달싹여 겨우 한마디를 뱉어 냈다.
“충성을 기꺼이 받겠다.”
“주군!”
라이오넬이 감격에 차서 외쳤고,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왜 자꾸 군식구가 늘어나는 거야? 이런 충성 나는 필요 없어!’
<다음 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