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바쁜 일정을 최대한 조정해 왔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었던지, 공작은 차 한 잔 마시지도 않고 곧장 왕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공작이 이곳에 와서 한 일은 라파쉬를 만나고, 청요석에 대해 알려 준 것이 혹시 함정은 아닌지 확인한 것뿐이었다.
‘그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면 인세티아 남작을 시켰어도 됐을 텐데.’
공작의 진짜 목적은 이브리아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보낸 청요석과 편지가 좋은 핑계가 되었을 것이다.
‘공작은 이브리아를 성가신 딸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원작의 이브리아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에렐로 보내진 이후 좌절에 빠져 결국 자살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그녀는 자신이 결코 왕도로, 예전의 화려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가족이 자신의 든든한 우방이라는 걸 알았다면 결코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멀어지는 공작의 마차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이상하게 아릿해졌다. 아마도 이브리아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멍하니 멀어지는 마차를 보고 있는 내 뒤로 인세티아 남작이 다가왔다.
“영주님.”
고작 몇 시간 전까지 영주였던 사람에게 ‘영주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왜 영주 자리를 쉽게 포기한 거예요? 끝까지 놓지 말았어야죠.”
“좋은 자리는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으니까요.”
“그냥 업무가 너무 많아서 쉬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남작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어차피 아가씨께서 왕도로 돌아가시면 제가 다시 영주가 될 텐데, 그전까지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보려고 합니다.”
“만약에 내가 왕도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으면 어쩌려고요?”
“그러시면 전 그냥 영주의 보좌역으로 월급쟁이 인생을 사는 거죠.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남작은 참으로 야망이 없네요.”
“제가 모시는 분을 더 높은 곳까지 올려 드리고픈 야망은 있습니다.”
“아버지는 공작인데, 그것보다 더 높으면 반역이거든요!”
“그래서 여태까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남작이 천연덕스럽게 내 말을 받아치며 나를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공작이 탄 마차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번 주는 간단히 영주의 업무 파악부터 하시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영주로서의 일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이 많은 편인가요?”
“평범한 영지 운영과 비슷합니다. 혹시 본가의 살림을 맡으신 적이 있습니까?”
가문의 살림은 안주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베론 공작가는 안주인이 일찍이 지병으로 사망해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 경우 딸이 어머니를 대신해 안주인의 역할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브리아는 어렸고, 무엇보다 그런 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인세티아 남작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처음에는 조금 낯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으니 금세 익숙해지실 겁니다.”
어렵지 않다. 금세 익숙해진다.
‘사수가 신입에게 하는 선의의 거짓말 1위와 2위가 여기서 나오네.’
그래서 인세티아 남작의 말을 듣자마자 알아챘다.
영주의 업무라는 거, 아주 많이 빡셀 거라고.
* * *
인세티아 남작의 말처럼 업무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보고서를 받고, 상황을 검토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이 ‘적절한 조치’가 문제였다. 나는 아직 에렐의 사정에 밝지 않았다. 덕분에 ‘적절한 조치’가 무엇인지 결론 내리기 위해 각종 자료와 책을 산더미처럼 읽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영주의 집무실 역할을 하게 된 내 응접실에는 언제나 각종 서류와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종이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아.”
후각이 예민한 해리는 눅눅한 종이 냄새가 싫다고 투정을 부리며 서류로 비행기를 접어 여기저기로 날려 버렸다.
“난 네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귀찮고 복잡한 일을 하게 만든 원흉을 죽여 버리면 되잖아? 얼마나 편하고 간단해?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어, 이브리아.”
과연 악마다운 해결책이었다.
“그 원흉이 왕세자라서요. 그랬다간 반역으로 목이 뎅겅 잘려요.”
“그럼 왕세자를 없애고, 그걸 반역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전부 죽이면 되잖아.”
“그렇게 되면 세상이 날 미친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할걸요.”
“그럼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전부 죽이면 되지.”
“해리, 그렇게 다 죽이다 보면 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안 남아요.”
“왜 너 하나밖에 안 남아?”
해리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비행기를 날려 버리고 내게로 조르르 달려왔다.
“너의 계약자, 너의 충실한 개, 이 테오하리스가 네 옆에 남아 있을 텐데.”
책상에 머리를 올리고 생긋 웃는 얼굴만 보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와. 해리와 단둘만 남아 있는 세상이라니. 정말 안 끌리네요.”
“왜 나랑 둘만 남는 게 싫어?”
“더 이상 죽일 사람이 없으면 이제 날 잡아먹겠다고 날뛸 거잖아요. 내 피와 살을 악마에게 바치긴 싫어요.”
“너 전부터 진짜 이상한 오해를 하는데, 악마는 인육 안 먹는다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쾌락이라고, 쾌락!”
해리가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에게 목을 물린 경험이 있는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도 나 먹으려고 했잖아요.”
“그건!”
“그건?”
빨간 눈을 빤히 쳐다보니 해리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어느새 해리의 양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입을 뻐끔거리던 그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니까, 그건!”
큰 결심을 했는지 해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는 귀가 아니라 그의 얼굴 전체가 눈동자 색처럼 뻘겋게 변해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뭐냐고요!”
나는 답답해져 해리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한 건 해리가 아니라 유피테르였다.
[주인님. 아마 이 악마가 말하는 ‘잡아먹는다’는 동침을 이야기하는 걸 겁니다.]
“……어어?”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야, 성검! 그걸 네가 말하면 어떡해?”
[어차피 말하려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아니었어!”
[전 지금 말하려고 하신 줄 알고. 실수했다면 죄송합니다.]
“사과하면 다야? 벌써 다 들었잖아! 쏟아진 물은 다시 못 주워 담는다고.”
[그렇군요. 그럼 이왕 실수했으니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악마들은 쾌락을 위해 살아가는데, 쾌락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이나 이성과의 동침 같은 자극적인 행위를 합니다. 본능만을 좇는 유해한 종족이지요. 부디 조심하십시오, 주인님.]
“이 망할 성검이!”
해리가 발끈해서 책상을 내리쳤다. 유피테르가 눈에 보였다면 당장 검을 녹여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안전하게 나의 허벅지에 잘 숨겨져 있었다. 유피테르도 그걸 알고 할 말을 모두 쏟아 낸 것이 분명했다.
“해리. 꼭 살인이 아니라도 쾌락을 채울 수 있는 거면, 왜 그 방법을 안 썼어요?”
나는 씩씩대는 해리를 향해 물었다. 해리가 살인 타령을 하지 않았으면 와이번을 죽일 생각도 안 했고, 그러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일도 없었을 텐데! 억울한 심정으로 해리를 쳐다보니 그가 답지 않게 풀이 죽어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인간은 역겨워.”
“인간을 앞에 두고 할 말인가요, 그게?”
“하지만 넌 예외야. 내 계약자니까.”
해리의 붉은 눈이 흔들리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불을 닮은 눈동자 색 때문인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 뜨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오래 봐도 역겹지 않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짜증도 나지 않아. 악마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인간의 특권이지. 영혼에 내 냄새가 묻어서, 전혀 역겹지 않아.”
해리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이브, 넌 역겨운 인간과 함께 자면 쾌락을 얻을 수 있겠어? 아무리 즐거운 행위라도, 역겨운 상대와 한다면 그건 결국 역겨운 거잖아?”
“아마 그렇겠죠.”
“그러니까 내가 살인 이외의 행위로 쾌락을 채우고 싶다면, 그건 너하고 밖에 할 수 없어. 이 땅에서 내게 유일하게 역겹지 않은 존재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살인하지 않고 쾌락을 얻으려면 나랑 그렇고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결론에 다다르자마자 얼굴에 열이 몰렸다. 지금 내 얼굴색이 어떤지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엄청나게 붉어졌을 거라는 걸 얼굴의 열기로 알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나를 보며 해리가 픽 웃었다.
“야, 됐어. 부스러기는 안 건드려.”
유피테르도 해리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악마는 미성년 기간 동안 아주 약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일족의 의무입니다. 어린아이를 건드리면 천하의 파렴치한으로 몰려 일족에서 추방당하지요. 그러니 주인님께서 성인이 되시기 전까지는 손을 못 댈 겁니다.]
“거봐. 그렇다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주인님께서 성년만 되면 언제든 흑심을 품고 손을 댈 수 있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이 악마가 일족에서 추방당할 정도의 파렴치한일지도 모르고요.]
“야 성검!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보긴요? 악마를 악마답게 봐 주는 겁니다.]
“이브리아, 이놈이 하는 말은 다 헛소리니까, 그냥 잊어버려.”
“하지만 살인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쾌락을 채울 수 있다는 건 맞는다는 거잖아요.”
내 질문에 해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아, 어, 응. 그렇지. 응.”
해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그럼 전 계약자랑도 그 방법을 썼어요?”
“뭐?”
고개를 숙인 채 어색하게 쭈뼛대던 해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머저리 놈이랑 내가 그걸 왜 하는데? 게다가 걘 남자였거든!”
“제레인트의 시조가 남자인 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뭐랄까, 악마는 남자 여자 안 가리는 이미지라서…….”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들은 악마에 대한 이상한 편견들이 있는 것 같다니까.”
해리가 불만스럽게 입을 비죽였다.
“뭐, 안 가리는 놈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건 악마도 인간도 마찬가지잖아. 난 그쪽은 아냐.”
나는 투덜거리는 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해리가 폭주할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해리가 폭주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니, 와이번 사냥처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당장 마수 사냥을 나설 수는 없는데.’
마수가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른 영지라 허가받는 일이 까다로운 데다, 어떻게든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먼 길을 떠나야만 했다.
‘이래저래 쉬운 일은 아니지.’
그럼 손 놓고 폭주하게 두는 것보다 다른 쪽의 방법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해리, 만약에 그 방법을 쓰면, 인간하고 동침하는 건 내가 처음이겠네요?”
“그…….”
내 질문에 겨우 진정을 찾았던 해리의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 너, 넌 왜 또 그런 이상한 의미 부여를 하고 그래?”
“의미 부여가 아니라 사실 확인을 좀 하려고요.”
“무슨 사실?”
“아직 한 번도 그 방법으로 쾌락을 채워 본 적이 없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작 시도해 보니 나도 다른 인간처럼 역겹게 느껴진다든가 그럴 수도 있고.”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해리도 미처 생각을 해 보지 못한 부분인 것 같았다.
“원래 첫 시도는 불확실한 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확실히 해 두고 싶었죠. 뭐, 지금 같은 상황이면 불확실해도 해 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잠깐!”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해리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결국 그가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너 지금 나랑 그, 동침을 하겠다는 거야?”
“필요하다면요……? 해리가 폭주 안 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뭐?”
해리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넌 부스러기잖아!”
“내 나이 정도면 충분하죠. 몇 달 뒤에 생일만 지나면 성인인데.”
법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다들 성인으로 대우를 해 주는 편이었다. 게다가 이 세계의 귀족들은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라 성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 어른으로 대접받고 부부의 의무도 다했다.
‘그리고 내 정신 연령은 성인을 훌쩍 넘었으니까 말이지.’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다.
‘어떡하겠어? 필요하면 해야지. 얘가 폭주해서 연쇄 살인을 해 버리거나 그러면 곤란하잖아.’
불 하나 피우겠다고 악마를 소환한 나의 원죄였다.
“그래도 혹시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동침하는 건 정말 급할 때, 최후의 상황에만 해요. 그 전까지 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내 말에 해리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한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아. 아까 말했던 두 번째 문제는 지금 한번 시험해 볼까요?”
“두 번째 문제?”
“정작 하려고 하면 나도 다른 인간처럼 역겹게 느껴질지도 모르잖아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면 곤란하니까, 지금 미리 시험해 봐요.”
“그걸 어떻게 시험하는데?”
“그거야 간단하죠.”
나는 손을 까딱거려 해리를 불렀다. 해리는 의아해하면서도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의자에 앉아 올려다본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너무 높잖아요. 높이 좀 낮춰 봐요.”
“이렇게?”
해리가 한쪽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잘했어요.”
“또 나를 개 취급하지.”
칭찬하며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손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이런 칭찬에도 꽤 익숙해진 게 틀림없었다.
“고작 이렇게 머리 쓰다듬는 게 시험이야? 이 정도는 당연히 역겹지 않아.”
“에이. 이 정도로는 시험이 안 되죠.”
나는 머리 쓰다듬던 손을 밑으로 내려 해리의 턱을 들어 올렸다. 시선이 차례로 눈, 코, 입을 훑었다가 해리의 눈으로 돌아갔다. 붉은 눈동자가 긴장으로 조금 흔들리는 게 보였다.
“동침했을 때 역겹지 않은지 시험해 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정도?”
“응. 이 정도.”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해리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해리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느리게 껌뻑이던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해리의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에 혀를 밀어 넣자 순식간에 서로의 숨이 섞였다. 서로의 온도, 서로의 체향, 서로의 소리.
나는 가볍게 해리의 입안을 훑고 나와 그를 놓아주었다. 내가 떨어지고 난 후에도 해리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때요?”
“……어?”
내 질문에 해리가 멍하니 되물었다.
“어땠냐고요. 역겹지 않았어요? 그거 해도 될 것 같아요? 난 될 것 같은데.”
“……어어?”
“이게 해리만 안 역겨워서 될 게 아니잖아요. 내가 안 역겨운지도 중요하니까, 이렇게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다행히 난 괜찮았어요.”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해리의 몸은 적당히 따뜻했고, 섞이는 체향과 숨은 달콤했다.
‘짧게 입을 맞춘 것뿐인데.’
꽤 기분이 좋았다.
“어, 나도 안 역겨웠어.”
내 질문에 해리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아. 안 역겨웠어. 괜찮았어.”
두 번째 대답은 좀 더 명확했다. 여전히 얼빠져 보이긴 했지만, 나와 닿았을 때 큰 문제가 없는 건 확실했다.
“그럼 문제없네요. 동침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죠.”
[……주인님. 정말 저 악마와 동침하실 거라면, 그땐 저를 다른 방에 두고 해 주십시오. 이왕이면 소리도 안 들리는 먼 곳이 좋겠습니다.]
유피테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