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1/156)

5장. 청요석

라파쉬의 눈은 정확했다.

그녀는 자신이 약속했던 대로 정확히 이틀 후에 실험 결과를 가지고 내 앞에 나타났다. 아름다운 푸른색의 돌. 보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이게 청요석이라고요?”

“확실해요. 내 망치가 반응했으니까.”

“리쉬의 망치가 마도구였어요?”

나는 라파쉬가 휘두르던 거대한 망치를 떠올렸다.

‘당연히 힘이 엄청나게 세서 그걸 깃털처럼 다루는 줄 알았는데.’

“마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크고 무거운 망치를 휘두를 수 있겠어요? 아무리 드워프들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힘들죠.”

“무게를 조절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건가요?”

“네. 자유자재로 무게 조절이 가능하게 되어있죠. 저 말고 다른 드워프들의 망치도 전부 마도구예요.”

“전부요?”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내 눈으로 확인한 드워프만 해도 수십인데, 그들 모두 마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라파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가 유일하게 교류하는 인간 조직이 마법사 협회거든요. 우리는 지팡이를 만들어 주고, 그쪽에선 마법을 각인해 줘요. 상당히 합리적인 거래죠.”

어째서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드워프 마을의 위치가 정보 길드에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마법사 협회를 통해 얻은 정보였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이 청요석?”

시험적으로 만든 청요석은 다섯 개. 그중 하나는 실험을 위해 라파쉬의 망치에 장착했고, 남은 건 넷이었다.

“본가에 알려야죠. 편지와 함께 청요석을 보낼까 해요.”

‘그럼 그 뒤는 오베론 공작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청요석 세 개를 탁자 위에 올려 두고, 나머지 하나는 서랍에 보관했다.

‘보험으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되겠지.’

오베론 공작이 청요석만 받고 입을 싹 닦을 경우에 대한 대책이었다.

“이브리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라파쉬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 라파쉬를 보았다. 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맞다. 드워프는 신의를 중시하는 종족이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네.’

그 앞에서 횡령을 시도했으니 이처럼 싸늘한 반응이 돌아오는 건 당연했다.

“……역시 이건 좀 그렇죠?”

조심스럽게 묻자 라파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요. 하하.”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그러나 내가 듣기에도 아주 어색했다-웃으며 슬그머니 서랍에 넣은 청요석을 꺼냈다. 그러자 라파쉬가 더욱 사나운 표정이 되어 탁자 위의 청요석 3개를 움켜쥐었다.

“이브리아!”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내 이름을 부르더니, 움켜쥔 청요석 3개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으잉?’

영문 모를 상황에 놀라서 라파쉬를 쳐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브리아.”

“네?”

“본가에는 하나만 보내도 되잖아요. 나머지는 이브리아의 주머니에 넣어 둬요!”

아. ‘말이 안 된다’는 게 그쪽의 ‘말이 안 된다’였어?

‘난 겨우 1개 빼놓을 생각만 했는데.’

역시 드워프의 배포는 내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 * *

본가에 편지와 함께 청요석을 보낸 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검술 훈련에 나섰다. 공작이 청요석을 발견해 낸 보상을 주면 당연히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빼돌려 둔 청요석이 3개나 있으니 꽤 큰돈을 만질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홀가분한 마음은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내게 검술을 가르쳐 줄 선생이…….”

“접니다, 아가씨!”

라이오넬이 내 앞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라이오넬이 누구한테 검을 가르쳐 줄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무장에 있는 기사들은 행여나 나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최대한 땅을 보며 훈련 중이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은 이 기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라이오넬을 불렀다.

“라이오넬 경.”

“예, 아가씨.”

“혹시 내 검술 스승이 되겠다고 자원했어요?”

“그렇습니다. 아가씨의 스승이 되는 영광을 제가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라이오넬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님께서 기사단 전체를 모아 두고 의견을 물으시기에 제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아마 경이 손을 든 유일한 지원자였겠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라이오넬이 신통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다행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서, 제가 아가씨의 검술 스승이 되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손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연무장을 채운 기사들을 훑어보자, 아닌 척하면서도 나와 라이오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들이 재빨리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귀찮은 아가씨 뒤치다꺼리는 싫다 이거구나.’

이해는 된다. 용기사가 되는 건 제대로 기사 취급을 받지 못하던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다들 제대로 된 기사가 되어 보겠다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데, 그 시간을 빼서 취미 생활이나 하러 나온 게 뻔한 귀족 아가씨를 가르치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날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라이오넬을 살폈다.

‘여전히 어설픈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가 제대로 된 검술 스승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뭐, 직접 하는 건 못 해도 가르치는 데는 재능이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라이오넬이 선생으로서의 재능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좋아요.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우선 기본 동작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 *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재능이 있다고 했던가? 지금의 내가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 재능도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나의 재능을 찾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오넬은…….

“기본자세는 왼발을 뒤로 하고, 아니, 오른발을 뒤로 했던가……?”

‘이 사람은 아직까지 자신의 재능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나는 발 위치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라이오넬을 보며 하느님을 찾았다. 평생을 무교로 살았지만, 이 남자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종교를 찾게 하는 힘이 있었다.

[주인님, 정말 이분께 검술을 배우시는 겁니까?]

착하고 온화한 성검 유피테르까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유피테르가 봐도 영 아니지?]

[예. 몸 쓰는 것이 영 서툴군요. 하지만 골격은 상당히 훌륭하니 검술로 대성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었습니다.]

[골격이 훌륭해? 검술로 대성?]

라이오넬에게 붙이는 수식어라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다. 하지만 찬찬히 그의 몸을 살펴보고 나니 유피테르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는 짓이 어설퍼서 잘 몰랐는데 몸은 상당히 좋네.’

커다란 키에 적당히 잡힌 근육. 비율도 훌륭해서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 몸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면, 아무리 좋은 신체 조건을 가졌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아! 이제 생각났습니다. 오른발이 앞입니다, 아가씨!”

한참의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라이오넬이 자신 있게 외쳤다.

“저를 그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그랬다간 시간만 버릴 것 같은데.’

심란한 마음으로 라이오넬을 바라보자, 유피테르가 나섰다.

[발과 발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습니다. 저래서는 무게 중심이 제대로 분산되지 않을 테니, 작은 충격에도 넘어지고 말 겁니다.]

유피테르의 말대로 벌써부터 라이오넬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나는 라이오넬이 연습용이라며 건네준 목검을 쥐고 그를 따라 하며 은근슬쩍 조언했다.

“라이오넬 경, 발과 발 사이의 간격이 더 넓으면 어때요?”

“예? 이렇게 말입니까?”

다행히 라이오넬은 고집이 없었다. 그는 고분고분 내가 시키는 대로 오른발을 조금 더 앞으로 빼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란 얼굴이었다.

“아가씨, 이 자세가 훨씬 안정적입니다!”

“그래요. 그럴 것 같았어요.”

힘없이 대답하자 라이오넬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베기의 기본은 네 가지입니다. 세로 베기, 올려 베기, 가로 베기, 대각선 베기. 이 네 가지만 완벽하게 한다면, 못 할 동작이 없습니다. 먼저 세로 베기부터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라이오넬이 두 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그었다. 분명히 세로 베기라고 했는데, 검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것이 내 눈에는 꼭 물결 베기처럼 보였다.

당장 유피테르의 지적이 들어왔다.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세로 베기는 중력에 몸을 맡긴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가볍게 내리긋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게 익숙해지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결을 따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웃으며 라이오넬에게 그 말을 되풀이했다.

“라이오넬 경, 제 생각엔 검을 내리그을 때 어깨 힘을 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라이오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조언을 따라 움직였다.

‘아무튼, 말은 참 잘 들어.’

사람이라면 자기주장이 있을 법도 한데, 라이오넬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어쩌면 넓은 수용력이 라이오넬의 재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조언-사실은 유피테르의 조언-을 따라 움직였던 라이오넬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아니, 아가씨! 그렇게 하니 훨씬 베기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보인다. 이 검술 훈련의 앞날이. 그리고 내 앞날도…….’

전부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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