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1/156)

* * *

날이 밝자 약속대로 리던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응접실에서 그를 맞이하며 엠마에게 차를 부탁했다. 그 모습을 본 리던이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브리아 오베론에게 차를 대접받을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저도 왕자님에게 차를 대접할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비긴 걸로 하죠.”

“그대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말을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게 칭찬으로 들렸나? 말을 따박따박 잘도 한다며 비꼰 거잖아.”

“제가 정말 감사한 것 같았나요?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한 거잖아요.”

“뭐라고?”

리던이 또다시 헛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도무지 못 당하겠군. 에렐의 이브리아 오베론은 왕도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게 가능한가?”

“경험과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리던과 의미 없는 기 싸움을 하는 동안 엠마가 차를 가져왔다.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사람을 물릴까요?”

리던과 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엠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탁할게.”

“얼마든지요, 아가씨.”

엠마가 인사하고 밖으로 나서며 하인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

“해리, 너도 나가야지.”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해리도 그녀의 표적이 되었다. 해리가 자신을 부르는 엠마의 손을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밖에서 착하고 얌전하게 있어요.]

[난 원래 착하고 얌전해.]

[퍽이나 그렇겠네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날 불러. 바로 달려올 테니까.]

해리가 리던을 슬쩍 바라보고는 엠마를 따라나섰다. 모두 자리를 비우고 둘만 남은 공간에서 리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끝맺지 못한 대화를 이어서 하지. 어제처럼 서론 없이 본론부터.”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네요.”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어제 해리와 나누었던 대화를 리던 앞에서 반복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리던의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는 심각했다가, 놀랐다가, 마지막에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독이 든 성배인 줄 알았는데.”

“말씀드렸잖아요. 그 성배에 독은 없다고.”

“내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제안이라, 사실 조금 얼떨떨하군. 이렇게까지 내게 좋은 일일 줄은 상상도 못 해서.”

“대신 국왕께 보고서를 잘 쓰셔야 할 거예요. 그거 상당히 귀찮은 일 아닌가요?”

‘나는 상사에게 올릴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쓰는 게 제일 싫었는데.’

아무리 잘 써도 꼭 꼬투리를 잡혀 혼나는 게 보고서였다.

“이 정도 보상이라면, 그런 귀찮음은 가볍게 감내해야지.”

“좋은 말만 써 주세요. 에렐이 아주 평화로운 동네라고요.”

“와이번 문제만 없다면 그건 굳이 청탁하지 않아도 진실이겠지.”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재 문제로 영지 전체가 떠들썩했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니 리던에게 따져야 할 일이 떠올랐다. 마침 내가 리던에게 큰 선물을 주는 상황이니 따지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저하고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는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우시죠? 치사하게 다른 사람 끼우지 말고.”

“그게 무슨 말이지?”

“목재 이야기예요. 저한테 정이 뚝 떨어진 건 이해하는데, 그 화를 에렐 전체에 푸는 건 좀 심하지 않아요? 다들 얼어 죽을 뻔했다고요.”

해리를 불러내 푸른 불꽃을 얻지 않았다면, 동사하는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리던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답답해져서 벽난로를 가리켰다.

“에렐로 들어오는 목재를 모두 끊어 버리셨잖아요. 그래서 다들 불도 못 피우고……”

“목재?”

그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 손을 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에렐로 들어오는 목재를 끊어 버렸다니, 도대체 누가? 에렐의 추위는 심각한 수준이라 목재가 없이는 견디기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정상적인 말이었다.

‘목재 유통을 끊어 버린 장본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리던을 바라보았다. 잔뜩 찌푸린 그의 얼굴은 상당히 진실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내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멜리올 백작가를 움직여 오칼 상회와 에렐의 목재 거래를 끊으셨잖아요. 저 하나 궁지에 몰기 위해서 비겁한 수를 쓰셨으면서, 이제 와 모르는 척 발뺌하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거야.”

리던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그대 하나 괴롭히겠다고 그딴 수작을 벌일 인간이라고 생각했나?”

“절 아주 많이 싫어하시니까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어이가 없군. 난 확실히 그대를 싫어했지.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다고도 생각했고.”

“어…… 네……. 당사자의 눈앞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의문을 담은 감사 인사에 리던이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감사 인사를 받겠대? 게다가 오칼 상회에 일방적으로 거래 파기를 선언한 건 에렐이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재빨리 반박했다.

“그럴 리가요. 목재는 에렐에 필수적인 물품인데, 왜 그 거래를 파기하겠어요?”

“에렐은 오베론 공작령인 데다, 오칼은 그간의 거래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었어. 이쪽 역시 거래를 파기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저 때문에 거래를 파기한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오칼 상회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돈 되는 일이면 뭐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로 유명해서 졸부 소리까지 듣는 곳인데.”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내 외숙은 내가 레이디 오베론 때문에 기분이 나쁘니 에렐과 거래를 끊으라고 부탁한다면 코웃음을 치실 분이라고.”

귀족 가문이 운영하는 상회는 체면을 차리느라 흥정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멜리올 아래에 있는 오칼은 지독할 정도로 돈벌이에 철저해서 천박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돈은 많이 벌었지만 뒷말이 많았지.’

멜리올 백작가는 제레인트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명예가 구시대의 권력이라면, 돈은 새로운 시대의 권력. 다들 뒤에서는 천박하다고 욕하면서도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설설 기었다.

그런 멜리올 백작가가 리던의 외가였다. 카시안 일파와 대립하는 1왕자파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 자신들이 충성하는 리던의 말이라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따를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지만, 리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뭐. 내가 거래 파기로 인한 손해를 사비로 지불하겠다면 움직여 주실지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애를 괴롭힐 이유가 없거든. 마음만 먹으면 돈 안 드는 다른 방법도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으니까.”

원작을 읽은 나는 이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캐서린 어장의 또 다른 물고기, 어두운 뒷공작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정보 길드의 수장 루크.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주 다양한 방식의 괴롭힘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레이디 캐서린>에는, 캐서린을 티파티에 불러 놓고 하루 종일 세워 놓기만 한 귀부인을 루크가 제대로 엿 먹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지만 똑똑히 들었어요. 오랜 기간 동안 인연을 맺어 왔던 오칼 상회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어 버렸다고, 그래서 영지에 땔감이 하나도 없다고요.”

집사도, 엠마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내 눈으로 상황을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 그게 거짓일 리는 없었다.

“그게 마침 제가 에렐에 온 시점이었으니 왕자님께서 손을 쓰신 줄 알았죠. 그거 말고는 오랜 거래를 파기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요.”

“우리 쪽에선 정확히 반대로 생각했어. 영애와 껄끄러운 일이 있었으니 더 이상 나와 인연이 있는 오칼 상회와 거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줄 알았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지금이야 제가 여기서 멀쩡한 사람대접을 받고 있지만, 처음 왔을 땐 다들 날 귀찮은 짐짝 취급했다고요. 날 위해 거래를 끊겠다는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서로의 입장을 모두 털어놓고 나니 더욱 상황이 이상했다. 오칼에서도, 에렐에서도 거래를 파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명확해진 것이다. 거래 파기를 유도한 게 오칼과 에렐 모두 아니라면?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일부러 둘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소리였다.

“구린 냄새가 나는군.”

곧 리던의 입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말이 정확히 흘러나왔다.

“오칼 상회를 운영하는 멜리올 백작가와 에렐을 품은 오베론 공작가, 아마도 이 둘 사이가 나빠지길 바라는 누군가의 소행이겠지.”

그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혼잣말처럼 추론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멜리올과 오베론의 사이가 틀어지면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두 가문을 이간질해서 이득을 얻는 쪽은…….”

막힘없이 이어지던 추론이 끊어졌다. 규칙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소리도 뚝 끊어졌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며 리던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끝내 결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득을 얻는 쪽이 누구인데요?”

나는 답답해져 그를 재촉했다. 리던의 시선이 슬쩍 나를 향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함부로 입에 올리긴 힘들지.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말이야.”

“확신을 얻을 방법은 있나요?”

“아마도? 내겐 훌륭한 길잡이가 있으니까.”

길잡이는 정보원을 뜻하는 은어였다.

‘아마도 루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지.’

리던과 루크는 격의 없는 친구 사이였다. 왕자와 뒷골목의 사내가 친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소설 속 세계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사연은 이랬다. 리던은 언제나처럼 정체를 숨기고 잠행을 나갔다가 우연히 루크와 마주친다. 정보 길드의 수장인 루크는 당연히 한눈에 리던의 정체를 알아봤지만,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척 곁에 머무른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친구가 된다.

그 다양한 사건 사이에 여주인공 캐서린이 엮여 있음은 당연했다. 서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일로 오해가 생겼을 때, 그들의 화해를 주선한 것도 캐서린이었다.

‘생각해 보면 캐서린 걔도 참 오지랖 넓단 말이야.’

하지만 주인공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악역의 미덕이 무슨 일을 해도 망하는 거라면, 주인공의 미덕은 넓은 오지랖이지.’

주인공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게 흥미로운 소설들의 공통점 아닌가? 그러니 내 몸 하나만 건사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나 같은 조연 악역에게나 허락된 일이었다.

“먼저 인세티아 남작과 오해를 풀어야겠군. 그렇잖아도 나 때문에 에렐과의 거래가 깨진 게 분명하다며 외숙께 상당한 타박을 들었던 참이라.”

리던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 남작을 만나러 갈 모양이었다.

“이번엔 그대에게 여러모로 빚을 졌어. 꼭 보답하지.”

“전하가 아니라 저 좋으려고 한 일이지만, 뭐, 굳이 보답하시겠다면 사양하진 않을게요. 동정과 보답은 돈으로. 아시죠?”

“내 외숙과 똑같은 말을 하는군.”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이 제대로 된 장사꾼이라는 건 알겠네요.”

“그분은 그 말을 제일 좋아하시지.”

리던이 내가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언제 떠날 거냐고 묻는 걸 깜빡했네.’

내게는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리던에게 선물을 준 이유도 마주칠 때마다 불편한 캐서린의 물고기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뭐, 이제는 여기서 할 일도 없으니까 금방 왕도로 돌아가겠지.’

와이번 토벌이 의미 없어진 이상 왕립 기사단이 에렐에 있을 이유도 없었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왕도로 귀환할 것이다.

‘다시 에렐이 평화로워지겠구나.’

왕도에서 온 세련된 기사님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하녀들은 조금 서운해하겠지만, 이제 곧 에렐에도 용기사라는 그럴듯한 볼거리가 생길 것이다.

‘라이오넬이 와이번 등에 타서 멋지게 싸우는 건 전혀 상상이 안 되지만 말이지…….’

라이오넬 하나만 문제라면 어떻게든 묻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남아 있는 홍차를 마셨다.

* * *

다음 날 인세티아 남작이 나를 찾아왔다. 남작과 나는 같은 저택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생활 패턴이나 반경이 워낙 달라 우연으로라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영지를 운영하는 남작과 놀고먹는 귀족 영애. 두 사람의 생활 반경이 다른 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그가 이렇게 나를 찾아온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제 리던이 남작을 만나 오칼 상회와의 문제를 논의한다고 했으니, 아마 그 일 때문에 나를 찾은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어제 1왕자님을 만나셨다면서요?”

나는 반갑게 남작을 맞이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작과 논의할 일들이 있었다. 남작이 나를 먼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에게 만남을 청했을 것이다.

“어제의 대화로 오칼 상회와의 오해를 풀었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지만, 그건 왕자님께서 진실을 밝혀 주겠다 약속하셨죠.”

“그럼 오칼 상회와의 거래가 재개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칼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목재는 수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에렐의 검은 숲에는 흑철목이 차고 넘쳤다. 그걸 태울 수 있게 된 이상 외부에서 목재를 들여올 필요는 없었다.

“멜리올 백작님의 속이 아주 쓰리셨겠는데요.”

“그간 저희의 사정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셨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겠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목재 수입 비용 때문에 영지가 힘들었다고 했으니, 이젠 사정이 좀 나아지려나?’

나는 엠마와 함께 찾았던 구빈원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영지의 재정 상황이 나아진다면 그들의 삶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윤택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1왕자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아. 용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벌써 들으셨나요?”

“사실이었습니까? 왕자님께서 농담하신 게 아니었군요.”

남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혹시 내가 멋대로 서리 기사단에 손을 대려는 게 문제인가요?”

서리 기사단은 오베론 가문에 소속되어 있으나, 모두가 공작을 주인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기사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오베론의 직계 중 한 사람을 자신의 주인으로 정할 수 있었다.

‘자유라고 해 봐야 대부분이 공작을 모시고 있지만 말이야.’

그도 아니라면 후에 작위를 물려받을 소공작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5기사단은 특별했다. 그들은 서리 기사단이지만, 오베론의 누구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은 자유 기사들이었다. 기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검은 숲의 와이번들에 대항하기 위해 고용한 용병에 가까웠다. 그러니 와이번과 싸울 일이 사라지면, 제5기사단의 존립도 불투명해질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실업자들이 대거 발생하다니. 그건 안 될 일이지. 실업이 얼마나 서러운 건데.’

한 집안의 가장, 누군가의 귀한 아들일 기사들을 하루아침에 백수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와이번을 타게 될 기사들로 제5기사단을 떠올린 것이다. 와이번 문제도 해결하고, 실업도 막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제5기사단은 본가의 서리 기사단과 조금 다른 성격이라고 들어서, 이 정도는 내가 개입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니까요.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죠.”

내 말에 남작이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파악하셨습니다. 본가의 서리 기사단과 달리 제5기사단의 지휘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 공작 각하를 통하지 않고 에렐에서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요.”

“그럼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가씨께서는 제5기사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기사보다는 용병에 가깝다는 거랑 아버지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다는 것 정도요.”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요?”

“그래도 기사는 기사니까, 어느 정도는 다들 하지 않나요? 아무리 용병에 가깝다고는 해도 아무나 막 뽑는 건 아닐 거 아닌가요?”

“그게…….”

남작이 난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나 막 뽑습니다.”

“……네?”

“이렇게 춥고 척박한 동네에 누가 자리 잡고 싶겠습니까? 능력 있는 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언제나 더 큰 세상을 위해 떠나죠.”

“그 말은…….”

나는 불길해져서 말끝을 흐렸다. 그런 내 모습에 남작이 멋쩍게 목을 긁적였다.

“기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뻔하다는 뜻입니다. 개중에서 고르고 골라 선발해도…….”

“이해했어요.”

나는 손을 들어 남작의 말을 막았다. 이제 슬슬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고르고 골라 선발한 게 라이오넬 딜프 같은 사람이다, 이 말이죠?”

“그렇습니다.”

“남작.”

“네.”

“기사들이 와이번 위에 제대로 탈 수는 있을까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아니, 용기사, 그거 얼마나 멋져? 왜 줘도 먹질 못해!’

나는 절망에 차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음 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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