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7/156)

* * *

“……와이번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리던은 엘의 보고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토벌단의 실질적인 지휘는 왕립 기사단장인 엘이 맡고 있었지만, 명목상으로는 왕을 대리하는 리던이 토벌단장이었다. 리던이 이번 토벌의 단장을 맡게 된 것에는 왕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왕도 외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왕비는 왕실의 큰아들로서 가져야 할 리던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조하며 그를 외부로 돌렸다.

왕비의 속셈이야 뻔했다. 어떻게든 리던의 이름에 흠집을 내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리던이 임무에서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깎아내리고 조롱했다.

‘위험한 임무를 맡길 때는 눈먼 칼에 맞아서 죽기라도 바라는 마음이겠지.’

제법 청년 태가 나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견제였다. 어린 시절에는 영문도 모르고 밖으로 나돌았지만, 머리가 굵어진 후로는 시류를 읽는 눈이 생겼다. 큰 그림을 보고 나니 왕비가 자신을 견제하지 못해 안달 난 이유가 보였다.

적장자라는 자신의 위치. 그게 문제였다. 제레인트는 왕위 계승의 우선권이 장자에게 있었다. 가문의 배경이 대단한 왕비가 힘을 써 카시안을 왕세자의 자리에 올려놓았으나, 여전히 리던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며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알 게 뭐냐고? 난 전혀 관심 없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왕위라는 게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목숨을 못 걸어 안달들인지.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가지고 싶지도 않은 자리 때문에 견제당해서 죽어야 한다니. 그건 억울하잖아.’

어쩌면 오기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그들이 가지고자 했던 걸 손에 쥐고, 모두를 비웃어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은 몸을 바짝 낮추고 당장 눈앞의 하루를 견뎌내야 했다.

이번 토벌단 일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돌아오는 검은 숲의 와이번 토벌은 왕실 입장에서는 아주 큰 골칫거리였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얻기가 힘든 일인 데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사들이 다치고 죽어 나가기 때문에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비난을 면치 못했다. 비난의 화살은 언제나 우두머리를 향하기 마련이었다.

왕비가 리던을 이번 토벌단의 단장으로 적극 추천한 것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공을 세우지는 못할 일. 하지만 비난을 사기는 아주 쉽다.

‘카시안 일파는 지금 오베론과의 혼담이 틀어져 큰 아군을 잃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날 깎아내리려고 할 터. 이번이 고비야.’

리던의 목표는 명확했다. 토벌단의 어떤 기사도 죽지 않고 왕도로 돌아간다. 그 정도면 칭찬을 얻지는 못할지언정 비난을 피할 수는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말. 몸 사리기에는 그만한 결말이 없었다. 리던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결말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한 마리 죽이기도 힘들었던 와이번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된 것이다.

“떼죽음의 이유는 파악했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니 검은 숲을 수색해 보겠다고 했었잖아.”

토벌단과 함께 움직이던 도중 와이번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확실한 외상이 발견되었으니 병사나 자연사는 아니었다.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린 건지 엘은 은밀하게 검은 숲을 살펴보는 걸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리던은 이를 선선히 승낙했다. 엘 로이츠라면 왕국 제일의 기사. 게다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정도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로이츠 가문의 사람이었다. 리던은 그의 움직임에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을 거라는 걸 믿었다.

“수색대를 꾸려 검은 숲을 조사 중입니다. 아직 결과는 나오기 전입니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 거지? 와이번보다 강한 마수가 등장했다면, 오히려 기사들을 물리는 게 더 낫지 않나? 왕도에 추가 병력을 요청한 뒤에 그들과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요청하는 사람이 리던이니 당연히 왕비는 견제할 것이다. 제대로 추가 병력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시도도 해 보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리던이 머리를 굴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엘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마도, 마수가 아닐 겁니다.”

“마수가 아니라면?”

“와이번의 사체에서 불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마수들은 불을 사용하지 않지.”

“예. 그러니 평범한 마수가 아니라 지성체일 겁니다. 말이 통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건가?”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사용하는 지성체라.’

리던의 시선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로 향했다. 평범하기만 한 불길이 미묘하게 그의 눈길을 잡아챘다.

“전하! 단장님!”

그때 기사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당장 나가 보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순식간에 집중이 깨져 버린 리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기사가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게…… 와이번이 저택에 날아들었습니다.”

“뭐?”

리던이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택에는 무장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많았다. 와이번이 들이닥쳤다면 인명 피해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긴급 상황이라기에는 기사의 대응이 미적지근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와이번이 부상당한 기사들과 레이디 오베론을 태우고 날아왔습니다. 지금은 얌전히 정원에 앉아 있는데…… 얌전하긴 해도 와이번은 와이번이라, 이걸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와이번이 사람을 태우고 왔다고?’

와이번은 사납고 전투적이었다. 그런 마수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리던과 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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