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저주의 숲에서 신의 각성이 벌어졌고, 샤를로즈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과 어둠이 번갈아 가면서 빛났다.
샤를로즈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이 이상한 기분.
샤를로즈는 신이 되었다는 표식으로 이마에 황금색 꽃잎 세 장이 부채 모양으로 퍼져 있었다.
곧 화려한 신의 의식이 끝이 났다.
주변 또한 잠잠해졌다.
샤를로즈는 뭐가 바뀌었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만져 보았다.
‘나 정말 신이 된 걸까?’
샤를로즈는 전혀 바뀌지 않은 몸 상태에 의구심이 들어 레나에게 물었다.
“레나, 내가 지금 신이 된 거야?”
“네. 샤를로즈 님.”
“신은 이 세상을 다룰 수 있다고 했지?”
“그럼요.”
“어떻게 다룰 수 있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다룰 수 있어요. 음, 예를 들자면 대지를 가르고 싶다면 땅을 한 번 차 보세요.”
“땅을?”
“네.”
샤를로즈는 레나의 말을 믿고서 땅을 가볍게 찼다.
그러자 레나의 말대로 대지가 갈라졌다.
샤를로즈는 신기한 현상에 땅바닥을 내려보았다.
“하늘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지금 해가 쨍쨍하잖아요? 하지만 밤으로 만들 수 있어요. 신의 권한으로요.”
“그래?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저번에 그레이스가 밤이 되어라 라고 말했더니 아침이 밤이 되었거든요.”
“음.”
샤를로즈는 이번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밤이 되어라.”
그러자 빛났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주변에 별들이 찬란하게 빛이 났다.
“이게 신의 능력이야?”
“신의 능력은 생각보다 많아요. 다른 분들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어요. 한번 해 보실래요?”
“그럼, 티아랑 폐하 그리고 요한을 내 방에 가둬 놔.”
샤를로즈 말이 끝나기 무섭게 티아와 해리슨 그리고 요한의 몸에 황금색 고리가 조여 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레나, 이거 잘 이동한 거 맞지?”
“네. 잘 이동하셨을 거예요.”
“그럼. 난 정말 신이 된 거네? 가짜가 아니라?”
“샤를로즈 님은 애초에 가짜가 아니에요. 진짜였어요.”
그렇구나.
‘난 진짜였구나.’
여자 주인공의 가짜 악역 언니로서 빙의해 많은 일을 겪었다.
‘진짜 내 몸이 아니면서 가짜 행세까지 했다.’
가짜는 퇴장을 원한다.
정말 원했다.
가짜로서.
진짜가 아닌 가짜 행세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퇴장을 원했을 뿐인데.
이제는 가짜가 진짜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사실 진짜 샤를로즈였고, 신인 그레이스의 환생이었지.’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긴 했었다.
‘그럼 죽은 샤를로즈는 진짜였을까?’
그 애도 가짜였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애가 죽은 공작 부인과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들 뿐.
하늘을 다시 낮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는, 아니 천국에서는 죽은 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네.”
“그러게요.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아, 이제부터 그레이스를 살려 볼까? 그레이스의 본체가 없는데 어떻게 살려?”
“그레이스를 만들면 돼요. 샤를로즈 님이 직접.”
“내가 직접 인간을 만들라고? 그런 일을 어떻게 해?”
“신이잖아요. 신은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레이스가 만든 인간들이 바로 샤를로즈와 그 주변 사람들이에요.”
“……만드는 건 쉬워?”
“쉬워요. 옆에서 봤었는데 신의 숨결만 잘 넣어 주면 본체는 금방 만들더라고요.”
“후,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레나, 루아?”
루아는 샤를로즈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샤를로즈라면 할 수 있어요. 분명히.”
레나는 샤를로즈의 앞에 서서 다정하게 웃었다.
“샤를로즈 님이라면 그레이스를 환생시킬 수 있을 거예요.”
믿음직한 두 명에게서 응원을 받으니 기운이 솟았다.
“해 볼게. 그런데 인간의 모양을 만들려면 흙이 필요한가?”
“그건 마음대로 정하셔도 돼요.”
“그럼 흙으로 해야겠다.”
샤를로즈는 신의 능력을 이해하는 데 빨랐다.
금방금방 익혀 흙으로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레이스의 외형을 알고 있어? 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이에요. 갸름한 계란형이고, 고양이 눈매에 코가 작아서 아주 미인이죠.”
“나와 비슷한 외형이네.”
“아무래도 그레이스가 샤를로즈 님을 만드셨을 때 자신과 닮았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레이스도 참.”
샤를로즈는 인간의 모양을 잡고 채색을 하기 위해서 꽃을 이용했다.
색색의 꽃으로 흙색이었던 인간에 색이 입혀졌다.
그리고 정말 인간처럼 머리카락엔 윤기를, 얼굴엔 생기를 돌게 했다.
이건 누가 봐도 인간이라고 말할 수준이었다.
“샤를로즈 님, 정말 그레이스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이제 신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면서 제가 겹친 그레이스의 심장을 넣어 주기만 하면 그레이스는 환생하는 거예요. 새 삶을 사는 거죠.”
“그럼 얼른 그레이스를 환생시키자. 그녀의 소원이었으니까.”
평범하게 살고 싶은 아주 소박한 소원.
누군가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다던 그녀의 간절한 꿈.
백마 탄 왕자님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기에 그레이스의 환생에 더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레이스,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요.”
“샤를로즈 님, 그레이스의 입가에 숨결을 불어 넣어 주면 돼요.”
샤를로즈는 레나의 말에 자신이 만든 그레이스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입가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 넣었다.
새하얀 샤를로즈의 숨결이 그레이스의 살짝 벌어진 입가를 통해 들어갔다.
곧 그레이스의 몸이 움찔거리며 반응하자 레나가 얼른 안고 있던 그레이스의 심장을 새로운 그레이스의 심장 부근에 넣었다.
“으으…….”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신음에 얼른 그레이스에게서 몸을 떼었다.
성공인가?
샤를로즈는 떨리는 심정으로 그레이스를 응시했다.
레나 역시 눈꺼풀을 움직이려는 그레이스를 빤히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았다.
“제발, 제발…….”
레나는 속으로 말해야 할 것을 입 밖에 내뱉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아.”
그레이스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그레이스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알몸인 그레이스가 민망해 할까 봐 샤를로즈는 제 겉옷을 몸 위에 덮어 주었다.
“저 기억나요? 자신이 누군지 알겠어요?”
“……누구세요?”
성공이다.
환생을 하게 된다면, 전 삶의 기억은 모조리 잃는다고 했다.
샤를로즈는 그레이스를 환생시키는 데 성공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나는 그레이스가 다시 태어난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흑흑. 축하해요.”
“왜 울어요?”
이제 막 환생한 그레이스가 레나를 알아볼 리 없었지만, 레나가 눈물을 흘리자 그녀 또한 함께 슬퍼했다.
까닭 없는 슬픔이 저를 덮쳤다.
이건 뭐지?
이 기분은 뭘까.
저분이 누구길래.
‘내 마음이 이렇게 아려오는 거야.’
그레이스는 의아해하며 제 두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지는 느낌에 얼른 눈가를 손등으로 막 비볐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딜까. 이 사람들은 누구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정도만 기억이 났다.
“혹시 제 이름을 아시나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에게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당신의 이름은 그레이스.”
“…그레이스?”
왠지 모르게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레이스, 그레이스, 그레이스, 그레이스.
머릿속에 맴도는 이름.
머리에 두통이 아려 왔지만, 괜찮았다.
“제 이름이 그레이스인가요? 저는 누구였고, 뭐 하는 사람이었나요?”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에게 손을 내민 채 대답했다.
“아주 선한 사람이었어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냥을 하다가 기억을 잃었죠.”
“저와 당신들의 관계는요?”
“친구요.”
“……친구요?”
그레이스는 친구라는 단어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숨이 가빠 올까.
왜 이렇게 그 단어를 듣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을까.
그레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제 시야에 들어온 샤를로즈의 작은 손을 보았다.
이 손을 잡으면 조금 나아질까.
그레이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동아줄 같은 샤를로즈의 손에 제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맞잡았다.
그러자 언제 가슴이 아팠냐는 듯, 괜찮아졌다.
그레이스는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꼭 신님 같아요.”
그레이스의 말에 샤를로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야 막 환생한 그레이스가 저런 말을 할 줄 몰랐으니까.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에게 장난을 쳤다.
“신님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 손을 잡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고마워요. 신님.”
제 이름을 모르니 그냥 제 입이 가는 대로 말하는 그레이스가 귀여운지 샤를로즈가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럼 그레이스, 저랑 같이 놀래요?”
“어디서요?”
샤를로즈는 순간 고개를 돌려 루아를 쳐다보았다.
“저와 제 약혼자의 결혼식에서요.”
샤를로즈는 루아에게 프로포즈와 다름없는 발언을 했다.
“이제 결혼식 하러 가요, 루아!”
루아는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왔지만, 애써 웃었다.
샤를로즈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사랑해요, 샤를로즈.”
“그런 말은 결혼식에서 실컷 해 주세요, 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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