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샤를로즈는 악의 심장을 품에 안고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악의 심장이 꿈틀거리며 샤를로즈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선의 심장과 악의 심장이 한 곳에 있으니 마음이 선과 악으로 계속 바뀌며 기괴하게 변하고 있었다.
“레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레이스를 다시 살리려면 악의 심장과 선의 심장을 합쳐 하나의 심장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 전에 그레이스를 죽여야 하는데….”
그레이스는 악의 심장을 가까이서 보자 눈이 홱 돌아가 버렸다.
“세상이 멸망했으면.”
그레이스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세상에 붉은색 비를 내렸다.
샤를로즈는 그 붉은색 비를 맞으며 레나에게 물었다.
“죽은 신이 저런 능력도 쓸 수 있는 거야?”
“아무래도 신의 자리에서는 물러났어도 신의 능력은 조금 남아 있는 모양이에요.”
“골치 아프네.”
“지금 그레이스를 죽일 수 있는건 샤를로즈 님뿐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샤를로즈 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힘을 빌려 죽이는 수밖에 없어요.”
“제레미 오라버니의 몸은 괜찮을까?”
“아마 큰 피해는 없을 거예요. 그레이스의 영혼에만 큰 타격이 있을 거예요.”
레나의 말대로 샤를로즈는 악의 대표 대악마 루아와 선의 대표 성녀 티아를 향해 외쳤다.
“둘 다 내게 힘을 빌려 줘! 그레이스를 향해 있는 힘껏 힘을 쏟아부어 줘! 레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거.”
레나가 샤를로즈를 향해 익숙한 단검 하나를 손에 쥐여 줬다.
이 단검은 자신이 자살했을 때 썼고, 유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쓰였던 무기였다.
“이게 무슨 효과가 있는데…?”
“이 단검은 신의 후계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힘이 깃든 아이템이에요.”
“……이게?”
“신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죠. 그 대신, 이 단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신의 후계자밖에 없지만요. 자, 샤를로즈 님. 그레이스를 이 잔혹한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레나의 애달픈 목소리에 샤를로즈는 단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굳게 다짐했다.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서로 원망하기 없기다?”
샤를로즈는 레나에게, 티아에게, 루아에게, 해리슨 그리고 요한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조금 위태로웠지만, 지금은 그레이스의 폭주를 막는 게 1순위였다.
터벅, 터벅.
새까만 악의 심장을 품에 안고 샤를로즈는 절규하는 그레이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에 잡아 든 단검으로 그레이스의 가슴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욱!
날카로운 소리가 샤를로즈의 귓가를 스쳤다.
“쿨럭!”
그레이스가 검붉은 피를 토해 내며 저주의 숲, 마르헨티의 모든 어둠을 불러냈다.
“나는 죽지 않아. 어둠이여, 나를 지켜다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하던 그레이스의 모습은 악의 심장을 찾자마자 악하게 돌변했다.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뭐든 다 할 눈빛이었다.
살기가, 원망이 그레이스의 두 눈에 서렸다.
샤를로즈는 발버둥 치는 그레이스를 응시하며 한 번 더 그레이스의 가슴팍에서 단검을 빼내 찔러 넣었다.
“쿨럭!”
어둠이 샤를로즈를 막아 봤지만, 소용없었다.
샤를로즈의 주변에서 풍겨 나오는 악의 기운이 어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그레이스는 난동을 피우려고 했지만, 샤를로즈의 방해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선과 악의 힘이 자신의 영혼을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그레이스, 다음 생에는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샤를로즈는 레나에게 악의 심장을 건네주었다.
샤를로즈에게 악의 심장을 받은 레나는 선의 심장과 악의 심장을 합쳤다.
반짝, 새하얀 빛이 레나의 품에서 빛이 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두 개로 나눠진 심장이 하나가 되었다.
“샤를로즈 님, 심장이 하나가 되었어요!”
“잘했어. 레나.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해.”
샤를로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어둠이 샤를로즈와 그레이스를 덮쳤다.
그 둘을 덮친 어둠이 동그란 알 모양으로 변했다.
다른 이들이 놀라 샤를로즈를 외쳐보았지만, 어둠 안에 있던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 그레이스.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요?”
“죽어, 죽어, 죽으라고!”
“저도 이 세상이 버거웠어요. 맨날 죽고 싶다는 생각과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세상이 싫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아요. 저도 이 세상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세상이 싫다고!!!”
그레이스는 절규하듯 이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저도 세상이 싫어요. 그런데요, 그레이스. 살다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주변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싫어, 싫어!”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뺨에 제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세상은 힘겨웠지만, 잘 살아왔잖아요. 그레이스. 이제 끝내도 돼요.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죽어….”
“네, 죽여 드릴게요. 그레이스.”
그 순간, 그레이스의 두 눈이 제대로 빛이 났다.
곧 그레이스의 투명하고 뜨거운 액체가 눈에서 뺨을 타고 내려와 뚝뚝 떨어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얼른 죽여 줘, 샤를로즈.”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요?”
“사실 네게 주어진 신의 시험은 이미 끝났어. 레나도 그 시험이 끝난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야.”
“시나리오가 끝났다는 말인가요?”
“내가 네게 준 시나리오는 네가 신이 되는 과정이었어.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들을 이어 주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꽤 충격적인 유언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당신을 죽이면 제가 신이 되는 건가요?”
“응. 그러겠지?”
“그레이스는 처음 신이 될 때, 무슨 느낌이었어요?”
“아무런 느낌 없었어. 그냥 신이 됐구나.”
“세상을 다 가졌는데도요?”
“응.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난 설레지도 떨리지도 않았어.”
“마지막으로 더 할 말 있나요?”
“한 번만 안아 봐도 돼?”
그레이스는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샤를로즈를 안아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만든 존재.
모든 불행을 가진 존재.
그걸 다 버티고 강해져 제 뒤를 잇는 존재.
샤를로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 주며 안아 주고 싶어졌다.
“네. 마지막이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막 해도 돼요.”
“고마워. 샤를로즈. 네 덕분에 미치지 않고 떠날 수 있게 되네.”
그레이스는 샤를로즈를 꽉 끌어안았다.
“샤를로즈,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다음 세상을 부탁해.”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덕담에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스를 만난 지 별로 안 됐지만, 그녀를 직접 떠내보려고 하자 마음이 뒤숭숭했다.
마치 자신의 반쪽을 억지로 떼어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스도 수고 많았어요. 이제 쉬어요. 그리고 평범하게 환생하세요.”
“정말, 정말, 고마워. 샤를로즈. 환생하면 난 모든 기억이 없어져. 너도 기억 못 하고, 레나와의 추억도 기억 못 하겠지. 그래도 나를 찾으면 반겨 줄래?”
“좋아요. 그레이스가 있는 곳을 제가 찾아갈게요. 그럼 그레이스도 저를 웃으며 반겨 줘야 해요?”
“응. 고마워. 샤를로즈. 이제 제대로 죽여 줘. 지금 또다시 광기가 나를 집어삼키고 있어. 지금 아니면 날 죽이기 힘들 거야.”
정신이 들었을 때 죽이라는 그레이스의 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은 재밌었어요. 아, 제 동화책들은 다 읽으셨나요?”
“응. 재밌게 읽었어.”
“그럼 마지막 가는 길은 홀가분하시길 바라요.”
푸욱.
세 번이었다.
그레이스의 심장 부근을 찌른 것이.
“쿨럭!”
그레이스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샤를로즈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샤를로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검붉은 핏덩이를 울컥 토해 냈다.
“레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고마웠다고 전해 줘.”
“그러죠.”
파앙!
어둠의 알이 깨지면서 샤를로즈와 이미 죽은 그레이스가 바닥에 떨어지려고 하자 요한이 마법으로 그 둘을 붕 뜨게 했다.
제레미의 몸속에서 한 여인이 나와 웃으며 사라졌다.
레나는 그 여인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그레이스. 잘 가요.”
레나는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그레이스가 진정으로 떠났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어엉!”
레나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았다.
샤를로즈는 이제 다시 제레미로 돌아온 제 둘째 오라비를 풀밭에 눕힌 뒤, 레나의 앞에 섰다.
“레나, 그레이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있어.”
“……그 말이 뭔가요?”
“고마웠대.”
레나는 샤를로즈의 말에 어설프게 웃다가 다시 통곡했다.
“저도, 흐윽, 고마웠어요, 그레이스!”
이미 떠나간 그레이스의 영혼을 향한 레나의 외침이 숲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세상은 평화가 찾아왔고, 샤를로즈는 그레이스가 죽자마자 신으로서 각성하게 되었다.
정말 빠른 전개라고 샤를로즈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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