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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117/120)

117화

저주의 숲, 마르헨티는 모험가들에게 악평이 자자한 숲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숲.

기분 나쁜 숲.

이 숲에 관광 왔다가 이상한 저주로 죽었다는 사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샤를로즈는 두렵지 않았다.

그야, 든든한 자신의 아군들이 있었기에.

대마법사, 요한.

한 제국의 황자, 해리슨.

대악마, 루아.

역대급 성녀라던 티아.

자신의 보좌관인 세상에 하나 남은 흑주술사 레나.

마지막으로 신이었던 그레이스.

결코 저주의 숲에서 두려움을 떨 만한 조합이 아니었다.

게다가 샤를로즈는 악의 기운을 많이 가졌기에 저주의 숲에 대한 공포심은 금방 사라졌다.

“여기가 저주의 숲, 마르헨티야.”

요한은 여러 명을 데리고 이동 마법을 하니 조금 진이 빠진 듯했다.

그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큰 부담이 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샤를로즈는 앞장섰다.

“레나, 저주의 숲 어디에 악의 심장이 있는지 알아?”

“선의 심장이 북쪽에서 큰 반응을 보였어요. 그래서 북쪽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물론 정확한 건 아니고요. 샤를로즈 님.”

“그렇다면 다 같이 북쪽으로 가죠?”

샤를로즈는 저주의 숲에 먼저 발을 디뎠다.

그러자 루아와 레나, 그레이스가 샤를로즈의 뒤를 따랐다.

티아도 짐을 어깨에 메고 숲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요한이 막아섰다.

“요한? 왜 그래요?”

“짐 무겁잖아. 마법으로 다른 곳에 둘게.”

“저야 좋죠.”

티아는 어깨에 멘 짐을 요한에게 줘 버리고 얼른 뛰어 저주의 숲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해리슨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숲 분위기에 소름이 돋았지만, 티아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역시 숲 안으로 쏙 들어갔다.

요한은 조용히 플라잉 마법을 발현하더니 숲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꽝이 걸려 버리면 시간이 지체될 테니.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데 나라도 효율적으로 움직여야지.’

요한은 그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날아 북쪽의 반대쪽인 남쪽으로 향했다.

***

계속 앞으로 걸어가는 샤를로즈는 주변에 어둠에 깔린 안개가 짙어짐에도 겁이 없는지 아무렇지 않게 두 다리를 잘만 움직였다.

어둠에 익숙한 루아도 마찬가지였다.

레나도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한지 계속 앞으로 직진했다.

다만, 그레이스와 티아는 조금 겁을 먹은 듯 주춤거렸다. 해리슨은 그들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걷고 있긴 했지만 그 또한 살짝 겁에 질린 듯했다.

“제레미, 아니 그레이스도 무섭죠?”

저주의 숲, 마르헨티에 오면서 제레미의 몸속에 그레이스가 빙의했다는 걸 알게 된 티아는 처음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다가 빠르게 적응했다.

어째 제레미 오라버니가 이상하다 싶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니 티아는 제레미 오라버니의 몸을 함부로 쓰지 말아 달라고 그레이스에게 부탁했다.

그레이스는 험하게 쓸 생각이 없다며 티아를 다독였다.

샤를로즈는 그레이스의 이런 선한 모습에 의아해했다.

분명히 악에 사로잡혔다고 했는데 왜 저렇게 선한 모습이 자주 보이는 걸까.

악을 좋아한다면 악행을 저질러야 하는데 유진의 자살을 부추기는 행동 이외에는 얌전하니 이상했다.

“레나, 생각보다 그레이스가 너무 얌전한 거 아니야?”

“아, 그건 아마 제가 선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선의 심장이 가까이 있으니 그레이스가 얌전해진 것이다?”

“네. 신들은 선과 악의 심장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거든요.”

“그럼 악의 심장이 더 가까이 있으면 악행을 벌이나?”

“글쎄요. 제가 선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이 얌전히 있을 거예요.”

“그럼 유진 오라버니를 죽였을 때는 왜 그렇게 광기에 절여 있던 거야?”

“제 생각에는 악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가 버리신 것 같아요.”

“악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레이스가 악에 절어 있지 않았겠죠.”

레나의 묘한 설득력에 샤를로즈는 금방 수긍했다.

선과 악의 심장에 따라 신의 모습은 금방금방 바뀌는구나.

신이란 거 참 어렵네.

샤를로즈는 깊은 생각을 하느라 앞을 못 보고 지나가다가 어둠의 그림자에 잡혀 앞으로 넘어졌다.

“아야. 이건 또 뭐야.”

레나는 샤를로즈의 궁금증을 금방 해결해 주었다.

“마르헨티에서는 어둠이 살아 움직여요. 지금 샤를로즈 님의 발을 묶은 것처럼요. 여기는 저주의 숲. 어둠이 왕성하게 움직이기 좋은 자리죠. 그러니깐 다들 조심하세요. 아, 루아는 딱히 조심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어둠이 피하는 악마니까요.”

“그거 좋은 의미인가?”

루아는 앞으로 넘어진 샤를로즈의 발목을 묶은 어둠을 손으로 없앤 뒤 샤를로즈를 안아 들며 레나에게 물었다.

“좋은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어둠도 꺼리는 악마니까요.”

레나는 샤르로즈의 상태를 살피며 대충 대답했다.

루아는 레나의 비아냥거리는 어조에 한쪽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 망할 흑주술사가.

샤를로즈의 보좌관이라고 주제 없이 나대는군.

루아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샤를로즈 앞에서 제 본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레나와 루아와의 짧은 신경전이 끝이 났고, 곧 북쪽의 끝까지 오게 되었다.

“레나, 여기가 북쪽 끝 같은데?”

“음. 선의 심장이 미세하게만 반응하네요. 여기가 아닌가 봐요.”

“레나,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새까만 악의 심장이 어떻게 움직여? 발이 있어서 움직이는 거야?”

“글쎄요. 보지 못해서요.”

그레이스가 샤를로즈의 옆을 차지하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심장들은 원하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텔레포트해. 레나처럼 품에 안고 있으면 텔레포트를 못 하지만.”

“텔레포트를 한다고요?”

“응. 내가 그리 만들어 놨으니까.”

“덕분에 일이 귀찮게 됐네요. 그레이스.”

“신의 심장들은 정말 중요해. 그래서 그리 설정해 둔 거야.”

“음. 그래서 그레이스는 악의 심장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의 심장이잖아요.”

“나도 몰라. 죽고 난 뒤, 영혼으로 이 세상을 떠돈 후부터 심장의 감각을 잃어버렸거든.”

“그래도 감이란 게 있잖아요. 여기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레이스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짚이는 곳이 있는 것인지 반쯤 감겼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여기서 더 어두운 곳.”

“더 어두운 곳이요?”

“응. 악의 심장이 선의 심장보다 더 나를 지배했을 때 나는 빛이 하나도 들지 않은 곳만을 선호했어. 그러니깐 악의 심장도 그러지 않을까?”

“그럼 여기서 제일 어두운 곳이 어딜까요?”

샤를로즈의 물음에 레나와 그레이스가 동시에 대답했다.

“서쪽.”

서쪽?

“왜 서쪽인데요?”

그레이스는 세상을 관리하던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저주의 숲, 마르헨티를 관리할 때 가장 어두운 부분은 서쪽으로 지정했거든. 그래서 다른 인간들이 서쪽은 절대 가지 않아. 너무 어둡고, 위험 요소가 커서.”

“그레이스의 말대로 서쪽이 제일 어둡고 위험한 곳이에요.”

“그럼 그쪽으로 가볼까?”

“자, 잠깐. 샤를로즈.”

샤를로즈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해리슨이 막아섰다.

“티아가 위험해지면 어떡해.”

“티아가 왜 위험해져요, 폐하? 티아는 성스러운 성력을 가진 자인걸요? 어둠을 무찌를 유일한 인물인데요?”

티아는 샤를로즈의 칭찬에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혔다.

“폐하, 언니 말대로 저는 어둠에 당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정말 괜찮겠어?”

“그럼요. 제 성력으로 모두를 구해 드릴게요.”

“역시 최고의 성녀가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

샤를로즈는 한술 더 떴다.

티아는 눈을 반짝이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샤를로즈의 무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편, 플라잉 마법으로 하늘에서 새까만 악의 심장을 찾던 요한은 남쪽으로 갔다가 수확이 없어 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정말 어두운 어둠 속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요한은 가까이서 보려고 플라잉 마법을 없애고 땅바닥에 두 다리를 붙였다.

그리고 눈앞에 샤를로즈가 모험에 떠나기 전 말했던 ‘악의 심장’이 허공에 둥둥 떠 새까만 빛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샤를로즈가 말한 악의 심장인가?”

요한은 악의 심장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리며 불쾌함이 먼저 들었다.

신의 심장이라서 그런지 어둠의 압박감이 엄청났다.

이대로 또 샤를로즈에게 도움받기는 싫어.

요한은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리고 소환 마법진을 바닥에 그렸다.

“샤를로즈와 일행들을 불러 줘.”

요한은 악의 심장 때문에 정신을 잃기 전 샤를로즈 무리를 소환 마법으로 불렀다.

황금색 마법이 요한의 주변에 일렁거렸다.

새까맣던 주변이 순간 밝아졌다.

빛을 본 악의 심장이 순간 꿈틀거렸다.

요한은 가까스로 압박감을 버텼다.

그리고 샤를로즈 무리를 소환할 수 있었다.

황금빛 마법진 아래에 소환된 샤를로즈와 그녀의 무리들은 어리둥절했다.

“샤를로즈, 저거 네가 말하던 악의 심장이지…?”

요한이 힘겹게 말을 내뱉자 샤를로즈가 앞을 보며 계속 꿈틀거리는 악의 심장을 응시했다.

순간 샤를로즈의 입가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네. 맞는 것 같아요. 이 거지 같은 불쾌함이 드는 걸 보아하니.”

역시 남자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참 쓸모가 있네.

샤를로즈는 황금색 마법진에서 먼저 빠져나와 악의 심장을 두 손으로 잡았다.

“찾았다, 망할 심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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