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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116/120)

116화

한편, 루아는 샤를로즈의 부탁대로 해리슨이 있는 침소로 순간 이동했다.

한동안 일이 바빠 피곤함에 절어 있던 해리슨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루아는 침대에 곤히 자는 해리슨을 조용히 깨웠다.

“일어나. 해리슨.”

“……뭐야, 누구?”

“나다.”

해리슨은 피곤한 낯짝을 한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깨운 발칙한 것을 확인했다.

그건 바로 대악마 루아였다.

또, 자신의 잠을 방해하러 온 건가?

질린 놈.

“이번에는 왜 찾아왔는데?”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어.”

“갑자기?”

해리슨의 몽롱한 정신이 루아의 발언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레이스가 아직 살아 있어. 그레이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해.”

“그레이스라면, 죽은 신을 말하는 거지?”

“그래.”

“근데 그 세상이 멸망한다고? 맙소사.”

“그 세상을 막기 위해 모험을 떠나려는데 샤를로즈가 데리고 오랬거든. 너와 그 대마법사를.”

“어째서?”

“그레이스가 남긴 악의 심장을 없애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야 해. 그런데 샤를로즈가 티아와 너희들도 함께 가고 싶어 해. 알잖아, 샤를로즈는 너희 중 누구와 티아를 연결해 주고 싶어 하는 거.”

“뭐라고? 샤를로즈가 나랑 요한 중 한 명을 티아와 연결시켜 주려고 한다고? 정말로?”

“설마 몰랐나?”

“몰랐어. 전혀.”

“나는 당연하게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안 해 주면 당연히 모르지.”

“아무튼 간, 세상을 지키는 모험에 억지로 참여해야겠다.”

“하아. 이제 막 일을 끝내고 쉬려고 했는데.”

“티아와 같이 가는데도 싫나?”

“그건 아니지만. 다 같이 가는 거 아니야?”

“샤를로즈는 빨리 일을 끝내고 싶어 해. 나도 그 부분에 동의하고 있고.”

“그럴까 봐 너희 혼인 신고서는 내가 미리 통과시켰어. 법적으로 너희는 부부야. 어때, 이래도 날 데려가고 싶어?”

“뭐, 티아를 대마법사놈에게 넘기고 싶다면 그렇게 발버둥 쳐 봐.”

“이 못된 악마 놈!”

해리슨은 티아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은지 잠옷을 훌러덩 벗고는 대충 편안하게 입을 옷을 찾아 입었다.

눈에 띄는 의상만 아니면 되겠지.

새하얀 셔츠에 가벼운 바지 차림에 누가 봐도 황제라는 포스가 들지 않게끔 치장했다.

“진작 빨리 움직였으면 좀 좋아? 그리고 대마법사놈은 어딨어?”

“마탑에 있겠지.”

“불러.”

“하아. 귀찮게 하네.”

“샤를로즈의 부탁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나도 방해꾼들 없이 샤를로즈와 둘이서 떠나고 싶었는데 그녀가 원하니깐 어쩔 수 없어. 난 샤를로즈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거니까.”

“그래, 샤를로즈 바라기야.”

“그게 무슨 뜻이지?”

“해바라기는 한 사람만 보거든. 거기서 해를 빼고 샤를로즈를 붙이면 샤를로즈만 보는 멍청한 놈이 되는 거지.”

“정말 좋은 뜻이군. 신비로운 인간어에 대해서 다시 배워 가는 기분이야.”

“또라이.”

“그 말은 바로크엘에게 많이 들어 본 단어야.”

“아무튼 간, 시간이 없다고 했지?”

“네가 늘 데리고 다니던 대마법사도 불러야 해.”

해리슨은 마탑에 있는 요한을 부르는 방법인 마법 호루라기를 꺼내 삐익, 소리를 냈다.

이 마법 호루라기는 해리슨이 요한을 부를 때 가끔 사용하곤 했다. 정말로 위급상황이었을 때만 썼다.

그러라고 요한이 해리슨에게 준 것이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슨의 침소 바닥에 황금색 마법진이 생기면서 요한이 튀어나왔다.

“폐하, 무슨 일이야?”

요한은 시큰둥한 얼굴로 해리슨에게 물었다가 루아가 옆에 있자 깜짝 놀랐다.

“이 악마 놈은 왜 같이 있는 거야?”

“놀라지 마. 요한. 루아는 이제 인간 편이라서 우릴 해치지 않아. 네가 잠깐 잠을 자는 동안 루아가 악마와의 전쟁을 빠르게 해결해 줬거든.”

“하?”

대마법사 요한은 마력이 떨어지면 동면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가 마침 인간과 악마와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래서 해리슨은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루아가 갑자기 인간의 편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뭐, 그래서 가끔 루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다.

루아 몰래 말이다.

해리슨은 시시하다며 다시 돌아가려는 요한을 붙잡았다.

“샤를로즈가 같이 모험을 떠나자고 하네.”

“……샤를로즈가?”

요한은 샤를로즈 이름이 해리슨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몸을 굳혔다.

그리고 무언가 고민했다.

“어째서?”

“세상이 지금 멸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나.”

“갑자기 세상이 멸망한다고?”

루아는 그 점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요한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레이스가 제레미라는 샤를로즈의 둘째 오라비의 몸에 빙의했다. 그레이스는 죽지 않고 영혼째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악의 편에 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해. 샤를로즈에게 이미 선포했어.”

요한은 규모가 커진 것 같은 느낌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루아의 다음 말에 얼른 가자며 이동 마법을 펼쳤다.

“샤를로즈가 너희 중 한 명을 티아와 엮어 준다고 하더군. 참고로 이번 모험에 티아도 함께 가.”

“그럼 당연히 가야지. 샤를로즈가 저런 깜찍한 발상을 할 줄이야. 몰랐네.”

루아는 인간의 이중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뭐든 하는 게 빌어먹을 인간이지.

루아는 왠지 모르게 샤를로즈가 아닌 다른 인간들에게서는 친근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샤를로즈 덕분에 얼굴을 많이 맞대어 불쾌한 느낌은 없었지만, 일반 인간들이 자신을 만지려고 하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루아, 얼른 이 마법진 안으로 들어와. 비좁겠지만, 잠깐만 참아. 한 3초 정도.”

루아는 혼자 악마의 이능력으로 빠르게 티아의 방으로 이동하기 전, 해리슨과 요한을 지켜봤다.

이건 샤를로즈의 귀한 부탁이었다.

어떻게든 그 부탁을 잘 들어줘야 했다.

해리슨과 요한이 있는 마법진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의 몸이 닿았다.

그리고 황금색 빛이 주변에 일렁였다.

루아는 그 황금색 빛이 보이자 빠르게 악마의 이능력 중 순간이동으로 티아의 방으로 이동했다.

곧 티아의 방 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루아는 티아의 방 안이 보이자 얼른 마법진에서 발을 떼었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거북해.

샤를로즈를 안고 싶어.

루아는 한참을 샤를로즈를 찾았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면서 샤를로즈와 레나 그리고 제레미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샤를로즈!”

“어머, 루아. 폐하와 요한을 데려오셨군요. 잘했어요.”

루아는 샤를로즈를 껴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 고양이처럼 뺨을 비비적거렸다.

샤를로즈에게서 나는 향이 기분이 좋은지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냈다.

샤를로즈는 잘 닿지 않은 루아의 등을 어떻게든 토닥여 주며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불쾌했던 감정이 점점 사라졌다.

곧 루아의 입가에 미소가 희미하게 지어졌다.

“루아! 언니를 마음대로 껴안지 마!”

그리고 욕실에서 나온 티아가 루아의 애정 행각을 보며 화를 냈다.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 가슴께로 오는 백금발의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티아. 머리부터 말려야겠다.”

요한은 티아의 흐트러진 모습에 귓가를 붉히며 얼른 바람의 마법을 써 그녀의 머리를 빠르게 말려 주었다.

그 와중에도 티아의 관심은 오로지 샤를로즈에게로 쏠렸다.

“언니, 나도 안아 줘!”

“안 돼. 티아. 샤를로즈는 이제 내 아내야. 마음대로 안으려고 하지 마.”

루아는 샤를로즈에게 떨어진 다음 달려들려는 티아를 경계했다.

샤를로즈는 싸우지 말라며 하하,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제 뒤에 머뭇거리는 제레미에게, 아니 그레이스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그레이스, 서로 신뢰는 없을지도 모를 엉망인 파티에서 재밌게 세상이나 지키지 않을래요?”

그레이스의 두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샤를로즈가 마치 제 암울한 인생에서 꺼내 준 것처럼.

“…응. 나는 악의 편이지만, 너희랑 같이 놀고 싶어. 이기적이지?”

“이기적이면 뭐 어때요. 사는 건 다 똑같은데요.”

“난 세상의 멸망을 멈추지 못해. 세상의 멸망을 멈추려면 악의 심장을 죽여야 해. 나는 껍데기일 뿐이야.”

“그럼 그레이스는 무슨 이유로 제레미 오라버니의 몸속에 들어오게 된 건가요?”

“……그냥 널 보려고. 네 주변은 어떤가 해서.”

샤를로즈는 모호한 그레이스의 대답에 화사하게 웃어넘겼다.

“사람 사는 거 똑같다고 했잖아요. 저도 그레이스와 별다를 거 없어요.”

“나는…… 구제불능이야. 네가 날 어둠 속에서 구원해 주고 있는데 내 마음은 세상이 잔혹하고 너무 싫어. 이래도 나를 받아줄 거야?”

샤를로즈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요. 게다가 사정 있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재밌는 법이거든요.”

“……미련하긴.”

“얼른 제 손 잡아 주세요. 그레이스. 또 팔이 떨어지겠어요.”

“정말 미안해. 샤를로즈.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해서.”

“제 인생은 제가 정해요. 그레이스.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세요.”

탁.

샤를로즈가 건넨 손 위에 그레이스가 제 손을 올려놓았다.

샤를로즈는 그레이스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도망가면 안 돼요?”

“응. 대신 날 꼭 죽여 줘?”

“네. 그레이스. 저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스타일이거든요.”

“믿음직하네.”

그레이스의 난도질 당한 마음에 점점 새살이 돋았다.

제게 처음으로 따스한 손을 내민 인간, 샤를로즈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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