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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114/120)

114화

샤를로즈는 레나와 루아를 레베크 공작저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제 방으로 가 적당한 프릴이 있는 새까만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곧 그 위에 후드가 있는 망토를 뒤집어썼다.

치장은 하지 않을 것이고.

음. 머리 정도만 빗을까.

급하니까 대충.

샤를로즈는 둥근 빗으로 제 파도치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빗었다.

엉켰던 부분이 조금씩 풀어지더니 곧 조금 엉망이었던 머리 모양이 되돌아왔다.

샤를로즈는 화장대로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제 뺨을 살짝 내리쳤다.

짝!

“정신 차려. 이제 클라이맥스야. 네가 원하는 퇴장이라고.”

샤를로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용맹한 금안을 빛냈다.

끼이이익.

그녀는 오래된 제 방을 나갔다.

이제 진정한 자유가 샤를로즈의 등 위에서 날갯짓을 했다.

***

샤를로즈는 제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레나와 루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루아에게 부탁했다.

“루아, 해리슨과 요한 좀 불러 와 줘요. 티아가 급한 용무가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요.”

“정말 그 인간들을 데리고 가시는 건가요?”

루아는 꼭 그래야 하냐며 시무룩한 표정을 내비쳤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활짝 웃었다.

“주연들이 모여야 재밌는 일이 생기죠. 그리고 귀찮은 일은 이제 더는 저도 사양이라서요!”

눈에 띄게 밝은 샤를로즈의 모습에 루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다고 답했다.

루아는 악마의 능력 중 ‘이동’을 이용해 해리슨이 낮잠을 자는 침실로 이동했다.

휘이이익-.

루아가 있던 곳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정말 다들 의욕이 넘치네.”

샤를로즈는 자신도 의욕을 내야 한다며 티아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레나는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샤를로즈 님, 정말 다 데려가실 거예요?”

“응.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도 깨고, 세상의 평화도 지키게. 동시에 하는 편이 더 편하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차피 모 아니면 도야. 나는 도박판에 몸을 던졌어.”

“샤를로즈 님!”

샤를로즈는 티아의 방으로 가기 위해 층계를 밟아 계속해서 내려가 곧이어 3층에 도착했다.

3층은 티아를 위해 꾸며진 곳이었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자신의 초라한 방과는 다르게.

샤를로즈는 이제 이런 차별된 상황에서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홀가분해 누가 호호,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티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방문을 두드리며 티아를 불렀다.

샤를로즈는 이판사판이었다.

막 나가기로 마음먹은 거 지금부터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샤를로즈의 마음을 차지했다.

결국 티아의 허락 없이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티아! 여행 가자!”

“……으음. 언니?”

낮잠이라도 자고 있던 것인지 티아는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다 같이 여행 가자. 여행이라고 하면 조금 그런가. 다 같이 모험을 떠나자.”

“언니, 왜 그래?”

티아는 약간은 흥분한 듯한 샤를로즈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했다.

제 언니가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 있었던가.

아니.

지금 처음 봤다.

“언니, 혹시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거야? 왜 이렇게 흥분했어?”

“티아, 아니. 릴리. 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심장이 막 떨려.”

“그러니깐 왜 심장이 떨리는 건데? 루아 그 악마 놈 때문에?!”

릴리는 제 언니를 빼앗아간 루아를 떠올리며 이를 으득 갈았다.

“루아도 내 심장을 떨리게 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거든.”

“어떤 놈이야!”

릴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사실 죽었다던 신, 그레이스가 나타났어.”

“으음. 왜?”

“유진 오라버니가 죽은 날, 너를 잠들게 한 녀석도 그레이스야. 참고로 그레이스는 제레미의 몸에 있어.”

“응? 제레미 오라버니의 몸 안에 그레이스가 있다고? 어째서? 레나 말해 봐! 너는 그레이스를 보좌했던 흑주술사였잖아!”

레나는 자신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째서 제레미 도련님의 몸속에 그레이스가 들어가게 된 건지. 아마도 샤를로즈 님을 지켜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인물을 선택한 거 아닐까요?”

“그럼 나도 있잖아!”

“당신은 그레이스가 만든 시나리오의 여자 주인공이에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니 건들지 않았을 테고, 남자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건들지 않았을 거예요.”

“루아도 있잖아!”

“루아는 악의 최고위에 있는 분이에요. 악의 편인 그레이스가 굳이 루아의 몸속에 들어오겠어요? 마지막 한 사람. 샤를로즈 님 주변에 크게 연관 없는 제레미 도련님밖에 없죠.”

그레이스가 제레미를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딱딱 떨어지게 설명하는 레나의 말에 릴리는 빠르게 납득했다.

“그렇네. 유진 오라버니도 죽었으니 제레미 오라버니밖에 남지 않았구나.”

“릴리! 어서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자. 난 이미 다 준비했어.”

“…언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원래 모험은 갑작스럽게 떠나야 재밌는 법. 그리고 지금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걸. 그레이스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그 꼴로 가겠다고? 짐도 없이?”

“짐이 무슨 필요가 있어? 대충 먹고 대충 자면 되는데.”

“언니. 루아에게 예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굳이?”

“곧 언니의 남편이 되는 자에게 예쁨받고 싶지 않아?”

“별로? 나는 루아에게 가식적인 행동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챙기자. 짐은 하나면 충분하겠지?”

“응. 쓸데없이 많이 가져가면 귀찮으니까.”

“그런데 모험 가는 사람은 여기서 루아가 끝이야?”

릴리의 질문에 샤를로즈는 실룩이는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대답했다.

“아니. 너를 위한 남자 주인공 두 명이 추가될 거야.”

“……?”

짐을 챙기던 릴리가 샤를로즈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설마.”

릴리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샤를로즈를 응시했다.

“그 설마가 맞을지도?”

“언니! 왜 자꾸 그 사람들을 끼는 건데!”

“약속했잖아.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네가 깨 주기로.”

“……그건 그런데.”

“그러니깐 난 너를 믿고 있어. 릴리. 넌 나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깨 줄 거야. 그리고 너도 솔직하게 마음이 있잖아. 그들에게.”

“무, 무슨 마음이 있다고 그래? 언니에게 나쁜 짓한 사람들과 인연을 쌓고 싶지 않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건 너희의 해피엔딩인데도?”

“으으으…….”

릴리는 샤를로즈의 애타는 눈빛에 고개를 휙 돌렸다.

레나는 릴리를 보며 생각했다.

저러다가 샤를로즈 님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줄 기세였다.

여기서는 말려야겠다.

레나는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릴리와 샤를로즈의 사이에 들어갔다.

“잡담도 시간 낭비예요! 혹시 몰라요, 악의 심장이 또 도망갈지도!”

“알았어, 레나. 일단 루아를 기다리자. 그들을 데려오기로 나와 약속했으니 데리고 올 거야. 아, 참. 릴리. 그들이 올 테니 넌 씻고 와. 모험에 떠나면 잘 못 씻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릴리는 옷을 홀라당 벗더니 방에 붙어 있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샤를로즈는 레나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두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다.

“레나, 그 숲에 정말 악의 심장이 있는 거지?”

“네. 선의 심장이 반응한 건 그 숲밖에 없어요. 분명히 그 숲에 있을 거예요.”

“저주의 숲, 거기 어떤 곳이야? 이름부터가 조금 불길해서 말이야.”

“말 그대로 다양한 저주에 걸릴 수 있는 숲이에요. 물론, 저주에 걸린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특이 사항으로는 어둠을 조심하셔야 해요. 저주의 숲은 어둠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악의 심장도 어둠을 좋아해서 저주의 숲에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선은 밝은 곳을, 악은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레이스에게?”

“네.”

“그럼 나도 신이 되면 심장이 두 개가 되나?”

“신의 각성으로 두 개가 되실 거예요.”

“그런데 그레이스는 어떻게 죽게 된 거야? 심장은 잘 살아 있잖아.”

“그레이스가 심장 두 개를 꺼내 자유를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예요. 이럴 경우에는 신의 자격 박탈로 영혼이 소멸되는데. 이상하게도 그레이스는 소멸되지 않았어요.”

“그럼, 우리 그레이스나 보러 갈까.”

“티아는요?”

“티아, 씻고 치장하는 거 기다리면 보통 1시간 이상은 걸리니까 시간이 제법 남아. 그리고 아직 루아도 오지 않았으니까 그레이스한테 가자. 그레이스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하던 찰나였거든.”

‘왜 나를 악녀에 빙의시켰고, 왜 선택받은 신의 후계자 중에 나였는지에 대해.’

굉장히 궁금했거든.

망할, 그레이스.

샤를로즈는 레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레나는 오늘따라 너무 제멋대로 행동하는 샤를로즈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샤를로즈 님! 너무 막 나가시는 것 같아요!’

레나의 속마음은 안타깝게도 샤를로즈에게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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