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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112/120)

112화

샤를로즈는 루아의 뜨거운 애정행각에 가만히 있었다.

“루아, 요즘 악의 기운을 못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요?”

“그럼 마음껏 악의 기운을 채우세요. 모험을 떠나면 정신도 없을 테니까요.”

“샤를로즈는 제가 악의 기운을 먹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나요?”

“아뇨. 애정과 갈증이 섞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샤를로즈는 정말 상대방을 애간장 태우는 걸 잘하네요.”

루아는 샤를로즈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비며 읊조렸다.

샤를로즈는 반쯤 눈을 뜨고선 루아의 애교를 받아들였다.

“샤를로즈.”

그러다가 갑자기 루아가 샤를로즈의 목덜미에서 입을 떼더니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샤를로즈는 눈매를 휘며 대답했다.

“왜 불러요?”

“모험이 끝나면 샤를로즈는 바로 제가 있는 이 저택으로 오는 거죠?”

루아의 물음에 샤를로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네. 우리는 부부고, 이제 하나예요.”

그 인형 같았던 샤를로즈가 자신을 향한 감정을 잘 드러내니 기분이 묘했다.

루아는 그저 얼굴을 푹 숙이며 부끄러워했다.

샤를로즈는 또 부끄러워하냐며 루아를 놀렸다.

“미워요. 샤를로즈.”

루아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사선으로 비틀어 샤를로즈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어리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의 침실에 적나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 시각, 레나는 감시자의 눈으로 세계를 뒤적거리며 그레이스의 악의 심장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품 안에 있는 선의 심장이 갑자기 파르르 떨며 반응이 오는 걸 느꼈다.

‘선이 반응하는 걸 보아하니 이 주변에 있는 것 같네.’

선의 심장과 악의 심장은 둘이지만 하나였다.

그 덕분에 악의 심장을 조금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대강 여기에 있다라는 건 알게 된 레나는 피곤함에 뻑뻑한 두 눈을 잠시 깜빡였다.

선의 심장이 자신의 것이 저기 있다고 크게 반응하는 걸 보니 그레이스도 정말 끝이구나.

정말, 산산조각이 나는구나.

‘나의 구원자는.’

레나는 잠시 슬픈 눈으로 먼지가 휘날리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왠지 모를 불안과 편안함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이제 정말 끝이야.

그레이스와는.

레나는 그레이스를 진정으로 놓을 때가 되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일단, 샤를로즈 님한테 가 봐야겠다.”

악의 심장 위치를 대강 찾았다고.

레나는 충성심이 깊은 신의 보좌관이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구원자이자 세상을 사랑하게 해 준 위대한 분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은 완벽한 적이었다.

‘이제 내 주인님은 그레이스가 아닌 샤를로즈 님이야.’

레나는 샤를로즈가 바깥에 나갈 때 걸치라고 준 후드 망토를 뒤집어썼다.

이러면 자신이 성녀와 같은 얼굴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니 참 간편한 차림이었다.

게다가 주인 없이 돌아다녀도 좋은 곳이 바로 샤를로즈의 방이었다.

샤를로즈가 자신이 부를 때 빼고는 오지 말라고 한 덕분에 사용인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아 레나의 입장에서는 참 편안했다.

이런 귀족 영애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샤를로즈는 억압된 일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유와 꿈을 좇는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이렇게 자유를 좋아하는 귀족 영애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샤를로즈가 워낙 성격부터 생각하는 게 독특하니 가능한 일인가.

레나는 그간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샤를로즈와 있던 순간순간을 떠올리며 샤를로즈의 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샤를로즈 님은 루아의 저택에 있네.’

레나는 샤를로즈의 몸에 위치 추적기와 같은 것을 몰래 붙였다.

샤를로즈는 신의 후계자였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 고귀하신 분이었다.

자유를 추구해서 그 말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위치 추적기를 달아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안 그러면 또 이상한 일에 휘말려 언제 죽으실지 모른다.

레나는 샤를로즈의 성격이 워낙 불 같아 항상 조심 또 조심을 속으로 외쳤다.

물론, 샤를로즈에게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 없는 말이었다.

레나는 샤를로즈를 잘 보호하고 있었다.

신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언제 사라질지,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샤를로즈이기에 레나는 늘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항상 마음에 담아 두고 있기만 해 샤를로즈는 아마도 레나가 샤를로즈를 이렇게까지 아끼는 줄은 잘 모를 것이다.

정말로.

레나는 얼른 이 망할 일 처리를 끝내기 위해 빠르게 저택에서 나오려는데.

툭.

누군가의 몸을 맞고 튕겨져 나와 엉덩방아를 찧었다.

레나는 아파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두꺼운 손이 제 시야에 보였다.

남자 손?

골격부터 다른 남자의 손.

레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슬쩍 올려 자신과 부딪힌 이가 누구인지 살폈다.

새하얀 은발에 푸른색 눈을 가진, 저와 닮은 남자.

제레미 레베크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제게 손을 뻗었다.

“미안. 아프지?”

“……괜찮아요. 제레미 도련님.”

레나는 자신이 지금 샤를로즈의 전속 하녀라는 걸 잊지 않으며 제레미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일어났다.

누가 감히 평민 하녀가 귀족 자제의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는가.

레나는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제가 부주의해서 부딪혀서 죄송해요. 제레미 도련님.”

“아니야. 내가 책을 읽느라 앞을 보지 못했어.”

“제레미 도련님이 사과하실 상황이 아니에요. 제 불찰이에요, 죄송해요. 그럼 전 바쁜 일이 있어서.”

레나는 꾸벅 마지막 인사까지 하며 제레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특유의 꽃이 물든 것 같은 향기.

‘잠깐만, 이 향기는?’

레나는 유연하게 움직이던 두 발을 빠르게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도 제레미는 가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몸을 사선으로 움직여 레나를 쭉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레나는 샤를로즈에게 가야 하는 것을 잊어먹지는 않았지만, 지금 제 코를 쑤시는 이 향기도 잊지 않았다.

‘그레이스.’

이 향기를 가진 건 오로지 그레이스밖에 없었다.

그레이스가 죽은 후, 그녀와 같은 향기를 가진 이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을 제외하면.

“…제레미 도련님이 어째서 이 향기를-.”

“으음. 글쎄.”

제레미는, 아니 제레미의 몸속에 있는 그레이스는 능청스럽게 레나의 질문을 회피했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분이 그 몸속에 있는 건 아니죠?”

레나는 설마했다.

그야 신은 모든 생명체의 몸을 드나들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직 죽지 않은 신이라면 신빙성이 있는 일이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둥글게 웃는 눈매, 독특한 향기.

웃을 때 어색하게 올라가는 입꼬리.

예전에 제레미 도련님을 봤을 때는 활짝 올라갔었는데 왜 지금은 어설프게 올라가는 걸까.

레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그레이스가 죽으면서 남긴 선의 심장을 꺼냈다.

반응이 오면 저 몸속에 있는 건 그레이스다.

“어라. 그거.”

제레미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네가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냐는 듯.

레나는 반응이 슬슬 오는 제레미의 모습에 선의 심장을 제 품에 다시 숨겼다.

제레미는 선의 심장을 보자 조금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걸 바로 알아차린 레나가 이제야 장례식장에서의 제레미에게서 낯선 느낌이 났다는 샤를로즈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야 제레미 도련님의 몸속에 그레이스가 있으면.

당연하게도 어색하겠죠.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죠.

샤를로즈 님은 그레이스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니까요.

레나의 두 입가가 반듯하게 올라갔다.

“당신, 그레이스 맞죠?”

“나는 레나를 속이는 짓은 못 하겠네.”

“언제부터 제레미 도련님의 몸속에 숨어든 거예요?”

“최근에. 여기 레베크 공작이 죽은 후.”

그레이스는 레나에게 이미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기에 더는 제 자신을 숨기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레나는 그레이스가 눈앞에 보이자 당당하게 제가 묻고 싶은 걸 물었다.

“그레이스, 당신은 지금도 악에 물들어 있나요?”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냐고 묻는 거야?”

“네.”

“응. 나는 이 세상이 정말 싫어.”

“제게는 이 세상이 좋다며 잘 구슬렸으면서, 왜 마음이 갑자기 바뀐 거예요?”

“선한 건 재미없어. 악이 더 재미있어.”

“혹시 이안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레나는 병자들의 섬에서 본, 그레이스를 만났다던 악마의 이름을 입에 담아 보았다.

혹시 몰랐으니까.

세상을 사랑했던 그레이스가 갑자기 악을 사랑하고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다며 울부짖는 꼴이 이상했으니까.

그레이스는 그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놀랐다.

“안면이 조금 있거든요. 그리고 그레이스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군요.”

“아아, 이안은 잘 지내?”

“그레이스를 따라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아아, 이안이 나를 따라 인간이 되고 싶어 해?”

그레이스는 레나의 말에 섬뜩하게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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