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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100/120)

100화

그렇게 루아는 샤를로즈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녀는 그의 저택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응접실에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에게 늘 순종적이었던 루아가 이렇게까지 변했다니.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 대악마에서 인간이 되기를 바라다니.

샤를로즈는 루아를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자신의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지,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상상은 해 본 적 없었다.

그저 곁에 두겠다는 마음은 가진 적 있어도.

“샤를로즈, 저는 이제부터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그럼 우리의 계약이 깨지잖아요.”

“다른 계약을 하면 되죠.”

“……다른 계약이라. 어떤 계약을 말하는 걸까요?”

“결혼이요.”

“결혼을, 그러니깐 계약 결혼을 하자 이 말씀인 건가요?”

“네.”

갑자기 계약 결혼이라니.

어느 흔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가 루아의 입에서 튀어나오니 이질감이 들었다.

“저를 사랑하지 않나 봐요? 계약 결혼을 하려는 거보니.”

“아뇨. 미치도록 사랑하지만, 샤를로즈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니 계약을 건 결혼이 어떨까 싶어서요.”

솔직하게 말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만약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루아를 선택할 것이다.

그 정도로 루아와 많이 가깝기도 했고,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쌍방 구원이라고 했던가.

루아에게 있어서 샤를로즈는 구원자였고, 샤를로즈 또한 루아를 구원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궁창이었던 인생을 새로 바꿔줬을 뿐만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거지 같은 삶을 버티게 해 주는 버팀목.

그들은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샤를로즈는 잠시 고민하다가 침묵을 깼다.

“어떤 계약 조건을 내세울 건가요? 갑자기 루아의 계약 조건이 궁금해져서요.”

“샤를로즈가 원하면 이혼해 드리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쓰는 건 어떠한가요?”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요. 루아가 싫으면 이혼이라.”

루아는 샤를로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지만, 표정 한 번 바뀌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정말 이 조건만으로 저와 결혼해 줄 건가요?”

“네. 결혼해 드리죠. 저도 정착할 곳이 마침 필요했거든요.”

샤를로즈는 지금 주변이 무척 산만한 상황이었다.

첫째 오라비인 유진은 저만 보면 짜증을 내고 툭하면 시비를 걸기 바빠 레베크 공작저에 있기 싫게끔 만들었다.

거기에 둘째 오라비인 제레미는 자신에게 미쳐서 이미 정신을 놔 버린 상황이라서 마주치기 껄끄러웠다.

그리고 티아, 아니 릴리 같은 경우는 자신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여 귀찮을 따름이었다.

제아무리 원작 여자 주인공이라지만, 선이 있었다.

릴리는 그 선을 아예 넘어 버렸다.

현대 세계에서는 시스콤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지금 릴리가 딱 그 단어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 더 과도한 시스콤이었다.

언니 바보를 넘어선 집착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충신이자 보좌관이 될 레나.

유일하게 이 애는 데려갈 생각이었다.

레나가 계속해서 레베크 공작저에 살기엔 무리였다.

아무래도 릴리와 똑같은 외형을 가졌다 보니 사용인들이 종종 릴리와 레나를 헷갈리곤 했다.

분명히 다른 옷을 입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가끔 레나를 보며 “티아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용인들이 있다고 유진 오라버니에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원작 남자 주인공들은 툭하면 원작 여자 주인공인 릴리를 보기 위해서 무턱대고 레베크 공작저를 찾아왔다.

이것도 사실 너무 불편했다.

갈 곳이 없어서 쭉 참고 있었는데.

마침, 루아가 집이 생기고 작위가 생겼다니 참 다행이었다.

갈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샤를로즈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쉬었다.

그것도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존재가 있는 집.

자신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집.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샤를로즈는.

“정말, 정말로 저와 결혼하실 건가요? 저는 진심이에요. 샤를로즈.”

루아가 울먹이며 샤를로즈에게 거듭 물었다.

샤를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결혼하죠. 되도록 빠르게.”

아직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깨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깨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시나리오에서 빠져 줘야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작 여자주인공이 계속 제 옆에만 머물고 있으니, 어떻게 시나리오가 진행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자신이 가볍게 원작에서 퇴장해 주면 시나리오도 알아서 흘러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반짝 떠오르게 되었다.

샤를로즈는 원작에서 퇴장도 할 겸 자신의 결혼 엔딩을 선택했다.

뭐, 루아와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그의 청혼을 받고 나서부터 점점 커져 갔다.

루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샤를로즈의 오른쪽 손을 붙잡은 다음 입을 맞추었다.

“제 영원한 삶을 당신에게 드려요.”

그 순간이었다.

루아가 입을 맞댄 샤를로즈의 오른쪽 손등에 푸른 빛이 퍼졌다.

“루아, 이건 뭐예요?”

“샤를로즈에게 제 가호를 내려준 것뿐이에요. 이제 악마들은 아무도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할 거예요. 아니, 그 누구도 샤를로즈를 다치게 하지 못할 거예요. 그만큼 위력이 강한 가호예요.”

“그렇군요. 늘 고마워요, 루아.”

샤를로즈는 손등에 새겨진 푸른색 날개 표시를 신기해하며 들여다보았다.

“사랑해요, 샤를로즈.”

루아는 샤를로즈에게 수줍게 사랑을 고백했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고백에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샤를로즈는 루아에게 청혼을 받았음에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했고, 이게 진정 사랑이 맞는지 확신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는 하지만 설렘은 아직 느끼지 못했다.

그저 루아가 익숙할 뿐이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대답을 이미 예상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둘의 결혼은 빠르게 진행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아, 애들이 기다리겠어요. 일단 약혼서부터 레베크 공작저에 보내 주세요. 그리고 얼른 결혼을 진행하도록 하죠.”

“좋아요. 그나저나 아까 다치지 않았어요?”

루아는 자신이 탔던 흑색의 말 앞에서 넘어진 샤를로즈는 잠시 떠올렸다.

샤를로즈는 별거 아니라며 두 손을 휘휘 저었지만, 루아는 과감하게 그녀의 치맛자락을 슥 올렸다.

샤를로즈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저 멀뚱히 루아를 응시했다.

앙상한 무릎 위에 땅바닥에 긁힌 자국과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루아는 혀로 무릎 위를 핥았다.

샤를로즈는 따가움에 신음을 흘렸다.

“으으…. 뭐 하는 거예요, 루아.”

“악마의 혀는 치료 효과도 있어요. 몰랐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네요.”

“특히 대악마의 혀는 다른 악마들보다 치료 효과가 몇 배는 더 강하답니다.”

“……으윽, 아파요.”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치료했으니까요.”

할짝, 할짝.

루아의 붉은 색 혀가 느릿하게 샤를로즈의 상처투성이가 된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샤를로즈는 곧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얼른 제 무릎을 살폈다.

상처투성이었던 두 무릎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처가 다 아물었다.

“신기하네요. 진짜 상처가 다 없어졌어요.”

“샤를로즈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으세요? 제가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했는데도?”

“아, 네. 그냥 루아가 편하게 보여서요.”

“그렇군요. 샤를로즈가 조금 더 내게 넘어올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어요.”

보통 이 정도면 인간들이 홀라당 넘어온다고 바로크엘이 그랬는데.

루아는 아쉬움을 토해 내며 샤를로즈의 치마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레베크 공작저까지 마차로 데려다주었다.

“혼자 갈 수 있는데…….”

“아뇨. 제가 샤를로즈를 더 보고 싶거든요. 마차 안에서 애정 행각을 나누고 싶기도 하고요.”

루아의 대담한 발언에도 샤를로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루아는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편한 존재로 생각하는 건지 이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페롤로제나의 상징인 붉은 장미가 박힌 마차에 올라탄 샤를로즈가 루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요.”

“…네?”

“저랑 애정 행각하고 싶다면서요.”

확 들어오는 샤를로즈의 대범함에 루아는 두 뺨이 붉어졌다.

‘너무 멋있잖아, 그나저나 왜 이렇게 설레는 거야.’

몇천 년을 살면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루아의 창백한 손이 샤를로즈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얼른 타요.”

“……그럼 도착할 때까지 계속 손잡고 있어도 돼요?”

샤를로즈는 순간 생각했다.

루아가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이렇게 순수하게 나오는 걸 보니 100퍼센트 연애 경험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주도권도 빼앗지 못하는 걸 보니… 더더욱 확신이 갔다.

샤를로즈는 이런 루아의 모습도 귀여웠다.

마차 안에 올라탄 둘은 나란히 옆으로 앉았고, 루아가 마차의 문을 직접 닫았다.

시중을 불러 시키면 되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샤를로즈의 시중이 되고 싶었다.

루아는 샤를로즈를 위해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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