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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84/120)

84화

티아의 생일을 제대로 축하하지 못해 곧 축하 파티를 열 예정이라고 제레미 오라버니가 전해 주고 갔다.

아무래도 유진 오라버니는 티아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로즈는 아침부터 식사 대신 홍차를 찻잔에 따르며 여유롭게 대처했다.

그래, 축하 파티는 에피소드의 최강자지.

“샤를로즈 님,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건가요?”

“평화로운 게 좋잖아.”

“근데 샤를로즈 님이 데리고 다니던 대악마가 사라져서 뭔가 불안하긴 하네요.”

“돌아오겠지. 루아는 나를 배신하지 않아.”

“어떻게 그리 단정하실 수 있으세요?”

“그냥. 내 예리한 감?”

샤를로즈는 병자들의 섬에서 레베크 공작저로 온 후부터 루아를 보지 못했다.

그저 계약 관계가 유지된다는 표식만 남아 있을 뿐, 루아는 샤를로즈에게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이런 행동을 다 이해해 줬다.

그저 잠시의 자유를 찾아 헤매나 보다 싶었다.

“그 대악마는 샤를로즈 님에게 어떤 악마예요?

레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샤를로즈는 홍차를 마시려다 손을 멈추었다.

“내 구원자.”

“구원자라면 되게 많은 감정이 있겠네요? 결혼이라도 하시게요?”

“딱히 결혼은 생각하지 않아. 그냥 옆에 있으면 편한 존재. 내 마음의 안정제.”

“티아는요? 성녀님은 별로예요?”

“티아는 귀찮아. 그렇지만 선과 악을 평등하게 유지하려면 티아에게도 신경을 써야겠지. 물론, 이 개 같은 시나리오가 끝나면.”

“이번 주인님은 도망가려고 하지 않아서 참 좋네요.”

레나는 두 팔을 위로 쭉쭉 펴며 말했다.

“갈 곳이 이제 이 자리밖에 없으니까. 내가 어딜 도망가겠어. 널 두고.”

“샤를로즈 님,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지쳐요. 지치다 보면 다 도망가게 되어 있거든요. 다.”

레나는 옛날 그레이스를 생각하며 샤를로즈에게 대충 충고를 해주었다.

이 정도면 대충 알아는 듣겠지 싶을 정도의 충고를.

똑똑똑-.

샤를로즈의 방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최근 들어 티아가 계속 샤를로즈에게 찾아오고 있었지만, 샤를로즈가 방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있었다.

다, 거지 같은 원작 게임 스토리대로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이 게임 스토리를 잘 따라 주지 않아서 정말 짜증이 났다.

샤를로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유진 레베크.

제 첫째 오라비였다.

“유진 오라버니가 무슨 이유로 제 방을 찾아오셨을까요?”

“티아를 위한 파티 초대장을 직접 건네주러 왔다만.”

“꼭 그걸 직접 건네줘야만 했어요? 사용인들을 시키거나 하면 되잖아요.”

“네게 꼭 말해 둘 것이 있어서.”

“뭔데요? 아, 오라버니를 방까지 들일 정도로 저희 친하지는 않으니까 여기서 이야기 다 해요.”

“그러지.”

유진은 티아가 다시 돌아오고 난 후, 샤를로즈의 행동거지를 관찰했다.

데리고 다니던 대악마 녀석도 보이지 않았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조금 음침했지만, 차라리 이편이 낫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었는데.

오늘 일이 터졌다.

정신 착란이 온 제레미가 샤를로즈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털어놓았다.

뭐, 빙의?

진짜, 가짜?

유진은 제레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미친놈의 말을 누가 마음에 새겨듣나.

그러나 티아까지 샤를로즈를 보지 않아 침울해하는 꼴을 보아하니 제레미의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가는 것 같기도 해서 샤를로즈를 무작정 찾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를 기다리는 티아의 모습에 유진은 이 모든 악이 샤를로즈라고 단정 지으며 지금 단판을 지으려고 했다.

제레미도, 티아도.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이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제레미가 그러더군.”

“뭐라고 하시던가요?”

샤를로즈는 제레미의 이름이 유진의 입에서 튀어나와도 여유로웠다.

그야 미친 제레미의 말을 누가 믿냐만.

“넌 가짜고, 진짜는 죽었다고.”

“제레미 오라버니가 옛날부터 소설을 참 좋아하셨어요. 그것도 막장 소설. 거기에 영향을 꽤 받은 모양이에요. 저는 샤를로즈 레베크예요. 다른 누가 제 몸에 어떻게 들어오겠어요? 그리고 전 잘 숨 쉬고 살아 있는데. 왜 자꾸 죽이는 건지.”

“제레미가 그러더군. 넌 이미 죽었다고.”

“제레미 오라버니의 정신을 조금 돌봐 주세요. 이러다가 정말 미치겠어요.”

“이미 미친 지 오래야. 네가 가족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니 내가 전달해 줄 수밖에.”

“어머, 제가 언제 레베크 공작저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고 그러세요? 저는 관심이 꽤 많아요.”

“그래서 넌 누구지?”

“유진 오라버니, 조금 전부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샤를로즈는 제레미가 악마 흉내를 내면 도망갈 정도로 악마를 무서워해. 내게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지. 오라버니, 악마는 너무 무서워요. 라고.”

“그게 어쨌다고요?”

“생각해 보니 넌 옛날부터 악마를 무서워했었어. 그래서 내가 널 무서운 악마가 있는 지하로 가뒀는데 악마와 계약을 하더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많이 이상해.”

“옛날에 무서웠던 게 지금 무섭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제 변명 거리는 떨어진 건가요?”

“변경 거리라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냥 말해 본 건데.”

사실 유진은 제레미의 정신 나간 말을 듣고서 꽤 긴 시간을 고민했다.

제레미가 진짜로 미쳤는지.

제레미의 말대로 샤를로즈가 가짜인지.

생각해 보면 티아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안 건지. 왜 자꾸 자살을 하려고 했던 건지 의문이 남았다.

유진은 샤를로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점이 늘어남을 깨달았다.

그래서 찾아와 따지듯 묻는 대신 물 흘러가듯 대화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도록 이야기하고 있었다.

“피곤해서요. 초대장은 이렇게 직접 받았으니까 돌아가실래요? 지금 저보다는 티아와 함께 있고 싶잖아요. 몇 달간 못 해 준 거 다 해 주세요. 저는 얌전히 굴 테니.”

“아, 티아도 좀 봐 줘. 너를 못 본다고 얘가 우울해 있으니 죽겠어.”

“언젠간 보러 간다고 대신 전해주세요.”

“네가 직접 전해. 너, 그런 거 잘하잖아. 특히 티아에게는 더욱더.”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떠오르는 게 없는데.”

“옛날 샤를로즈는 티아가 웃는 꼴을 못 봤지. 티아가 행복해하면 자기는 티아와 같이 죽겠다며 난리를 쳤는데. 지금 이렇게 평온한 게 조금 이상한데.”

“옛날로 돌아가기를 바라시는 건아요? 그럼 귀찮게 악역으로 가는 길을 선택할게요. 유진 오라버니가 원하시는 그쪽으로.”

잠깐만, 제레미가 뭐라고 했더라.

악역.

그래, 악역.

그리고 티아를 사랑하라고 명령까지 내렸었다고 했지.

“있잖아, 넌 나와 티아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잘 어울려요. 왜요?”

“나도 티아를 사랑해야 되는 걸까?”

“그건 오라버니의 마음이죠. 왜 그딴 걸 제게 묻죠?”

“제레미가 마지막으로 그러더라고. 눈을 부릅뜨고서는 티아를 사랑해야 한다며 발작을 일으켰지. 다 네가 명령했다며.”

망할 제레미.

샤를로즈의 금안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런 것까지 다 말했어?

하아, 인생.

제레미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정신이 불안정한 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누굴 탓해.’

샤를로즈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어두워진 걸 금방 파악한 유진이 허를 찔렀다.

“그럼 너도 내게 티아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내릴 건가?”

“사사로운 감정까지 제게 공유할 정도로 오라버니들이랑 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잖아요. 평소대로 해요. 평소대로.”

샤를로즈의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활짝 웃을 수는 없었다.

어정쩡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하아, 우리 가문을 몰락하는 게 네 목표야?”

유진은 평상시와 같이 싸늘한 얼굴로 샤를로즈를 향해 물었다.

샤를로즈는 가문을 망쳐 주는 악역은 빠지겠다는 환장하는 대답을 남겼다.

“이제 더 길게 끌지는 않을게. 너, 진짜 샤를로즈야?”

“진짜 샤를로즈예요. 왜 자꾸 가짜 취급을 하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자꾸 터져 나올 것 같아요.”

“근데 왜 이렇게 얌전해? 악행은 이제 끊은 모양이지?”

“손에 맞으면 다시 하려고요. 지금은 쉬는 중.”

샤를로즈는 얄밉게 웃으며 이제 더 이상 유진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 방문을 닫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대려는데.

유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방 안쪽 문고리를 유진이 잡아챘다.

샤를로즈의 한쪽 눈썹이 기분 나쁜 듯 슥 올라갔다.

“예전에는 제게 관심도 없던 분이 왜 이러실까. 그만 티아에게로 가서 티아나 챙기세요. 저 같은 거 관심도 주지 말라고요. 유진 오라버니.”

“아니, 너도 나름대로 내 가족인데 신경을 써야지. 이제부터라도 신경을 자주 좀 쓰려고.”

유진의 도발에 샤를로즈는 평정심을 찾았다.

갑자기 남자 주인공1이 왜 이럴까.

그냥 이대로 지나갔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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