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20)

80화

레나와 이야기가 끝났다.

샤를로즈와 레나 그리고 루아가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샤를로즈는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티아를 중심으로 양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해리슨과 요한이 보였다.

조용하네.

꼭 티아가 조용히 시킨 것처럼.

샤를로즈는 어차피 자신에게는 루아와 레나만 있으면 되었기에 원작 남자 주인공들을 넘보지 않았다.

아니, 넘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들은 그레이스의 시나리오의 주인공들이었고,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깨기 위한 어느 한 게임의 NPC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인공들이 딱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티아는 제게로 다가오는 샤를로즈를 보며 굳힌 얼굴을 금방 폈다.

“언니!”

얼굴이 활짝 핀 것도 잠시 옆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인 레나를 보자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티아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내비치는 솔직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하지만 샤를로즈는 티아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제대로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깰 생각이었으니까.

티아에게 관심을 주면 그 애는 남자 주인공들을 버리고 샤를로즈에게로 올 가능성이 농후했다.

샤를로즈는 티아의 마음을 이미 깊게 알아 버렸으니까.

그럼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아니까.

샤를로즈를 배제하고 남자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지라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티아가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멀어져야 했다.

물론, 그러다가 티아가 또 도망가 버려도 이젠 괜찮았다.

레나가 알아서 잡아 올 테니까.

샤를로즈는 혼자의 몸이 아니었다.

레나, 루아가 샤를로즈를 지키며 보좌하고 있었다.

물론, 루아는 티아와 협력을 맺었지만 그래도 샤를로즈의 편이었다.

티아보다는 샤를로즈.

레나보다는 티아.

딱 이 정도였다.

티아와의 신뢰도는.

루아는 아직도 악마를 닮아 가려는 흑주술사 레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흑주술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주 못된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루아는 레나가 어떻게 샤를로즈를 홀렸는지에 대해서 의문감이 들었다.

신의 후계자?

신의 보좌관?

이딴 이야기를 정말 샤를로즈는 믿는 건가?

어느 부분에서 믿는 건지.

루아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레나, 저 요망한 흑주술사의 술법에 넘어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루아는 샤를로즈를 잃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샤를로즈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 소망은 루아의 굳건한 마음을 약하게 했다.

냉철하다던 대악마 루아가 어쩌다가 한 인간을 원하게 되어서 이렇게 나약한 존재가 되었는지.

아마 다른 악마들이 루아의 모습을 보면 비웃거나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도 제 아비인 루아가 샤를로즈에게 빠진 것에 속으로 꽤 놀란 상태였다.

비록 티는 내지 않았지만.

샤를로즈는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왜,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거지.

‘나랑 말도 섞기 싫나?’

이번에는 딱히 악행이라고 보는 일은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네.

약간 이런 쪽에서는 눈치가 없는 샤를로즈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티아에게 물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조금 답답했다.

그래서 다시 티아의 손을 붙잡고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좀 전은 조금 날카롭게 물어서 그럴지도 모르니.

“티아, 오늘 집으로 돌아갈 거지?”

이 물음에는 의미가 하나 담겨 있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는 함축적인 의미가.

이미 눈치를 챈 티아는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응. 집으로 돌아가야지. 오라버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니 내가 아닌 너를 기다리겠지. 넌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여자 주인공이니.’

샤를로즈는 이제 그레이스의 시나리오가 시작된다고 생각이 드니 심장이 쿵쾅 뛰었다.

긴장이 된 것이었다.

샤를로즈에 빙의하고 첫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

티아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샤를로즈의 앙상한 두 손에 땀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언니가 긴장을 하네.

티아는 샤를로즈의 긴장을 생소하게 받아들었다.

그야 샤를로즈는 긴장 따위 하지 않는 마이웨이한 성격을 보유한 자였으니까.

하물며 제국의 황제인 해리슨의 뺨을 날린 유일한 귀족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처럼 황제의 뺨도 서슴없이 때리는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무슨 연유로 긴장을 하는 걸까.

티아의 입장에서는 샤를로즈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긴장한 건가?’

하기야 오라버니들이 한성격을 하고 있으니.

언니를 또 괴롭히겠지.

…그렇다고 언니가 긴장할 것 같진 않은데.

티아는 의문이 가득한 푸른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샤를로즈의 땀이 가득 찬 두 손에 집중했다.

‘그게 아니라면 설마. 내 마음과 같아서?’

티아는 어리석게도 다른 쪽 길로 새어 버렸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그 길로.

‘난 언니에게 계속 고백했어. 좋아한다고. 그러니깐 언니는 내 진심을 알아서 긴장하고 있는 거야.’

티아의 생각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혼자 김칫국을 마시며 설레 버렸다.

티아는 샤를로즈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언니, 얼른 집으로 가자. 가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자.”

“응. 그래. 나야 좋지.”

네가 남자 주인공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는 일이라면.

샤를로즈와 티아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생각보다 제게 집착하지 않는 티아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기세로 쭉쭉 가는 거야.

‘너는 날 집착하며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를 소중히 여기는 남자 주인공들을 사랑해야 해. 그래야 내가 신이 될 수 있어. 티아. 제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줘.’

샤를로즈는 레베크 공작저로 다시 돌아가기 전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티아가 제 말을 알아듣기를.

“언니, 레나도 데려갈 거지?”

“응. 내 충실한 부하거든. 난 한 번 놓친 인재는 버리지 않아.”

아주 상냥한 답변이었다.

티아는 레나를 자꾸 보호하려는 샤를로즈가 조금은 미웠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억눌렀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차피 레나 따위는 제 언니와 자신과의 사이에 들어오지 못할 테니까.

지금 잘 즐기라며 콧방귀를 꼈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레나는 티아의 견제에 해맑게 웃을 뿐이다.

티아는 레나를 보며 고개를 홱 돌렸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계속 보고 있을 정도로 티아의 비위는 썩 좋지 않았다.

“언니, 요한이 이미 집으로 가는 마법진을 이 거실 바닥에 깔아놨어.”

“그런데 인원 제한이 있지 않아? 요한의 마력이…….”

요한은 제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내 마력은 걱정하지 마. 티아가 있잖아.”

“티아가 있는 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요한?”

“티아의 성력을 내가 마력으로 쓸 수 있거든. 아주 신기한 일이지?”

“티아의 성력이 어떻게 마력으로 변해요?”

“성력은 종종 마력으로도 변해. 마력 자체에도 성력이 섞여 있으니까. 당연한 거야.”

요한은 샤를로즈에게 지식이 부족하다며 꾸지람을 했다.

샤를로즈는 새로운 정보를 얻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요한의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었다.

샤를로즈는 티아의 손을 잡은 제 두 손을 떼어 내며 얼른 티아의 등을 떠밀었다.

“나, 집에 얼른 가고 싶어. 오라버니들이 보고 싶어졌거든. 너도 그렇지, 티아?”

샤를로즈는 떡밥을 미리 깔았다.

바로 남자 주인공들에 속하는 제 오라비들에 대한 티아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물음이었다.

티아는 작게 속삭였다.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은 보고 싶어.”

언니만큼은 아니지만은 빼 줬으면 좋겠는데.

샤를로즈는 “그렇지? 나도 그래.” 라며 티아와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여기서 더 이어지면 또 자신에게 고백할지도 몰랐으니까.

바닥에 대이동 마법진을 만든 요한이 티아와 샤를로즈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로 와. 너희 집에 가는 거니까. 너희 먼저 보내 주지.”

“정말요? 티아 얼른 집에 가자. 오라버니들이 기다리겠어.”

물론 너를 기다리고 있겠지.

티아는 샤를로즈의 성원에 어쩔 수 없이 이동 마법진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샤를로즈는 그 뒤를 따랐고, 레나 역시 샤를로즈의 옆을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요한은 티아와 너무 똑닮은 레나를 슬쩍 봤지만 애써 모르는 척 넘어갔다.

저 가짜 티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왠지 모르게 뒤숭숭했기에.

차라리 못된 샤를로즈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낫지.

요한의 시선이 샤를로즈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봐도 참 질리지 않는 예쁜 얼굴이었다.

요한은 가끔가다 샤를로즈의 아름다움에 놀라곤 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인간은 본 적이 없으니까.

가끔 홀릴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얼른 자신의 구원자 티아를 생각하며 이런 불신한 마음을 없앴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럼, 레베크 공작저로 이동시켜 주지.”

요한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동 마법진이 새하얗게 빛이 났고, 곧 샤를로즈와 티아 그리고 레나의 몸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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