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언니!”
티아는 루아와 함께 황급히 샤를로즈 앞까지 뛰어왔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헐떡이는 티아를 무심하게 보던 샤를로즈가 말문을 열었다.
연기에 돌입했다.
레나를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서.
샤를로즈는 티아와 루아를 번갈아 보았다.
“나 괜찮아. 호들갑 떨지 않아도 돼. 다들.”
“하지만, 저 여자는 흑주술사 아닌가요? 샤를로즈를 죽일 것이 분명해요.”
“맞아, 언니. 얼른 저 여자에게서 떨어져!”
티아와 루아가 생각보다 귀찮게 굴었다.
샤를로즈는 그게 아니라며 변명을 하려는데 루아가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아 제 뒤로 숨겼다.
티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티아는 샤를로즈 앞을 막아서며 두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다가오지 마, 못된 흑주술사!”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레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샤를로즈를 향해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눈치를 주었다.
샤를로즈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격해진 티아를 진정시켰다.
“티아, 정말 나쁜 애 아니야. 쟤, 내 부하가 됐어.”
“…부하? 흑주술사를?”
“샤를로즈, 혹시 흑주술사의 최면에 걸리신 건가요? 그럼 얼른 제가 없애 드리죠.”
“최면 같은 것도 안 걸렸고, 나 괜찮아. 다만 서로 오해가 있는 모양이야. 그 오해는 다 풀었어.”
“…오해? 언니, 저 애는-.”
티아는 레나를 다시 제대로 보려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곤 티아의 말문이 턱 막혔다.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자신과 너무 닮은 외형 때문이었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겠어.’
닮아도 너무 닮았잖아.
티아는 레나에 대한 묘한 이질감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번에 엘과 했던 옛날의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언니가 날 또 밀쳐서 마음이 아파. 정말 날 밀어내는 것 같아서.]
그 당시 티아는 샤를로즈에게 모진 괴롭힘을 받고 있었던 때였다.
죽었던 엘이 티아의 전속 하녀로서 레베크 공작저에서 있었을 시기였다.
[또요? 정말 샤를로즈 아가씨는 심보가 나빠요.]
[그래도 내게 관심이라도 주는 게 어디야. 저번에는 한 달 동안 날 투명 인간 취급했거든. 그것보다는 나아.]
[그래도 울고 있는 티아 아가씨를 보면 제 하나뿐인 여동생이 떠올라요.]
[엘, 여동생이 있었어?]
[네. 티아 아가씨랑 정말 닮았어요. 처음 티아 아가씨를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지 뭐예요.]
[그 정도로 닮았다고? 한번 보고 싶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동생을 소개해 드릴게요.]
[꼭, 소개해 줘! 엘!]
“엘의 여동생…….”
“네. 당신이 알고 있는 엘의 여동생이 저랍니다. 안녕하세요, 티아.”
레나는 티아와 쏙 빼닮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아까와는 정반대의 하이 텐션 목소리로 티아를 반겼다.
티아는 레나의 화대가 썩 반갑지는 않았다.
“…샤를로즈 언니, 아니 루아. 저 흑주술사를 꼭 죽여야 하는 거죠?”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좋겠죠. 샤를로즈를 노리는 것 같으니까. 본래 흑주술사들은 악마보다도 사악한 면이 많았으니까요.”
“안 돼. 레나를 죽이지 마요. 루아.”
루아가 레나를 향해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는데, 샤를로즈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샤를로즈?’
루아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샤를로즈를 처음 봐 조금 당황했다.
“안 돼요. 악은 악이 없애야 해요.”
“그러니깐, 레나는 내 부하라니까!”
“흑주술사들은 인간들을 제물로만 보는 정신 나간 집단이에요. 샤를로즈, 정말 뭐에 홀린 거 아니에요?”
루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만큼 루아의 걱정도 커 갔다.
저 여우 같은 흑주술사가 샤를로즈에게 무슨 짓을 한 게 아니냐며.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한 얼굴을 내보였지만.
자신이 화를 내는 모습을 되도록 샤를로즈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참고 있는 것뿐이었다.
악마는 극심한 정도로 화가 나면 악마 형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흉측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악마 형으로 변한 모습을 거울로 봤었을 때, 정말 흉측했으니까.
적당히 하얀 피부색부터 눈동자의 흰자까지 까맣게 변해 이상했다.
등 뒤에는 악마의 날개가 크게 펼쳐져 샤를로즈가 다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놔 봐요. 샤를로즈.”
“안 된다니까요. 루아.”
“샤를로즈는 절대로 제게 거짓말을 하지 않죠?”
“루아에게 거짓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 정도로 저는 루아를 신뢰하니까요.”
“신뢰한다면 놔주세요, 샤를로즈. 저는 감히 그대의 손을 내칠 용기가 없으니까요.”
“못 놔줘요.”
“놔요. 샤를로즈.”
“못 놔요.”
샤를로즈와 루아와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틈을 타 티아가 레나를 신성력으로 없애려고 했다.
악마의 힘을 가진 종족이라고 했으니 제 맑은 신성력으로 없어지겠지.
라는 얄팍한 생각을 한 채.
티아는 거북함을 가지고 레나에게 달려들었다.
레나는 티아의 느린 움직임을 가볍게 웃으며 피했다.
“언니를!”
“너무 느려요. 티아.”
“제대로 돌려놔!”
“저는 샤를로즈 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그러시는 건가요?”
레나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티아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며 티아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언니는 나 말고는 곁에 두지 않아. 언니는 나만의 언니라고!”
“저기 저 악마도 샤를로즈의 옆에 있잖아요. 왜 제게 그러세요?”
“저 악마는 제외야!”
“어째서요?”
“서로 협력하기로 손잡았으니까!”
티아는 하는 수 없이 루아와 협력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토해 냈다.
이렇게까지 해야 레나를 없앨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럼, 저와도 손잡아요.”
“뭐?”
“저는 오늘부터 샤를로즈 님의 충실한 부하예요. 샤를로즈 님의 여동생분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너도 엘처럼 날 배신할 게 분명해.”
“엘 언니는 조금 어리석었어요. 아니, 미쳤다고 말해야 옳은 말일까요.”
“엘이 미쳤다니, 내가 그딴 개소리를 믿을 것 같아?”
티아는 레나를 잡고 싶어 손을 계속 내뻗지만, 닿지 않았다.
“어서, 사라지라고!”
“엘 언니는 당신을 속였어요.”
“…그럴 리 없어.”
“방금 전까지는 엘 언니가 당신을 배신했다면서 또 어리석게 믿는 거예요?”
“그래도 네 언니잖아. 그렇게 말하면 죄책감이 들지 않아?”
“엘 언니와 저는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자매예요. 아, 지금 샤를로즈 님과 당신과 비슷한 구도죠.”
“그게 무슨.”
“엘 언니는 제게 맹목적으로 헌신했어요.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
티아는 레나를 향한 공격을 서서히 멈추었다.
“그저 저를 아낀다는 이유로 제게 한 번 욕하지 않았고, 늘 저를 배려했죠. 그런데 이 착한 엘 언니에 대해 단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
“저를 너무 좋아했다는 점이에요.”
“그게 뭐가 어때서. 언니가 여동생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
“당신이 샤를로즈 님에게 가진 감정과도 같았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너무 싫었어요. 제게 치근덕거리는 엘 언니가 귀찮았거든요. 설마 샤를로즈 님에게도-.”
“닥쳐.”
티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아무래도 자신과 샤를로즈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닥치라니. 성녀로서 너무 상스러운 말씀 아니에요?”
“성녀라고 모든 생명체를 다 품어 줘야 할 이유는 없어.”
“와, 성녀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놀라워요. 역대 성녀들은 성스러운 마음을 가졌거든요. 당신과는 다르게.”
“성녀라고 특별한 존재는 아니잖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뭐, 그렇게 세상을 부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성녀란, 세상을 지키는 위대한 존재라는 걸 이제 말을 뗀 아이도 알걸요?”
“나는 형식적인 성녀가 되고 싶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에서 당신을 데려가려고 난리를 부릴 거예요. 신이 분노했다며 말이죠.”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신전에 안 가. 샤를로즈 언니를 버려두고 내가 어딜 가.”
레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티아를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발을 떼었다.
레나가 다가갈수록 티아는 뒷걸음질 쳤다.
왠지 모르게.
“불쌍해요, 티아. 어서 샤를로즈 님에게서 마음을 떼고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그 편이 훨씬 좋을 거예요.”
“내 인생 내가 살겠다는데, 네가 뭔데 난리야. 이제 드디어 언니랑 사이가 좋아졌는데.”
“샤를로즈 님과 평생 같이 있고 싶으세요?”
레나가 작게 속삭였다.
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나가 풉, 하고 비웃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당신은 성녀고, 샤를로즈 님은 성녀를 괴롭히는 악역이에요. 평생 같이 있을 수 없을걸요. 당신이 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레나는 티아가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였으면 했다.
그래서 충고해 준 것이었다.
망상에서 그만 벗어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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