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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120)

74화

그 시각, 티아와 해리슨 그리고 요한은 해가 질 무렵 마지막 환자를 받았다.

티아의 두 손에 새하얀 빛이 나와 환자의 역병을 치료해 주었다.

“다 끝났어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티아의 신성력으로 역병 혹은 병을 고친 환자들은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거나 역병에 들지 않았다.

티아의 신성력으로 보호를 받으면 몸 안에 그녀의 신성력이 나쁜 기운들을 다 없애 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비 성녀였던 티아가 병자들의 섬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환자들이 무서운 섬에 무더기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티아에 관한 소문은 이미 온 대륙에 무섭게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티아가 성녀로 각성하기 전부터 다음 대 성녀가 될 거라는 소문과 그녀에게 치료를 받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두 소문은 대륙에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일부러 티아를 찾기 위해 병자들의 섬에 오는 환자들이 많은 것이었다.

마지막 환자를 받은 티아는 피곤한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하아.”

해리슨과 요한은 티아의 신성력이 제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고 어서 그녀에게로 다가가 괜찮냐고 물었다.

“티아, 괜찮아?”

“티아, 힘들지는 않아?”

해리슨과 요한은 티아를 소중히 여기는 듯 그녀가 힘든 기색을 보이자 속상했다.

샤를로즈를 대할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만약에 저 둘이 샤를로즈에게 티아와 같이 그녀를 대한다면 막말을 퍼부었을 것이다.

미쳤냐며.

그 정도로 샤를로즈와 남자 주인공들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남자 주인공 중 해리슨만이 샤를로즈에게 많이 져주고 있었다.

자신의 소꿉친구, 요한을 구하고 자신의 희망인 도망간 티아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리슨은 샤를로즈에 대한 큰 악감정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도 여전히 샤를로즈를 좋아하지는 못하나 보다.

‘망할, 샤를로즈. 티아를 옆에 둘 거면 제대로 두던가. 쯧.’

속으로 샤를로즈의 욕을 하니.

“폐하. 샤를로즈 언니를 찾아야 해요.”

그래도 티아의 말이면 끔뻑 죽었다.

해리슨은 조금 전 샤를로즈의 욕을 했지만, 티아의 부탁으로 샤를로즈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참, 갈대 같은 사내였다.

이런 새까만 해리슨의 속을 모르는 티아는 그저 제 눈앞에서 사라진 샤를로즈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요한이 티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티아, 샤를로즈에게 가면 위험할지도 몰라. 지금 해도 저물고 있고.”

“요한, 비켜요. 저는 언니를 꼭 찾아야만 해요.”

“샤를로즈는 네게 위험해.”

“왜 위험한데요? 언니가 요한도 살려 줬는데. 대체 뭐가 위험해요? 언니는 여린 사람이에요.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요.”

티아는 평소와 다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요한에게 화를 내었다.

샤를로즈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요한이 드러냈기 때문이었는데.

제 목숨을 살려 준 샤를로즈를 요한이 자꾸 폄하하려고 하니, 티아는 짜증이 솟구칠 뿐이다.

“두 분의 도움 따위 안 받고 그냥 저 혼자 샤를로즈 언니를 찾을래요. 먼저 숙소로 돌아가세요. 저는 언니를 찾고 갈 테니.”

요한은 티아가 자신에게 화내는 모습을 적응하지 못했다.

그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티아는 배려심 넘치고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저주받은 자신을 보살필 정도로 정말 착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니, 요한은 자연스럽게 샤를로즈 때문에 티아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샤를로즈와 허물없이 지낸 다음에 티아가 부쩍 짜증이 많아졌으니까.

“요한, 비켜요. 얼른 언니를 찾아야 해요.”

“티아, 그냥 우리와 함께 숙소로 돌아-.”

“티아, 샤를로즈를 찾고 있나요?”

요한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낯선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려 고개를 홱 돌렸다.

요한의 시야에, 루아의 흐트러진 얼굴이 보였다.

“네. 언니를 찾고 있어요. 그런데 왜 숙소에서 나왔나요, 루아?”

“흑주술사가 도망갔거든요.”

“네? 흑주술사라면, 엘을 말하는 건가요?”

티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푸른색 눈동자가 샤를로즈에 대한 불안에 크게 흔들렸다.

“엘이 아닌, 엘의 여동생의 시체가 사라졌어요. 제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요.”

루아는 보기 드물게 아주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자신의 무지함에 화가 난 모양이다.

티아는 루아의 말에 얼른 샤를로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 아까 언니를 데려갔던 환자가 엘의 여동생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엘은 자신을 죽인 샤를로즈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겠지.

샤를로즈 언니는 이미 그 여자에 대한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걸까.

아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티아는 불안감만 쌓여 갔다.

“언니, 언니를 얼른 찾아야 해요!”

티아는 결국 이성을 잃었고, 신전에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루아가 그녀의 어깨를 빠르게 붙잡았다.

“진정해요. 티아. 샤를로즈는 괜찮아요.”

루아는 티아의 엄청난 신성력에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어버리면, 샤를로즈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끝나.

버텨야 해.

루아는 티아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풀었다.

“샤를로즈의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위치는 대강 알고 있어요.”

아까 루아는 신전이 아닌 샤를로즈에게 가려고 했지만, 신전에 있는 티아와 협력을 맺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신전에 들른 것이다.

어차피 샤를로즈는 괜찮았다.

생명이 끊어졌다면 계약이 끊어져야 할 테지만, 루아의 목덜미에 새겨진 새까만 날개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샤를로즈는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흑주술사들이 원하는 티아를 데리고 가면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이안을 버리고 신전에 오게 된 것이다.

대신 이안에게는 미리 샤를로즈의 위치를 알려 주고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정말이에요? 루아, 얼른 가요.”

“저 둘은 어쩔 거죠?”

루아는 해리슨과 요한을 턱짓하며 티아에게 물었다.

티아는 잠시 몸을 돌려 해리슨과 요한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선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놔두고 가요. 저 두 분은 제 기회를 걷어차신 분들이에요. 이제 상대하기도 싫어요.”

“그렇다네요?”

루아가 비틀린 미소를 입가에 띠며 해리슨과 요한을 농락했다.

“어서 가요, 루아.”

루아는 제 오른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는 티아를 힐끗 보더니 그녀의 약한 힘에 끌려가는 척했다.

그러면서 해리슨과 요한을 향한 비웃음은 잊지 않았다.

저 망할 것들이 감히 샤를로즈를 건드렸었지.

천천히 망가트려 줄게요, 두 사람.

루아는 악마 같은 얼굴로 티아를 데리고 샤를로즈가 있는 위치로 빠르게 뛰어갔다.

***

샤를로즈는 해가 지는 걸 보고선 레나에게 얼른 변명거리 좀 만들라고 난리였다.

“레나. 아마 루아와 티아가 날 찾으러 올 거야. 너랑 있다는 걸 발견하면 네게 공격할지도 몰라.”

“음.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머리 좀 굴려 봐. 난 네가 죽길 바라지 않아.”

“그렇다면, 진실을 아예 털어놓는 게-.”

“기각.”

“그럼 신의 후계자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그레이스의 시나리오를 깨부수러-.”

“기각.”

“그렇다면, 음. 뭐가 좋을까요?”

레나는 몸을 배배 꼬며 변명할 거리를 생각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 둘을 한심하게 보고 있던 아힌이 해답을 찾아 주었다.

“그냥 흑주술사라고 밝히고 저 녀석의 충신이 되었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렇다면 저 녀석이 어느 정도는 커버 치겠지.”

“오, 좋은 방법인데.”

레나는 아힌을 보며 대견하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그가 그녀의 손을 싸늘하게 내쳤다.

“건들지 마. 나는 스킨십이 싫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그렇지만, 아힌이 귀여운 걸 어떡해.”

아힌은 레나를 투명 인간 취급한 뒤, 샤를로즈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레나의 그림자에 들어가 있을 테니,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 루아, 그 새끼 면상은 보기도 싫으니까.”

“알았어.”

샤를로즈가 대답하자, 아힌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레나의 그림자 속에 숨어 버렸다.

“정말, 아힌. 차갑기는.”

“누구와는 다르게 냉철함이 있네. 레나.”

“샤를로즈 님까지 그러기예요?”

“왜 갑자기 또 나를 높이 불러?”

“연습해 놔야죠. 충신의 연기를.”

“뭐야, 내 부하가 된 거 아니었어?”

“보좌관이라고 불러 주세요. 샤를로즈 님.”

“……싫은데.”

샤를로즈는 레나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정말 싫은지 시선을 피해 가며 답했다.

레나는 서운한 듯 시무룩해 보였다.

“언니!”

그리고 티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샤를로즈는 레나를 보며 얼른 연기를 시작하라며 신호를 보냈다.

레나는 시무룩한 상태로 고개만 끄덕였다.

샤를로즈는 레나의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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