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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120)

71화

“너, 내게 복수한다고 해도 티아가 목표인 거지?”

“글쎄요.”

티아와 같은 얼굴로 웃는 레나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샤를로즈가 짜게 식은 눈을 했다.

“그런데 너도 흑주술사야?”

“네. 정통성이 있는 흑주술사 가문에서 태어났는걸요. 언니보다는 제가 더 능력이 뛰어났지만요.”

“그런데 왜 죽었어.”

샤를로즈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악마들에게 표적이 되어서 죽게 되었어요. 엘 언니는 약한 흑주술사라서 악마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아 살 수 있었고요. 운이 좋았죠.”

“너도 지금 대악마에게 표적이 될 것 같은데.”

“이미 표적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제 관을 봤다면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 엘은 그랬거든. 제물이 있어야 너를 살린다고. 그런데 어째서 엘이 죽고도 네가 되살아 난 걸까. 의문이 드네.”

샤를로즈는 이 의문점을 풀고 싶었다.

어떻게 흑주줄사 엘이 죽었는데도 죽었던 레나가 되살아났는지.

“제 비밀을 말해 드릴 테니, 대신 저와 약속 하나 해요.”

“무슨 약속을 해.”

“별거 아니에요.”

“싫어.”

“약속하기 싫다니 어쩔 수 없네요.”

“어차피 뻔하지. 대악마에게 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라는 거 아니야?”

“아닌데요. 그 정도로 추잡한 인간이 아니라서요.”

“조금 전 행동은 꽤 추잡했는데.”

“당신과 둘이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아직 성녀가 끼기에는 상황이 이르거든요.”

레나는 능청스럽게 잘도 대답했다.

샤를로즈의 그 싸늘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그래서 목적이 뭐야?”

“샤를로즈, 당신이 필요해요.”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목적을 말하라고 해서 말했을 뿐인데요.”

“티아를 원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겉으로 보여지기엔 그렇겠죠. 하지만 엘 언니와 저의 목적은 당신이에요. 샤를로즈.”

“그건 또 무슨 개소리지?”

“당신이 그레이스의 환생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그레이스가 누구야?”

게임 속에서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인데.

샤를로즈는 이야기 전개가 산속으로 간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몰라요? 괴물, 그레이스를?”

레나는 참 아쉽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물었지만 샤를로즈는 여전히 모른다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그게 대체 누군데.”

“흑주술사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흑주술사의 희망…?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엘 언니가 죽고 난 후 언니의 그림자 조각이 당신의 옷에 붙어 있었거든요. 저희 자매는 그레이스의 환생을 찾고 있었거든요. 성녀님을 미끼로.”

“언제 내 몸에 붙어 있었대. 루아가 알아차리지 못했나.”

“아마 그 작은 그림자 조각으로는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네요. 게다가 당신의 피로 악마의 힘이 정화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레이스의 환생답네요.”

레나는 이제야 마음에 드는 답을 내놓았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샤를로즈는 언짢은지 입매를 굳혔다.

“당신은 흑주술사들이 원하는 그레이스의 환생물이에요. 위대한 존재라고요. 자부심이라도 가져도 좋아요.”

“……정말 내가 그 사람의 환생이라면 엘은 왜 날 죽인 거지?”

“당신을 죽인 건 판단 미스였어요. 그래도 엘 언니의 그림자 조각이 감별하는 능력이 있어 당신이 우리가 찾던 그레이스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어차피 성녀도 각성했겠다, 당신이 죽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요.”

“나에 대한 정보를 꽤 아는 것 같은데.”

“조금 조사해 봤거든요. 샤를로즈 레베크, 님?”

“어떤 조사를 했는데? 궁금해지네.”

“보육원에서 레베크 전 공작 부인에 눈에 들어 레베크 공작가의 장녀로 입양되셨고, 그리고 여동생에게 열등감에 악행을 부린다는 정도? 아. 오라버니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 정도면 꽤 알고 있는 편 아닌가요?”

“많이 조사했네.”

“샤를로즈 레베크에 대한 정보는 흔했거든요. 제국에 다양한 소문이 퍼져서요.”

“그래서 날 어떻게 할 셈이야?”

“지옥으로 데려가서 죽은 흑주술사들을 풀어 주려고요.”

“산 사람이 지옥을 어떻게 가. 말이 안 되잖아.”

“흑주술사 술법에 지옥행이라는 술법이 있어요. 죽은 자들을 지옥에서 꺼내 주는 아주 무서운 술법이죠. 그런데 이 술법에 아주 중요한 것이 필요해요.”

“그게 뭔데?”

“바로 악마의 힘을 정화하는 피가 흐르는 인간이요.”

“설마 그레이스가-.”

“네, 그분이 저희를 도우셨어요. 괴물이라고 불리는 그분은 저희를 좋아하셨거든요. 많이.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악마와 붙더니 저희와의 연을 끊어 버렸어요. 결국 술법의 부작용으로 죽어 버렸죠. 안타까운 결말이지 않나요?”

샤를로즈는 흠칫 몸을 떨었다.

광기에 절은 레나의 푸른색 눈동자가 저를 놔주질 않고 있었다.

‘나보다 미친 사람은 처음 봤네.’

샤를로즈는 혀를 끌끌 차며 레나의 당돌함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야, 자신은 흑주술사의 적대적인 관계라고 불리는 대악마와 계약한 관계였다.

엘이라는 흑주술사처럼 레나도 겁에 질려야 정상이어야 하는데.

왜 겁은커녕 더 좋아하는 눈빛을 제게 보내는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럼 티아를 도망가게 한 계획도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아니겠지?”

“아, 맞아요. 잘도 눈치채셨네요. 당신의 여동생분을 제 언니인 엘이 도망가자고 꼬드겼어요. 그 당시에 당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가면 당신이 고통받을 것이 눈에 훤했고, 여동생을 찾으러 이 섬까지 올 거라고 이미 예상했거든요.”

샤를로즈는 레나의 뜻밖의 대답에 머리에 핏기가 가셨다.

그럼, 원작의 스토리가 완전히 파괴되는 거 아니야?

원래는 샤를로즈의 악행에 질려 어디론가 도망가는 원작 여자 주인공과 그 여자 주인공을 집착하는 주변인들이라는 게임 소개 글이 떠올랐다.

‘샤를로즈는 그저 1차원적인 악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설마 샤를로즈에 빙의 후, 원작이 아예 틀어진 건가?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그러기에는.

현실에 잠시 돌아가 봤던 게임 속 에러가 신경 쓰이는데.

‘게다가 게임 속 내용도 다 내가 겪었던 것들이고.’

이상해.

정말 이상해.

샤를로즈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레나에게 질문 하나를 또 던졌다.

“그럼 너희의 목적은 샤를로즈야?”

“네. 샤를로즈예요. 사실 지금까지 저희가 제물을 바친다는 소문이나 그런 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돈이 필요한 자들에게 돈을 주고 산 소문들이에요. 이 섬에서 어느 몸이 아픈 부부를 만나지 않았나요?”

레나의 허를 찌르는 물음에 샤를로즈의 입술이 둥글게 말아졌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레나는 샤를로즈의 반응에 싱긋 웃으며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간단히 내놓았다.

“그야 저희 자매가 산 소문이라니까요. 샤를로즈 님을 유인하기 위한 소문이랄까.”

“그럼 그 부부는 다친 연기를 한 거였어?”

레나는 두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그 부부는 정말 몸이 아픈 부부였어요. 아내가 아마 며칠 남지 않은 시한부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남자분도 다리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거야?”

“자세히는 몰라요. 엘 언니가 당신의 여동생분을 아끼는 척하느라 당신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거든요.”

샤를로즈는 제 질문에 묵묵히 대답하는 레나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보통 이렇게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다 알려 주는 악역이 있나.

샤를로즈는 마지막 궁금증이 생겼다.

“너, 대체 누구야?”

“…아.”

레나는 샤를로즈의 마지막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이걸 말해도 되려는지.

“당신을 이 게임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장본인, 이라고 말하면 이해하려나요?”

샤를로즈는 레나의 마지막 대답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서는 안 될 대답을 들었다.

샤를로즈의 멍한 금안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게 무슨.”

“게임의 관리자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르시려나.”

“게임의 관리자?”

“네. 저는 이 게임의 관리자, 레나라고 해요.”

“게임의 관리자가 왜 나를 이 악역에 빙의시킨 거지?”

“그게 꽤 사정이 길어서요.”

“……나는 돌아갈 수 있나?”

“죽으면 돌아갈 수 있도록 제가 시스템을 그렇게 해 놨긴 했는데. 뭐, 이제는 막아 놔서 현실로 돌아가지 못해요.”

“그러니깐 난 이 게임 속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된다는, 그 역겨운 말을 하는 거야?”

“네. 하지만 이 게임 속이 현실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좋을걸요. 귀족에다가 돈도 많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되니까요.”

“……너, 내가 여기서 나가려고 몇 번이나 죽었는지 알아?”

“다 지켜보고 있었어요. 정말 대담하게 저지르는 그 행동들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샤를로즈의 역할을 이렇게나 빗나가게 하신 현실 세계분은 처음이니까요.”

“그 말은 즉, 샤를로즈의 몸에 빙의한 자가 내가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야?”

“이해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당신은 백 번째 샤를로즈에요.”

“…….”

“백 번째가 이렇게까지 히든 퀘스트를 잘 깰 줄을 상상도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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