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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67/120)

67화

가벼운 아침은 티아가 차려 주었다.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샤를로즈는 티아가 해 준 음식 대부분을 남겼다.

“잘 먹었어, 티아.”

“왜 이렇게 적게 먹어? 언니, 살이 더 빠진 것 같아.”

“원래 소식해서. 게다가 아침은 거의 대부분 걸러. 그렇지, 루아?”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루아와 이안은 샤를로즈 양 옆에 서 있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질문에 간결하게 대답했다.

“네. 샤를로즈는 아침은 잘 먹지 않으세요.”

“입맛도 없고, 죽지 않을 정도만 먹는 편이야.”

샤를로즈의 발언에 티아는 충격을 받은 듯 얼이 나가 있었다.

죽지 않을 정도만 먹는다고?

그러다가 영양실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티아는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샤를로즈의 건강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아 포크를 든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언니가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을까.’

티아는 잠시 넋을 놓고선 샤를로즈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한 레시피를 머릿속에 그려 놓기 시작했다.

티아의 바보 같은 모습을 우연히 본 해리슨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티아. 움직이던 손이 멈췄어. 얼른 먹어.”

“아, 네. 폐하.”

해리슨 덕분에 티아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일단 식사 좀 하고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어보자.

티아는 평소보다 속도를 내며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해리슨은 황제답지 않게 여유롭지 못한 식사를 하며 티아와 비슷한 속도를 내어 음식을 하나씩 없앴다.

그리하여 아침 식사는 별 탈 없이 끝이 났다.

샤를로즈가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티아가 설거지를 하려는데 요한이 층계를 밟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해리슨은 요한을 보며 핀잔을 두었다.

“아픈 놈이 이제는 살 만한 가봐?”

“폐하. 나 죽을 뻔했는데 그러기야?”

“잘 살아 돌아왔다고 반겨 주잖아.”

“그게 어떻게 반겨 주는 거야. 비아냥거리는 거지.”

요한의 검붉은 피부는 사라지고 뽀얀 피부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샤를로즈의 시선이 요한에게 잠시 향해 있다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았다.

딱히 원작 남자 주인공들과 아침부터 으르렁하기 싫었기에 조용히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샤를로즈는 그저 귀를 쫑긋 세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뿐이었다.

“티아, 설거지하려고?”

요한은 티아가 설거지를 하려는 모양새를 보자 마법을 사용해 그녀 대신에 마법으로 설거지를 대신해 주었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그릇들은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덕분에 티아가 할 몫이 금방 사라졌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요한.”

“네가 날 살렸으니 이 정도 마법은 가뿐하지.”

?

티아는 요한의 말에 당황했다.

해리슨 역시도.

“요한, 착각하는 게 있는데요.”

“어, 샤를로즈도 보이네. 저 망할 것 때문에 이 섬에 온 뒤로 불행한 일만 생기고. 정말 짜증 나.”

요한은 티아의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샤를로즈의 욕을 계속해 댔다.

“티아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애가 이런 섬에 도망왔겠어, 샤를로즈. 입이 있다면 변명이라도 해 봐.”

“야, 요한.”

이번에는 해리슨이 요한을 말려 보지만.

“샤를로즈, 혹시 아예 우리를 무시하려고 작정한 거야?”

한 번 급발진한 요한을 말릴 수 없었다.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난 요한은 주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샤를로즈는 요한의 험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했다.

상대하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요즘 몸에 기운이 빠지는데 저놈과 말다툼이라도 한다면 쓰러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샤를로즈는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루아는 제 소중한 계약자 샤를로즈를 험담하는 요한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아 화가 났음에도 얌전하게 굴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명령이 없다면 인간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편이 아니었기에.

“말 좀 해 보라니까. 샤를로즈.”

요한은 기어코 샤를로즈가 있는 소파에까지 다가가려 했다.

결국, 티아가 요한의 앞을 막아섰다.

“요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티아? 또 샤를로즈의 편을 들게?”

요한은 미간을 좁히며 티아를 향해 비켜 보라며 작은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티아는 요한의 말대로 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중한 얼굴로 요한을 쳐다보았다.

“요한의 저주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샤를로즈 언니와도 관련되어 있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티아. 샤를로즈가 왜 내 저주와 관련이 있는 거지?”

“요한의 저주를 푼 사람은 제가 아닌 샤를로즈 언니니까요.”

“뭐? 해리슨, 티아의 말이 맞아?”

“맞아. 네 저주를 푼 건 티아가 아니야. 샤를로즈지.”

요한은 두 사람의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둘이 나를 놀리려고 짜고 치는 건가?’

그러기에는 두 사람 다 표정이 진지해 보이는데.

그럼 정말로 샤를로즈가 이 저주를 풀었단 말이야?

요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살살 저었다.

“샤를로즈에게 빚을 지다니. 내 인생 최대의 위기야.”

요한은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며 좌절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녀석에게 빚이 생기다니.

이보다 끔찍한 일도 없었다.

빚을 졌으니 당연히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도 해야 했다.

요한은 그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내가 샤를로즈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 거야? 정말?’

요한은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들의 대화를 엿듣던 샤를로즈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틀었다.

그리고 요한을 보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필요 없어요. 그냥 시끄러워서 저주를 풀어 준 거니까요.”

“뭐, 시끄러워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잠도 못 잘 정도였어요.”

“샤를로즈, 넌 어쩜 말을 해도 예쁘게 하지 않고 사람을 열받게 해? 이것도 재주다 재주.”

“우리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의 거리감은 있어 줘야 하지 않나요?”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요한은 묘하게 샤를로즈에게 설득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어차피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았어. 샤를로즈 역시 감사 인사는 됐다고 하니 잘 됐어.’

요한은 툴툴거리며 샤를로즈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샤를로즈 역시 요한에게 시선을 떼고 티아에게로 돌렸다.

“티아. 오늘 병자들을 보러 갈 거야?”

“집에 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싶긴 해.”

“그럼 나도 따라갈래. 심심해.”

“그러다가 역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괜찮아, 티아가 고쳐 주겠지.”

샤를로즈가 싱긋 웃었다.

티아는 대책 없는 샤를로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티아가 요한에게 하나 부탁을 청했다.

“저기, 요한 부탁이 있는데요. 들어주실래요?”

요한은 티아를 위해서라면 제 심장이라도 내줄 기세였다.

“뭔데, 말만 해.”

“샤를로즈 언니의 몸에 실드 좀 쳐 주세요. 실드라면 언니가 역병에 들지 않을 테니까요. 이 역병은 마법에 굉장히 약하거든요.”

뭐, 모든 역병이 그러하지만요.

이상하게도 역병은 마법에 굉장히 약했다.

그렇다고 대마법사인 요한이 역병에 든 자를 고칠 수는 없었다.

역병과 마법의 관계가 천적일 뿐이지, 마법으로 모든 역병을 고치기는 무리가 있었다.

역병이 마법에 닿으면 약해질 뿐이었다.

특히 빛의 마법에.

다른 마법은 역병과 맞닿아도 소용이 없었지만, 빛의 마법은 성력과 비슷한 힘을 내기에 효과가 좋았다.

다만, 역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효과였다.

역병을 고치기엔 효과가 아주 미미했다.

이 역병은, 아니 모든 병은 신전 및 사제도 치료해 줄 수는 있지만, 이런 큰 역병 같은 경우는 성녀 혹은 예비 성녀가 신성력이 많기에 더 효과적이었다.

그러니깐 즉, 성녀로 각성한 티아만이 모든 병을 무난하게 고칠 수 있단 소리였다.

“제 부탁을 거절할 거예요, 요한?”

“알았어. 샤를로즈의 몸에 실드를 걸어 줄게.”

“감사합니다. 요한.”

“샤를로즈, 이걸로 우리의 빚은 없는 거야. 알겠어?”

“저야 상관은 없는데요.”

샤를로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요한은 열받게 하는 샤를로즈의 태도에 확 실드를 쳐 주지 않으려다가 자신을 살린 것이 샤를로즈라는 말이 영 신경 쓰여 티아가 바라는 대로 무사히 그녀에게 실드를 쳐 줄 수 있었다.

“네게 실드를 쳐 주었어. 밤이 되기 전까지 널 보호해 줄 거야.”

“역시 대마법사는 다르긴 다르네요.”

샤를로즈는 제 몸 위에 잠시 보였던 투명한 벽, 아니 실드를 보며 감탄했다.

진짜 순수함이 묻어나는 감탄이었지만.

“그런 빈말을 해도 더 걸어 주지는 않을 거야.”

요한은 샤를로즈의 빈말이 기분 나쁘다는 듯 행동했다.

샤를로즈는 이런 것에 하나하나 상처받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처는 충분히 받았고, 미움받는 일에도 제법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일인가.

잘 모르겠네.

샤를로즈는 티아가 건네준 겉옷을 입고선 루아에게는 집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뒤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해리슨과 요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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