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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63/120)

63화

30분 전.

티아의 옆방에 있던 샤를로즈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요한의 비명에 두 귀를 막았다.

‘시끄러워.’

결국 쪽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눈이 번쩍 떠졌다.

-아아아악!!!

샤를로즈는 더 커지는 요한의 비명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더는 못 들어 주겠어.

쟤들 뭐 하는 거야.

피곤에 찌든 샤를로즈는 여기 와서도 편히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X같네.’

샤를로즈는 두 귀를 계속 막아 보려다 계속 들려오는 요한의 비명 소리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루아. 이안이랑 여기 있어 봐요. 내가 단판을 짓고 올 테니까.”

“샤를로즈. 피곤하다면서요. 제가 갈게요. 여기 쉬고 계세요.”

“아니. 루아. 이건 쉴 수 없는 소음이에요.”

그 말을 하면서 샤를로즈는 전생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윗집 소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던 김단은 결국 윗집과 싸우고 말았다.

참다 참다 도저히 이런 소음으로는 밤에 자기는커녕 화딱지만 났기 때문이다.

이거는 당사자들끼리의 문제였다.

제삼자가 아니라.

샤를로즈는 화가 잔뜩 난 숨을 내쉬며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 바로 옆방 앞에 섰다.

‘여기 와서 제대로 쉰 적이 없어. 빌어먹을.’

현실 세계에서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소음 공해라니.

망할.

마음이 격해진 샤를로즈는 결국 티아가 있는 방문을 열어 버렸다.

“언니……?”

티아가 얼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티아에게 시선을 주며 미간을 좁혔다.

“제발, 티아. 요한의 저주 좀 풀어 봐. 잠을 못 자겠잖아. 시끄러워서.”

샤를로즈는 침대에 누워 검붉은 피부로 변해 버린 요한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저주가 저렇게 퍼지는 동안 티아, 너는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아파 죽겠다고 소리를 빽빽 질러 대잖아.

“언니…….”

“티아. 요한이 아프다잖아. 힘들다잖아. 이제 편안하게 해 줘. 응?”

“…샤를로즈.”

왠지 모르게 샤를로즈를 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살벌했다면 지금은 그 살벌함이 조금 많이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특히 해리슨이.

‘샤를로즈가 요한을 저리 걱정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다시 봤다.

계속 보니 정이라도 생긴 건가.

우스운 일이군.

해리슨은 샤를로즈처럼 티아에게 무어라 할 자격이 되지 않아 애원했다.

하지만 티아는 계속 뜸을 들였다.

답답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티아의 선택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구세주인 샤를로즈가 등장했다.

마치 샤를로즈 뒤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물론, 해리슨이 느끼기로는.

“티아. 샤를로즈의 말대로 제발 요한을 살려 줘. 응?”

해리슨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애달픔을 더 표현해 티아를 자극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표현은 철저히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 티아가 샤를로즈만 보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했다.

티아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샤를로즈가 우리들보다 좋다는데.

“티아. 요한을 얼른 치료해 주고 편히 좀 쉬자. 이러다가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일찍 죽겠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니깐 요한 좀 치료해 줘. 내가 직접 요한을 만져야지 고쳐 줄 거야?”

“그건 싫어.”

“그럼 내가 보는 앞에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치료해. 제발 부탁해.”

“……언니는 언니의 죽음을 방관한 요한이 싫지 않아?”

“딱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래도, 죽음을 방관했잖아. 나는 언니의 죽음을 방관한 요한이 미워.”

“티아. 내가 괜찮다는데 네가 왜 난리야. 그리고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사고를 꽤 벌여서 아마도 내가 죽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 걸 거야.”

“언니. 내가 떠나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내가 대충 요약해 줬잖아. 네가 떠난 뒤, 집안이 난리가 났다. 너를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내쫓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개고생했다.

그리고 죽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아서. 이 정도만 말해도 이미 네가 없는 몇 달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그러면 하나만 물어도 돼?”

“그 질문 하나만 하고 요한을 치료해 준다고 나와 약속을 하면.”

“알았어. 요한을 치료해 줄게. 됐지? 대신에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야 해.”

“뭔데?”

“언니는 왜 자꾸 죽고 싶어 하는 거야?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서.”

티아는 쭈뼛거리며 마치 말해서는 안 될 질문을 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살고 싶지 않아서.”

“혹시 어머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사람이 살다 보면 살기 싫을 때도 있잖아. 내가 지금 그걸 겪고 있거든.”

김단은 차마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고, 샤를로즈에게 빙의가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진짜 샤를로즈는 죽었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아니 믿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샤를로즈는 두리뭉실하게 대답하고선 요한을 향해 턱짓을 했다.

“대답했으니 얼른 고쳐 놔.”

티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요한에게 다가가 다시 그를 치료했다.

“아아아악!”

요한은 티아의 손이 제 피부 위에 닿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부짖었다.

샤를로즈는 요한의 소음이 굉장히 듣기 싫은 모양인지 두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듣기 싫어. 불쾌해.’

샤를로즈는 티아가 얼른 요한을 치료해 줬으면 했다.

그래야지 자신도 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요한의 검붉은 피부가 가라앉지 않았다.

티아가 아무리 신성력을 넣어도 요한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티아는 난감한 듯 요한의 피부 위에 올려 둔 제 손을 떼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해 주면 다 나았는데. 왜 그러지?”

샤를로즈는 티아가 난관에 부딪혔다는 걸 빠르게 알아챘다.

그래서 티아에게로 다가간 후, 요한의 피부 위에 제 손을 얹어 보았다.

소리를 빽빽 질러야 할 요한이 얌전했다.

오히려 샤를로즈의 손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티아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놀란 얼굴로 샤를로즈를 바라보았다.

“언니, 그 능력은 뭐야?”

“몰라. 그냥 너처럼 만져 본 건데?”

“그냥 만졌다고 저주가 풀리지 않아.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이 저주, 악의 기운이 너무 많아. 내게도 따갑게 느껴질 정도야.”

“설마. 요한이 지금 겪는 저주가 악의 기운 때문이라는 거야?”

“내가 만져 보니 그런 것 같아.”

“신성력으로는 효과가 없을 만했네. 악의 기운과 신성력은 상성이 맞지 않으니까.”

“나도 지금 알았는데. 아마 악의 기운이 많은 사람이 이런 저주를 풀 수 있나 봐. 아무래도 악의 기운은 많은 쪽으로 계속 붙는 방식이니까.”

“언니가 그렇게 악의 기운이 많았어?”

“응. 루아가 그러더라. 나만큼 악의 기운이 많은 악마도, 인간도 없다고. 참 이상하지?”

샤를로즈는 제 말을 재잘거리면서 요한의 저주를 고쳤다.

검붉었던 요한의 피부가 점점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고, 그의 거친 숨결이 안정을 되찾았다.

샤를로즈는 최대한 가슴 쪽으로 저주를 한데 모아 제 몸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질감.

익숙함.

등등 다양한 감정들이 샤를로즈의 마음에서 녹아내렸다.

악의 기운이 많은 탓인가.

이딴 저주를 몸에 흡수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채워 주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다.

올려 둔 손바닥으로 마지막 저주까지 빨아들인 샤를로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 먹었다.”

“정말?”

티아는 요한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정말로 그 악의 기운을 다 먹은 거야? 언니?”

“응. 이 정도는 거뜬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주가 언니한테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한 거야?”

티아는 샤를로즈의 마음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죽음을 방관한 자를 살려야 된다니 어쩌니 하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보듬어 주는 이 언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티아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없는 사이에 그분들이 언니를 살살 꼬신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든 망상이었다.

샤를로즈 언니는 자신이 구한 분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걸 보면 그분들과 언니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니가 선뜻 이리 손을 내밀 리 없었다.

티아는 독기 품은 눈빛을 해리슨과 요한에게 보내며 샤를로즈의 옆을 지켰다.

“언니. 누가 언니를 꼬시면 누군지 다 말해 줘. 죽이게.”

“티아.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런 말 할 시간이 있으면 쉬어. 피곤하잖아.”

“아니, 나는 신성력으로 피로를 회복할 수 있어서 괜찮아.”

“아직도 신성력이 남았어?”

“응. 성녀로 각성을 한 후부터 신성력이 줄어들지가 않네.”

“그럼 상대방의 마음도 정화할 수 있어?”

“글쎄. 해 본 적은 없는데.”

샤를로즈는 오늘만큼은 정말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싶었다.

결국, 티아에게 말도 없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버렸다.

“나 좀 재워 줘. 티아.”

“…응?”

티아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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