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조금 전 요한에게 막말을 날린 건 샤를로즈의 죽음을 방관했기 때문에 욱해서 나온 말이었다.
“요한, 저를 생각해서 살아 주세요.”
그렇게 티아는 막무가내로 요한의 목덜미에 손을 대었다.
요한은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티아…….”
“죽더라도 제 앞에서 죽지 말아주세요. 옛정이 자꾸 저를 괴롭히잖아요.”
“……그게 뭐야.”
“저주를 최대한 풀어 볼게요. 다시 올라온 저주가 예전보다 더 강한 힘을 품고 있어요.”
티아는 검붉은색 저주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엄청난 힘을 느꼈다.
과연 자신이 저 저주를 지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감도 들었다.
신성력으로 저주를 없애는 데에는 그 단계가 있었다.
제일 하위권인 1단계 저주는 가벼운 저주라서 금방 치료가 가능했다.
하지만 요한이 가지고 있는 저주의 단계는 최고 4단계인 ‘괴물’이라고 불리는 단계였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4단계 저주에 도달했을 때,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사람 형체가 아닌 괴상한 형체로 몸이 변하고 이성을 잃는다.
그렇게 인간성을 잃게 된다.
티아는 그 저주의 최후를 알기 때문에 요한을 더더욱 놔주지 않았다.
비록 샤를로즈의 죽음을 방관했다 하여도 그 사람이 인간임을 포기하는 건 보기 싫었다.
‘남을 챙기는 오지랖 같은 이 성격을 한 번에 바꾸는 건 쉽지 않네. 그래, 이번만 요한을 고치고 다시는 쳐다도 보지 말자. 흔들리지도 말고.’
티아는 요한을 마지막으로 제게 집착하는 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는 걸 그만두려고 한다.
티아는 요한의 목덜미를 계속 손바닥으로 문질러 대다가 엄청난 저주의 기운이 제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건 4단계 ‘괴물’ 수준이 아닌데?
요한의 저주가 더 단계가 높아졌다.
이런 섬뜩한 저주는 처음 봤다.
요한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이 저주는.
티아는 얼른 신성력을 몸 안에서 풀어 요한의 목덜미를 기점으로 신성력을 흐르게 했다.
성녀로 각성을 한 티아의 신성력은 예전과 같이 약하지 않았다.
강했다.
이깟 저주는 그냥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한 티아의 신성력이 더 강해졌다.
요한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으윽!”
“조금만 참아 봐요, 요한.”
티아의 손길이, 다정하게 느껴졌던 그 손길이 너무 따갑게 피부에 와 닿았다.
요한은 인상을 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아지지 않은 고통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참아 내고 싶었다.
티아의 손길을 몇 달간 기다린 수고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저를 버린다는 티아의 몹쓸 말에도 요한은 그녀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구원해 준 사람이었다.
저주로 인해 몇 번 죽을 위기를 구해 준 은인이었다.
“티…아. 살려 줘. 너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요한은 사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티아를 보기 위해서.
티아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티아를 괴롭힌 샤를로즈에게 붙은 것이다.
도망간 티아를 잡기 위해서.
요한은 저주가 제 몸을 기어다니는 느낌을 받으며 흐릿해진 시야에 힘을 주었다.
‘아직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정신 차려, 요한.
여기서 정신을 놔 버리면 정말 끝이야.
그 생각 하나로 요한은 버텼다.
티아는 조금 전 샤를로즈를 살리는 바람에 많이 지쳐 있었다.
성녀로서 각성은 완벽하게 해냈지만, 아직 자질이 부족했다.
그걸 알면서도 요한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요한. 제 목소리 들려요?”
“응. 들려…….”
“제 목소리를 계속 들으세요. 폐하, 요한을 제 방으로 옮겨요. 저주가 퍼지면 곤란하니까요.”
“알았어. 네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지.”
해리슨은 티아가 저를 밀쳐 낸 사실을 금방 잊고선 그녀의 부탁에 요한을 거뜬히 업었다.
거실에서 층계를 밟고 올라간 해리슨은 티아가 제 방을 검지로 알려 주어 그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티아는 방 안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티아. 방 안에 인원이 너무 많지 않아?”
샤를로즈는 피곤에 절어 든 사람처럼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모든 게 다 지겹고 귀찮았다.
죽어도 살려 내는 원작 여자 주인공, 티아를 보고 있자니 열이 받기도 했다.
자신의 죽음을 방관했던 원작 남자 주인공들도 짜증이 났다.
‘걔들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여자 주인공은 참 고생이네.
사람들 살리느라.
성녀란 원래 다 그런 종족인가.
샤를로즈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방에서 나갈 테니까, 요한을 치료해.”
“언니, 요한의 저주를 알고 있었어?”
“대충은. 뭐, 얼굴을 보니 곧 죽을상인데 나를 살린 것처럼 요한도 살려 줘. 티아.”
티아는 샤를로즈의 상냥한 어조에 눈물이 날 뻔했지만, 여기서 펑펑 울 수는 없었다.
언니의 부탁도 있겠다.
티아는 요한을 어떻게든 살리겠노라, 생각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응. 언니 부탁대로 꼭 요한을 살릴게!”
“……마음대로 해.”
샤를로즈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티아가 묵는 방에서 루아와 함께 나왔다.
아, 이안도.
“정말 괜찮아요, 샤를로즈?”
루아는 샤를로즈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어 안달이 났다.
“괜찮아요. 성녀님에게 받은 상처는 다 고쳐졌거든요.”
“그나저나 샤를로즈, 피는 언제 줄 겁니까?”
“아. 피.”
이안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를 먹어야 된다는 샤를로즈의 꾐에 아직도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샤를로즈는 이안의 귀여움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거 거짓말인데.”
“그럴 리가요. 샤를로즈의 피를 먹은 후부터 제 악마의 힘이 줄어들고 있는걸요.”
이안의 말에 샤를로즈는 루아를 잠시 올려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며.
루아는 이안의 발언에 모순을 느꼈다.
악의 기운이 많은 샤를로즈의 피를 먹는다고 인간이 되는 건 아닌데.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루아는 이안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안을 다독였다.
“이안. 샤를로즈가 짓궂은 거짓말을 했어. 샤를로즈의 피를 먹는다고 인간이 되지는….”
뭐지?
루아는 이안의 몸에 있는 악마의 힘을 몰래 살폈다.
그런데 이안의 말대로 악마의 힘이 최근 보다 많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아버지도 제 악마의 힘을 봤죠? 샤를로즈의 피는 위대합니다. 악마를 인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니. 샤를로즈가 꼭 신 같지 않습니까?”
이안은 샤를로즈를 보며 황홀한 눈빛을 보였다.
샤를로즈는 굳어 있는 루아를 흘겨보다가 이안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정말 내 피로 이안이 인간이 된다고요? 루아, 사실이에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이안의 악마 힘이 반이나 줄어들었어요.”
“다 거짓말이었는데, 사실이 되었네요. 이안의 말대로 제가 신이 된 것처럼.”
샤를로즈는 어색하게 웃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내 피를 먹는다고 악마가 인간이 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 지금.’
샤를로즈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게임 속 유일한 악역이었던 샤를로즈에게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하긴 샤를로즈의 아주 어린 시절 이야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
샤를로즈라는 캐릭터는 대체 무슨 설정을 가지고 있는 거야.
샤를로즈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이안을 향해 질문했다.
“이안. 그럼 제 피를 먹고 난 후부터 악마의 힘이 줄어들었나요?”
“네. 신기하게도 샤를로즈의 피를 먹으면 악마의 힘이 줄어들었어요. 지금은 반이나 줄었는걸요. 최근 먹지 않아서 다시 악마의 힘이 다시 오른 거지만.”
오른 거라고?
샤를로즈는 펼친 제 두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샤를로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대체 네 혈통은 어디 쪽인 거지? 인간이 아닌가? 뭐야. 이종족이야?’
김단은 샤를로즈에 빙의 후, 두 번째 맞이하는 충격이었다.
샤를로즈에게 비밀이 있었다.
비밀이 없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악마 루아의 아들. 이안의 악마의 힘이 줄어들 리 없다.
“지금 당장 내 피를 먹어 봐요. 루아는 이안의 상태를 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이안은 샤를로즈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두 송곳니를 쑤셔 넣었다.
샤를로즈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그 날카로운 고통을 잘도 받아 냈다.
쭉, 쭉 자신의 피를 빠는 이안을 힐끗 내려다보며 루아에게 눈짓을 했다.
얼른 이안의 상태를 확인해 보라는 눈짓을.
루아는 샤를로즈의 눈짓의 의미을 알아채고 이안의 몸 상태를 곧바로 확인했다.
샤를로즈는 음미하듯 제 피를 마시는 이안을 보다가 이안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루아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 그만.”
현기증을 느낀 샤를로즈가 이안을 떼어 냈다.
이안은 입맛을 다시며 샤를로즈에게 떨어졌다.
“그래서, 루아. 이안의 상태는 어때요?”
“말이 안 돼요. 지금 이 상황이.”
“왜 그러는데요?”
샤를로즈는 불안한 눈빛을 하며 루아를 보고 있었다.
꾹 다문 루아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이안의 악마 힘이 줄어들었어요. 샤를로즈의 피 때문에.”
“네?”
샤를로즈의 두 눈의 휘둥그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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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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