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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60/120)

60화

콰쾅.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면서 엘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엘의 어둠에 속박당했던 해리슨과 요한은 그녀의 죽음에 자연스럽게 풀려나게 되었다.

해리슨과 요한은 어둠이 제 몸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티아에게로 빠르게 달려갔다.

“티아!”

“티아.”

각각 다른 어조로 티아를 불렀다.

티아는 아직 샤를로즈의 몸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둘의 부름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샤를로즈의 죽음을 방관한 아주 나쁜 사람들이니까.

티아는 그 둘의 애처로운 부름을 싸그리 무시했다.

“티아. 보고 싶었어. 안아 봐도 돼?”

해리슨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 파악을 못 한 건지 티아의 냉담에도 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 했다.

참다 못 한 티아가 결국 해리슨을 향해 말을 꺼냈다.

“폐하.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폐하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설마 샤를로즈의 죽음을 방관해서 그런 거야?”

“네. 잘 알고 계시네요.”

“샤를로즈는 너를 괴롭힌 나쁜 언니잖아. 너를 괴롭힌 죗값이 죽음이라면 싼값이잖아.”

“언니는 저를 괴롭혔지만, 저는 그 괴롭힘도 좋았어요. 저희 자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언니를 험담하지 마세요, 폐하.”

“샤를로즈는 너를 내쫓은 악독한 인물이야. 너를 아끼는 사람들 중 샤를로즈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어. 알잖아, 티아.”

“샤를로즈 언니의 나쁜 이미지는 다 제가 만든 것 같아요. 샤를로즈 언니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것뿐인데. 제가 도망가지만 않았더라면 상황은 이렇게 됐을까요?”

“……티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네가 샤를로즈의 편에 설 수 있는 거지?”

해리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어깨를 올렸다.

티아는 샤를로즈의 상처를 거의 다 치료했는지 한숨을 잠시 내쉬고는 해리슨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언니를 사랑하니까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어요. 그래서 언니에게 벗어나려고 애쓴 거였어요.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제가 엄청난 괴롭힘을 받는 걸로 보였다니. 제 잘못이네요.”

티아는 샤를로즈의 상처가 다 아무는 것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언니를 지킬 거예요. 폐하나 요한이 언니를 깎아내릴 때마다 저는 당신들을 쳐다도 안 볼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세요.”

티아의 딱딱한 음성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은 요한과 해리슨은 그녀에게 대꾸도 못 한 채 샤를로즈에 대한 원망만 더욱더 쌓아 갔다.

왜 저딴 것이 티아를 빼앗아 들려는 거야.

짜증 나게.

해리슨은 제 머리를 두 손으로 헝클이며 답답해했고, 요한은 서슬 퍼런 눈빛로 샤를로즈를 노려보았다.

마치 샤를로즈의 목을 딸 기세로.

“루아. 샤를로즈 언니를 안고 제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옮겨 주세요.”

“네, 그러죠.”

얌전히 티아의 행동을 보던 루아는 티아의 부탁에 샤를로즈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서 이곳에서 자리를 떴다.

뒤늦게 합류한 이안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잠시 짓더니 루아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티아와 티아를 아끼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티아는 그들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남아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저와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샤를로즈 언니에 대한 관심을 꺼 주세요. 그럼 저도 물러날게요.”

요한은 티아가 계속 샤를로즈의 편을 드는 모습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저주가 온몸에 퍼지는 바람에 자리에서 주저앉고야 말았다.

엘의 어둠에 계속 속박되어 있는 동안 저주는 요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요한의 피부 위에 검붉은색의 괴이한 모양이 올라와 결국 그의 목까지 갉아먹었다.

“으윽.”

“요한? 괜찮아요?”

티아는 그들을 경계하는 것도 잠시 요한의 검붉은색의 저주를 보자 기겁했다.

‘저건 예전에 없앤 요한의 저주인데. 왜 다시 생긴 거지?’

분명히 그때 다 그 저주를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요한, 저주가 다시 퍼지고 있어요.”

티아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의 저주는 풀기 어렵고, 마력에 저주가 생기는지라 대마법사인 그의 마력을 건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마법사들은 보통 마력이 심장이고 곧 생명이었다.

하지만 저 저주를 고치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의 심장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선택지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였으니까.

티아는 일단 사람은 살려야 할 것 같아서 굳은 얼굴을 폈다.

“요한, 지금 바로 저주를 없애 드릴게요.”

“……네게 버림받는다면 죽는 게 더 나아. 죽게 내버려 둬.”

요한의 막말에 티아는 예전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

옛날의 착한 티아는 이제 없었다.

옛날의 배려심 넘치고 남을 도우며 착한 이미지인 티아는 더는 없었다.

티아는 다짐했다.

이제는 착해지지 않겠다고.

샤를로즈에게 발목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그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알았어요. 그리고 요한, 그거 하나 아세요. 저는 요한을 가진 적이 없어요.”

티아의 냉담에 요한은 조금 해탈했다.

자신을 저주에서 구원해 줬던 구원자가 저를 밀어냈다고 생각하니 머리에 핏기가 가셨다.

“티아. 지금 내가 저주 때문에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야?”

요한의 물음에 티아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자신이 그 악독한 샤를로즈에게 밀려났다는 사실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하하, 내가 샤를로즈한테 밀려났다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네.”

티아는 실성하듯 웃는 요한을 내려다보며 달래 주고 싶었지만, 착한 이미지는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예전처럼 따뜻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요한, 저는 이제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구원해 줄 사람도 아니고요. 전 샤를로즈 언니만 있으면 돼요. 제 마음을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넌 내가 죽길 바라?”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제게 소중한 사람은 샤를로즈 언니 딱 한 명이에요. 그러니 제게 집착하지 말아 주세요, 다들.”

요한은 티아의 말을 곱씹을수록 열이 받았지만, 저주로 인해 힘이 쭉 빠졌다.

결국 요한은 정신 줄을 간신히 붙잡고 옆으로 쓰러졌다.

툭.

요한의 몸에 힘 하나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티아는 요한이 이대로 죽기를 바라진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 친한 친구와 같은 사람이었다.

옛정을 생각해 요한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그가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버리려면 지금 버려. 티아.”

티아는 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살리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아마 성녀로서 각성함으로써 생긴 이상한 욕망인 것 같았다.

“하아. 차라리 이대로 죽는 편이 나을 지경이네.”

요한은 다 포기한 상태로 한숨을 내쉬듯 중얼거렸다.

청각이 남들보다 좋은 티아는 요한의 중얼거림을 들어 버렸다.

그러다가 요한의 암울한 과거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요한은 대륙의 유일한 대마법사였고, 해리슨의 전속 마법사였다.

대륙에 마법사란 존재는 아주 희귀하다 못해 잘 나타나지 않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것도 목숨에 치명타가 심한 저주.

마법사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에 저주가 걸리기 때문에 일찍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나, 요한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해리슨의 놀이 친구였던 티아는 어쩌다 보니 해리슨의 전속 마법사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

이것이 요한의 삶의 이유가 된 계기였다.

티아는 자주 해리슨을 보러 황궁에 놀러 갔고, 요한과도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요한이 한 번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이는 고대의 저주가 마력에 붙기 시작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티아는 요한이 내심 불쌍했다.

살고 싶은 욕망도 없어 보이는 우울한 낯빛을 고쳐 주고 싶었다.

단지 그 가벼운 이유 때문에 요한의 저주를 몇 년을 걸쳐서 제 신성력으로 겨우 없앴다.

저주를 완전히 고친 요한은 티아에게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맑고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고마워, 티아.]

티아는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꼈다.

드디어 요한이 살 마음이 생긴 거구나.

다행이다.

착한 티아는 그 후부터 안타까운 자들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낯빛보다는 환한 낯빛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가.

오지랖 넓은 성격이 되어 버렸다.

제 기준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 주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티아는 사실 많이 지쳐 있었다.

자신은 남들을 구해 주는데 되돌아오는 건 미친 집착뿐이라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저주가 퍼져 죽어 가려는 요한을 버려둘 수는 없었다.

아직 제 오지랖 넓은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나를 집착하는 이들을 버리고 샤를로즈 언니에게 가고 싶지만.’

소꿉친구가 죽어 가는데 차마 모르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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