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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58/120)

58화

루아는 북쪽으로 향하던 중, 샤를로즈의 통신이 다시 이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어졌어.

설마 샤를로즈가 다시 살아난 건가.

누가?

설마 그 티아라는 여동생이 샤를로즈를 살린 건가.

루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안과 함께 샤를로즈가 있는 북쪽으로 달렸다.

북쪽으로 향할수록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긴 했다.

이걸 계속 맡고 있자니 천 년 전에 봤던 흑주술사들이 떠올랐다.

그 간사하고 미친 인간들.

악마가 되고 싶어서 악의 기운을 저주로 먹는 미친 것들.

악마들은 흑주술사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이유는 자신들을 따라하는 미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디 감히 인간 따위가 악마와 같은 힘을 가지려고 드는가.

그것들은 고대의 저주와 악마의 힘을 섞어 만든 괴이한 힘을 가졌다.

그리고 웃기게도 흑주술사들의 약점은 바로 악마였다.

악마의 본래의 힘에 흑주술사들의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주술사들은 신분을 사거나 숨기며 악마를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한 흑주술사가 악마와 시비가 붙어 결국 흑주술사들은 모조리 멸종되었다.

이것이 루아가 천 년 전 알던 정보였다.

하지만 아직 한 명이 살아남았다니.

이번에는 꼭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일 것이다.

평소 여유로운 루아의 눈이 이번에는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급했다.

그 흑주술사가 샤를로즈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무서웠다.

악마는 원래 무서움을 느끼지 잘 느끼지 못하는 종족인데.

루아는 샤를로즈 하나 때문에 무서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샤를로즈에게 푹 빠져 있다는 소리였다.

인간을 무척이나 경멸했던 루아가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건.

정말 샤를로즈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곧 갈게요. 샤를로즈.’

***

샤를로즈는 눈을 떠 눈물을 뚝뚝 흘리는 티아를 응시했다.

‘레베크 공작가 일원들이 단체로 미쳤나.’

샤를로즈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계속 내뱉으며 자신이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가 다시 게임 속으로 돌아온 것에 환멸을 느꼈다.

또, 이 게임 속이야.

빌어먹을.

샤를로즈는 펑펑 우는 티아를 달래 줄 기운이 없었다.

“티아, 네가 나를 살린 거니?”

“응, 언니. 내가 살렸어.”

“어머니의 유언장으로?”

“응. 어제도 언니가 그렇게 살아난 게 갑자기 떠올라서…….”

“누가 너보고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 왜 네 멋대로 날 살려 내고 난리야?”

샤를로즈의 날이 선 음성에 티아는 울음을 뚝 멈추었다.

왜, 언니가 화를 내는 거지?

‘난 언니가 살았으면 해서 그런 것뿐인데.’

티아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게 있잖아. 언니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게.”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엘에게 죽여 달라고 발악을 했어. 게다가 널 대신해 죽는 거라고.”

“그거 다 거짓말이야.”

“뭐?”

“엘이 언니를 죽인 건 그냥 죽여 달래서 죽인 거래. 어차피 제물은 계속 나였어.”

“엘, 티아 대신 내가 죽겠다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고?”

샤를로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벌한 목소리로 엘에게 압박을 주었다.

엘은 엄청난 악의 기운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악마보다 더한 악의 기운. 미쳤어!’

샤를로즈를 보는 엘의 시선은 마치 겁을 잔뜩 먹은 초식동물 같았다.

악마와 다름없는 악의 기운.

대악마와 계약한 위험한 자.

어떻게든 죽여야 해.

‘내게 승산이 전혀 없어 보여.’

엘은 어쩔 수 없이 제 긴 혀를 이용해 샤를로즈를 또 죽일 생각이었다.

“샤를로즈 아가씨. 솔직하게 말해 살고 싶지 않으시잖아요. 계속 죽여 달라고 소리치셨잖아요.”

“그랬지. 티아도 없고 유진 오라버니나 제레미 오라버니도 옆에 없으니 기회라고 생각했거든.”

“무슨 기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원래대로 돌려놓을 기회. 아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샤를로즈의 말이 옳은 듯, 그녀의 말을 이해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대체 원래대로라는 게 뭘까.

티아만이 샤를로즈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엘은 미소를 지으며 샤를로즈에게 거래를 원했다.

“무슨 기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힘이라면 그 기회를 다시 한번 드릴게요. 어때요, 샤를로즈 아가씨?”

“내가 원하는 기회를 엘, 너는 알고 있어?”

“잘 모르겠지만, 알려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입 닥쳐, 엘. 미안하지만 난 널 신용하지 않거든. 애초에 너와 인연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티아와 인연이 있는 자들은 이제 지긋지긋해서 말이야.”

샤를로즈는 말하는 것도 귀찮은지 중간에 계속 한숨을 내리쉬었다.

엘은 상황이 점점 나빠짐을 느꼈지만, 샤를로즈를 놓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죽여야 해.

이 망할 아가씨를.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엘은 하는 수 없이 제 어둠을 이용해 샤를로즈를 속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샤를로즈를 향한 어둠은 티아의 신성력으로 인해 금방 사라졌다.

“엘. 나 더는 못 참아. 이번엔 내가 널 죽일 거야.”

“…티아 아가씨?”

“말했잖아.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티아는 샤를로즈 앞을 막아서며 엄포를 늘어트렸다.

“티아 아가씨. 정말 저, 엘을 죽이실 생각이에요? 저희 친했잖아요.”

“엘. 나는 이번 계기로 깨달았어. 샤를로즈 언니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는 걸.”

티아는 두 팔을 양옆으로 뻗어 샤를로즈를 보호했다.

샤를로즈는 제 앞에 저보다 조금 큰 키를 가진 티아의 뒷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고개를 돌린 샤를로즈는 어둠에 묶여 있는 해리슨과 요한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티아의 터무니없는 발언에 놀란 것도 잠시 자신을 엄청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만 없다면, 티아가 저렇게 변할 리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샤를로즈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 둘에게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해리슨이 샤를로즈의 도발에 걸려들었다.

“샤를로즈, 너!”

“어머, 폐하. 아직도 살아 계셨군요. 명이 참 기세요.”

“너도 참 명이 길구나. 샤를로즈.”

“약혼녀한테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세요? 티아도 있는데.”

“약혼녀……! 너!”

“왜요. 제가 말하지 못할 거라도 말했나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티아가 들으면 오해하잖아!”

“티아, 들으라고 한 소리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우리 약혼한 사이 아닌가요. 아, 아직 약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약혼 관계는 아닌가.”

티아는 뒤에서 떠드는 샤를로즈와 해리슨의 다정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분노를 표출해 버렸다.

약혼?

약혼식?

폐하가 언니의 미래 남편이 된단 소리야?

안 돼.

‘언니의 미래에는 나만 있으면 돼. 그 누구도 필요 없어.’

티아는 얼굴을 구기며 엘에게 명령했다.

“엘. 이제 그만 해. 명령이야.”

“티아 아가씨. 제 여동생 레나와 닮아서 계속 아가씨 말은 들었는데 이제 안 들으려고요. 이렇게 제 뒤통수를 치다니. 아가씨는 제게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도망가자고 먼저 날 건드린 건 너야. 네가 날 데리고 여기로 왔잖아.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티아 아가씨도 그 저택에 나오고 싶었으니까 제 말에 현혹되었겠지요. 무조건 제 탓은 아니지 않나요.”

“맞아, 티아. 이건 네 탓도 있어.”

샤를로즈는 화를 내는 해리슨을 뒤로 한 채 엘과 티아의 대화에 무작정 끼었다.

“샤를로즈 언니, 내 탓도 조금 있지만……. 그래도 난 언니를 위해서 그 저택에서, 집에서 나온 거라고! 언니가 진짜 죽을까 무서워서.”

“그래서 너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거니, 티아?”

“난 언니를 위해서-.”

“정말 너는 나를 위해 도망간 거 맞아? 아니잖아. 그건 변명이잖아. 티아.”

샤를로즈는 이 상황이 웃기지도 않았다.

그저 제 여동생이자 이 게임의 원작 여자 주인공인 티아가 조금 원망스러울 뿐이다.

네가 구원해 준 원작 남자 주인공들 덕분에 피폐한 삶을 몇 달간 살았어.

애정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증오는 더더욱 바라지 않았어.

원작 샤를로즈가 나쁜 건 맞아.

하지만 샤를로즈에게 애정을 주는 이는 전 공작 부인밖에 없었어.

그 애정이 그리운 샤를로즈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네가 미웠을 뿐이야.

그래서 악독하게 행동했고, 자신을 깎아내렸어.

김단은 샤를로즈의 우울한 기억을 꺼내며 속으로 샤를로즈의 편을 들었다.

불쌍한 샤를로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홀로 죽은 샤를로즈.

지금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우습지 않니.

안 그렇니, 진짜 샤를로즈?

너를 원한다던 네 여동생 티아도 지금 샤를로즈는 진짜로 알고 있어.

우습지?

이렇게 널 알아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어.

‘나와 똑같이.’

김단은 샤를로즈로서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버렸다.

모든 것을 버리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티아라는 애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주 나쁜 쪽으로.

“티아. 너는 내가 진짜 샤를로즈 같니?”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가 진짜 샤를로즈지, 그럼 가짜 샤를로즈겠어?”

외형만 보고 진짜라고 판단하는 네 가족을 보렴.

샤를로즈, 넌 인생을 헛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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