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ㄴ 악역영애님: 아. 나도 샤를로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게임 속 유일한 악역이긴 한데 왜 자꾸 죽으려고 애쓰는 거지;; 처음에는 죽고 싶지 않다며 발악했는데.
ㄴ 샤를로즈살려내: 그러니깐. 게다가 분량 없는 샤를로즈가 갑자기 분량이 많아졌어. 그리고 이게 오류인 건지 도망간 티아가 원래 3년 후에 돌아오잖아. 근데 샤를로즈가 티아를 찾아서 돌아왔잖아. 그게 너무 이상해.
ㄴ 즐겜유저임: 윗댓 다 받고 나도 이질감 느낌. 이거 게임 오류인 듯. 샤를로즈가 티아를 살리려다가 죽고 나서부터 다음으로 넘어가지가 않아.
ㄴ 샤를로즈살려내: 나도 그래. 샤를로즈가 티아 대신 죽고 나서부터 새까만 화면만 떠. 이거 제작사에 오류 있다고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ㄴ 즐겜유저임: 안 그래도 신고 넣었는데 답이 없음. 노답임. 내 인생 게임이었는데. XX.
ㄴ 샤를로즈살려내: 2222 나도 내 인생 게임이었음. 내가 악역한테 치일 줄은 몰랐음….
김단은 마지막 댓글까지 읽으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이거 내가 샤를로즈에 빙의해서 저지른 일들이잖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김단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자신도 댓글들이 말하는 오류를 확인하려고 그 역하렘 게임 앱을 눌렀다.
화려한 주인공들의 일러스트가 등장하는 것까지는 똑같은데.
<오류 코드 넘버: 999>
게임을 시작하려는데 스마트폰 화면에 오류가 떴다.
김단은 당황해 계속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지 않았다.
마치 너는 게임을 하면 안 된다는 듯이.
김단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왜 안 넘어가지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게임이 시작될 때까지 김단은 계속해서 게임 시작 버튼을 터치했다.
게임이 시작될 때까지.
30분, 1시간이 흘렀지만.
게임은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김단은 포기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이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단은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샤를로즈에 빙의되지 않기를 바라며.
***
샤를로즈가 죽기 전.
티아는 짐을 챙기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샤를로즈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살폈다.
‘어디 간 거지?’
티아는 집 안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지만 샤를로즈의 새까만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게 되었다.
언니,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아니면 도망간 거야?
티아의 푸른색 눈동자에 우울감이 젖어 들었다.
그렇게 집 안을 서성이던 티아는 혹여 언니가 바깥에 나간 것이 아닐까 싶어 현관문을 열려는데 엘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엘…?”
“티아 아가씨. 한참을 찾았어요. 도대체 어디 있었어요.”
“언니랑 같이 있었어.”
“그 못된 샤를로즈 아가씨랑요?”
엘은 제 그림자 속에 묶여 있는 샤를로즈를 떠올리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바보같이 착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이번 제물은 꽤 최상급이었다.
엘은 제 여동생 레나가 이번에는 건강하고 오래 살았으면 했다.
이런 엘의 무서운 속내를 모르는 티아는 엘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다.
“혹시 오늘 샤를로즈 언니를 본 적 없어?”
“음. 네. 본 적 없어요.”
“이상하네. 분명히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 샤를로즈 아가씨가 티아 아가씨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닐까요?”
엘의 훅 들어오는 발언에 티아의 푸른색 눈이 크게 동요했다.
그럴 리 없어.
‘언니가 분명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티아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엘이 수상했다.
아, 그 여자의 말이 설마 맞는 건 아니겠지?
아까 자신이, 아니 샤를로즈 언니가 고친 부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엘이라는 자를 조심해라.
제물을 바치는 무서운 흑주술사다.
티아는 엘을 수상하게 여기며 의심의 눈초리로 봤지만 물증이 없었다.
소문만으로는 엘의 범행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티아도 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엘은 저를 보는 티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져 조금 당황했다.
늘 선한 눈빛으로 저를 아껴 주던 아가씨였다.
‘설마 내게서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 그럴 리 없어. 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엘은 티아를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사라진 샤를로즈를 걱정하였다.
“그나저나 샤를로즈 아가씨는 괜찮을까요? 역병에 걸린다면 큰일 날 텐데.”
“언니 몸에 신성력을 조금 넣어놨어. 역병에 걸리지는 않을 거야.”
엘은 자신을 모질게 굴었던 샤를로즈에게까지 이런 호의를 베푸는 티아를 보며 이번 제물이 훌륭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티아 아가씨는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순수하고 배려심 넘치고. 또.”
“나는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이 아니야. 언니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언니를 잊겠다는 마음 하나로 언니를 버리고 도망 왔는 걸.”
“만약 제가 티아 아가씨라면 저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요.”
“어째서?”
“연민을 가진 자에게 미움받는 일만큼 마음 아픈 일이 또 없거든요.”
“네 말이 맞아. 나는 언니에게 더는 미움받기 싫어서 도망 온 거야.”
그 상황이 너무 슬퍼서 도망갔어.
티아는 늘 샤를로즈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다.
자신의 마음이 언니에게 닿기를 기도하며.
티아는 우울한 낯짝으로 주변을 살폈다.
“잠깐 언니가 사라지니깐 마음이 공허해. 참 이상하지?”
“샤를로즈 아가씨는 강하신 분이라 분명히 어딘가 있을 거예요.”
그 어딘가가 제 그림자 속이지만요.
엘은 티아가 보지 못하게 음흉하게 웃었다.
티아가 자신을 보자 얼른 그 미소를 지우고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티아는 오늘따라 샤를로즈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엘이 조금 이상했다.
보통 샤를로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자는 잊으라며 잔소리를 했다.
하나, 지금은 샤를로즈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그리고 그 부부의 아내분 말도 수상하고.’
티아는 엘을 떠보기 위해 질문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몇 달간 함께 있었는데 엘의 가정사를 모르네.”
엘은 티아의 허를 찌르는 발언에 난감해했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제 가정사가 딱히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제 가정사를 숨기려는 엘의 수상한 반응에 티아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살다 자신이 연기라는 걸 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엘이 만약에 진짜 흑주술사라면 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한다.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던 티아는 연기에 돌입했다.
엘의 경계에 티아는 울상을 지었다.
“나는 엘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있어. 내 가정사는 다 말해 줬는데 너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잖아. 설마 나를 믿지 못하는 거야?”
티아의 물음에 엘은 우물쭈물했다.
“나는 엘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어.”
티아는 엘의 두 손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엘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제 가정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 가정사는 특별하지 않아요. 부모님과 여동생이 누군가에게 학살을 당했어요. 저만 유일하게 살아남았고요.”
티아는 꽤 암울한 엘의 가정사에 침음을 흘렸다.
“혹시 동생이 여동생이야?”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감으로?”
“제 여동생 레나는 정말 어여쁜 아이였어요.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잦은 병을 달고 살았는데 매일 제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제 옆에 있으면 행복하다는 듯 웃곤 했어요.”
“안타깝게 됐네.”
“뭐, 그렇죠.”
엘은 잠시 레나와의 추억을 되새겼다.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제 가족들과의 추억들 역시.
아니, 이젠 추억이라기보다는 트라우마지.
엘의 부모는 흑주술사를 배출해내는 소수의 정예가 만든 가문으로 몸이 약한 레나는 늘 학대받았다.
[엘, 너만이 우리 가문의 희망이다.]
[엘, 레나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훈련이나 더 해.]
제 부모란 사람들은 연약한 자식을 돌보지 않았다.
엘만이 레나를 돌보았다.
그래서 제 부모를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리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레나가 또 불행해질까 봐.
단순한 이유였다.
엘은 잠시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죽은 레나가 보고 싶어졌다.
엘은 티아와의 대화를 끊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티아 아가씨.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저 소파에서 샤를로즈 아가씨를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런가?”
“샤를로즈 아가씨가 혹시 산책이라도 간 걸 수도 있잖아요. 괜히 티아 아가씨가 바깥에 돌아다니면 동선이 꼬여 또 만나기 힘들지도 몰라요.”
티아는 엘의 설득력 있는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그래야겠다. 한숨이라도 자야겠다. 피곤하네.”
“한숨 주무세요. 샤를로즈 아가씨를 찾으면 깨워 드릴게요.”
엘은 바보같이 착한 티아가 제게 홀라당 넘어가는 걸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착해 빠진 우리 티아 아가씨. 제 여동생을 위해 희생해 주세요.’
엘은 티아가 소파에 누워 색색거리며 자는 걸 확인한 뒤, 얼른 지하실로 향하는 바닥을 열쇠로 열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