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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51/120)

51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밀색 머리카락에 녹안을 가진 여자 아닙니까?”

티아는 어떻게 알았냐며, 엘을 아냐고 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그, 제가 생각하는 분이 맞다면 그분을 꼭 조심하십시오. 그분은 위험한 자입니다.”

“엘이 왜 위험해?”

“혹시 엘이라는 분의 손등에 새까만 자국이 있지 않으십니까?”

“응.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큰 점이라던데.”

“제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샤를로즈는 티아와 저 여자의 대화가 너무 답답해 체할 지경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말을 돌려서 하는 거야.

그냥 간결하게 대충 물어보면 될 것을.

하는 수 없이 샤를로즈가 그 대화에 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 엘이라는 자가 왜 위험한데? 용건만 말해.”

여자는 샤를로즈의 강압적인 태도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엘이라는 그분은 흑주술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고향에서 큰 소문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 엘이라는 자에 대해서.”

“흑주술사?”

“네. 그 소문이 워낙 소수의 마을에만 퍼져 수도 쪽이나 대도시에는 퍼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엘이라는 자가 죽은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습니다.”

티아는 미간을 좁히며 여자의 말에 반박했다.

“엘은 그럴 애가 아니야. 다른 사람이겠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엘이라는 분은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 바닥에서는 꽤 유명합니다.”

샤를로즈는 티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속으로 한탄했다.

아아, 지겨워라.

***

샤를로즈는 티아와 아침 식사를 얼른 마치고 그 집에서 떠났다.

지금 당장 엘이라는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원작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존재.

원작 여자주인공 티아를 이 병자들의 섬으로 도망치게끔 유혹한 장본인.

엑스트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큰 흑주술사.

샤를로즈는 티아와 함께 엘이 있을 만한 곳.

즉, 티아와 엘이 머물렀던 숙소로 향했다.

티아의 안내를 받아 샤를로즈는 다른 집보다 2배는 커 보이는 숙소를 보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런 데서도 잘도 잤네. 이 섬에서 가장 큰 집이라.”

“내가 원해서 저 집에서 잔 건 아니야. 엘이 집을 구해 줬어. 그래서 그냥 들어간 것뿐이지.”

“그 엘이라는 애, 수상한 점은 없었어?”

“없었어. 그냥 착한 애야.”

하긴 네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은 다 착한 사람이겠지.

‘나를 제외하고.’

샤를로즈는 고개를 치켜들고 티아와 엘이 머무른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었고, 늘 누군가 청소하는 건지 깔끔했다.

그나저나 엘이라는 애, 여기 있는 거 맞지?

의심의 눈초리로 티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엘이 여기 있다는 건 몰라.”

“그럼 왜 여기에 온 건데?”

“일단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오려고 했지.”

아, 드디어 자발적으로 레베크 공작저로 가려고?

샤를로즈는 그렇게 하라며 얼른 티아를 제 방으로 보냈다.

혼자 남겨진 샤를로즈는 거실로 보이는 곳에 있는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푹신하다.’

샤를로즈는 기어코 소파에 누웠다.

소파가 큰 모양인지 샤를로즈가 온전히 다 누웠음에도 소파의 끝이 남았다.

‘왠지 모르게 졸립네. 꼭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치 누군가가 제 기운을 빼앗아 가는 기분이 들어 불쾌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새까만 어둠이 샤를로즈의 입을 막음과 동시에 몸을 둥글게 말자 그녀의 몸이 바닥을 통과했다.

샤를로즈는 기이한 현상에 어리둥절했다.

시야를 반 이상 가리는 어둠 때문에 자신이 끌려온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샤를로즈?”

해리슨의 목소리가 귓가에 때려 박혔다.

샤를로즈는 고개를 흔들어 어둠을 조금 떨쳐 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저와 같이 어둠에 속박되어 있는 해리슨과 요한이었다.

심지어 요한은 낯빛이 어두웠다.

저주가 점점 몸 안에 퍼지고 있나 보다.

티아를 찾긴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그 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상황이 조금 그랬다.

샤를로즈가 제 입을 막고 있는 어둠을 떨쳐 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자 그녀의 입가를 막고 있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서 폐하랑 요한은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티아를 찾으라고 했더니 이런 곳에서 잡혀 있기나 하고. 티아의 남편 후보 탈락이에요.”

해리슨은 구차한 변명을 했다.

“티아를 안다던 그 메이드. 그 개 같은 것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렸어. 티아를 만나게 해 준다고 했었는데. 빌어먹을!”

“폐하는 너무 티아밖에 몰라.”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요한!”

둘이 또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샤를로즈는 그저 생각보다 사람을 곧잘 믿는 해리슨에 혀를 끌끌 찼다.

폭군이라고 불리는 자가 티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정신을 놔 버리니.

황제 실격이네요.

샤를로즈는 해리슨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얼른 말문을 열었다.

“폐하, 요한. 저 티아를 만났어요.”

샤를로즈의 무덤덤한 어조에 해리슨과 요한은 크게 반응했다.

해리슨이 정말이냐며 금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요한 역시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리슨은 문득 샤를로즈가 어떻게 이 그림자 안으로 잡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샤를로즈. 근데 너 어떻게 이 그림자 속에 오게 된 거지?”

“여기가 그림자 속이에요? 전 몰라요. 그저 티아와 엘이 머무는 집에 들러 소파에 누웠을 뿐인데요.”

해리슨은 그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았다.

“그 집에 흑주술이 깔려 있나 보군.”

요한 역시 해리슨의 말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티아는 이곳에 끌려오지 않았어요. 저만 왔지.”

샤를로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한이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해리슨과 샤를로즈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아마도 그 집은 흑주술로 이루어져 있는 듯해. 티아만 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설정한 모양이야.”

“그래서, 더 말해 봐.”

해리슨이 요한을 재촉했다.

요한은 해리슨을 살짝 노려본 뒤,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엘은 티아가 목적인 것 같아.”

요한의 말을 듣는 순간, 샤를로즈는 아까 티아가 살린 여자의 말을 떠올렸다.

엘이라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죽은 제 여동생을 위해서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엘의 목소리가 그림자 안에 울려 퍼졌다.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네? 어머, 샤를로즈 아가씨 아닌가요?”

“너, 티아에게 뭔 짓을 하려고 이런 함정을 만든 거야.”

“무슨 소리세요. 저는 그저 티아 아가씨의 안전을 위해 덫을 깔아 놓은 것뿐이에요.”

엘의 뻔뻔한 태도에 해리슨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 그림자 속에서 나간다면 널 죽일 거다. 망할 것!”

샤를로즈보다 더한 애가 여기 있었다니.

해리슨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럼, 제 그림자 속에서 편안하게 있으세요. 내 집이라 생각하고.”

그럴 수 있겠냐!

해리슨은 통신이 끊기듯 툭 끊겨버린 엘의 목소리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티아를 찾기 위해 한 번도 온 적 없는 병자들의 섬에 와서 개고생 중이었다.

요한은 혼자 분노하는 해리슨과는 다르게 묘하게 침착했다.

요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둠에게 붙잡혀 있는 샤를로즈에게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하였다.

“샤를로즈, 너 엘이라는 여자에 대해 들은 거 없어?”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는데 엘이라는 애가 말을 시켜서 대화가 뚝 끊겨 버렸네요.”

“뭐야, 엘이라는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어?”

“병자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더니 이런 귀한 정보를 주더군요.”

요한은 샤를로즈를 매서운 눈길로 쳐다보며 어서 말하라고 보챘다.

샤를로즈가 아는 한 엘의 정보를 술술 늘어놓았다.

“엘은 미쳤다고 해요. 제 죽은 여동생 때문에.”

해리슨은 저를 함정에 빠트렸을 때 엘의 모습을 보며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샤를로즈는 계속해서 말을 덧붙였다.

“죽은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쳐 흑주술로 죽은 여동생을 살리려나 봐요. 조심하라고 하던데요?”

해리슨은 순간 인상을 확 구겼다.

그 말은 즉, 티아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말 아닌가?

귀한 제물에 생채기라도 나면 안 되니, 귀한 제물인 만큼 티아를 이 함정에 빠트리지 않게 한 것이다.

게다가 티아에게 신뢰 또한 꽤 얻고 있었기 때문에 티아는 엘이 그런 자라고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해리슨은 이를 으득 갈며 엘이라는 여자가 제 시야에 있다면 당장에 갈기갈기 찢을 정도로 분노를 표했다.

이런 감정은 샤를로즈의 미친 행동을 본 이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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