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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46/120)

46화

제발 사라진 자신들을 봐 달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샤를로즈가 어둠에 갇힌 자신들을 찾기를.

우습게도, 티아가 아닌 자신들의 적이었던 샤를로즈에게.

바보같이.

***

엘은 티아와 함께 묵는 숙소의 지하실로 내려가 관 안에 티아와 쏙 빼닮은 여자애를 향해 속삭였다.

“레나,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널 살릴 수 있어. 드디어. 오늘 재물도 두 개나 더 건졌어. 이번에 살아나면 꼭 오래 살아 줘야 해?”

엘은 광기에 절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한 광기가 위협적으로 드러났다.

“그 망할 샤를로즈 아가씨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레나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엘은 샤를로즈를 떠올리며 분노했다.

제 계획이 갑자기 틀어져서 짜증이 난 것이다.

그래도 제 여동생 레나를 보니 그 짜증이 쏙 들어갔다.

‘아아,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이번 생은 오래 살아 줘.’

엘은 미친 사람처럼 꺄르르 웃다가 눈물을 흘렸다.

제 여동생을 위한 눈물을.

“이번에 살아나면 저번에 가지 못했던 마카롱 집이나 가자. 레나.”

엘은 관 안에 누워 있는 레나의 창백한 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살살 쓸어내렸다.

아주 소중한 물건을 만지는 듯.

엘은 레나를 위해 다시 티아에게 호의를 베푼 척 다가가야 했다.

샤를로즈의 무서운 기에 눌려 저도 모르게 도망가긴 했지만 레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티아를 이곳으로 데려와 흑주술을 펼쳐야 했다.

그러기에는 미끼가 필요했다.

“아, 미끼라면.”

조금 전 낚아챈 물고기 두 마리가 있잖아.

고귀하신 두 분을 어둠으로 묶고 있었지.

엘은 미친 사람처럼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일이 정말 잘 풀리겠어.”

제아무리 그 두 분을 싫어하는 샤를로즈 아가씨라도 그 두 분이 어디론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명히 찾으러 다닐 것이다.

엘은 레나를 한 번 쭉 흘겨보다가 지하실에서 빠져나와 티아와 샤를로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눈물이 조금 많이 필요했다.

엘은 레나를 잃은 슬픔을 잠시 떠올리며 감정을 잡았다.

그리고 엉엉 울며 섬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

샤를로즈는 티아와 함께 아내를 살려 달라는 그 남자의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독한 악취가 샤를로즈의 후각을 자극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상한 태도를 유지했다.

티아 역시 악취에 익숙해 보였다.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남자의 집 안에 발을 들였다.

남자는 싸구려 침대에 누워 있는 제 아내를 보여 주며 티아를 향해 애원했다.

“아가씨. 제발 아내를 살려 주십시오….”

티아는 사실 곧 죽어 버릴 것 같은 남자의 아내를 살릴 수 있을지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티아가 샤를로즈를 슬쩍 보았다.

언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걸까.

대책이 있는 건가.

티아는 지금 신성력이 거의 다 떨어졌다 해도 무방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환자를 봐줬기 때문이었는데.

이 신성력 가지고는 곧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걸 티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샤를로즈의 꾐에 넘어가 이렇게 환자의 집에 또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언니, 이제 어쩔 거야?

티아는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샤를로즈를 바라보았다.

티아의 불안한 시선을 받은 샤를로즈는 유진이 준 유언장을 꺼냈다.

죽은 선대 공작 부인, 아니 선대 성녀의 신성력이 가득 들어 있는 유언장이었다.

유언장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티아는 갑자기 종이를 꺼내 드는 샤를로즈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저 종이는 뭐지?’

티아는 의문이 가득한 푸른색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생각했다.

샤를로즈는 친절하게도 이 종이에 대해 티아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티아. 잘 들어. 이 종이는 어머니의 유언장이야. 이 유언장에는 어머니의 신성력이 가득 들어 있어. 몇 번을 죽은 나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잠깐만, 언니가 몇 번을 죽었다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티아. 저 남자분의 아내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한 일이지.”

“하지만.”

“티아. 날 살려 달라고 소원을 빌어.”

“…소, 소원? 언니를 살려 달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유언장은 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소원을 들어 주는 모양이야. 물론 신성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만. 너도 레베크 공작저의 혈육이니 이 유언장은 네게도 통할 거야. 어서, 소원을 빌어. 티아.”

“쿨럭!”

“부인!”

샤를로즈는 피를 토하며 죽어 가는 남자의 아내를 응시하며 티아에게 유언장을 건네주었다.

“저러다가 네 눈앞에서 환자 한 명을 잃었어. 넋 놓지 말고 날 살려 달라고 소원을 빌어. 어서.”

티아는 일단 환자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샤를로즈가 건넨 유언장을 빼앗아 소원을 빌었다.

자신의 소원이 진짜로 이루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니는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솔직해서 탈이었지만.

샤를로즈는 유언장을 건네받은 티아를 보자마자 품 안에 늘 가지고 있는 단검을 들어 제 심장을 거침없이 찔렀다.

투툭.

샤를로즈 역시 저 여자처럼 입에서 피를 뿜어 댔다.

티아는 죽어 가는 샤를로즈를 보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샤를로즈는 멀뚱히 서 있는 티아를 향해 작게 소리쳤다.

“어서, 소원을 빌어!”

“언니를, 언니를 살려 주세요.”

화아악!

유언장에서 빛이 나며 여자의 위에 쓰러진 샤를로즈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 둘러싸였다.

덤으로 그 아래에 있는 여자 역시 창백했던 낯빛에 생기가 돌고 있는 게 보였다.

샤를로즈는 드디어 이 유언장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죽은 어머니는, 아니 죽은 선대 공작 부인은 샤를로즈가 인형으로서 레베크 공작저에서 평생 살아가길 원했던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이 아닌 괴상한 집착이었다.

샤를로즈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이 망할 유언장을 찢어 버릴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저 유언장이 있다면 자신은 현실로 돌아가기는 커녕 이 피폐 역하렘 게임 속에서 평생 살아가게 생겼다.

젠장.

샤를로즈는 여자의 위에서 일어나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무심하게 닦았다.

“티아, 네 덕분에 저 여자는 살았어.”

티아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샤를로즈와 유언장을 번갈아 보았다.

“언니……. 원피스에 피가 잔뜩 묻었어.”

“괜찮아. 살았으면 됐지.”

티아는 유언장을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제가 사랑하는 언니가 자신의 얼빠진 행동으로 죽을 뻔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티아는 꽤 충격을 먹었다.

이 유언장은 대체 무엇인가.

언니는 왜 자살을 하려고 했던 건가.

티아의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티아와 샤를로즈 사이의 묘한 감정이 오갔다.

그러던 중, 남자가 넙죽 엎드리며 티아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아내가 고르게 숨을 쉬는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샤를로즈는 남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당신을 고쳐 줄게.”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 저는 괜찮습니다.”

“그 다리, 불편하잖아.”

“아,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부인만 살아 있다면 제 다리가 불구가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샤를로즈는 남자를 한심하게 보며 시비조로 말을 건넸다.

“그래? 네 절은 다리를 고쳐 줄 수 있는 기회인데. 아내랑 같이 소풍이라도 가고 싶지 않아? 멀쩡한 두 다리로 말이야.”

샤를로즈의 날이 선 말투에 남자는 기가 죽었다.

샤를로즈는 왠지 모르게 저런 남자에게 자신의 입장을 대입하게 되어 저렇게 거친 말이 나온 것뿐이었다.

왠지 모든 걸 안고 가려는 게 제 모습과 비슷해 보여서.

샤를로즈는 티아를 향해 무심하게 명령을 내렸다.

“티아. 저 남자도 고쳐 놔. 이건 내 부탁이 아닌 명령이야. 난 죽음에 익숙하니까 괜찮아. 그러니깐 내가 살아 달라고 계속 소원을 빌어. 그 망할 유언장을 품에 안고서 말이야.”

“또, 또 죽겠다는 거야 언니?”

“티아. 걱정하지 마. 그 유언장만 있다면 난 절대 죽지 않아.”

“난 언니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꼴, 두 번은 못 봐.”

“아가씨 말대로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샤를로즈는 저 답답한 두 인간을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렸다.

빠르게 단검을 두 손으로 잡아 제 심장에 다시 한번 쑤셔 넣었다.

으윽.

고통이 느껴왔지만, 샤를로즈는 익숙하게 그 고통을 속으로 삼켰다.

단검을 심장에 꽂은 채 쓰러져 남자의 절은 다리 쪽을 붙잡았다.

티아는 또 죽으려고 하는 샤를로즈의 이상한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유언장에 제 소원을 빌었다.

“샤를로즈 언니를 살려 주세요…….”

그 순간, 또다시 유언장에서 빛이 남과 동시에 샤를로즈의 몸에서도 반짝 빛이 났다.

샤를로즈가 붙잡은 남자의 다리 또한.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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