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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44/120)

44화

“우웩.”

“욱.”

비위가 그렇게 좋지 않은 해리슨이 요한의 헛구역질을 따라 자신도 구역질을 했다.

그만큼 병자들의 섬에서 풍기는 향기는 고역이었다.

“그나저나 샤를로즈는 어디에 있는 거야? 위치 추적 마법 같은 것 좀 써 봐. 요한.”

“폐하. 나 지금 마법 못 써.”

“왜? 마력은 꽤 회복되었잖아.”

“몰라. 계속 마법을 써 보려고 했는데 무언가에 막혀 안 써져.”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이는 거야?”

“정말이야. 이거 봐 봐.”

요한은 마법 주문을 중얼거리며 마법을 쓰려고 했지만 마법진이 중간에 계속 사라졌다.

그걸 본 해리슨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대마법사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

이 섬 안에서만?

분명히 섬 앞에서는 마법이 통했는데.

굉장히 수상하고 묘한 일이다.

해리슨은 조금 익숙한 여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골목에서 나와 헉헉거리며 주변을 헤매고 있는 한 여자를 말이다.

해리슨은 요한의 팔을 툭툭 치더니 조용히 검지로 여자를 가리켰다.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어?”

“폐하. 지금 티아를 찾느라 바쁜데 한눈이라도 파는 거야?”

“그게 아니라. 쟤 티아가 아끼는 하녀가 아니야?”

해리슨의 말에 요한은 해리슨이 향하고 있는 검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해리슨 말대로 익숙한 외형을 가진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아, 폐하 말대로 티아가 아끼는 하녀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럼 티아가 여기에 있다는 소린가?”

“한번 물어보면 되지.”

해리슨과 요한은 그 여자, 엘 앞에 빠르게 뛰었다.

엘은 순간 제게로 달려오는 남자 두 명이 누군가하고 봤다가 경악했다.

‘폐하와 대마법사님이잖아…?’

왜 이 누추한 곳에 계시는 거지?

설마 샤를로즈 아가씨가 데려오셨나?

그럼 일이 완전히 꼬여 버려.

엘은 포위당했다.

해리슨과 요한에 의해서.

그렇다고 도망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세계관 최강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한낱 하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 티아가 아꼈던 하녀 맞지?”

요한의 거침없는 물음에 엘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거지? 하기야 저분들이면 평범한 분들과 다르니 당연한 건가.’

엘은 샤를로즈를 피해 도망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네, 맞아요.”

엘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엘의 대답을 들은 해리슨과 요한은 흉흉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해리슨은 하녀, 엘에게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익숙한 향기가 맡아졌다.

티아의 향기였다.

몇 달 동안 잊지 못한 그 향기.

그 향기가 하녀의 몸에서 풍기고 있었다.

그럼 저 하녀가 티아와 함께 있단 소리가 아니겠는가.

“티아는 어디에 있지? 어서 바른대로 말해. 거짓말을 하면 고문하겠다.”

엘은 해리슨의 살기에 짓눌려 바닥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해리슨은 거만한 눈으로 엘을 내려다보며 다시 제 말을 반복했다.

“티아는 어디에 숨겨 놨지?”

“……아가씨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한은 엘의 두루뭉술한 답변에 이를 으득 갈았다.

지금 자신은 티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주가 올라오고 있었으므로.

이 저주를 없애려면 티아가 꼭 필요했다.

그것만이 아니라도 티아는 자신의 구원자였다.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다.

“네 주인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정말?”

“그것이…. 샤를로즈 아가씨를 만나고 도망 왔습니다. 아마도 샤를로즈 아가씨가 티아 아가씨를 데려간 것 같습니다.”

엘은 차분히 제 말을 다 하였다.

거짓 없는 진정한 자백이었다.

“또 샤를로즈가 훼방이군. 하아.”

해리슨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였다.

샤를로즈가 한동안 얌전해서 사고를 치지 않겠구나 했더니만,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저 애는 샤를로즈를 보고 도망간 거지?

사용인은 주인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해리슨은 미간을 좁히며 엘에게 다시 물었다.

“왜 주인을 버리고 너만 도망가고 있는 걸까?”

“샤를로즈 아가씨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요……. 무서우신 분이니까.”

“그럼 우리는 무섭지 않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오라.”

“다 필요 없고, 티아가 묵는 곳이 어디지?”

요한은 말싸움 할 시간에 티아를 찾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 엘의 말을 짤랐다.

“티아 아가씨께서 묵으시는 곳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엘은 여기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해 저 위대한 두 분을 함정에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흑주술을 이용해서.

“당연히 그래야지. 어서 안내해.”

요한의 뻔뻔한 태도에 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쩍 그를 흘겨보았다.

‘보통 같았으면 마법을 쓸 텐데, 쓰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흑주술이 잘 먹힌 모양이야.’

엘은 그 둘 몰래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샤를로즈에게는 흑주술이 통하지 않았다.

성스러운 기운이 잔뜩 있는 티아에게는 통했지만 말이다.

아직 자신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었다.

엘은 그 마음으로 해리슨과 요한을 데리고 ‘함정’에 데려갔다.

“티아 아가씨는요, 정말 다정하고 착하신 분이에요.”

엘이 앞장을 서 ‘함정’에 데려가는 동안 그 둘에게 티아에 관한 이야기를 갑자기 하기 시작했다.

“티아 아가씨는요, 하찮은 제 말을 잘 들어주셨어요. 난폭하신 샤를로즈 아가씨와는 다르게요.”

“그건 맞는 말이지.”

해리슨이 엘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은 슬며시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먼저 티아 아가씨께 도망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티아 아가씨께서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엘의 뜬금없는 폭로에 해리슨과 요한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도망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게.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다고. 티아 아가씨께서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아가씨를 지키기로.”

제 여동생과 똑 닮은 아가씨를 말이죠.

엘은 뒷말을 삼켰다.

엘은 앞장을 서 걷다가 잠시 발을 멈추었다.

‘함정’에 거의 다 온 것이었다.

해리슨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엘이 이상해 주변을 살폈다.

“여기가 진짜 티아가 묵는 곳인가?”

“물론입니다. 아가씨께서는 이곳을 참 좋아했습니다.”

요한이 주변의 기운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다.

흑주술이 자신들을 덮쳤다.

휘이이이.

커다란 바람이 엘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엘은 몸을 돌려 그림자 아래로 사라져 버린 그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죄송해요. 이대로 죽을 순 없거든요. 티아 아가씨는 제게 꼭 필요한 존재예요. 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죠.”

엘은 제 오른손을 뱀처럼 휘감고 올라오는 새까만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악마처럼 웃었다.

***

티아는 샤를로즈를 데리고 일단 제가 묵고 있는 숙소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다.

맨날 가던 그 길을 말이다.

“티아, 여기가 맞아?”

“언니. 이 길이 맞는데, 길이 바뀌었어.”

“무슨 소리야?”

“모르겠어. 분명 내가 맨날 가던 길인데…….”

샤를로즈는 진짜 당황해하는 티아를 보며 티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정말 티아가 길을 잃었다는 소리인데.

몇 달 동안 생활한 이 섬에서 길을 잃었다고?

이상한데.

“엘이랑 같이 갔을 때는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엘이라는 애랑 사이가 정말 좋은가 봐?”

“응. 내가 아끼는 애니까.”

“하긴 그 애를 믿으니까 네가 도망을 쳤겠지.”

“그게 언니.”

“괜찮아. 널 찾았으니 됐어.”

원작처럼 흘러가지 않았으니 괜찮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소매를 잡은 손을 놓지 않으며 티아의 옆에 꼭 붙었다.

갑작스러운 샤를로즈의 행동에 티아는 눈앞이 뱅그르르 도는 것 같았다.

“어, 언니?”

“추워서. 여기는 왜 이렇게 추워? 남쪽이면서.”

“……섬이라서 그런가 봐.”

“너는 잘도 이런 곳에 몸을 숨기고 살았네.”

“꿈이 생겼거든.”

“뭐, 이 섬의 환자들을 죄다 치료 해 주려고?”

“응. 내 성격 잘 알잖아. 오지랖 넓은 거.”

하기야 실제로 이 역하렘 게임을 했을 때 여자주인공이 답답하긴 했어.

너무 많은 걸 참견하고 또 일에 휘말리는 장면이 많았으니까.

“하긴. 넌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도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니까. 나와는 다르게.”

원작 악역 샤를로즈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이미 생각해 다른 이들의 가여운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1차원적인 캐릭터였지만, 샤를로즈에 빙의하고 보니 이 악역에도 큰 사정이 있었다.

원작 게임 속에서 다뤄지지 않아서 그렇지.

샤를로즈가 이 게임 속 가장 피해자가 아닌가 싶었다.

원하지 않는 입양.

원하지 않는 악질.

원하지 않는 울분.

샤를로즈는 애정 결핍이 심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떼를 쓰면, 그저 화를 내면 관심을 받으니 그게 애정인 줄 알고 지냈던 것이다.

샤를로즈로 살아 보니, 샤를로즈의 기억을 되짚으니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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