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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43/120)

43화

“샤를로즈 아가씨를 봤습니다. 이 섬에서.”

“그럴 일 없어. 언니가 여기를 왜 와. 아니, 내 위치가 들통날 일 없어.”

“그러니까요! 들킬 수 없는 위치라고요!”

“엘이 잘 못 본 거겠지. 어떻게 언니가 이 섬에 오겠어.”

“그러고 싶은데, 샤를로즈 아가씨의 외형이 워낙 눈에 띄잖아요. 신비로운 흑발에 금색 눈의 외형을 지닌 아름다운 아가씨가 샤를로즈 아가씨 말고 또 누가 있는데요.”

“정말로 샤를로즈 언니가 여기 온 거 맞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노파의 집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티아의 뒤에서 말을 꺼냈다.

“티아. 설마 나 찾고 있었어?”

자신의 물음에 티아가 환자를 치료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티아의 얼굴빛이 어두웠다.

그렇게 샤를로즈는 드디어 도망간 원작 여자 주인공을 찾게 되었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너를 찾기 위해 개같은 수모를 겪었다.

샤를로즈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티아가 마냥 반갑지는 않았나 보다.

***

과거의 회상을 이 정도만 되짚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샤를로즈는 눈앞에 제 말을 기다리는 티아에게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조력자가 있었지. 그 조력자 덕분에 너를 찾게 되었지. 참 좋은 조력자야.”

티아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야 샤를로즈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싫어하는 악역이었다.

언니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고…?

언니를 싫어하는 사람이 쫙 깔렸는데?

티아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내비쳤다.

샤를로즈는 티아의 반응에 살짝 웃었다.

“내 조력자 인간 아니야. 악마야. 그것도 대악마. 너를 찾기 위해서는 이정도는 되어야지.”

“…악마? 대악마?”

티아는 샤를로즈의 허무맹랑한 발언에 잠시 두뇌 회전이 멈추었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갔다.

‘악마, 그것도 대악마라면 우리 집 지하실에 감금한 악마 아니야? 샤를로즈 언니는 그 대악마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계약을 하게 된 거야?’

티아는 의문점투성이었다.

‘아니, 도대체 지하실에 감금하고 있는 대악마를 어떻게 만났냐고! 설마, 유진 오라버니가 언니를 지하실에 감금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앞뒤가 맞지 않아.’

티아는 샤를로즈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언니, 유진 오라버니가 언니를 지하실에 감금한 적 있어?”

샤를로즈는 웃음기를 싹 빼며 대답했다.

“응. 몇 달 전에.”

“……유진 오라버니가 언니를 대악마가 있는 그 감금실에 가뒀단 말이야?”

“응. 왜, 새삼 놀라워? 나는 사고를 잘 치고 다녀서 말이야. 유진 오라버니가 날 무척이나 싫어하잖아. 게다가 나 때문에 네가 사라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냥 벌 받은 거지.”

“언니가 왜 벌을 받아?”

“너를 도망가게 해서. 그래서 묻는 건데, 너 왜 도망갔니?”

티아는 샤를로즈의 물음에 목이 바싹 탔다.

그게, 그게.

티아는 말을 꺼내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샤를로즈는 어서 말해 보라고 권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도망갔다고 말은 하지 말아 줘. 아마 저택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 또 벌 받을지도 모르겠네.”

“……응.”

티아는 사실 샤를로즈 때문에 도망간 것이 맞았다.

하지만 당사자 앞에서 그 정확한 이유를 대기 힘들었다.

또 자신 때문에 언니가 고생할까 봐.

무서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직접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언니, 미안해.’

티아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으며 샤를로즈의 오른쪽 소매를 잡아당겼다.

“언니. 내 곁에 있어. 여기서는 내가 언니를 지켜 줄게.”

“네가 나를 왜 지켜? 나 지킬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제부터 언니를 내가 보호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마음대로 해. 대신에 내 앞에서 이제 사라지지 마. 티아.”

티아는 샤를로즈의 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응, 알았어. 이제부터 언니 시야에 계속 비칠게.”

“좋은 다짐이야, 티아.”

샤를로즈는 고분고분 나오는 티아의 반응에 조금 만족했다.

사실 티아가 자신을 보고 겁에 질리거나 울면, 아니지. 또 도망가 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작 여자 주인공이 이렇게 제 말을 잘 따라 주니 한시름 놓을 뿐이다.

“엘, 엘을 찾아야 해.”

“걔를 찾아서 뭐 하게?”

“엘은 내 숨통을 트게 해 준 다정한 애야.”

“널 도망가게 만든 큰 죄가 있는데? 아마 그분들이 알면 엘이라는 애, 죽을지도 몰라.”

“……엘은 잘못 없어. 언니, 제발 나 좀 도와줘. 응?”

“해가 졌어. 사람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어. 티아. 찾아도 다음 날에 찾아.”

“하지만.”

“내 말 안 들을 거야?”

샤를로즈는 누군가 한 명 유혹할 것만 같은 얼굴로 티아를 껴안으며 물었다.

티아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숨이 벅찰 지경이었다.

이 심장 소리가 제발 제 언니에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다.

하기야 좋아하는 사람을 몇 달만에 만났는데 본능인 걸까.

티아는 엘에 대한 미안함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날 꼭 찾으러 갈게, 엘. 지금은 언니를 만나서 내가 감정이 조절이 안 돼. 정말 미안해, 엘.’

티아는 엘에 대한 미안함을 속으로 풀며 샤를로즈의 향기에 취했다.

“네가 묵고 있는 숙소로 가자. 나, 졸려. 티아.”

“응, 언니.”

“내일 아침이 밝으면 그때 엘을 찾자.”

“……응.”

티아는 샤를로즈를 저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이 병자들의 섬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샤를로즈를 잊으려 하여도 잊지 못했다.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언니, 보고 싶어. 흑.]

[티아 아가씨?]

[엘, 나는 언니를 잊지 못해. 절대로.]

[아니에요, 티아 아가씨. 분명히 잊으실 수 있으세요.]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 사람을 어떻게 금방 잊어?]

[……그래도 샤를로즈 아가씨에게서 도망치셨잖아요]

[도망가면 뭐 해. 온종일 언니 생각에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은데.]

[샤를로즈 아가씨에게서 도망이라는 시도를 했으니 다음은 쉬울 거예요. 그러니깐 티아 아가씨, 울지 마세요.]

티아는 병자들의 섬에 있는 동안 엘과 함께 한 나날들을 잠시 상기시켰다.

그렇게 언니를 잊고 또 잊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언니가 눈앞에 있으니 그 노력이 다 무산으로 돌아갔다.

‘나는 언니를 사랑해. 그것도 많이. 나는 언니를 잊지 못해. 절대로. 엘, 결국 난 언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었어. 지난 일들이 아쉽게.’

티아는 어두운 낯빛을 하며 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많이 애써 준 애였다.

엘과의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애는, 다른 사용인들과 달랐다.

[아가씨는 꼭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 하는 얼굴이시네요. 저와 똑같이.]

주인과의 첫 만남 때 저런 말을 하는 사용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니 없지 않을까.

[당돌하구나.]

[아가씨. 저랑 도망갈래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내 벌이 무섭지 않니?]

[무섭지 않아요. 그냥 아가씨는 저와 닮아 보여서요.]

[벌이 받고 싶다면 계속 떠들어.]

[아가씨. 저랑 같이 별 보러 가지 않을래요?]

[뭐?]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다.

아주 이상한 애.

처음 본 엘의 모습은 다 죽어 가는 얼굴을 했다.

왠지 모르게 이끌렸다.

친구로서 말이다.

그렇게 티아는 처음으로 엘을 보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보처럼.

“언니, 보고 싶었어.”

티아는 과거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마주했다.

자신이 도망간 건 사실이다.

자신이 샤를로즈에게 미움을 받을 만한 짓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샤를로즈가 다 용서해 줬으면 했다.

이런 나약한 자신이라도.

“나도 보고 싶었어, 티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말에 똑같이 대답했다.

티아를 보고 싶은 건 맞으니까.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

죽을 만큼 여동생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몇 달을 찾았다.

그래. 이제 이 원작 여자 주인공만 있다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샤를로즈는 티아의 품에서 지친 얼굴을 하였다.

‘힘들다. 이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겠지?’

샤를로즈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언니, 내 방에서 자.”

“응.”

샤를로즈는 티아의 오른 손목을 붙잡고 그 애의 뒤를 쫓았다.

***

어두운 밤이 되었다.

병자들의 섬은 밤이 되면 더 시끄러워졌다.

아아악!

으윽!

병에 걸린 환자들은 이상하게 밤에 더 고통스러워했다.

오히려 해가 뜨는 아침이나 낮에는 얌전했다.

고통이 크게 오지 않은 듯이.

해리슨과 요한은 역한 냄새를 맡으며 샤를로즈를 찾고 있었다.

“으윽, 냄새 때문에 어지럽군.”

“폐하, 나도 죽겠어.”

“넌 이제 좀 내 등에서 내려와라.”

“나 아직 마력이 안 돌아왔는데, 그러기야?”

“죽겠다.”

“정말 폐하는 후각에 약해.”

요한은 해리슨의 등에서 내려오다가 헛구역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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