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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120)

42화

그러다가 샤를로즈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샤를로즈보다는 못하지만 꽤 아름다운 여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티아라는 여자 옆에 어느 수수한 여자가 또 있었는데, 그 여자가 분명 그리 말했다.

“티아 아가씨. 오늘은 그 노파의 집을 끝으로 조금 쉬세요. 그러다가 쓰러지세요.”

“괜찮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인걸. 엘.”

“저는 아가씨가 무척이나 걱정되어요. 제발 이 엘의 부탁 좀 들어주세요.”

“생각은 해 볼게.”

“그런데 아가씨, 정녕 이 많은 환자를 다 고쳐 줄 생각이에요?”

“응, 그러고 싶어.”

“정말 아가씨는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글쎄.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무슨 소리세요, 티아 아가씨는 샤를로즈 아가씨보다 몇천 배 착하시고 선하세요!”

운이 좋게도 이러한 대화를 들은 루아와 이안은 서로 바라보며 대화했다.

“이안. 분명히 저 수수한 여자가 티아와 샤를로즈를 입에 담았지?”

“네. 똑똑히 들었어요.”

“샤를로즈가 찾던 이가 맞는 거겠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샤를로즈라는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에 샤를로즈의 여동생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그렇지? 게다가 샤를로즈가 말한 여동생의 외형과 똑같기도 하고 말이야.”

루아는 이안과 신중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 버리려는 티아와 엘을 보며 이안에게 서둘러 명령했다.

“이안, 저들을 쫓아.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내게 통신을 보내.”

“그러죠. 뭐.”

이안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엘과 티아의 뒤를 몰래 쫓았다.

이안이 사라지는 걸 본 루아가 샤를로즈의 악한 기운을 따라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아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샤를로즈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샤를로즈는 제 바로 앞에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올렸다.

“루아, 벌써 티아를 찾았어요?”

“네. 찾았어요. 지금 이안을 보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요. 곧 제 머릿속에 통신이 올 거예요.”

샤를로즈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루아를 대견하게 보았다.

“루아는 정말 제게 있어서 구세주 같은 존재네요. 모든 사람이 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데 루아는 저를 신뢰해 주셔서 참 감사해요.”

샤를로즈의 낯부끄러운 칭찬에 루아는 상냥하게 웃어넘겼다.

악마란, 계약자의 칭찬에 유독 약했기 때문이었다.

더럽게 표현하자면 충견과 주인님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악마는 계약자에게 많은 집착과 충성심을 보였다.

계약자는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었고, 잃고 싶지 않았다.

잃고 싶지 않다.

샤를로즈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루아에게 있어 샤를로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루아, 무슨 생각 해요?”

샤를로즈는 평소처럼 웃다가 서서히 입꼬리를 내리는 루아가 이상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아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직 자신의 계약자가 죽지도 않았는데 이 무슨 추태인가.

루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 티아라는 인간을 찾으면 샤를로즈는 자유인 거죠?”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꽤 모호한 대답이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이상한 답변에 되물었다.

“샤를로즈는 여동생분만 찾으면 자유잖아요. 그 인간 황제가 약속했잖아요.”

“폐하께 약속을 받아 왔지만, 제 오라버니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바깥으로 나가게 해 줬는데 자유를 주시겠죠.”

순간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 불어왔다.

샤를로즈의 풍성하고 새까만 머리카락이 허공에 물결을 치며 날아올랐다.

샤를로즈의 금색 눈동자가 색을 잃어 잠시 어두운 그림자를 띄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이런 약해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제 심장을 누군가 계속 칼로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악마란 본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종족이었다.

하여 인간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었다.

가끔 이안 같이 인간을 좋아하는, 감정을 꽤 잘 느끼는 악마가 태어나곤 했지만, 그것도 극히 드물었다.

루아 역시 다른 악마와 다름없이 감정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런데 샤를로즈와 계약한 후부터 제 모든 것이 망가졌다.

샤를로즈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집착 어린 사랑으로 바뀌어 갔고,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그녀가 우울한 낯빛을 보이면 저도 따라 우울해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이상한 것이 아닌가.

가끔 악마는 계약자와 비슷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가끔 아주 가끔 계약자의 마음과 고통을 함께 느낀다고도 했다.

책에서만 보던 일이 제게도 일어나니 루아는 조금 당황할 따름이었다.

“샤를로즈는 자유를 얻는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요.”

샤를로즈는 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용히 퇴장하고 싶어요. 이 세계에서.”

“퇴장이요?”

“네. 저는 이 세계에 걸맞지 않은 몸이에요. 모든 것을 원상 복구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죠.”

“그러니깐 떠나고 싶다는 말인가요?”

“그런 셈이죠.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게 이번에는 제가 도망가려고요. 티아가 아니라.”

“그 도망에 저도 섞여 있습니까?”

“아뇨. 그 도망은 저 혼자만의 일이에요. 루아와도 계약을 파기하고 도망갈 거예요. 나비처럼 어디론가 멀리.”

“샤를로즈. 저를 떠나실 건가요?”

저를 구원하고 옆에서 키워 놓고서는.

매정하게 떠나실 건가요?

아니요.

루아는 이 대답을 원했다.

하지만 샤를로즈는 루아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네.”

루아는 샤를로즈의 알 수 없는 마음에 시무룩해졌다.

오랜만에 꽤 마음에 든 계약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럼 도망간 샤를로즈를 잡는 일은 해도 되나요?”

루아는 샤를로즈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도망가면 잡으면 된다.

또 도망가면 또 잡으면 된다.

뭐가 어렵겠나.

샤를로즈는 말갛게 웃었다.

“네. 잡아도 돼요.”

“계약 파기에 대해서는 제게 권한이 없어요. 계약자가 파기하고 싶다면 파기하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샤를로즈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제게 정이라도 들었나요?”

“……네. 아주 큰 정이 들어 버렸어요. 샤를로즈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샤를로즈는 눈매를 둥글게 휘며 루아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댔다.

“제가 도망가면요, 잡으러 와 주세요. 그래도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네요.”

샤를로즈의 쓴웃음을 보지 못한 루아는 샤를로즈의 향기에 취해 눈을 느리게 떴다가 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통신이 왔다.

-아버지. 찾았습니다. 어느 노파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제 시야를 통해 오십시오.

때마침, 이안이 루아에게 머릿속으로 통신을 보내 우울한 분위기를 깰 수 있었다.

“샤를로즈, 이안이 찾았다고 해요.”

“티아를 찾았다는 말이에요?”

루아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댄 샤를로즈가 황급히 얼굴을 떼어 조용히 외쳐 물었다.

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안이 찾았다고 하네요.”

“얼른 이안이 있는 곳으로 가죠.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티아와 만나게 된다면 저와 잠시만 헤어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잠깐만 헤어져요. 제가 루아를 찾을 때까지 자유를 즐기세요. 이안과 함께. 아, 이안에게는 제 피가 있는 이 크리스털 통을 주세요. 많이 먹지는 말라고 하세요.”

샤를로즈는 품에서 손바닥 정도만 한 제 피를 담은 크리스털 통을 꺼내어 루아에게 건네주었다.

“……샤를로즈, 무슨 생각이에요?”

루아는 자신도 역시 이안을 속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샤를로즈가 건넨 크리스털 통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티아를 제 옆에서 감시하고 싶거든요. 주위의 방해 없이. 아, 폐하나 다른 분들을 만난다면 티아는 제가 데리고 있으니 나중에 만나 달라고 전해 주세요. 그래도 오겠다면 말리진 마세요.”

“저는 왜 자유를 주고 그 녀석들은 왜 오라고 하는 겁니까?”

“그야 그분들은 티아를 찾기 위해 미친 분들이라서요. 티아가 없으면 살아가기 힘드신 분들이거든요. 미련하게. 루아는 저와 계약한 상태이니까 꼭 곁에 없어도 되지 않아요?”

“샤를로즈가 마음속으로 저를 애타게 부르면 저는 언제든 날아올 수 있어요. 계약자의 옆에 꼭 붙어 다니라는 계약 규칙은 없으니까요.”

“그러니깐 루아, 이번에도 제 어리광 좀 받아 주세요.”

샤를로즈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루아는 무어라 할 말을 잃고 다른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알겠어요. 샤를로즈의 어리광을 받아 줄게요. 많이.”

“고마워요.”

루아는 샤를로즈의 오른손을 붙잡고 이안이 있는 한 노파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파의 집 바로 앞에서 이안과 사라졌다.

샤를로즈를 내버려 두고선.

샤를로즈는 혼자 티아가 있다던 노파의 집 정문 앞에 섰다.

그리고 티아와 어느 여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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