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언니…….”
티아는 환자를 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샤를로즈에게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티아, 일단 환자부터 보고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샤를로즈의 말에 티아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남 앞에서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줬다는 생각에 말이다.
티아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 환자에게 집중했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샤를로즈를 계속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터져 죽을 것 같았다.
샤를로즈는 제게 있어 독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티아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샤를로즈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환자를 보는 티아를 내려보았다.
‘너무 이르게 찾아왔나. 아니지, 내 자유를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할까. 게다가 이안의 말대로 티아는 병자들의 섬에 숨어 있었어.’
샤를로즈의 일자였던 입가가 순간 비틀어졌다.
티아가 제 손바닥 위에 있다는 사실에.
샤를로즈는 티아가 환자를 다 치유하는 동안 벽에 기대어 기다려 주었다.
제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으니.
티아를 기다려 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동안 수모를 생각하면.
티아의 치료가 끝난 것인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노파에게 조용히 충고했다.
“따님분의 건강은 고쳐 놨어요. 이제 안정만 취한다면 살 수 있을 거예요.”
노파는 제 딸이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티아의 말에 울음을 터트렸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티아는 씁쓸한 미소로 그 말에 보답해 주고 노파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샤를로즈는 티아의 뒤를 쫓았다.
“오늘 환자는 저 사람이 끝이었니?”
“……응.”
“나랑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지 않아, 티아?”
“딱히 없어.”
“그나저나.”
샤를로즈는 계속 저를 등지고 말하는 티아가 짜증 났는지 한숨을 내쉬며 티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람이랑 대화하는데 눈 좀 보고 이야기하지 그래? 네 뒤만 보고 있자니 화가 머리끝까지 날 것 같거든.”
“……나는 언니를 볼 자격이 없어.”
“그럼 나를 위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너를 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아직 돌아가기에는 일러. 병자들을 모조리 치료해 준 뒤에나 갈 거야. 집은.”
“저 많은 환자를 너 혼자 치료하겠다는 소리야?”
“응. 내가 여기 숨어 있는 것도 그 이유니까.”
“성녀의 딸답게 성녀다운 발언이네.”
샤를로즈는 티아를 비아냥거리며 팔짱을 꼈다.
티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이.
“언니, 나는 여기 있어도 괜찮겠지만 언니는 역병에 걸릴 위험이 커.”
“난 죽어도 죽지 않으니 내 걱정은 집어치워.”
“그게 무슨 소리야?”
티아는 샤를로즈의 불길한 발언을 맞받아쳤다.
“말 그대로야. 나는 죽지 않아.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거든.”
티아는 샤를로즈의 함축적인 말에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언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는 걸까.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가 티아는 제 주변에 엘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렸다.
“언니, 엘을 못 봤어?”
“엘은 또 누구야.”
“나랑 같이 있던 하녀.”
“몰라. 난 너밖에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샤를로즈의 말에 티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언니는 늘 이렇다.
언니는 늘 이런 말을 서슴없이 자신에게 해 가슴에 통증을 준다.
언니에게 반응하는 제 자신이 싫은지 티아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엘을 찾아야 해.”
“그 애가 누구냐니까?”
“나를 집에서 나오게 도와준 애야.”
“아, 너를 도망가게 해 준 장본인이다?”
티아는 샤를로즈의 무표정한 얼굴이 찡그려지는 걸 보고서 두 손을 들어 어떻게든 아니라며 저어 댔다.
“그게 아니라, 엘은 착한 애야. 그러니까 뭐라 하지 말아 줘. 응, 언니?”
“그건 그렇고, 티아. 이 섬에 나만 온 게 아니야. 네 남자들도 같이 왔지. 재밌지 않아? 난 네 남자들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죄다 겪었는데. 그 남자들은 너를 찾겠다며 내게 붙은 다음 이렇게 와 버렸네.”
샤를로즈는 악마처럼 웃었다.
티아는 ‘네 남자들’이라는 샤를로즈의 말에 유난히 크게 반응했다.
‘그럼 폐하부터 그 분들까지 모조리 이 섬에 언니랑 같이 온 거라고?’
안 돼.
지금 이 섬은 위기라고.
티아는 머릿속이 꽉 채워져 두통이 아려 왔다.
언니만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함께라면 정말 위험한데.
지금 병자들의 섬에 제 소문이 퍼져 역병이 아닌 환자들까지 이 섬에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통제하는 건 병사들이지만 내부의 통제는 병사들이 하고 있지 않았다.
몇 명의 병사들이 내부 통제를 하다가 역병으로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숨 막혀.”
티아는 제게 집착하는 주변인들 때문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은 그저 좋은 마음에서 그들을 구원해 줬을 뿐이다.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굉장히 안타까워 보여서.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티아가 한숨을 길게 내쉬는 걸 본 샤를로즈가 티아를 안았다.
티아는 갑작스러운 샤를로즈의 행동에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언니의 향기.’
늘 그리웠던 향기가 티아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티아는 연약해 보이는 샤를로즈를 떼어 낼 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샤를로즈는 저를 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자매끼리의 애정 어린 행위 따위 거의 해 주지 않았다.
뺨은 자주 때렸지만 말이다.
짜악!
[언니…….]
[티아, 난 네가 너무 싫어.]
[나는 언니가.]
[네가 싫어. 정말 싫어. 역겨워, 티아.]
늘 이런 대화를 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 생각이 들자 티아는 갑자기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했다.
‘그나저나 언니는 나를 만지는 것도 싫어했는데.’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든 티아가 샤를로즈에게 조용히 물었다.
“언니, 나 만지는 거 싫어했잖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내 곁에 벗어나지 못하게 안아 봤어.”
“언니는 날 무척이나 역겨워하며 경멸했잖아. 이제 와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티아는 작게 울부짖으며 예전의 샤를로즈를 떠올렸다.
저만 보면 악담을 퍼붓는 제 언니를.
저만 보면 미쳐 버리는 제 언니를.
저만 보면 투명 인간처럼 무시하는 제 언니를 말이다.
진짜 샤를로즈의 과거를 잘 알 턱이 없던 가짜 샤를로즈 김단은 티아의 말에 대충 변명을 하였다.
“네가 없는 몇 달 동안 반성했어.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거든.”
가짜는 진짜처럼 될 수 없지만, 진짜처럼 연기할 수는 있었다.
그게 아무리 이 게임 속 유일한 악역이라 할지라도.
티아는 샤를로즈의 훅 들어오는 플러팅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 병자들의 섬에 들어와 샤를로즈를 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환자들을 돌보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무리해서까지 하루에 환자를 10명이나 받으며 제 몸을 혹사시켰다.
티아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치유 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신성력이라 불리는 치유 능력이 무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5명을 치유하면 몸에 조금씩 과부하가 오며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건 티아만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단점이자 약점이었다.
아무도 이 약점을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야 그럴 것이 엘의 앞에서도, 환자들 앞에서도 힘든 기색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힘든 기색을 내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금방 불안에 떨기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괜찮은 연기를 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 하던가.
아마도 제 선한 마음이 자신을 그리 망가트린 것 같았다.
아니, 망가트렸다.
하기야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제 언니를 가족으로 보지 않는 것 자체부터 자신의 마음은 이미 비틀리고 또 비틀렸다.
티아는 이런 제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언니, 이제 나 좀 놔 줘. 엘도 찾아야 하고 폐하와 그 분들도 찾아야 하니까.”
티아는 마음 깊은 곳부터 끓어오르는 욕망을 어렵게 참았다.
하지만 샤를로즈는 티아의 욕망을 더 끓게 하였다.
“나는 너를 찾기 위해 내 목숨까지 내놓은 상태야. 네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야.”
순간, 티아는 샤를로즈가 어떻게 이 넓은 섬에 자신을 금방 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환자들이 북적거리는 이 섬에.
어떻게 자신을 바로 찾을 수 있었는지.
혹, 조력자라도 있었던 건가?
“언니,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언니는 어떻게 이 섬에서 바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거야?”
“아.”
샤를로즈는 티아를 만나기 전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
병자들의 섬에 원작 남자 주인공들을 떼어 내고 먼저 섬 안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주술을 건 악마들, 루아와 이안에게 샤를로즈가 명령을 내렸다.
“루아, 이안. 이 섬에서 티아를 빠르게 찾아 제게 위치를 알려 주세요.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먼저 티아를 찾아야 하거든요.”
계약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루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귀찮아하는 이안을 데리고 섬 안을 빠르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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